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어줌, 군인이자 사제라는 사명감으로 한 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를 위해 나를 조금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군종교구 화랑본당 주임 박현진(마르코) 신부는 이렇듯 “자신의 건강을 나눠줌으로써 생명이 위태로운 이웃이 희망을 찾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축복”이라는 마음을 고백하며 8월 22일 한 혈액암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5월 유전자 형질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는데 그에게 기증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박 신부는 주저하지 않고 응낙했다. 박 신부는 신학생이었던 2015년 일찍이 서울대교구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에 동참해 기증을 서약했다. 그동안 헌혈에도 30회 이상 동참했다. 현재의 박 신부는 군인의 일과에 따라 매일 체력 단련을 하는 건강한 군종사제이지만, 건강하지 못한 어려움이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기꺼이 마음이 움직였다. “입학 후 꾸준히 운동하며 지금처럼 건강해지기 전에는 나도 큰 키에 비해 적은 체중, 갑상선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박 신부는 고백했다. 다른 기증자가 나타나길 바라며 손을 뿌리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채취 과정에 대해 퍼져 있는 부정적 선입견에 대해 박 신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전자 형질이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날 확률이 대략 2만분의 1에 남짓함을 알기에 그는 용감해졌다. “그 환자분은 하느님께서 제가 도와줄 수 있도록 보내 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인이자 사제로서의 사명감이었습니다.” 먼저 기증을 위해 4일간 하루 한 차례씩 두 팔에 조혈모세포 증식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에 따라 몸살 비슷한 증상이 와 불편감에 진통제를 먹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1주일 후 병원 침상에 5시간30분가량 꼬박 누워 채혈해야 했다. “제 경우에는 피가 잘 나오게 하기 위해 계속 팔에 힘을 줬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해야 했는데,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박 신부는 말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그렇게 힘든 노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또 사활의 문제 앞에 절박한 누군가를 때마침 내가 도울 수 있는 경우를 우리가 과연 살면서 얼마나 마주치겠어요. 나의 믿음이 곧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기쁨만으로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해 보일 수 있었던 이 경험은 박 신부에게 성장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떤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묻어나는 삶인지, 장병과 신자들에게 실천의 용기를 줄 수 있는 사제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가슴에 와닿았다”는 고백대로다. 사람들에게 ‘영’(마음)을 나눠주는 군종사제의 역할을 넘어 ‘육’(건강)까지 나눠준 박 신부. 그는 끝으로 “다음에도 기증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화답할 것”이라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편견을 버리고 기증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제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모범이 됐길 바랄 뿐입니다. 크든 작든 희생으로써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희망으로 울려 퍼지는지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2024-09-08

“한국의 시(詩)에 매료…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죠”

“처음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을 뵌 건 1973년경 추기경님께서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성당 뒤에 가만히 앉아계셨는데 사실 처음엔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음 날 당시 한국 상황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신 정권에 대한 말씀이었죠.”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번역가 안선재 수사(Anthony Graham Teague·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떼제공동체)는 김 추기경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안 수사가 홍콩에 있을 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는데, 그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다. 안 수사는 영국에서 중세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떼제공동체에 들어갔다. 한국 땅을 밟은 건 1980년 5월. 안 수사는 “떼제공동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땐 자리 잡을 기반이 없어 수입을 얻기 위해 직접 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추천을 받아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다가 1985년에는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릴 적부터 홀로 조용히 앉아 책 읽기를 즐겼던 그는 한국문학, 특히 한국 시 번역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 시에 대해 알고 싶어 동료 교수에게 번역할 만한 시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예전부터 아는 시인이 있다며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을 알려주더라고요. 시가 읽기에 쉽고 재밌는데다가 어떤 면에선 굉장히 인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번역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구상 시인을 시작으로 서정주, 김광규 등 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영어로 번역됐다. 번역본 대부분은 영국의 한 자그마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안 수사는 “영국 일간지 한쪽 구석 출판사 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한국 시 번역본을 출판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첫 출판은 1990년이었다. 최근에는 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번역해 출간했다. 번역 중에서도 왜 시를 특히 좋아했을까. 안 수사는 “시에는 시인의 마음, 시인의 세계관이 간결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불의와 부조리에 저항하던 그들의 비판 어린 시선은 시 한 편 속에도 온전히 담겨 있어 한국 사회 현실을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시인들의 세계관을 해외에 맛깔나게 전달하는 건 온전히 안 수사의 몫이었다. 물론 시만 번역하는 건 아니다. 안 수사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번역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천주교회사」를 영어로 새롭게 번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타임즈 번역상과 대산번역상 등을, 영국에선 대영 제국 훈장까지 받았다. 또 최근 제28회 만해대상에선 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안 수사는 “상을 받은 건 당연히 기쁘지만, 내가 아니라 직접 쓴 원 작가들이 받아야 할 상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상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번역작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번역하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훌륭한 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말 행복하죠. 그러기에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번역가로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2024-09-01

