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세례를 받으며

나는 오늘 단 한 일요일도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 과정을 마친 예비 신자로서, 성유로 도유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발레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동안 한 번은 성부의, 한 번은 성자의, 한 번은 성령의 이름으로 성수가 머리 위에 세 차례 부어질 것이다. 당시 이교도였던 발레리안은 성녀 체칠리아와 결혼하며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체칠리아는 나의 아내 세례명이다. 아내는 무신론자인 나와 혼인한 후 60년이 넘는 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대모를 배반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껴왔는데, 대모는 아내에게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말라며 만약 아내가 신앙을 포기한다면 그녀, 즉 그 대모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내에게 성당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심지어 나는 아내가 결혼 전에 가톨릭신자였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내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도 아내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심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부딪혀 있다. 내가 온순한 양처럼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불통 염소처럼 호전적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런 상태의 모순 속에서 내가 프랑스 어느 수도원 입구 돌 위에 새겨진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 다음엔”이라는 문구가 나를 갈림길에 이르게 한다. 허무주의적 선회냐, 아니면 영적 향상이냐. 이 양면성의 철학적 질문에 신을 믿는 자의 대답으로서 “내 탓이오”를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결국 나는 아내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아,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어떻게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에 형평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자기 전과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있다. 부모님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존재가 부모 자식 관계와 같아질 수 있을까?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에서 나는 고향을 오고 가는 길에 한 신부님의 유튜브를 보며 다소 위안을 찾았다. 그 신부님은 감히 경건하고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롭게 용감한 사람이다. 아내는 그의 방송 프로그램 팬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이 신부님이 이단자이거나 그런 것과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를 따라 그 신부님이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부모님과 하느님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성당에 갈 때, 부모님에게 나를 따라오시라고 제언한다. “어머니 아버지, 저희 부부와 함께 성당에 가시지 않겠어요?” 날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아내에게 하느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하수영이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좀 더 자주 부를까 한다. 아내는 노래 가사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가사가 보내는 메시지가 변화무쌍했던 60년의 결혼 생활과 거의 병치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인 내가 부를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노래는 부부 생활에 있어 행복, 인정, 애정, 동정심, 사려 깊음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여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소개한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 둘 늘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김행정(발레리안) vividcecil@catimes.kr

2024-11-10

[독자마당] 한강의 문장에서 만난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가 세상을 읽어가는 방법을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막 내려앉은 순간 눈송이는 차갑지 않았다. 거의 살갗에 닿지도 않았다. …손바닥이 연한 분홍빛으로 부푸는 동안, 내 열기를 빨아들인 눈이 세상에서 가장 연한 얼음이 되었다.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 작별하지 않는다. p 186 ) 한 조각 눈을 우주인 듯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그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 눈을 들여다보듯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되는 사람… 우리는 너를 이해한다고 하면서 네가 아닌 나의 방법으로, 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안타까울 정도로 너의 삶에 들어가고 그 삶에 물들고 함께 아파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사랑이 그러해야 함을 주님은 우리 되어 오셔서 온 생애를 통해 보여 주시고, 우리 곁에 지금도 계십니다. 사랑은 ‘내가’가 아니라, ‘네가’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의 사랑이 지나치지 않나? 걱정하고 판단합니다. 한강 작가의 글 속엔 사랑이 되신 예수님의 생애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해도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인격은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구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수술을 받거나 기적을 통해 태양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는 게 바빠 마음을 쓸 수 없었던 사람들, 몰라서 들여다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 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사람다움만 잃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좋지 아니한가?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는 말합니다. ‘고통이 아픔이 우리 가운데 이토록 가득한데 어쩌면 또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가 발 디디고 있는 삶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제대인 것 같습니다. 기억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한강 작가의 글 속엔 바다처럼 흘러넘쳐 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이 모두에게 가 닿기를 희망합니다. 한강 작가가 아프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으로 가득한 생을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에... 사랑은 너로 물들어 가는 일입니다. 글_권미향(베로니카·대구대교구 무태본당)

