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와 양반

두 번째 한국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양반들을 복사(보좌관격)로 쓴 폐해를 분명히 보았다. “그 복사들은 크게 비난받을 짓을 많이 범하고서도 양반임을 내세워 항상 거만하게 행세를 부려 모든 교우들한테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은 유독 그들만 사랑하시고 신임하시어 그들하고 모든 일을 의논하셨습니다.” 페레올 주교 사후에 최 신부가 은사인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1857년 9월 15일자)의 한 대목이다. 이 편지를 보면 당시 조선에서 양반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알 수 있다. “모든 백성이 양반 계급의 독선, 오만, 횡포, 부도덕이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고 백성들의 온갖 비참의 원인임을 인정하고 지겨워합니다.” 최 신부는 신분제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회 안에서 더 기울게 만든 장상 탓에 신자들 사이에 불화가 심해졌고 의분을 느끼거나 자포자기에 빠지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는 페레올 주교에게 여러 차례 편지와 면담을 통해 양반 출신 복사들을 내보내라고 진언했지만 꾸중만 들었고 복사들에게 큰 미움만 샀다. 최양업 신부는 양반 제도가 복음에 어긋나고 그리스도 정신에 위배된다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다. “양반을 인정하는 (계급) 제도하에서는 형제의 우애와 애덕이란 있을 수 없고 천부적 인권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 인재를 등용할 때 출생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재능과 인격만 평가한다면 고질적인 신분 차별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최 신부는 선교사 사제들이 조선에 오기 전에 미리 조선의 현실과 풍습, 민중의 사고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양업 신부가 활동하던 때로부터 한 세기 반이 흘렀다. 한국이 ‘새로운 신분제 사회’라는 주장에 대해 3분의 2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한 연구조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새로운 신분제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였고, ‘불평등한 정치·사회 구조’가 그 뒤를 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 개인의 학력과 경쟁력은 미미한 것으로 나왔다. 점점 심해지는 부의 대물림 현상을 교회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교회는 이 새로운 신분제로부터 자유로울까?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힘쓰고 기도하는 지금, 신분제와 양반에 대한 그분의 말씀도 한번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오늘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상충하는 불평등한 구조나 관습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혹시 ‘새로운 양반들’이 있지는 않은가?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라고 자랑하는 한국교회가 여전히 혹은 더욱 성직자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가? 꾸중을 들으면서도 교구장 주교에게 쓴소리를 계속했던 최양업 신부의 믿음과 용기를 생각한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 그동안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를 집필해 주신 신한열(프란치스코)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024-06-30

북한군 묘지에서

여러 해 전 김금화 만신이 제자들을 데리고 파주의 ‘적군묘지’에 가서 북한 군인들의 넋을 달래는 굿을 하는 광경을 기록 영화로 보았다. 만신은 아침부터 해가 빠질 때까지 기진맥진할 정도로 춤을 추며 많은 무덤을 돌면서 애를 썼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침내 접신이 된 그의 입에서는 분노한 군인들의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오마니!”하고 울부짖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울함과 설움, 아픔과 그리움에 가득한 소년병의 울부짖음은 한동안 내 귓가를 맴돌았다.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번지에 있는 적군묘지는 이제 ‘북한군묘지’로 불린다. 같은 곳에 있던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437명의 유해는 2014년 3월 이후 모두 송환되고 비석만 남았다. 북한군의 묘석에는 이름과 계급, 전사한 날짜와 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이름이 없는 경우도 많다. 1·21 사태를 비롯해 여러 시기에 남파된 ‘무장공비’들도 이곳에 묻혀 있다. 이름도 장소도 없이 인원수만 표시된 최근의 무덤은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북한군이 아닐까 짐작한다. 몇 해 전부터는 의정부교구가 위령의 달에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미사를 드리면 보수 단체에서 와서 항의와 시위를 하곤 했다. 왜 우리의 원수이자 주적인 북한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우리 세대는 어릴 때 6·25 노래를 수없이 불렀고 지금도 그 가사와 멜로디를 뚜렷이 기억한다. 노래 속의 원수는 다름 아닌 우리 동족이자 형제였다. 세월이 흐르고 정세가 변하자 그 원수를 다시 겨레, 동포, 민족으로 부르게 되었다. 남북 화해의 움직임은 1970년대에도 1980년대도 있었고 2000년대에 와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여러 차례 열렸다. 하지만 평화와 상생, 화해와 협력은 어느새 먼 이야기가 되었고 남북은 다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공갈과 협박의 언어를 남발하고 있다. 북한은 다시 혹은 여전히 주적으로 남았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야만적이고 야수적인 속성을 드러내면서 자신과 상대 모두를 비인간화시킨다. 어쩌면 증오와 복수는 용서와 화해보다 더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인지 모른다. 한국 사회를 보면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물림되는 듯하다. 그것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기에 형제와 이웃에게 증오의 언어를 내뱉으며 대화가 단절되고 진영논리가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이 지긋지긋한 대결과 증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공동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어떻게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을까?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6-23