[인터뷰]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 ‘등대의 집’ 돌보는 이준희 신부

“‘등대의 집’은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은퇴 사제로서 삶을 바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보살피고 성가정을 지켜주고자 늘 이곳을 지킬 거예요.” 강화도 어느 산자락, 아파 흘린 눈물만큼 짠 바닷바람이 나부끼는 이곳에 자리한 30여 평의 2층 주택은 여느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이준희 신부(마르코·인천교구 성사 전담)가 보살피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 ‘등대의 집’이다. 이 신부는 쉼터가 2010년 개원한 이래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쉼터 담당 사제로서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금경축을 맞은 이 신부는 2013년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고립무원한 피해 여성들에게 몸 누일 곳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에 은퇴 이후의 삶을 봉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부는 1979년부터 ME 팀 사제로, 또 지금은 ‘르트루바이’(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팀 사제로도 봉사하며 가정폭력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를 숱하게 만나 왔다. 이 신부는 “겉으로는 멀쩡해도 폭력으로 영육이 멍들 대로 멍든 여성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당장 피신해야 하는데 그들은 막상 집을 나오면 갈 데가 없다. 잠깐이라도 피신처를 마련해 주고 싶어도 신부 개인으로서는 뾰족한 사목적 대책이 없었다. 이 신부는 “성당에 머물게 할 수도 없으니 갑갑할 따름이었다”고 회상했다. “기회가 되면 쉼터를 꼭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젊었을 때부터 했어요. 마침 부모님 덕에 집이 마련돼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던지요.” 이 신부는 국적, 나이, 종교, 지역, 자녀 유무 등 어떤 제한도 없이 여성들을 쉼터로 받아들여 휴식 속 치유를 선사한다. 지금까지 40여 명 입소자가 쉼터를 거쳐 갔다. 부모에게 맞아 팔이 부러진 채 찾아온 아가씨, 한국인 신랑의 주먹을 피해 무작정 거리에 나온 외국인 색시, 자식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난 노인…. 언어, 심리, 육체를 가리지 않은 폭력에 다친 그들은 꽃과 채소가 심어진 텃밭을 가꾸고, 가을이면 산에서 밤을 따고, 매일 이 신부가 주례하는 새벽미사에 참례하며 ‘평범해서 오히려 절실했던’ 위로를 얻었다. “고혈압, 심지어는 당뇨가 나았다며 좋아하는 입소자도 있었어요. 폭력 스트레스가 그렇게나 그들을 병들게 했던 거예요.” 이 신부는 입소자의 가족이 마침내 화해하고 스스로 폭력을 끊어낼 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낀다. 진정 선사하려는 것은 ‘가정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아주 드물지만, 퇴소 여성들이 남편과 함께 인사를 올 때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이 신부는 미소 지었다. 쉼터는 폭력 가해자로부터 숨어야 해 공개적 홍보가 어렵다. 이 신부는 “코로나 이후 각 본당을 다니며 홍보하는 길도 끊어져 난처하다”고 호소했다. 그런 이 신부는 선종의 그날까지 쉼터를 지켜 가려고 한다. 쉼터는 그의 표현대로 “갈 길 잃은 쪽배 같은 피해 여성들이 홀로 표류하지 않도록, 언제든 정박할 수 있는 성가정 회복의 거처”기 때문이다. “성가정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모두가 간직하게 하려는 열망뿐입니다. 쉼터를 몰라서 못 오는 피해자가 없도록 많이들 알려주세요.” ※ 문의 032-937-7019 등대의 집