2024-11-03

[독자마당] 내 영혼의 갈릴래아: 봉사의 기쁨

“오늘은 발 마사지 외에 침상 목욕 환우가 몇 분 계시니 신경 더 써주시고, 면도도 원하시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녀님의 병실별, 환우별 지시 사항을 메모하고 파견기도를 바친 다음 병실로 향합니다. 밤새 고통과 불면으로 잠을 못 주무신 환우와 보호자가 지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으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손과 발을 먼저 만지며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교감하면서 필요한 것을 여쭤봅니다.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해서 몸과 머리가 가려워요.” 따뜻한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드리고 머리도 전용 세정제로 감겨드립니다.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면도도 깔끔하게 해드린 후 부드러운 오일로 발 마사지를 하며 마무리 케어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와 성가를 불러드린 다음 다른 병실로 향합니다. 저는 제 아내와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센터에서 매주 토요일 환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2012년에 호스피스 봉사회에 입회하여 그동안 많은 환우의 아픔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해 왔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우들의 몸을 닦아드리고 마사지도 하며 기도와 성가로 작게나마 위로드릴 수 있는 시간은 정말 큰 은총인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환우와 가족이 성사를 청하고, 또 저희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세를 요청할 때면 정말 큰 보람을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임종을 앞둔 이분들을 통하여 저희 봉사자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봉사자들은 함께 기도하고 희생의 소중함을 느끼며 서로의 신뢰와 친교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환우 돌봄을 통해 봉사와 감사로 우리의 삶을 채찍질하고 더욱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정말 큰 은혜이고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봉사자들이 영적으로 더 정화되고 내면이 치유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삶에 더 감사하게 됩니다. 아픔 속에 있는 그분들의 몸을 예수님 몸처럼 닦고 문지르며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면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야기해 드립니다. 저희는 일주일 동안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생명이라는 그 숭고한 가치와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큰 축복의 시간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저희는 이 은혜로운 봉사만큼은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꼭 하고 싶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삶을 준비하는 환우들과 매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며 찬양팀을 만들어 사회복지시설에서 찬양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인데 외롭고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생활 성가로만 음악을 준비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손뼉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찬양 안에서 예수님의 손길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심을 느낍니다. 저희의 찬양을 정말 좋아해 주시고 늘 기다려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나마 위안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힘차게 더 열정을 다해 찬양 봉사를 해드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과 찬양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은 하느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함을 느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거나 뒷정리를 도와주시고 저희 찬양팀을 위해 늘 기도 해주신다는 말씀에 큰 힘을 얻으며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각오를 새깁니다. 양로원 찬양 봉사를 통해 저희 부부의 마음이 정화되어 새로워지고, 오히려 저희가 새 힘을 충전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 하느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행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프고 외롭고 가난한 이웃이 저의 갈릴래아고,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뵙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그리고 봉사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내 영혼의 갈릴래아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주님, 부족한 저희의 삶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글 _ 박기석 시몬(대구대교구 포항 장량본당)

2024-10-27

[독자마당] 미국 녹스빌에서 만나는 김대건 성인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녹스빌이다. 이곳의 한국인 가톨릭신자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매달 첫째 주, 셋째 주에만 한인 미사를 드릴 수가 있다. 다행히도 2시간 반 거리의 내슈빌 한국순교자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이영승(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우리 공동체에 와 주셔서 이곳 Most Sacred Heart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Most Sacred Heart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아름다운 성당 모습에 반하며, 이렇게 멋진 곳에서 30명 남짓 작은 공동체가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것이 늘 너무 황송하다. 이런 감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 순교 성인들의 희생과 한국 가톨릭 역사의 특별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가톨릭 역사를 볼 때, 한국천주교회는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운 유례없는 경우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이곳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도 매해 순교자성월이 되면, 한국의 103위 성인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평소 내가 다니는 현지 성당인 St. Mary 성당 달력의 9월 이미지에는 한국 103위 성인의 그림과 기도문이 들어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한인 미사를 드리는 Most Sacred Heart 성당의 돔 천장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마리아, 요셉이 가장 윗부분에 그려져 있고, 바로 밑에 다른 여러 성인과 함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미국 가톨릭교회의 다양한 나라 공동체 대표 성인들을 표시한 것인데, 우리 한국 공동체의 대표 성인으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한인 미사를 봉헌하러 갈 때마다 한복 입으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 기도와 성인의 전구를 청하게 된다. 우리 가톨릭 신앙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교자들의 신앙은 이렇게 타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밝은 등불로 우리 신앙생활을 비춰 주시고 모범이 되어 주시는 순교 성인들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글 _ 정현주 로사(미국 녹스빌 한인 천주교 공동체)