젊은이를 모으는 비결

성 바오로 6세 교종은 어느 날 떼제의 로제 수사에게 ‘청년 사목의 열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비결이나 방법을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68혁명을 거치면서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통과 권위를 거부하며 교회에서 멀어져 갈 때였다. 청년들은 자유를 억압하는(것 같은) 정부와 아버지 그리고 교회의 권위를 더 이상 당연시하지 않았고 ‘금지를 금지한다!’가 구호처럼 되었다. 교회의 기성세대는 여기에 큰 우려와 경고를 보냈고 그럴수록 청년들과의 간극은 더 깊어졌다. 그런데 급격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도 떼제를 찾는 젊은이들은 점점 많아졌다. 교종의 질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젊은이들을 모으는 어떤 특별한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 로제 수사는 여기에 즉답할 수 없었다. 떼제공동체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먼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공동기도에 초대했다. 수사들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청년들의 열망에 귀 기울이면서 이 땅을 모두에게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그들의 헌신을 격려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떼제의 손님맞이 시설은 소박하고 음식은 조촐하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면서 그들의 고민과 아픔, 회의와 열망을 인내롭게 들어주려 한다. 이런 사심 없는 경청이 성 바오로 6세 교종이 물었던 청년 사목의 열쇠일지 모르겠다. 가장 큰 국제 가톨릭 행사인 세계청년대회(WYD)가 2027년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주인공인 젊은이들을 초대하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교회와 신앙이 청년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에서 WYD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다. 오늘날 청년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는 과연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우애의 장소가 되고 있는가? 다양성이 존중받고 경축되는 곳인가? 교회는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인가?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과 평신도, 젊은이들의 위치는 어떠한가? WYD를 통해 젊은이들이 삶을 바꾸기를 기대하기보다 교회가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젊은이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것은 그들이 돌아온 탕자처럼 교회에 다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노령화하는 교회에서 반성과 회심이 필요한 사람은 청년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진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다. 우리는 사회와 교회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살아가고 있는가? 젊은이들에게 어떤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 벗들을 경청하며 동반하고 있는가? 새만금에서 열렸던 세계 잼버리처럼 WYD도 한여름에 진행된다.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교회는 어떤 장소인가?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6-16

함께 기도할 때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성공회, 정교회를 포함한 가입 교단 그리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함께하는 이 협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교파 사이 신앙의 친교를 도울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가톨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의(WCC)의 회원 교단이 아니지만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에는 정식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일치운동의 역사를 이어받은 신앙과직제협의회는 매년 일치주간의 기도회와 23회에 이른 일치포럼, 신학생 교류, 피정과 순례, 음악회와 문화제 등 뜻깊은 활동을 벌여 왔다. 여기에는 가톨릭과 여러 개신교회들이 참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은 신자 대중으로 확산되지 못했고 교파들 사이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개신교회와 신자들의 절대 다수는 보수적이고 가톨릭교회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이다. 가톨릭신자들 역시 개신교와 개신교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공통적인 것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흔히 한국 개신교인들의 가톨릭에 대한 인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교회 모습에 머물러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인 가톨릭신자들이 유독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신교 목사나 신자들이 가톨릭 기관이나 사제, 수녀, 신자들에게 ‘서자(庶子)’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교파 사이에 이런 간극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서로를 만나고 가능하면 함께 기도하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공익단체 ‘이음새’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파주 예술인마을에 있는 전시장 겸 유리화 공방인 ‘유리재’에서 만나 예술과 삶을 이야기하고 점심을 먹는 모임을 부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식사 후에는 근처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들러 잠시 침묵기도를 하고 헤어진다. 우리는 또 매달 둘째 금요일 저녁, 가톨릭과 개신교 몇몇 단체들과 함께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떼제의 노래와 침묵을 곁들인 이 기도회에는 연령과 국적이 다양한 여러 교파의 신자 80여 명이 모인다. 지난해 9월 이곳으로 옮겨 오기 전까지는 예수회센터에서 평화기도를 했다. 제대 쪽을 바라보며 모두 한 방향으로 앉아서 드리는 단순소박한 묵상기도 안에서 많은 이들은 ‘이미 이루어진 일치’를 경험한다. 그리스도교 교파들 사이에 교리와 전통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를 하나로 모아 주는 것들이 나누는 것들보다 더 많고 중요하다. 분열되고 쪼개진 이 한반도에서 화해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예수님은 지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6-09

