존재의 거룩

10월 쌀쌀해진 어느 날 새벽, 살아 숨 쉬는 아기를 상자에 담아 내려놓고 돌아서는 한 어머니가 있다. 이렇게 하는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다 알기란 어렵다. 건강한 아기도 있고,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기나 뇌성마비가 온 아기도 있다. 심주희 어린이를 만난 수많은 이들이 물었다. “주희가 고통이 저렇게 심하다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주희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1981년 2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지체 장애와 언어 장애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놔두고 가출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뇌성마비로 자율신경의 조절 기능을 상실한 그에게는 강직성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한쪽 어깨를 움직이면 양쪽 팔이 탈골돼 고통을 겪곤 했다. 말 한 마디에도 몸이 울려 고통을 겪었다. 한 번 자극을 받으면 주희의 등은 활처럼 휘어졌다. 거꾸로 휘어지는 등. 자세 교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희는 그 격렬한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8년을 돌보며 지내다가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를 버렸다. 그런데 주희가 꽃동네에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꽃동네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자원봉사를 청했다. 그의 청은 받아들여져서 부녀가 함께 꽃동네에서 행복하게 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꽃동네 사람들은 염려했다. 아프고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가 없어지면서, 더군다나 이번까지 부모에게 세 번이나 버려지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가 겪을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을까 걱정하면서 너무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떠난 후에도 ‘수선화 같은 그 고운 미소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날들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수도자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신상현(야고보) 수사가 물었다. “너를 세 번씩이나 버린 부모가 밉지 않니?” 그러자 그는 온 존재로 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을 모아 경어로 답했다. “선생님, 전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어디 계시든지 잘 사시라고요. 요즘은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주희는 1995년 4월 4일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급성호흡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음을 맞기 전 자기를 돌보기 위해 온 신 수사에게 늘 그렇듯 경어로 말했다. “선생님, 엄마 아빠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어요.”, “너를 버린 미운 사람들인데도?”, “그래도 엄마 아빠예요. 부모님 용서는 벌써 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그는 끝내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귀천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그의 아버지가 왔다가 장례가 끝난 뒤에 그가 사랑한 딸 심주희 그를 가슴에 품고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심주희, 그는 자신의 온 존재,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온 삶으로 우리에게 탄생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은 ‘한 상태’, 고통보다 축복이 더 큰 상태라는 것을 증거했다. 이 신학적 진리를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탄생(삶) = 상태(축복 > 고통)’ 한 존재가 자기 존재의 원뿌리에 닿아서 부르는 존재의 노래, 저 탄생과 삶의 진리를 증거한 증거자 심주희가 죽기 직전 갈망으로 애타하며 말했다.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자기 존재를 매개해 준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충만을 향한 갈망, 이것이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거룩한 갈망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인데, 우리는 심주희처럼 자신의 이 같은 갈망을 알고 사는가?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0-20