2024-10-20

[독자마당] 가을의 기도

주님 가을이 이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입추의 절기가 무색하도록 우리의 잘못 살아 간 결과인 폭염이 오래 머문 시간 무더위 늦여름 안에서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는 아픔을 견뎌낸 인내와 희생의 소리였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 바쳐진 오곡백과, 열매들의 희생제사는 우리 주님을 닮은 듯 온 몸으로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모진 비바람 이겨낸 사랑의 승리 창조주께 영광 돌리며 순종한 아름다운 결실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이루려 형형색색 곱게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는 계절 앞에서 주님, 우리를 돌아봅니다. 그 무더운 날들 안에서 온갖 열매들은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안으며, 매서운 바람을 끌어안으며 사나운 빛줄기를 어루만지며 활활 타는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며 익어 갈 때 우리는 덥다, 덥다, 못 참겠다, 하면서 차디찬 인공 바람으로 마구 몸을 식히며 더위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하나뿐인 지구는 아픔으로 울어야 했지요. 인간이 더위를 피해 살아간 방법은 이기심과 탐욕, 모두 죄악이었습니다. 무절제한 쓰레기로 땅은 신음하고 있고 무분별한 행동들로 바다는 오열하고 있고 인간 만능의 탐욕으로 산과 숲은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을 슬프게 한 저와 인류를 용서하소서. 이제 새롭게 하소서.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피조물의 존재로서 이 숭고한 가을이 주는 교훈을 듣습니다. “피조물들이여! 창조주를 기억하며 열매를 맺어라.” 주님! 인내와. 절제. 선행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며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친절로 주님 주신 동산을 곱게곱게 물들여가도록 이 가을에 다짐해 봅니다. 주님 이끌어주소서. 아멘. 글 _ 김영희 요셉피나(서울 묵동본당)

2024-10-13

[독자마당] 자비의 기도

당시 80대였던 우리 부부는 2015년부터 ‘자비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편 요셉 할아버지는 옛날 할아버지 때부터 북한 평강에서 성당에 다니셨고, 나는 관면 혼배를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비의 기도’의 시작은 새로 오신 회장님이 같이하자고 하셔서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교중미사 후에 다시 모여 오후 3시에 성당에서 1시간 30분 동안 기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농사일이 바쁜데도 미사 후에 집에 오셨다가 다시 3시에 가셔서 ‘자비의 기도’를 하시고 오셨답니다. 그렇게 1년쯤 기도를 다니시다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병원에 20일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지병은 있었지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집중 치료실에서 중환자실을 오가면서 치료했지만, 81세의 고령인데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새벽 4시20분. 식구들이 모여 바치는 기도 속에서 남편은 운명하셨습니다. 연령회장님께 새벽같이 연락하니 즉시 찾아와 주시고 신부님께도 연락을 드려서 새벽 5시 30분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신부님은 먼저 도착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셉 씨는 좋은 날 돌아가셨답니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하늘의 문이 열리는 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날은 11월 2일 위령의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항상 긍정적으로 살면서 남을 도와줄 때는 열심했던 사람이라고 할까요. 친구도 좋아하고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항상 허허 웃으면서 걱정 없는 사람처럼 살았답니다. 남편이 돌아가신 후 못 해준 것만 떠오르고 이제 와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다 결혼해 나가서 살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다 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기도를 하고 40분 정도 걸리는 ‘자비의 기도’도 바쳤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매일 같이 기도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는 혼자서 매일 바쳤습니다. 그 후 우울증도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생각하고 기도도 더 열심히 하면서 구약성경 필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써갑니다. 다니엘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은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도 멀리 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침기도를 할 때 할아버지는 항상 초를 켜놓고 기도하셨습니다. 나도 초를 켜 놓고 기도하면서 기도 중에 눈물도 납니다. 어느 날 “보고 싶다. 요셉 씨”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요, 꿈에 가끔씩 오십니다. 와서 옆에서 주무시고도 가시고 마치 여행 갔다 온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살아오신 것 같아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보고 싶다 하면 왔다 가시는 것 같아 든든합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혼잣말로 “당신은 빽도 좋아. 저세상에 가서도 면회도 올 수 있네”하면서 감사기도를 했답니다. 매일 아침 ‘자비의 기도’를 바치면서 친척과 지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파 수술을 받은 첫째 딸을 위해 치유를 청하는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성당에서 꽃꽂이 봉사도 하고 매일 미사도 참례한답니다. 건강해져서 직장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성모님 사랑해요.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글 _ 김종숙 데레사(의정부교구 적성본당)