행복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삶

우리 주위에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지난 몇 년 동안 우울증으로 진료받는 환자가 계속 늘어났다. 통계를 보면 2022년에 이미 100만 명이 넘었고 그 가운데 20대 여성의 증가가 가장 눈에 띈다. 우울증은 자살 원인 가운데 첫 번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오래 앓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섣불리 판단하거나 도움말을 주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은 그것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울증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못된 반응을 보여서 병세를 키우기도 한다. 병은 자랑하라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정신병과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낙인찍기 때문에 치료를 회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능력과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아프고 약한 자신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안 괜찮고 힘들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곁에 남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되고 고립될수록 치료가 어렵다. 우울증 환자 가운데 35%가 60대 이상이고 노인 우울증도 증가 추세이지만 한국은 청소년 우울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입시 지옥과 경쟁의 중압감에 맘껏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교사나 성직자,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생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자기 기준이 높고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발병한다고 말한다. 이수연 작가는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스물세 살 때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긴 입원 생활과 상담 치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그는 글을 썼다. 첫 에세이집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놀, 2018)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고 나아가지 못해도 살아갈 가치와 이유가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 투병기는 삶에 대한 어떤 애착도 기대도 없이,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섭고,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갇힌 절망적인 우울증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흔들리고 망가져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주치의는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그의 얘기를 경청하며 동반했다. 그는 무너졌기에 새로워졌고, 자신과 고통을 겪는 이웃에게 말을 걸면서 창작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마음의 감기’를 앓으면서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 격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6-02

대림동을 걸으며

공휴일 오전 11시 대림역 6번 출구. ‘다양성의 큰 숲, 대림(大林)동을 걷다’라는 일회성 모임에 열 명이 모였다.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와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여럿이었고 재미교포와 중국계 미국인도 있었다. 중국 선양과 옌벤 출신의 재중동포 유학생 두 사람이 안내와 해설을 맡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제일 남쪽에 있는 대림동은 공원과 녹지가 가장 적은 동네다. 1990년대까지 500명이 채 되지 않던 중국인 주민 수가 이제 1만1000명이 넘는다. 전국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된 이곳은 주말 유동 인구가 8만 명에 이른다. 대림동 길에는 환전소와 비자 업무를 대행하는 여행사가 많이 보인다.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대림중앙시장으로 들어가면 중국말이 주로 들리고 중국식 식재료에 중국 향기가 물씬 풍긴다. 프랜차이즈 상점이 거의 없고 개성있는 가게들이라 구경거리가 많다. 대림동은 언제부턴가 범죄의 온상이라는 나쁜 이미지가 씌어졌다. 영화 ‘범죄도시’와 ‘청년경찰’의 배경이 대림동이었다. ‘청년경찰’에서는 조선족 조직폭력배가 젊은 여성들을 납치하여 난자를 적출해 매매하고,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피해자들은 장기매매 조직에 팔아넘기는 악행을 저지른다. 대림동이 ‘경찰도 피하는 무법지대’라는 대사도 나온다. 대림동 주민과 이주민 단체는 “인종차별적 혐오표현물인 영화 ‘청년경찰’ 상영으로 인격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의 침해를 입었다”며 제작사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패했지만 항소심에서 화해 권고 결정이 나왔다. 결국 제작사가 공식 사과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대림2동에 있는 대동초등학교는 이주 배경의 학생들이 90%가 넘는다. 중국인 학생이 많아지면서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고 또 입학도 꺼린다. 작년 신입생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인구 절벽 시대에 ‘이민청’ 설립이 발의되었지만 이름부터 출입국·이민관리청이다. 이주민을 ‘관리’의 대상으로, 나쁘게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법무부의 시선이 깔려 있다. 언제까지 조국(할아버지의 나라)에 오는 재중동포들을 노동력으로만 보고 그 자녀들이 2등 시민으로 자라도록 방치할 것인가? 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도록 한국어 수업과 한국 사회 이해 교육 등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스며든 중국인 혐오와 조선족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실 다문화 이해 교육은 선주민인 한국인들에게 더 긴급히 필요하다. 대림2동과 대림3동을 걸은 우리는 숨은 맛집의 원형 식탁에 둘러앉았다. 가운데 유리 원반에 음식을 올려두고 돌리면서 덜어 먹는 것이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먹어보지 못했던 맛있는 중국 음식을 먹으면서 대림동이 친근해졌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5-26

