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성 베드로 대성당의 김대건 성상

가톨릭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한진섭(요셉) 조각가의 성 김대건 신부님 성상 제작 과정을 잘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에 이끌려 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되기까지의 긴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음에 마음이 쓰여 더 관심을 갖고 읽게 됐습니다. 이 역사적 거사가 확정되기까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님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님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고 한진섭 작가는 말했습니다. 성상이 완성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우뚝 서기까지 많은 분의 노고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직접 성상 작업을 한 한진섭 작가에 대한 느낌만 쓰겠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라면 최초의 사제가 김대건 신부님임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증조부에 이어 아버지께서도 순교하신 가톨릭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셨으니 이미 하느님께서 예비해 두신 하느님의 준비된 사제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모국을 떠나 낯선 땅 마카오로 유학길에 오르고 10년 뒤 사제가 돼 모국에 돌아와 25세의 나이에 순교하실 때까지의 10년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걸어 우리나라 첫 사제가 되셨고 이제는 동양인 최초로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우뚝 서게 됐으니 그 감동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오늘 우리에게도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고 묻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어떠한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오늘의 상황에서 김대건 신부님처럼 오롯이 신앙(하느님)을 위해 온몸을 바치고 살라고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하느님의 뜻에 맞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한진섭 작가가 겪은 그간의 어려웠던 일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중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2023년 섭씨 40도가 넘는 이탈리아의 여름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불볕 더위의 환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에 임한 이야기, 체력 유지를 위해 숙소에서 아침 식사로 달걀을 삶아 2개로 버티었다는 일, 작업장에서 4m나 되는 높이의 사다리에서 떨어졌는데도 뼈도 다치지 않고 신기하게도 벌떡 일어나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한진섭 작가는 그 순간 옆 사람들은 기적이라고들 했지만, ‘김대건 신부님이 항상 지켜주고 있구나’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다 하느님께서 늘 지켜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진섭 작가의 긴 연재를 감동으로 읽으며, 그의 글은 보통 신자인 저의 느슨한 신앙의 태도에 큰 채찍이 되었습니다. 한진섭 작가의 뜨거운 열정으로 험난한 난관을 거쳐 성 베드로 대성당 그곳에 우리의 전통의상 두루마기에 갓을 쓰시고 당당히 우뚝 서신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600년 가까이 비어있던 이 자리는 하느님께서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한진섭 작가의 이 한마디에 모든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진섭 작가님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진섭 작가의 열정이 배인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세계인과 함께 영원히 영원히 빛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글 _ 손준자(안젤라·부산 수영본당) 원고량: 7.9매 사진 없음.

2024-07-07

[독자마당] 천재를 기억하며

조선 후기 개혁군주 정조는 1790년 9월 12일 특별히 과거 시험장에 나와 합격자들을 친견하고 70세 이상의 고령 합격자와 20세 이하 소년 합격자를 따로 불러 한차례 시험을 더 치렀다. 16세 최연소 합격자였던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은 임금이 직접 점수를 매긴 시험에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 뒤로 황사영은 임금이 잡았던 손목에 평생 띠를 두르고 다녔다. 견직물인 명주로 만든 토시로, 이 토시로 인하여 이백 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고령토 속에서 덩어리진 검은 천 조각이 나왔고 비로소 그의 묘가 확인되었다니 기적이었다. 황사영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송추계곡 가마 산 35번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천재는 정조의 총애로 출세의 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고난과 박해만이 기다리는 신앙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갔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신앙에 대한 열정과 패기로 배론성지 토굴에서 조선교회에 대한 박해 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썼다. 이 백서로 그는 대역부도죄를 선고받고 서울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으로 순교하였다. 황사영이 썼던 ‘백서’는 조선왕조를 부정한다거나 국가를 전복하려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조선의 정치적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데 있었기에 역적으로서의 모습만 부각된 역사가 바로잡히고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황사영 백서에 대한 후대의 격렬한 반응은 전체 백서가 아닌 가백서 만을 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서 원문에는 황사영이 청나라에 조선을 편입해달라고 요청한 부분이 없었다. 사람들은 편집된 가백서만 보고서 황사영의 이름에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오직 신앙의 자유, 하나뿐이었다. 백서 원본은 1894년 갑오경장 당시 의금부와 포도청에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를 소각, 정리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전국 188곳의 성지순례 중 한 곳으로 의무적으로 순례해야 하는 성지 완주의 차원이었지만, 황사영 묘소를 순례하며 참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지금이라도 가족들을 합장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약용(1762~1836)의 큰형인 정약현의 장녀이자 정약용에게는 조카였던 부인 정명련과 아들 황경헌,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생가에서 모여 잠들게 하여주길 기도했다, 물론 하늘나라에서는 가족이 모여 있지 않겠는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밀알이 된 교회사에 불편한 역사적 진실이 있었다 할지라도 제대로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박해가 끝난 시점에서 제일 먼저 순교자들의 자손들을 살펴 주었다면, 황사영의 아들 황경헌이 추자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또 부인 정명련의 삶이 어떠했는지, 기록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현재 천주교인은 6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양적 성장을 거듭했지만, 질적으로는 반성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천재 황사영의 진심을 이해하고 백서를 통해 천재가 고백한 신앙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신앙은 곧 세상을 구하는 좋은 약이라고 생각되어 신앙을 지켰다”는 그의 고백을 통해 드러난 진심을 새삼 되돌아보면서, 세상 사람들, 특히 신앙인들은 그 고백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글 _ 노정남 아가다(서울 한강본당)