은행나무와 가을

몇 년 전에 수녀원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아주 불쾌한 목소리로 수녀원 마당에 심어진 은행나무 때문에 냄새가 심하고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불편하니 나무를 잘라 달라는 요청이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나무를 자르라는 요구에 그들의 불편함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연을 너무 왜곡해서 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만이 먼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무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가을 은행나무의 듀얼리즘이다. 오래전 수녀원 뜰 담 주변으로 처음 심은 나무가 은행나무였다. 그 후 15년이 지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정원에 떨어진 은행을 주어 그것을 씻을 때는 심한 냄새가 풍기니 코를 틀어쥐고 악취에 대한 불평을 했었다. 하지만 예쁘게 씻긴 은행을 나누는 기쁨도 컸다. 이것을 맛있게 구어 먹을 때는 이 귀한 것을 거저먹을 수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긴 시간이 흘러 주변의 이웃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나무가 됐다. 결국 수녀원 공사가 있었던 참에 모든 은행나무를 잘라버렸다. 계절의 온도를 이겨내고 가을을 뽐내려는 노란 잎 은행나무가 거리마다 가득하다. 은행나무는 화사한 노란색으로 가을의 낭만을 즐기게 해 주지만 나무가 품고 있는 노란 열매 은행은 밟으면 악취를 풍기며 고약함을 드러낸다. 주로 길가에 떨어져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어찌 됐든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니 의도치 않은 만인의 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이 열매를 구입하려면 비싼 값을 내야 하니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길가에 떨어진 것을 주우려 위험을 감수하고 은행을 줍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가을의 한 풍경도 있다. 그런데 길에서 주운 은행을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차량들이 뿜어내는 공해 속에서 자란 도심 속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을 주어 그냥 먹어도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서울 시내 가로수에 떨어진 은행은 먹어도 건강에 이상은 없지만 식약처는 “위생 절차를 거쳐 정해진 양을 익혀서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알맹이는 겉·속껍질 보호를 받아 오염물질이 닿지 않는다”며 “토양오염도 은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헤럴드경제) 그래도 가로수의 특성상 오염 가능성을 생각하여야 하고 정해진 양과 꼭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또한 은행을 줍기 위해 도로로 뛰어들어 운전자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모한 도전은 멈춰야겠다. 요즈음은 가로수로 식재된 은행나무에 열매 수집망, 마치 거꾸로 펼쳐진 우산 같은 모습의 신박한 은행 받이 그물망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물망을 쳐서 떨어지는 은행을 한 곳으로 모으는 깨끗한 거리 만들기에 노력한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떨어지는 은행을 모으고, 냄새도 방지하여 가을철 은행나무 열매로 인해 발생하는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열매를 주우려는 분들의 위험을 방지하여 마음 편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겠다. 이것이 가을이다. 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아름다운 모습도 거리를 걸으며 킁킁거리며 냄새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을의 풍경이다. 잠시의 불편함을 못 이겨서 수목 교체 작업을 한다면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고 몸에 좋다는 그 열매 은행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냄새가 나는 이 가을의 풍경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든 지자체의 고민이 깊어지겠다. 가을이 절정일 때 노랗게 물들어 잎새는 아름다워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이 많은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또 다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0-13

돌봄과 독립

모성은 자녀에 대한 한없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하고 여성의 덕목으로 해석돼 왔다. 자녀 사교육에 대한 열정도 어머니의 역할에서 비롯해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여성은 자신보다 자녀의 성취를 위해 애쓸 때 덜 비난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모성도 가족의 성공, 계층 유지와 관련돼 있으니 이기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면 어머니의 역할은 끝나는 것으로 해석됐으나,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어머니들은 손자녀 양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과 가정생활 병행이 힘들고 보육제도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맞벌이 자녀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고학력 어머니들은 자녀의 학습을 보충·지도하고 사교육 정보를 수집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는 자녀의 과제, 논문, 상급 학교의 원서 작성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모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어머니들이 자녀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이러한 행위를 사랑으로 해석해 죄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 낮은 학점을 받은 대학생의 어머니가 교수를 찾아와서 따졌다는 이야기,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회사 면접을 볼 때 어머니들이 면접이 끝날 때까지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엄마에게 “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헬리콥터맘’ 자녀들의 이야기와, 임용된 이후 자기 연구실을 꾸미는 것도 어머니가 와서 해줬다는 어떤 대학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자녀는 늘 아이와 같으니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90세의 어머니도 70세의 자녀에게 “조심해서 다녀라”고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또 구조적 실업이나 경기불황으로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가 자녀의 생존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머니가 자녀의 인생을 계획하고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주변에서는 이러한 분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녀들이 영원한 마마보이, 마마걸로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행위가 과연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들은 과잉보호와 가족이라는 안전망 속에서 위험에 노출되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지 못할 것이다. 철학자 사라 러딕(Sara Ruddick)은 「모성적 사유」에서 “어머니는 자녀가 독립적이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봄이나 간섭을 억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돌봄으로 형성되었던 애착관계 때문에 분리의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진정으로 돌봄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매 환자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청년 조기현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서 어린 나이에 아픈 부모를 돌보는 영케어러들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들은 아픈 부모 돌봄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 이들은 다른 연령층의 돌봄 제공자들보다 더욱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노년과 장애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족의 돌봄에 의존하기에 그 가족은 힘든 상황에 있다. 과잉보호와 돌봄이 가족이라는 배타적 울타리에서 이뤄질 때 정작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소외된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수혜나 분배는 불균형적이다. 자녀와 분리된 삶으로 나아간다고 나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면 된다. 노년기 여성들은 자녀의 삶을 그들에게 맡기고 돌봄에서 자유로워져서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면 좋겠다.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다면 가족을 넘어 공동체 차원에서 정말 돌봄이 필요한 곳,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돌봄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돌봄이 여성에게만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10-06