2024-10-06

[독자마당]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부터

다섯 번째 수필집 표지를 예술화하고 싶었다. 제자(題字)는 판본체 가로쓰기로 직접 쓰고 표지화는 좋아하는 문인화가에게 부탁해 기도를 상징하는 파란 장미꽃 그림을 받고 낙관은 서각가에게 부탁해 받아 낙인했다. 그런데 인쇄된 표지를 보니 가로 낙관이 세로로 바뀌어있었다. 즉시 출판사에 시정해 달라는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한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수정했다는 문자가 왔다. 얼마나 기쁘던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품격 높은 수필집을 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감사함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바쁘게 걷는데 내 발걸음에 맞춰 건널목 신호의 파란불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신호 대기 선에 이르렀을 때 빨간불이 켜지면 “서둘지 말라.”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1994년 천주교에 입교한 지 30년, 주일 미사만은 빠지지 않고 참례했다. 1997년 본당신부님께서 “나이 50이 넘은 공학도가 종교에 입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시며 ‘꾸르실료’ 교육을 추천하셨다.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녀왔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정년퇴임해 시간적 여유가 있으실 테니 사목회장을 맡으라”고 강권하셨다. 나의 신심이 바닥인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서 익힌 나의 성정(性情)대로 역할을 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었는가? 나도 모르게 천주교 신자의 언행으로 빠져들었다. 아침기도로 하루가 시작되고 삼종기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치는 기도가 자연스러워졌다. 여행할 때는 묵주기도로 출발하고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감사기도를 하게 되었으니 ‘천주쟁이’가 된 것은 틀림없다. 입교를 시점으로 세상은 급속히 발전해 삶의 질을 높게 변화시켜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묘하게도 내 신앙생활의 변화와 일치한다. 입교 전인 60~80년대 고향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국도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하루에 몇 대밖에 운행하지 않았다. 정류장마다 멈춰 승객을 태우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입석 승객을 태운 만원 버스 안에서 짐짝 취급을 받아야 했다. 2009년 대전에서 당진까지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승용차를 운전해서 고향집 마당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지방의 학자로 40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서울을 오르내렸다. 곧바로 출발하는 통일호를 타더라도 승차시간만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랬던 여정이 탑승 후 1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하는 꿈같은 세상으로 발전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길이 이제는 승차감이 좋은 열차에서 경치를 감상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하는 길로 바뀌었다. 정년퇴임 후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늙은이는 서울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간을 쪼개 써야 했던 때와 격세지감의 감회를 느끼며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솟구친다. 이제 남은 삶은 피가 섞인 가족, 속 터놓고 지내는 친구들,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 감싸는 교우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지인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하며 받은 은혜의 일부라도 보답하며 살고 싶다. 글 _ 이은웅 토마스 아퀴나스(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본당)

2024-09-15

[독자마당] 고목처럼 살리라

큰 늙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가장 깊은 뿌리 끝부터 가장 높은 꼭대기 가지까지 수많은 생물이 평화롭게 함께 사는 고목처럼. 나무 뿌리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땅 속엔 갖가지 벌레들이 개미, 땅강아지, 풍뎅이 오손도손 모여 살고, 사방으로 뿌리내린 땅 속엔 보금자리 파서 토끼와 여우 무리 이웃하며 살고, 하늘 향해 팔방으로 팔 벌린 나뭇가지엔 뭇 새들이 아늑한 둥지 짓고 옹기종기 사이좋게 살고, 향긋한 아름다운 꽃 찾아 이름 모를 뭇 나비 벌들이 분주히 나래 짓 하며 일용할 양식 서로 나누며 살고, 낮엔 푸르게 우거진 나무 숲 속에서 온갖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놀고, 간간이 딱따구리 찾아와 숨 가쁜 장단 맞추며 보금자리 만들고, 나무 그늘에선 사슴, 노루, 뭇 짐승들 한가롭게 휴식 즐기고, 나무 둥치엔 멧돼지 곰 찾아와 가려운 등 문지르고, 밤이면 부엉이, 박쥐들 활기차게 날갯짓하는 쉼터가 되고, 그늘진 이끼 자란 나무 아랫목엔 뭇 버섯들이 정답게 몸 맞대고 살아가는 넉넉하고 포근한 늙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신선한 대기 청량한 바람 담은 수 많은 푸른 잎새와 가지로 합장하며 수시로 기도하고, 갖가지 형상으로 하아얀 뭉게구름 한가로이 떠 노니는 파아란 하늘 지붕 삼아 우러러보며 천상 행복 기원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땅에 깊고 넓게 뿌리 내려 모든 것 품고 나누며 공생하는 고목처럼 살리라. 글 _ 이정규 마카리오(교육학자, 시인) / 캐나다 캘거리교구 성루카본당