2024-08-25

‘숲 해설사’로 제2의 사목인생 살고 있는 신성근 신부

37년 동안 로만칼라를 하고 성당에서 신자들과 만났던 사제의 목에 새로운 이름표가 걸렸다. ‘산림교육전문가 신성근’. 경건한 성당이 일터였던 청주교구 신성근(야고보) 신부는 이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숲에서 일한다. 등산화에 등산가방, 챙이 넓은 모자를 갖춘 신 신부는 일하는 장소도, 복장도 예전과 달라졌지만 “장소만 달라졌을 뿐, 숲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자연을 좋아했던 신 신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은퇴 후 의미있는 삶을 꿈꾸는 계기가 됐다. “숲 해설사는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의 이야기뿐 아니라, 숲과 인간과의 관계 등을 알려주는 교육전문가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천명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과 연결될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피조물과 공존할 수 있는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에 숲 해설사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무, 곤충, 환경, 의사소통과 관련된 강의 170시간에 현장 실습과 해설 시연까지 자격증을 따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신 신부는 “내가 받았던 것을 돌려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하는 시간이 기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가 첫 해설 장소로 선택한 곳은 배티성지와 연풍성지다. 청주교구 안에 있는 성지기도 하지만, 풍성한 순교자와 숲의 이야기를 신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두 곳을 선택했다. “나무와 숲에 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자연은 욕심내지 않고 인간에게 한없이 베푸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닮아있는 이곳에서 신앙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지에서 숲 해설을 하는 사제’라는 특별한 타이틀에 걸맞게 신 신부의 해설은 남다르다. 배티성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통해 많은 사람을 품고 그늘이 돼 주는 신앙인이 될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오로지 해만 바라보고 자라는 소나무를 통해 우리의 신앙도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성당 밖을 나온 강론 아닌 강론에 신자들은 “주님의 이야기를 생생한 현장에서 듣게 돼 마치 살아있는 강론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은퇴 후 시간을 정성스럽고 귀하게 보내고 싶어 숲 해설사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신자들과 만나는 모든 순간이 그에게는 참으로 귀한 시간인 것이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 발 아래로 밟히는 흙과 풀, 시원한 그늘이 돼 주는 나무,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인간과 함께 살아가자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신 신부는 그 귀한 이야기들을 꺼내 성지를 찾는 이들의 영성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도록 돕고 있었다. 신 신부는 “성지에서 숲 해설을 듣는 분들이 숲 향기와 더불어 신앙의 향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숲체험 신청 문의: 010-5248-5504

2024-08-18

"젊은이에게 필요한 건 ‘반쪽짜리’ 아닌 ‘온전한 경청’

‘재단법인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가 7월 13일 창립됐다. 모든 사람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하 WYD)를 위해 법적, 행정적, 재정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구체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이런 배경을 아우르듯 선임된 12명 이사진은 교회 내외와 종교계, 세대를 합한 모습이었다. 김수지(가브리엘라·서울대교구 발산동본당) 씨는 이사진 중 유일한 청년이다. “이사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김씨는 “WYD가 청년들을 위한 축제인 만큼 청년대표로서 그들 목소리를 대변하며 교회가 더 잘 경청하고 들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19년 서울에 WYD를 유치하기 위해 구성된 ‘WYD 유치 준비위원회’ 직원으로 활동하며 서울 WYD와 연을 맺었다. 이렇게 유치 준비의 첫 시작을 함께 한 그는 올해 1월 발족해 6개월 동안 WYD 준비와 젊은이 사목 방향 및 핵심 가치를 제안한 기초연구팀에서도 활동했고 계속 후속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7월 28일 열린 2027 서울 WYD 발대식에서는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와 청년 대표로 발대 선언을 했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으로서 바라보는 WYD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씨는 “일회적 성격을 띈 대회라기보다 결국 청소년, 청년 사목 여정 중 하나이며 젊은이 사목을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 더 뜻을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많은 청년이 교회를 떠나고 젊은이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시대입니다. WYD가 교회를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되고, 또 희망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에 젊음의 용기와 활력을 다시 북돋워 주는 경험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청년들에게는 “교회 안에서 행사나 일을 하다가 갈등이 생겼을 때는 숨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단순한 비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앞에 놓인 장애물과 장벽을 헤쳐 나가기 위한 비판적 시선이 중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서울 WYD와 관련해서 교육영성팀에서 봉사를 이어간다. “결국 ‘본당이 살아나야 지구, 교구, 세계 차원의 행사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기에, 본당에서 젊은이 양성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교회에 바라는 점으로는 “본당, 지구, 교구에서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이들에게 관심과 예산 지원,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향성을 제시해 주시는 어른들 역할도 부탁드리고 싶다”는 김 씨는 “위로가 되는 말들과 더불어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반쪽짜리 경청’이 아닌 온전히 젊은이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08-11