Minor Feelings

어쩌다 보니 ‘방주의 창’에 올리는 글이 이주민과 난민들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큰 부담이었다. 이주민 특성화 본당에 오게 되어 자주 접하게 되는 일들을 글로 옮겨 알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활동가’로 이야기하기에는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도 알려야 할 일도, 알리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이곳에서 내가 배우게 된 것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달 원고를 준비하면서 휴가를 떠나게 됐다. 2년 만의 휴가는 당연히 달콤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그곳의 공공도서관에서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서관 기념품 가게에서 우연히 책 하나를 만나게 됐다. 작가 이름이 너무나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책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Park Hong’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자마자 책을 집어 들게 됐고, 몇 쪽 읽어 보다 ‘아, 이거 사야겠다!’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Minor Feelings」. 대중적이지 않은 감정을 적은 것일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소수자(minor)로서의 자신의 감정을 적어 놓은 글이었다. 등단 시인이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 보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2세대 한인으로서 자기 부모와 함께 겪어야 했던 온갖 어려움들, 특히 우리에게도 각인돼 있는 LA 폭동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차별 섞인 눈빛들을 만날 때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주었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건데?’ 차별 섞인 눈빛들을 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동두천의 길거리였다. 미군 부대 근처 보산역에는 ‘외국인 관광특구’가 설치돼 미군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술집과 클럽이 밀집돼 있다. 이곳 술집과 클럽 입구에는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고 종업원들 역시 이주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주민 종업원들을 바라보는 선주민 업주의 눈빛은 분명 차별의 눈빛이었다. 업주들뿐 아니라 관광특구 내에 살고 있는 적은 수의 선주민들 또한 차별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한 쏘아붙이는 눈빛으로. 1960년대 냉전 구조 속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상을 선전하려고 이민법을 전면 개정해 쿼터제를 폐지하고 이민의 문을 넓히자,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지금처럼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커녕 국제전화로 목소리 듣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어쩌다 한 번씩 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뒤편에 얼마나 많은 설움과 차별의 시간이 있었는지 이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물 설고 말 선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지, 라고만 넘길 수 없었던 지난한 차별의 시간⋯. 이제야 경제 분야는 물론 정치 분야에서도 한인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인으로 겪어야 하는 무수한 장벽이 있음을 캐시 박 홍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타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동포’에게는 한없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 한 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단일민족 ‘신화’와 우생학적 ‘편견’과 서구적 ‘세계관’에 매몰돼 피부색만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을 비하하고 폄훼해 그들로 하여금 ‘minor feelings’를 느끼게 하는 적지 않은 이들은, 과연 캐시 박 홍이 전하는 ‘minor feelings’에는 뭐라고 답할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9-29

끓는 지구 시대에 적정 에어컨 온도는?