2024-06-30

[독자마당]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고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손을 누구에게나 내밀어 그 손을 잡는 모든 이의 죄를 용서하고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고 당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정다운 악수를 하고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친밀한 사랑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다정한 악수는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관심의 표현이 악수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이처럼 손은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지체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전달하는 소중한 지혜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내 손과 이웃의 손이 서로 다정하게 잡을 때 성당은 더 기쁨이 넘치고 아름다워지며 이 사회 이 세상도 더 아름답게 된다고 봅니다. 본인은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 선교사 양성 7기생입니다. 졸업식 날 세 번이나 오고 가면서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을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시는 이기헌 주교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의정부교구의 안전과 부흥, 번영을 위해 노력하신 주교님 이젠 휴식을 즐기며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선배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잘 있어요, 후배님과 정든 교육원, 신부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울먹이며 부른 졸업식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돕니다. 글 _ 한문석 요셉(의정부교구 중산본당)

2024-06-23

[독자마당] 성스러운 땅 죽산성지를 걸으며

대전교구 당진본당 늘푸른 어르신 성서대학 40여 명은 지난 5월 16일 죽산성지를 다녀왔다. 떠나기 전 주임 김경식(미카엘) 신부님은 버스에 올라 인사 말씀에 이어 강복을 주셨다. 2시간여를 달려가니 ‘죽산성지’라 새겨진 큰 돌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800여 미터를 가니 성스러운 땅 죽산성지에 이르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두 팔 벌린 예수성심상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성역(聖域)이라는 현판이 걸린 높다란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큰 석판이 놓여 있다. 그곳에는 이정윤(베드로) 몬시뇰의 글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오전 11시 정각에 미사를 봉헌했다. 성지 전담 이해윤(루도비코)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죽산성지는 천주교의 4대 박해 중 하나인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봉헌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해도 24명이나 된다”며 “이렇게 밝혀진 순교자 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현 ‘죽산성지’인 사형장으로 끌려가 순교의 피를 흘렸던 곳이며, 오늘을 사는 교우들에게 죽어야 산다는 십자가의 교훈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처럼 주님의 아픈 사랑의 형장인 이곳은 꽃이 지지 않는 성지이며, 겨울에는 푸른 소나무가 꽃을 대신한다”고 덧붙였다. 성지에서 마련해준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푸른 잔디밭이 널따랗게 펼쳐진 성지광장에 갔다. 광장 양 옆으로 장미 터널이 반원 모양으로 감싸고 있었다. 장미 터널 곁에 놓인 묵주기도의 길을 걸으며 묵주알을 일일이 짚어가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순교자 24위가 잠들어 있는 ‘성모 신심의 길’ 끝에 놓인 피에타상을 지나면 ‘순교 신심의 길’이 이어진다. 한 가운데에는 큰 둥근 봉분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자리하고 있어 숙연함을 더한다. 순례자들은 현양탑에 봉헌초를 봉헌한 후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다. 14처 길을 걸으면서 순교자들이 하루빨리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기원했다. 순례자들은 푸른 광장에 모여 각종 게임과 오락 등으로 흥을 돋우었으며, 삼삼오오 나뉘어 기념사진을 찍으며 하며 모두가 한마음이 됐다. 본당 수녀님께서도 함께하시어 기도해 주셨고 함께 어울려 주셨다. 이날 학장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뜻깊은 하루가 됐다. 글 _ 김윤구(미카엘·대전교구 당진본당)