2024-09-01

[내 눈의 들보] 외국어 성지해설사를 기다리며

9월 순교자 성월이 가까워지면서 우리 교회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왕조 치하에서 평신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직접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지키다가 목숨까지 바친 큰 특징이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250년 가까운 역사 속에 수많은 역경이 있었음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리하여 1984년에는 순교자 103위가 시성되고, 2014년에는 순교자 124위가 시복되는 영광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신앙선조들이 있다. 우리는 그분들의 신앙 여정을 살펴 찾아내고, 그분들과 연관된 장소를 찾아내어 성역화하고, 성지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 성지를 찾아가려는 열심한 신자들이 많아지면서, 순례에 신앙적 의미를 담은 신심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회 성지를 모은 책자가 나오고, 성지를 안내할 해설봉사자들이 양성되고, 전국을 쉬 다닐 수 있게 교통편이 발달하면서 순례행렬이 순조롭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순례에는 한국교회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점점 많이 참여하고 있다. 2024년 봄, 방한한 여행입국자 수가 2020년 이후 최대치로 올라, 코로나19 이전 대비 90% 가까이 회복됐다고 한다. 월평균 100만 명의 외국인이 관광차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서울 명동을 예로 보면 각국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명동대성당을 들러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인뿐 아니라 중국인, 동남아인 등 여러 나라, 여러 인종들이 다녀간다. 일부 외국인은 외국어 미사 시간에 맞춰 미사를 드리기도 하지만, 그외 대부분은 성당 입구에서 사진 찍고 잠깐 둘러보다가 되돌아 나간다. 그런데 이들을 위한 안내 수단은 안내판 이외에는 미미한 것 같다. ‘한국천주교 성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설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한국교회는 복음화의 일환으로 입교자를 증가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1세기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를 복음적 가치와 합치시켜 보편적 인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간단히 말해서 ‘문화선교의 장’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교회는 이러한 사명에 부응할 수 있는 유능한 봉사자를 양성해야 하겠다. 특히, 한류 등으로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 시대에 실용외국어 구사자, 특히 외국어 구사능력이 있고 신앙적으로도 성숙한 평신도들을 교회 내에서 찾아 모아야 하겠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이 있다. 문화선교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하려면, 그들이 쌓은 능력과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의미 있는 공동체와 활동영역을 만들어 주고, 그들이 활동할 구체적인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 환경을 예측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고언을 하고 싶다. 신자들 사이에서 교회 조직의 책임 있고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란 높이 올라 멀리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거나 경험이 좀 있다거나, 친목을 잘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 기존 구성원들과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훈화할 수 있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 _ 김기혁 요한 레오나르도(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시복분과)

2024-08-25

[독자마당] ‘분노는 나의 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내며

연일 파리 올림픽으로 지구촌이 뜨겁다. 선수들의 피땀 눈물이 스민 훈련 과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특히 부상을 딛고 메달을 딴 선수들의 눈물과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 어떤 생각이 스치면서 기뻐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28년만에 배드민턴 금메달을 선사한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이 뜨거운 감자다.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은 분노였으며 금메달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안세영의 셔틀콕… ‘낡은 엘리트체육’ 강타하다’(한겨레 신문), ‘메달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MZ…안세영 ‘낡은 시스템’에 분노했다’(중앙일보), ‘낡은 시스템에 날린 MZ세대의 스매싱’(국민일보)으로 분석하며 한국 배드민턴협회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하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안세영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성당에 스스로 찾아오는 청년들은 대부분은 교회 친화적이다. 사제와 본당 사목회에서 요청하는 부분에 귀 기울이고, 본당에서 정해진 규칙은 서로 독려하며 함께 지키려고 한다. 한 번에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대부분 받아들이고 교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까지 협조적인 것이 놀라울 정도로 요즘 성당의 청년들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교회의 일에 친화적이다. 개인적으로 안세영 선수의 발언이 반가웠던 건 변화를 향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협회와 상의를 하지 않았고, 동료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등 여러 이유로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한 명이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교회는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분명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청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청년을 주체적인 교회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변화해야 한다. 모든 사목이 그렇지만 특히 청년에게는 시혜를 베푸는 듯한 지원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당한 교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함께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청년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청년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기쁜 발걸음으로, 교회로 찾아오도록 ‘섬김의 리더십’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다. 기록적 폭염에 휴가를 떠나는 것도 버거운 요즘, 세계청년대회 발대식에 참석한 청년들이 명동대성당을 가득 메운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청년과 교회, 변화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청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3년 후 전 세계 청년들을 한국 땅에 맞을 때는 청년이 주인공인 신앙 축제가 되어 청년들의 목소리가 더 힘있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박 체칠리아(수원교구 능평본당)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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