9월 1일부터 시작된 창조 시기를 맞아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소하신다.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입시다.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지구도 지금 ‘아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이와 같은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교황은, 끓는 지구(global boiling)를 염려하는 가운데, 우리가 지구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물으신다. 우리의 응답이 미진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지구가 끓어올라 더워진 데는 민감하면서도 지구가 앓고 있는 것에는 둔감한 이유가 기술지배 패러다임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교황은 예리하게 포착하신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전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촉 지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모든 창조물들과 하나로 결합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기술지배 패러다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전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촉 지대'(contact zone)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서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하느님을 찬미하여라」 66항) 2024년 여름 무더위가 참으로 길고 심했다. 나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 1층에서 살고 있는데, 조금 그늘이 진 침실은 32℃, 햇빛이 드는 거실은 33℃까지 올라갔다. 통풍을 시키며 자연 바람하고 함께 살면서, 바람이 불어 33℃에서 32℃, 32℃에서 31℃로 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느낄 때면 바람이 참으로 고맙다. 집 밖으로 나오면 뜨겁기는 해도,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이것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바람 없는 여름 없고, 바람 없는 도시 없다. 그런데 에어컨으로 온도를 33℃에서 24℃, 혹은 23℃로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연 바람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밖으로 나가서도 바람을 느끼기보다 뜨거운 열기에 얼른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하기 쉽다. 기술지배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에어컨과 같은 제품들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다. 기술지배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자연에서 떼어놓는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자연 만물과 이웃을 만날 때 우리에게 ‘접촉 지대’가 되어 주는 자연을 잊게 만들어서 ‘접촉 지대’를 삭제하는, 그리하여 결국 그 사용자들이 자기와 자기 후손들을 스스로 제거하는 결과를 낳는다. 8월 30일 새벽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가 다시 기차로 전남 나주로 가서 택시를 타고 남평에 있는 광주가톨릭대학교로 이동해 신학생들 수업을 동반했다. 그리고는 광주송정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송으로 가서 카리타스대학원 영성과 실천 강의를 위해 가톨릭꽃동네대학교로 갔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몸이 굳어오기 시작해 밤새 앓아야 했다. 오른편 어깨 쪽으로 마비가 와서 숨을 깊게 쉬기가 어려워졌고, 성호를 긋기 위해 손을 이마까지 올리기가 힘들었다. 아픈 과정을 통해서 “고통이 크면 클수록 움직일 가능성은 줄어들고, 평형에 대한 그리움은 커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평형을 회복해 가는 동안,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병과 함께 살 줄 아는 통합 생태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갔다. 선인들이 말한 것처럼, 앓는 것은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이웃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알아가는 은총의 비에 젖는 때다. 그런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물음이 있었다. 이 끓고 있는 지구 시대에 전주교구청은 에어컨 온도를 26~28℃로 설정하고 있었는데, 그 온도를 몇 ℃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 적정 온도를 어떻게 합의해 갈 수 있을까? 우리 교회와 사회는?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09-15

중장년 1인 가구

요즘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고 있는 가구의 형태가 있다.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 환경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1인 가구이다. 기업들도 이 가구들을 의식한 듯 생산설비와 포장라인을 재정비하여 상품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주거, 음식, 문화 공간들도 다양한 형태로 1인 가구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합류하고 있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데 적절한 또는 충분한 사회적 요건을 갖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을 느끼며 생을 즐기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장년 1인 가구가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게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중장년 1인 가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에는 고독사 위험군이 19~29세 9.7%, 30대 16.6%, 40대 25.8%, 50대 33.9%, 60대 30.2%, 70대 이상 16.2%로 나타났다. 살펴보면 모든 연령에서 고독사 위험군이 있지만 그중에 40~60대에서 가장 높다. 바로 중장년 1인 가구이다. 이들은 사회구조에 따른 개인의 고립 및 단절 심화, 전통적 가족 돌봄 기능의 지속적 약화, 또는 점점 약화되고 있는 사회관계망 속에서 우울할 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고 몸이 아플 때 연락할 사람이 없고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이들은 결국 고독사를 맞는다. 국내 고독사는 2019년 2656명에서 2022년 4842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 고립, 고독사 예방을 위해 1인 가구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지자체 조례를 찾아보면, 간혹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예방과 지원에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기는 하지만 이를 위한 사업이나 서비스는 아직 부족하거나 부재한 상황이다. 이들을 위해 우선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로는 생활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 고독사 위험군 대상자 발굴 및 안부 확인 시스템 구축, 외출을 유도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현물지원 그리고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한 사회 관계망과 일상회복을 위한 지역사회 대응체계 구축이다. 현재 돌봄서비스를 확산시키고 있는 보건복지부 사업안에 중장년 1인 가구의 돌봄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고립가구 및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 개발 및 서비스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요청되고 있는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는 움직임이 더 크게 실천돼야 하겠다. 혹시 우리 본당, 우리 구역에도 보이지 않는 신자 또는 방문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신자가 있는지 살펴보자.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노후 다세대 주택가가 있거나 문 앞에 도시가스 체납 안내문이 붙어있는 가구들이 있다면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 이들을 발굴하는 첫걸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의 특성상 한 번의 방문으로, 한 번의 전화로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안부로 첫 외출을 시도해 보자. 그래서 우리의 형제자매, 우리의 이웃이 외롭게 혼자 지내다가 홀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하자. 중장년 1인 가구 형제자매들이 시원하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발길을 내밀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가족과의 관계 단절, 주변을 회피하는 이들이 집 밖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아진 만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의 복지관과 지자체와 연대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최소한의 안부 전화로 식사, 수면, 운동, 외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지역사회 서비스체계를 통해 사회적 고립예방 및 이웃 돌봄을 시작해 보자.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09-08