2024-06-16

[독자마당] 하느님은 마을 신앙공동체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활력소

“자, 차비를 내겠습니다. 오늘 운전을 담당하시는 형제님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을 기도한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주모경은 늘 우리와 함께하는 단골 메뉴이자 신앙심의 핵심이다. 이는 우리 마을 신앙공동체 교우들이 함께 모여 각종 경조사에 참석하는데 따른 의례적인 기도 행위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여덟 명의 교우들은 십오 년 가까이 변함없이 온갖 삶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가 본당 소속의 레지오, 복사단, 전례 독서, 성체 분배, 프란치스코 재속회, 구역장, 성가대, 교리교사, 사목회 및 각종 단체에 참여하여 신앙생활을 나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또한 상호 간에 자녀들의 세례와 견진성사의 대부, 대모 역할을 자처하여 마치 세상에서의 사돈 관계처럼 인연을 맺고 있다. 이제는 피를 나눈 혈육보다 더 끈끈한 이웃사촌이자 든든한 신앙공동체로서의 결속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세월 우리 마을 신앙공동체 교우들은 세계 곳곳을 함께 여행했으며, 국내 곳곳의 가톨릭 성지를 방문하는 등의 여정을 함께 해왔다. 올해에는 인천교구 ‘하늘의 문’ 성당 봉안당 예약 신청을 마쳤으며 내년 2025년 육땡(66세)기념 남유럽 크루즈 여행을 위해 사전계획에 착수하여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함께하는 마을 신앙공동체는 튼실한 천주교 신앙을 기본으로, 형제, 자매들 상호 간에 배려와 존중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이웃사촌의 정을 돈독하게 쌓아 가고 있다. 매번 모임에서는 본당의 미사, 각종 행사와 봉사활동에 관한 담화를 시작으로 자녀, 개인의 취미와 건강, 실생활 정보 등 다양한 주제로 서로의 관심사와 정보를 공유하며 유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는 마치 개개인의 평생교육과 같으며 그 바탕엔 언제나 감사의 기도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제 60대 초중반을 지나는 교우들이 신앙심을 중심으로 삶의 다양한 여정에서의 교류와 친목 유지는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에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명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함께하겠다”(마태 18,20)는 주님의 약속은 팍팍하고 건조한 세상의 삶에서 든든한 응원군이자 활력소가 되고 행복한 삶의 여정을 만들어가는 주춧돌이라 믿는다. 우리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진정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에 우리의 마을 신앙공동체는 더욱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구하며 매일 정성껏 바치는 기도와 주님의 집인 교회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도 진심과 열정으로 다가서길 바란다. 글 _ 전재학(대건 안드레아·인천교구 중3동본당)

2024-06-09

[독자마당] “파티마 성모님 재현하며 세계 평화 기도했어요”

지난 5월 18일 서울 잠원동성당에서는 조금 특별한 성모의 밤이 열렸다. 지난해 창단된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소속 ‘샛별의 모후’ 어린이 셀 회원들이 성극 ‘파티마의 기적’을 공연한 것이다. 지난해 어린이 셀이 창단할 때만 해도, 이렇게 활성화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 했다. 어린이 셀 모임은 격주로 토요일 오후 3시에 38명의 어린이 회원과 20여 명의 부모들이 함께 모여 묵주를 들고 진지하게 기도한다.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은 1917년 성모의 발현을 목격한 파티마의 세 목동을 연상케 한다. 지난 5월 13일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7주년 되는 날이었다. 성모님은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여섯 번에 걸쳐 세 목동 루치아와 히야친타, 프란치스코에게 나타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묵주기도를 하라고 요청하셨다. 이 파티마의 성모 이야기를 담은 성극을 준비한 잠원동본당의 연합셀 양승진(마리아 막달레나) 대표는 “전쟁이 끝나고 세계에 평화가 오도록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성모님의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성모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면서 기도와 희생과 봉헌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모범이 되도록 요청하셨다”면서 “성모님이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재현하면서 세계 평화와 그리스도 사랑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성극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양 대표는 “어린이 셀 모임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친구들과 싸우고 나서 나부터 먼저 화해를 청하거나, 괴롭히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면서 사이가 좋아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어린이 셀 모임의 장점을 소개했다. 잠원동본당의 주보 성인은 파티마의 성모다. 이날 잠원동본당 신자들은 어린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이 시대에 파티마의 성모님이 어린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기며 성극을 공연한 어린이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글 _ 정금원(스콜라스티카·서울 잠원동본당)