제 집 대하는 마음으로 수련원 기초 놓은 ‘산증인’

“세례도 안 받은 저에게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초대 관리부장 신부님이 ‘새로 열게 될 수련원에서 함께 일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성당의 ‘성’ 자도 모르던 저는 처음 뵌 신부님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죠.”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시설관리를 맡고 있는 한상욱(요아킴·71)씨는 수련원이 개원한 1984년부터 40년 근속하며 수련원과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한씨는 원래 수련원이 개장하기 전 그 자리에서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던 ‘삼호원풀장’ 관리원이었다. 서울대교구가 풀장 부지를 넘겨받아 수련원으로 쓰기 위해 준비하던 즈음, 한씨가 성실하다는 말을 들은 수련원 초대 관리부장 고(故) 이사응(안토니오) 신부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면서 수련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씨는 수련원 개원 초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개원한 직후 전 직원이 나를 포함해 5명 내외였다”면서 “관리할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외부 사람들을 일용직으로 고용해 인력을 충원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수련회를 위해 학생들이 오면 산에서 장작을 패다가 장작불로 밥을 해주고, 방문객들이 머물 텐트를 이사응 신부님과 함께 직접 쳐줬다”고 말했다. 초기엔 담벼락 등 보수에 쓸 콘크리트를 직접 제조하기도 했다. 한씨는 “모래와 자갈 등을 버무려서 어떻게든 담벼락을 보수하거나 심지어 직접 만들었는데, 막내였던 나에겐 고된 작업이었지만 젊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웃음 지었다. 오랜 기간 일하다 보니 수련원 시설을 거의 꿰뚫고 있다. 한씨는 “전기나 배선 등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결국 직원들이 고쳐야 하기에 하나하나 경험하며 익혔다”고 말했다. 경험이 수십 년을 쌓여 이제는 웬만한 건 그가 고치고 있다. 수련원에서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한씨는 “1987년 즈음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직원과 함께 본관과 통나무집 사이 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토사가 밀려와 다리를 통째로 휩쓸고 지나갔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지켜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수련원 시작을 함께했던 이사응 신부와의 기억은 특별했다. 한씨는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면 ‘이 사람이 처음엔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었다’며 놀리시곤 했다”고 기억했다. 이 신부가 한씨를 수련원으로 부른 덕에 그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됐다. 이 신부는 2007년 선종했다. 또 40년간 많은 사제들이 수련원의 원장으로 거쳐갔는데, 한씨는 “부족한 나를 신부님들이 모두 인상 좋다며 잘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덕분에 수련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지금까지 그대로다”고 말했다. 최근엔 폭우로 수영장에 토사가 흘러내려오는가 하면, 질퍽해진 기도 산책로에 자동차가 고립돼 트랙터로 끌어내는 등 바쁜 일과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종일관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앞으로 해야 할 작업들을 소개했다. 한씨에게 수련원은 집이나 다름없어 궂은일도 애정을 가지고 임한다. “수련원도 오래돼 여기저기가 망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집이라고 생각하면 더 열정적으로 일하게 되죠.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도 이사응 신부님을 통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024-07-28