올림픽과 여성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사람들에게 올림픽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기간이 된다. 올림픽 기간 공영방송에서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고 뉴스도 올림픽이 중심이 된다. 올림픽은 공정하게 경쟁하며 우정을 나누는,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지구적 축제다. 그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못 딴 선수가 비판받고 은·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분해서 슬퍼할 때 올림픽의 정신과 의미를 회의하게 된다. 최선을 다했지만 메달을 못 딴 선수들, 이번 올림픽에서 은퇴하는 선수들, 승자에게 축하를 보냈던 선수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며 이 글을 시작한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 패션, 예술, 자유의 도시 파리의 특성을 살린 한편 성소수자와 디오니소스의 재현에서 가톨릭 교리와 외설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럼에도 성평등, 다양성, 자유를 지향하며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등 유서 깊은 프랑스 문화를 표현했다는 평가도 있다. 개막식에서는 여성 성악가들의 노래를 배경으로 프랑스 역사를 빛낸 10명의 여성이 금빛 동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이자 자기 인식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여성들로 시민권 운동가, 작가, 식물학자, 철학자, 최초의 올림픽 여성선수 등으로 활약했다. 그중에는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도 있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녀는 여성이 생물학을 운명으로 알고 어머니, 아내 역할에 구속되고 노동, 사회 참여 등 공적 활동을 못 하는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젠더’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침묵해야 할 쟁점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 사회적 관계와 노동시장에서 낙인을 초래한다.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는 아직 산적해 있다. 프랑스는 한국만큼 성평등한 사회지만 페미니즘이나 젠더를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역사 속 페미니스트들을 존중하며 올림픽에서 성평등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최초의 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성들은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은 스포츠를 여성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겼다. 운동은 남성의 영역이었고, 강하고 공격적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남성성으로 해석됐다. 여성들은 올림픽 시상식에서 월계관을 씌우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시상식에서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들은 의상 때문에 종종 성적 대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남성 도우미가 등장한 건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였고, 올해 파리 올림픽 시상식에서 여성도 바지 유니폼을 입게 됐다. 파리 올림픽 중계에서 전 세계 방송국은 지침을 정해 성평등한 보도에 노력했다. 여성 선수들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도록 촬영하고 외모보다 능력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하지만 성차별적 관행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 비치발리볼 유니폼은 성적 대상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국의 해설위원은 메달을 딴 여성 선수에게 “설거지와 요리를 잘하는 대장”, “여성은 화장하고 놀러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 비판받았다. 한국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 양궁 선수에게 훈련으로 인한 턱의 상처에 피부과 시술을 할 것인지 묻거나, 여성 사격 선수에게 어머니의 위치를 강조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남성 선수에게는 아버지의 위치를 강조하거나, 변형된 신체 부위에 대해 시술 여부를 묻지 않았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해 운동을 못 한다거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변화하고 있다. 세계 여성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기록을 갱신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의 시선, 중계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의 성인지 감수성은 아직 부족하고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09-01