2024-06-02

[독자마당] 성모의 밤에 드리는 기도

성모님, 오늘 밤은 아름다운 밤입니다. 거리에 서성이는 외롭고 병들고 가난한 마음들이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계절, 당신의 하늘빛 이름을 가슴 깊이 새기며 5월의 수목처럼 오늘은 제가 이렇게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성모님! 당신은 자기를 온전히 포기하셨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참으셨던 분이십니다. 성모님의 겸손한 자아포기는 텅 빈 영에 충만함을 가져왔습니다. 이 완전한 자아포기는 주님의 은혜로운 섭리와 충만함을 가져왔습니다. 이 완전한 자아포기는 주님의 은혜로운 섭리와 성령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성모님의 일생은 고통과 눈물로 점철되었지만 은총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천국으로 가는 여비라고 하는데, 그 절대적인 액수가 바로 무소유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 어떤 욕심에서도 해방되어 그저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맨몸으로 떠나는 삶을 터득하고자 성모님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어머니시여, 저는 한 평생 살아온 세월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도움받기보다 서로 도우며,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주는 일에 나의 여생을 바치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용서하고 십자가를 피하기보다 십자가를 즐겨 지고 살게 하소서. 지치고 피곤할 때 발걸음마다 푸른 옥빛으로 감싸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들을 저와 함께하게 하소서. 겸손의 어머니 마리아여, 저의 나이 89세, 얼마 남지 않은 여정에 주님의 종으로서 가장 값진 은총의 선물인 십자가의 고통을 잘 참아 받으며 세상 풍파 뒤에는 큰 축복이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어머니시여! 모후시여! 오늘 밤 당신의 아들이 마음 다하여 바치는 찬미와 감사와 사랑의 기도가 빈 가슴에 고이는 정화의 샘물이 되게 하시고, 온 누리 가득히 사랑의 꽃으로 아름답게 하소서. 당신의 은총 속에 자라나는 모두가 땅끝까지 구원의 등불이 되게 하소서. 5월의 햇살처럼 티 없이 맑고 포근한 어머니, 저희의 티와 나약함과 못난 회개도 모두 사랑으로 덮어주시는 어머니시여, 오늘 밤 가련한 저희는 부끄러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어머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당신 사랑 속에 승천하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글 _ 강병순(아우구스티노·마산교구 고성본당 상리공소)

2024-05-26

[내 눈의 들보] 역사 앞에 정직해야

가톨릭 상장례 강의를 위해 교회사를 연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면, 신앙 선조들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에 이르기까지 늘 바람직하게 산 것이 아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때 우리 교회는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반일 항쟁에 대한 교회 장상(長上)의 몰이해, 지도자들의 친일 행각에 대한 왜곡과 은폐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뜻있는 이들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고자 노력한 덕분에 이제는 감출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일제에 부역한 이들의 명단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때 교회 인사의 이름을 빼라고 강요한 이들이 있었다. 혜택을 누렸다면 그로 인한 불이익도 감수해야 하건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억지를 부린 것이다. 어떤 수사(修辭)를 들이대더라도 왜곡과 은폐는 십계명의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의 변형이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라는 말 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후손이나 후배를 위한다며 이 계명을 어기는 그리스도인이 있는지라 왜곡과 은폐에 대한 몰이해가 불러오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역사를 배웠어도 많은 사람들이 입시 위주로 공부한 탓에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외우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건만 자기 목적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 학문이 지향하는 바를 외면하고 악용하는 이도 있다. “굳이 좋지 않은 내용을 남길 필요가 있습니까?”라며 분명히 있었던 사실인데도 빼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지난날 혹심한 박해로 인해 기도서·교리서·예식서 등에 있는 한글만 겨우 깨친 신앙의 선조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제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시편 139,7-8)라는 말씀을 듣거나 본 적이 없었을지라도 “교우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는 분명한 가르침을 우리 세대에까지 물려주었다. 왕실도, 민간도 역사의 현장을 문헌으로 남겼고, 교회도 자기 삶을 분명하게 기록했다. 개인이나 집단의 판단 부족, 잘못된 결정, 어리석은 행동을 나머지 구성원이 수정‧보완한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족과 잘못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겠다는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 이 세상은 선한 것으로만 이뤄지지 않아 악한 세력이 넘보기도 하지만, 악독한 기운은 바깥보다 자기 안에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는다. 성령께서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늘 지켜보시면서 바르게 이끄심을. 주님께서는 인간 각자의 능력에 맞는 고통을 주신다고 배웠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헤쳐가려는 노력은 자기에게 주어진 몫이지만, 성령께서 그저 쳐다보고 계시지 않는다는 믿음도 이어받았다. 누구나 잘못 저지른 행동을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감추거나 억지로 변명하면 더 큰 잘못에 빠질 뿐이다. 늘 어제를 뒤돌아보며 반성하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 잘못을 용서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므로 더 큰 부족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야 할 길이기에···. 글 _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상장례 강사)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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