대학 경계 넘어 ‘복음화 통한 전인교육’ 시너지

“12개 가톨릭계 대학들의 온라인 교육과정 공유 플랫폼인 한국가톨릭교양공유대학(CU12, 이하 공유대학)이 성공적인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교육 자원을 공유하고 참여대학들이 힘을 합쳐 가톨릭 교육 이념을 구현할 수 있도록 공유대학이 꾸준히 마중물 역할을 해내길 희망합니다.” 공유대학 학장 구본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대학 간 경계를 허무는 공유대학이 복음화를 통한 전인교육 사명 실현의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데서 1주년이 의미 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플랫폼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교육환경으로 안착한 지금, 구 신부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출범한 공유대학이 여러 대학의 협력하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인적 인재를 양성하는 시너지를 발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 신부는 “공유대학은 대학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 지식과 자원을 공유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각 대학의 특화된 교육과정을 공유함으로써, 수강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은 확대되고 함께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공유이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학도 열린 구조로 전환돼야 합니다. ‘복음화를 통한 전인교육’이라는 하나의 사명을 좇는 가톨릭계 대학들이라면 더욱 그렇게 해야겠죠.” 구 신부는 “우수한 교수진과 검증된 강의로 학생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 최대의 시너지”라고 역설했다. 단순히 대학 간 학점을 교류하는 형태가 아니라, 참여대학이 교양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운영하며 대학마다 특화된 질 높은 교양교과목을 공유하는 혁신적 미래대학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대학의 경우 강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도 공유대학을 통하면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제공할 수 있죠.” “교과목을 공유하기에 다양하고 유익한 과목이 개설된다”고도 구 신부는 강조했다. 많은 대학에서 ‘빅데이터 이해와 활용’, ‘AI기반 앱개발과 활용’ 등 자연과학 및 공학 영역 교양교과를 열기 어려워하는 만큼, 과목 개설에 대한 각 대학의 부담을 대폭 낮춰준다. ‘미디어와 패션아이콘’ 등 트렌디한 문화예술 강좌도 들을 수 있게 된다. 구 신부는 “공유대학이 학생들이 선호하는 교육혁신 플랫폼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는 것은 그간 성과를 통해 입증된다”고 밝혔다. 지난 세 학기 동안 총 수강생 1만431명이 124개 교과목을 수강했다. 지난해 1학기는 17개 교과목 개설, 1409명 학생이 수강한 데 비해 올해 1학기는 38개 교과목 개설, 4504명 학생이 수강하는 등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학기에는 개설 교과 수도 60개가 될 정도다. 끝으로 구 신부는 “그간 각자 고등교육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해 온 가톨릭계 대학들이 교육 목적 달성에 하나의 힘을 모은다는 것이 공유대학의 핵심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여대학들이 전공까지 강좌를 공유하게 된다면 곧 ‘한국가톨릭공유대학’이 될 것”이라며 “가톨릭 교육 가치를 존중하고 공유할 수 있는 대학이라면 얼마든지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

2024-07-21

소설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재조명한 김원율씨

김원율(안드레아·76·서울 반포1동본당)씨에게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연말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다룬 「마리아 막달레나의 노래」(좋은아침)라는 제목의 소설을 펴낼 만큼 성녀에 대한 존경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평생 금융계에 종사하며 관련 도서를 출간한 적은 있으나, 문학 양식이 요구되는 소설 쓰기는 처음이다. 10여 년을 구상하고 3년에 걸쳐 글을 썼다. 전문 작가도 아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처럼 소설로 성녀 이야기를 담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 여러 명의 마리아가 나오는데, 성경 공부 중 혼돈이 되어서 몇 번이나 다시 읽곤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죠. 오랫동안 잘못된 인식으로 성녀가 오도되었고 폄하되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이자 사도들을 부활에의 확신으로 이끌었던 그녀의 생애를 소설로 진실하게 그리며 반론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생각한 것은 좀 더 사람들에게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김씨는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나갔다.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은 추천사에서 “작가적 구상력과 묵상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일생 전체 안에서 예수님을 향한 강한 사랑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소설의 구성, 플롯(plot)을 짜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정통 교리와 성경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감흥과 감동을 주는 데에 주력했다”고 전했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성녀를 ‘사도 중의 사도’로 인정하셨고,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7월 22일을 축일로 격상시키는 교령을 발표하셨다”며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계기로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성녀의 위대함을 마음속에 새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리아 막달레나 연구 모임이 생겨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24-07-21

“교황님 회칙에서 강렬한 환경·평화 메시지 느꼈죠”