요즘 젊은 것들은

60대에 들어선 내 친구들은 요즘 청년들이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자존심만 세고, 용기와 모험심이 없고, 헌신은 부족하고 계산적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차는 늘 있어 왔다. 기원전 1800년의 수메르 점토판부터 지금까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비판하며 한탄한 기록은 수없이 많다. 노인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중요했던 농경사회와 달리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노인들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노령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지만 그들을 위한 자리는 줄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관공서나 식당에 설치된 키오스크의 조작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기성세대는 MZ 세대에게 말을 건네기를 어려워한다. 태어날 때부터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와 MP3 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자라나 '디지털 네이티브’라고도 불리는 이 세대는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어떤 사람은 이들을 신세대가 아닌 '신인류'라고 일컫기도 한다.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을 남발해서 이들이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 같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소통하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수천 년 전에도 똑같은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젊은 세대 앞에서 “나 때는 말이야 ~” 하고 운을 떼는 순간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젊은이들이 보기에 나이든 사람들은 융통성이 부족하고 권위적이며 제대로 경청할 줄 모른다. 서로 다른 세대 사이에 감성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시간과 자리가 더 필요하다. 내가 대표로 있는 ‘이음새’는 한 달에 한 번씩 여러 세대와 문화가 어우러져 함께 걷는다. 요컨대 같은 눈높이에서 편안하게 만나는 것이다. 인구 절벽의 시대에 세대간 소통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더 많이 들으려 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물어본다면 실제로 배우는 것도 있고 관계도 더 좋아질 것이다. 나이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있는 이유다. 나이든 사람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내가 그들의 나이 때 했던 경험을 똑같이 반복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대학과 한국 사회는 30-40년 전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의 경험을 기준으로 젊은이들을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각각 다른 경험을 안고서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이다. 기후 재앙과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도전에 책임있게 응답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동료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처신하면 좋겠다. 그게 진정 나잇값 하는 것이 아닐까?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5-19

적대와 증오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끝나고 몇 주가 흘렀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총선 결과에 분명히 나타났지만 현실 정치가 여기에 부응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서로를 적대시해 온 집권 세력과 거대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산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 없고 일방적 소통과 대결만 있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탄한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와 정치에 들어갈 여지도 점점 줄었다. 진영대결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적대감과 증오는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배어있는 DNA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적대의 감정이 만연해 있다. 이제는 종교인들조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총선 과정은 안타깝게도 일상화된 증오와 적대를 여과하거나 승화하지 못했다.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이런 적대감의 뿌리를 백년 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찾는다. “3.1 운동 이후 격화된 좌우 대립 속에서 적에게도 이성과 양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영성 없는 진보」 온뜰 2024, 이하 모든 인용). 이 두 진영의 반목은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고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초기에 자행된 민간인학살은 우리가 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믿음을 송두리째 없애 버렸다. 그 결과 “정치는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동지와 적을 가르고, 그 적대적 대립 속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목적이 되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진보 운동이 1980년대 이후 분노와 증오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말하면서 아프게 지적한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 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그에 따르면 “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져 있기 때문에 (...)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분열상을 치유하려면 다름과 차이를 용인해야 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도 전체 속에서 나의 일부라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릴 때 가능할 것이다.” (111쪽) 형식적 민주주의는 성취했지만 적대와 증오, 혐오와 배제가 고개를 드는 오늘날,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 주목하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다움은 거짓과 불의를 단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5-12