이주노동자와 고용허가제

일차리튬전지업체 아리셀에서 중대재해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추모행동이 열렸던 7월 초를 끝으로 뉴스와 방송에선 참사 관련 소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실 아리셀 참사는 우리 사회, 특히 경제, 노동 분야가 품고 있는 부조리의 종합세트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복잡한 층위를 갖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사측의 문제, 이주노동자가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고용되는 노측의 문제,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고용허가제까지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산업 ‘연수생’ 취급하며 싼값에 부려먹는 모양새로 변질되면서 1995년부터 고용허가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2003년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외국인산업연수제도는 시행 13년 만인 2006년 종료됐다.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래 외국인근로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는데, 현재 기준으로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한 번에 기본 3년+연장 1년 10개월로 최대 4년 10개월까지 노동이 가능하며, 재신청하면 다시 4년 10개월 동안 노동할 수 있다. 최대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된다고 하니 언뜻 보면 굉장히 괜찮은 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고용허가제에는 아주 큰 흠 하나가 있다. 애초에 이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정당한 노동자로 대우해 기존 산업연수제도의 문제를 최소화하되, 이주노동자의 한국 정주는 막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가족 동반 비자를 주지 않고, 1차로 허가받은 4년 10개월 동안 이주노동자가 본국을 방문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차 허가를 받기 위해 본국으로 출국해 비자를 기다리는 기간이 다음 4년 10개월까지 포함 10년의 노동 기간 중에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더불어 이직 가능 횟수도 그나마 고용주의 ‘허가’가 있는 경우에 3회로 제한돼 있고, 고용주로부터 여권을 압수당하거나 임금체불, 성범죄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정서적 외로움과 정신적 우울증 등 고통을 겪는 이주노동자들도 많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고용허가 기간 중에 가족들을 한국으로 불러 함께 지내다 고용허가 기간이 만료함과 동시에 미등록 이주민으로 한국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족들은 주로 관광 비자로 입국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고용허가제가 구조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노동시장의 수요가 미등록체류라는 선택의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도 개선은 뒤로 한 채 고용허가제 대상업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 환경을 개선하지는 않고 빈 일자리를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한겨레 7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사업주 간담회만 진행했을 뿐 이주노동자 당사자에 대한 실태조사는 전혀 없었다. 노동자는 논의 과정에서 배제돼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노동자 안전이 위험한데,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고용허가제 사업장 기준이 완화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에 더 노출될 수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주노동자는 ‘노동력’으로 단순 치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동료 인간이며 이웃이다. 그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8-25

고통을 통한 고통에 대한 이해

고통은 자기를 살 기회라고 본 가다머의 관점을 소개했는데, 방주의 창에서 본 오늘 우리 사회는 일정하게 고통을 적대시하는 면이 있다. 그러면 한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고통은 무엇인가? 4월 4일 오후 3시경이었다. 전날 오후와 이날 오전에 전주가톨릭사회복지회 ‘무지개가족’에서 강연을 마치고 광주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여는 생태영성학교 프로그램을 위해 전주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서 조심해서 걸었지만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왼쪽 무릎에 심한 충격이 왔다. 한순간 숨이 흐트러지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태어난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소아마비가 와서 왼쪽 손으로 스틱을 짚고 다녔는데, 균형이 흐트러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통증이 심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서 도와주려 했다. “119를 불러 줄까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시라고 하고는 먼저 무릎 상태를 확인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병원이 아니라 광주로 가려 했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한 남자분의 도움으로 광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는 좌석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자기가 메고 온 나의 가방까지 친절하게 챙겨 주고는 내려가셨다. 광주터미널에 도착한 후 가까스로 버스에서 내렸으나 걷지 못하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버스를 운전한 기사가 다가와서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으셨다. 감사로 가득 차서 그의 손을 잡고 택시승강장까지 갔다. 그는 내가 택시를 잘 탈 수 있게 도와주고 자기가 짊어졌던 가방을 넘겨주고는 터미널로 가셨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연락했더니, 평생교육원에 도착했을 때, 조규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선생님이 휠체어를 갖고 나와서 기다려 주셨다. 전주터미널에서 따뜻하게 염려해 준 사람들의 사랑 앞에서, 특히 손을 잡아 준 분의 도움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고통 속에서도 무척 감사했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는 중에도 사는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감사로 가득 찼다. 가다머는 고통을 이겨냈을 때의 기쁨이 자연이 선물하는 최고 명약이라 했다. 나에게 고통은 무엇보다도 감사를 체험하게 하고,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계시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의식하든 않든 인정하든 않든 내가 다른 존재들과 이어져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바닥이 돼 주지 않는 한 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이 선물인 것을 계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은 이웃의 사랑과 자연 만물을 통해서 일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선물받고 또 그 사랑을 사랑으로 체험하는 은총의 ‘통로’다. 인간은 하나의 바닥 위에서 다른 존재들과 이어져 있다. 다른 존재들이 바닥이 돼 주지 않는 한 누구도 자기로 살거나 존재할 수 없다. 흙, 물, 빛, 바람 같은 물리적 실재든 사람이든 너 없이 나 없다. 고통 속에서 고통을 통해 계시받고 확인받은 단순하고 아름다운 신학적, 영성적 진리다. 이때 넘어져서 겪는 고통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나로 존재하게 하는 지수광풍(地水光風)과 이웃들에 대한 감사를 체험하게 하고 그 감사를 발현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삶은 고해(苦海)이기 전에 은해(恩海)다. 전주터미널에서 넘어진 이 일을 계기로 한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태어나서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구나.’ 하느님 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선물이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존재들과 더불어 그분의 자녀로 존재하고 숨 쉬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나에게 자기의 존재와 사랑을 내어주는 뭇 존재들과 생명들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내가 그분 앞에서 숨 쉬는 이 여정이 내가 만나는 존재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기쁘고 온유한, 하느님의 한 작은 선물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08-18