“생태와 평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환경을 파괴하는데 그 대표적인 양상이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박평수(프란치스코) 상임위원은 대학시절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고양환경연합 집행위원장 등 각종 환경단체 주요 직무를 역임하며 생태 보호에 힘쓰고 있다. 더불어 2013년부터 ‘DMZ 평화의 길’ 도보 순례 기획에 참여하거나 자문위원 등으로 봉사하며 교회 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 위원은 세례를 받은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는 “젊은 시절엔 유물론자였던데다가, 천주교가 과거 정복을 위한 서양 열강들의 주요 수단이었다고 생각해 부정적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건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였다. 박 위원은 “환경 운동을 하던 중에 「찬미 받으소서」를 읽고 그 어떤 생태 관련 글보다도 근본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회칙을 통해 천주교와 신앙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천주교라는 종교가 지구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또 우리가 환경보호에 왜 앞장서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기술돼 있었습니다. 그 어떤 환경·평화 운동가의 메시지보다도 강력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사업에 반대하며 환경보호를 목이 쉬도록 함께 외치던 사제들과의 인연도 그가 세례를 받는 데 한몫했다. 박 위원은 “현장에서 자주 만나던 신부님들이 나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권하면서 세례명을 생태계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프란치스코’로 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박 위원은 신부들 말대로 세례를 받으며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했다. 박 위원은 DMZ 평화의 길에서 봉사할 때면 순례자들에게 ‘평화’와 ‘생태’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그는 “세계의 역사를 보면 기후변화는 곧 식량과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고, 또 내전과 전쟁으로 연결된다”면서 “환경과 평화는 결국 서로 띠처럼 연결돼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에도 교회에 생태와 환경, 평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강의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신자들이 「찬미 받으소서」를 접하고 읽어서 생태와 환경 문제가 교회 안에서 더 폭넓게 다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회칙이 결국에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올바른 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07-14

“교황님 말씀 힘입어 교회와 세상 다리 되고 싶어”

“주체적인 평신도에 대해 늘 고민해 왔거든요. 교황님께 직접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이번 기회를 통해 ‘성’(교회)과 ‘속’(세상)의 다리가 되려는 소망이 더한층 강렬해진 것 같아요.” 서강대학교 철학·종교학과 3학년 학생 성유빈(에디트 슈타인·인천 마전동본당)씨는 6월 20일 교황청 라틴아메리카 위원회와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교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에 다리 만들기’(Building Bridges Across Asia Pacific) 프로그램에 참가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화상으로 만났다 아태 지역 대학생 12명이 참가한 프로그램에서 한국 대표로 참가한 성씨는 교황에게 주제 발표를 하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교회와 세상의 중재자로서의 포부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며 미소 지었다. 성씨는 “‘평신도로서 교회에 어떻게 영적 활기를 불러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면서 “교회가 교회 밖의 현실적 요구에 응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은 비신자 때부터 줄곧 가져왔던 소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이 없다는 허무함보다 그분이 계신다는 따뜻함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의 성화된 삶을 살겠다”는 이끌림으로 1학년 때 세례를 받았다. “늘 기도한다고 말하며 종교의식을 치르지만 그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신앙인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지 늘 의문이었어요. 영성 생활의 근본인 기도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 문제 앞에서 그것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성씨는 “교회 울타리 바깥에서 시노드 전반을 관심 깊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경청하며 교황과의 만남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특별한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친구들, 무신론자인 친구들, 개신교 신자인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노드를 단순히 ‘너희’(가톨릭신자)끼리의 문제 해결로만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들 답에 귀 기울이며 발표 주제를 ‘한국 사회 내 교제 폭력의 증가와 그로 인한 건전한 연인 관계 형성의 어려움’으로 정했다. 세상에서는 긴박한 사회 현안이고 교회에서는 ‘인간을 서로의 협력자로 창조하신’(창세 2,20 참조) 하느님 뜻과 위배되는 젠더 간 폭력에 대해 교황의 지혜를 듣고 싶었다. 교황의 말씀은 깊은 울림을 줬다. “남성특권주의가 단순한 사상(Idea)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적 사건(살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여성은 결코 이등 시민이 아니며, 우리는 폭력과 무관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는 성씨에게 “교황처럼 열린 마음을 가진 중재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일깨웠다. “여성의 안타까운 현실을 강조하시고자 ‘이등 시민’을 반복해 언급하신 것이 인상 깊었어요. 사목자에게 이러한 인권 감수성이 없다면 교회는 나아갈 수 없겠죠.” 비가톨릭 가정 출신에도 스스로 하느님을 택한 성씨. 그는 “유다인 출신이지만 철학 공부 중 가톨릭으로 개종한 가르멜 수도회의 에디트 슈타인 성인과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며 “여러 공동체(정체성)를 오가며 소통하는 데 제격인 ‘중재자’로서 다리를 놓고 싶다”고 말했다. “교회가 세상에서 힘을 잃고 독단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벽을 허무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성유빈씨는 “교회 밖에서 시노드를 관심 깊게 지켜보는 비신자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제 발표를 준비하고 교황과도 뜻깊은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며 “이렇듯 교회와 세상 사이 다리를 놓는 중재자로서의 소명이 부쩍 또렷해졌다”고 말한다. 사진 박주헌 기자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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