‘불법’인 사람은 없다

서울 종로5가의 한 빌딩 지하에 있는 서울 디아스포라 교회는 교인들 다수가 미등록 필리핀 노동자다. 한국에 온 지 5년부터 25년이 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 고국에 있는 부모의 의료비와 자녀 혹은 동생들의 교육비를 책임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일이 없는 주말과 저녁 시간에 잔업이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매년 ‘불법’ 노동자 특별단속 기간이 되면 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적발되어 벌금을 물고 추방당하면 다시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올봄에도 이렇게 한국을 떠나는 교인이 계속 생기고 있다. 교인이 단속에 붙잡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면 정진우 담임목사는 회사를 찾아가 못 받은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내고 그가 살던 방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아 전해 준다. 비행기표도 추방되는 노동자가 사야 한다. 그런데 어려운 회사 사정에 미등록노동자 고용으로 벌금까지 물게 되었다며 퇴직금을 못 준다는 사장도 있다. 어떤 집주인은 외국인보호소에 억류된 당사자와 연결해 주어도 정 목사를 믿지 못해 다시 자기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 단속을 강화하면서 인권 침해도 잇달아 발생했다. 작년 3월 대구에서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주일 예배를 보다가 토끼몰이식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11월에는 경주의 공단에서는 법무부 남성 직원이 미등록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목덜미를 붙잡고 작업장에서 끌어내는 영상이 국제적인 공분을 자아내었다. 정부는 한쪽으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여 추방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매년 수천 명씩 외국인노동자를 추가로 들여온다. 이른바 3D업종뿐 아니라 농어촌에도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런데 20년 넘게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일터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들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한다. 아무리 강력히 단속해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줄지 않고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43만 명을 헤아린다. 그들 가운데는 20년 넘게 한국에 산 사람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100명이 7월에 입국해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빠르면 8월 말부터 서울 지역에서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의 증가하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에 시범사업으로 해 본다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에서 노동계와 인권단체의 반대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오는 것은 노동력에 앞서 무엇보다 사람이 오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이웃이다.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이민 이주민 이주노동자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5-05

눈물꽃 소년

박노해 시인이 자전 수필집 「눈물꽃 소년」(느린 걸음, 2024)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그때의 눈으로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 자연과 학교와 하느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독자는 가난과 결핍과 열망으로 가득 찬 시절을 살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소년 ‘평이’(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이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는 사라진 자신의 유년기와 잃어버린 순수함을 추억하게 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동심이 심연에서 깨어날 때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문한다. 평이가 자라는 남도의 시골 마을 동강은 작은 우주다. 거기에는 신앙의 요람이었던 동강공소와 멕시코 선교사 호세 신부, 학교와 반 친구들, 배고픔을 채우듯 많은 책을 읽게 해 준 선생님과 도서실, 밤하늘의 별들과 자연, 할머니와 어머니, 애틋한 첫사랑 여자애까지 있다. 작가는 오늘날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원형의 것들, ‘순수하고 기품 있는 흙 가슴의 사람들’을 소환하면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풍경’을 그려낸다. 어린 평이는 벙어리 처녀 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맘이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의 입이 되고 글이 될라요.” 첫사랑 소녀를 만나서는 “나처럼 외롭고 혼자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 눈물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눈물꽃 소년」에는 훗날 박노해 시인의 삶과 문학을 만든 싹이 다 담겨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직관, 강직함과 인내,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아우르는 인간의 심성과 자세의 큰 부분은 유년기에 형성된다. 그런데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쉼 없이 달려온 우리는 그 순수한 눈길과 동심을 잃어버렸다. 어른들은 자신의 동심을 지워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동심마저 타락시켰다.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 말하는 초등학생이 다른 급우를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휴거’(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 비하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부동산이 계급이 된 사회’에서 어른들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준비반을 만들어 선행학습을 시킨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물신주의 속물주의, 무한 경쟁의 사고와 의식을 심어준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와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작가는 “길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우리에게도 ‘영혼의 순수가 가장 빛나던 시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천진무구함이 상처받은 모습이 지금의 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작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영원한 소년 소녀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고 속삭인다. 그 소년이 우리에게 눈물꽃을 건넨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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