태국에서 만난 라오인

강렬한 뙤약볕 아래서 체감 온도 39℃를 웃도는 더위에도 온몸을 감싸고 잔디를 심고, 판매를 위한 잔디를 캐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를 뜨거운 오븐 속에서 사는 것 같은 무리함을 감내하는 이들은 라오스에서 먹고 살 길을 찾아 이웃 나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라오인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본국에 있을 때보다는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필자도 모자, 팔토시, 긴바지로 햇빛을 차단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다음,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과 잔디를 심는 작업을 해봤다. 단 1분도 지나지 않아서 거친 땀이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땀을 닦아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으로 견디기 어려워 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더위와 싸우며 일하는 이들의 작업환경은 그야말로 가장 형편없는 상황이다. 깊숙한 마을에 넓게 펼쳐진 일명 ‘잔디밭’이라 불리는 이곳은 개인 차량이 없으면 오가는 길이 거의 불가능한 장소이다. 그래서 사업자는 잔디밭 옆 수로 위에 양철지붕과 양철 패널로 빙빙 돌린 공간을 만들어 숙소로 제공해 줬다. 사실상 햇빛으로 달궈진 양철 한증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들은 살 수 있는 집이 있으니 감사하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 위생, 음식, 자연 생리 현상 처리 등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런 열악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고 웃으며 손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태국의 1딸랑와는 4㎡이고 이는 1.21평 정도 된다. 1딸랑와에 잔디를 심으면 20바트(한화 약 755원)을 받는다. 노동시간에 상관없이 잔디를 심은 딸랑와 수만큼 임금을 받는다. 그래서 새벽 햇빛이 달궈지기 훨씬 전부터 부부가 하루 종일 잔디를 심거나, 캐는 작업을 한다. 그래도 겨우 400바트(한화 약 1만5100원)을 받는다. 이렇게 벌어들인 턱없이 부족한 수입으로 5인 가족이 살아간다. 아이들은 어디에서 교육받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아직 가난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이 아이들의 교육은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다행히 어려운 환경이지만 부모는 작은 희망을 자녀들에게 주고자 이른 아침에 앉으면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오토바이로(유일한 교통수단) 인근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동시에 배우며 꿈을 계획하고 있다. 방과 후 아이들은 햇빛에 익어진 빨간 볼과 땀 범벅된 얼굴로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이 길을 걷고 또 걷게 하는 이유는 교육을 받으면 아이들의 꿈을 이뤄 줄 수 있겠다는 희망의 끈을 단단히 동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었다, “꿈을 이루면 원래 살던 나라로 돌아가겠는가?” 대답 대신 머리를 저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사회주의국가 라오스는 국가 지도자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혁신과 개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는 젊은 일꾼들을 이웃 나라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경제활동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기에는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타국에서 떠도는 그들이 경제적 활력을 잃은 나의 나라로 돌아갈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는 미래를 향한 젊은이들의 꿈마저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것은 아닌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성실히 이행하길 바라는 소박한 기대를 채우고 싶다.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웃이 되어보자.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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