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교회 선교 사명 수행에 중추적 역할 기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숫자 ‘60’은 역사의 한 주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가 60년 동안 보편교회에 보여준 헌신과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경험들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바티칸 시국 행정부 차관 에밀리오 나파(Emilio Nappa) 대주교가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설립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했다. 2022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교황청 전교기구 총재를 역임한 나파 대주교는 한국지부가 앞으로도 보편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 “1990년대 후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결정으로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한국교회는 교황청의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세계 곳곳 어려운 교회와 교구를 돕기로 한 것이지요. 이러한 한국교회의 너그러움은 오늘날 세계 여러 교회의 귀감이 됩니다” 나파 대주교는 “한국지부는 단순히 한국교회 기구가 아닌 보편교회 기구로 한국의 선교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며 “이는 1200여 개에 이르는 선교 지역 교구의 선교사들이 생활하고, 성당을 짓고, 교리교사를 양성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지부가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한국교회 각 교구에 전교기구를 담당하는 지부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본다”며 “한국지부와 각 교구 간 긴밀한 소통 속에 세계 교회의 어려움을 더욱 잘 이해하며 보편교회와의 협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파 대주교는 전교기구 활동과 지원의 핵심이라 할 선교에 관해서는 ‘비범함’을 키워드로 꼽았다. “모든 믿는 이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과 희망, 사랑의 정신으로 일상의 작은 일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하느냐입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한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탈리아 나폴리가 고향인 나파 대주교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민족적 성향도 닮은 점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주교님들과 신자분들의 환대를 받으며 감정이 풍부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제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다”며 “퇴원 후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오신 교황님께 한국 신자분들의 환대, 그리고 교황님의 쾌유를 청하는 기도와 응원을 직접 전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신앙을 통한 하나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형제자매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 도움을 전할 수 있는 건 큰 축복입니다.” 3월 26일 입국한 나파 대주교는 이날 주교회의 정기총회 중인 한국 주교단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기념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이후 주교회의를 찾아 상임위원회 주교들과 오찬과 간담회를 열고, 28일 대구대교구, 29일 수원교구, 30일 서울대교구 등을 방문한 후 31일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60주년 기념미사에 함께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1면

“연민의 하느님 시선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 기록”

“사람이 고통받는 현장에서 사진 찍습니다” “사진은 개인적 유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든 순간에는 소명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받고 있는 현장에 저를 부르셨고, 저는 사진으로 응답할 뿐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위하시는 연민의 하느님 모습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픔을 겪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사진에 담고 있는 장영식 작가(라파엘로·부산교구 전포본당)는 노동 현장이나 사회 현안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어릴 적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아 흑백 사진을 찍다가 몸담고 있던 교직을 떠난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부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제85호 크레인 고공 농성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입니다. 제85호 크레인 고공 농성도 그렇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 현장에서 제가 사진을 찍은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진작가로서 지금, 바로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 작가는 오늘날에는 사진기를 손에 드는 사람은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진을 통해 현실을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라고 해서 특별한 자부심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에 언어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도 뒤따릅니다. 사진 뒤에서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언어를 읽어야 합니다. 항상 제가 붙박고 살고 있는 현실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사진가로서의 역할에 성실하게 임하고 싶습니다.” 장 작가는 지금도 구미 한국옵티칼지회, 서울 세종호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는 현장 등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픔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앙에서 힘을 얻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는 현장에 사진기와 묵주를 꼭 지니고 갑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고 연민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국가의 부조리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힌다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짓밟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부르실 때, 응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장 작가는 “안동교구 정양모(바오로) 신부님과 부산교구 고(故) 서공석(요한 세례자) 신부님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면서 “최근 한국사회 현실에서 교회가 시대적 징표를 올곧게 읽고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순 시기를 거룩하게 보내는 참된 회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1면

“삶의 위기 속 깨달은 ‘행복’ 나누고 싶어 봉사”

“저뿐 아니라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이웃 사랑을 베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삶을 살면 자기 자신의 삶도 하느님께서 바꿔주십니다. 제가 위기를 극복하게 된 것처럼요.” 자원봉사활동 누적 1만5000여 시간으로 3월 14일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추천포상 국민포장을 수상한 퇴직공무원 윤영근(로베르토·수원교구 군포 부곡동본당) 씨는 봉사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윤 씨는 “나보다 잘난 사람과만 비교하면 봉사나 후원하기 어렵다”며 “대중매체에 나오는 소위 잘 사는 1%가 아니라 다수의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바라보면 봉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윤 씨가 본격적으로 봉사와 후원의 삶을 산 건 1980년 그가 21살이던 때 창원시 공무원으로 임용되면서부터다. 이후 공직생활 40여 년간 공무원 동료들과 함께 만든 밴드로 없는 시간도 끌어모아 자선 음악회를 열거나 직접 하모니카 공연을 하며 후원을 이어나갔다. 윤 씨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건 열악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복지정책의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하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라며 “공무원 밴드만으로는 어려웠겠지만 공직생활 중 알게 된 여러 음악인들이 도움을 줘 바쁜 가운데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윤 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내·자녀와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며 월급 일부를 매번 어려운 이웃을 위한 후원으로 쓰고 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차도 없고, 여름에 에어컨도 쓰지 않는다”며 “술도 담배도 하지 않다 보니 멀어진 지인들도 있지만, 그 덕에 이웃사랑에 쓸 여유를 얻었다”고 했다. “6살 때 어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런데 세상은 제가 돈을 벌어서 공부하며 살아남아야 했죠. 우유 배달부터 막걸리, 신문 배달까지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윤 씨가 월급까지 아껴가며 이웃을 돕게 된 이유는 그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윤 씨의 어린 시절은 당시 또래들보다도 힘겨웠다. 심지어 청소년 시절 비포장도로를 자전거로 타고 가다가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고 말았다. 환경을 극복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이 힘들었다. 윤 씨는 “공무원은 시험만 잘 보면 학력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입대해 공부를 병행했고, 전역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왔기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신앙생활하며 하느님께 받은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제가 공무원이 되고 또 기회를 얻어 대학원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오랜 기간 봉사하니 받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것을 나누고자 지금도 지역에서 틈틈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21면

[인터뷰]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하는 브라우크만 수녀

“처음에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의료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어서 상을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저 혼자만이 아니라 원주가톨릭병원에서 오랜 세월 같이 일했던 모든 분들에게 주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받기로 했습니다.” 원주가톨릭병원장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Heide G. Brauckmann·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는 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의 기쁨을 43년 동안 원주가톨릭병원에서 함께 봉사한 이들과 함께 나눴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원주가톨릭병원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후원자가 있습니다. 원주시 문막읍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오던 형제님이 진료를 받고 약값을 주시면서 꼭 봉투 하나를 같이 주고 가셨어요. 봉투 안에는 큰돈이 들어 있었고, 원주가톨릭병원 초창기에 병원을 꾸려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감추고 원주가톨릭병원을 후원해 주셨던 여러분들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1943년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에서 태어난 브라우크만 수녀는 1966년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기 전 독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교육 분야에도 뜻이 있었지만 가난하고 피폐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에게 더 큰 봉사를 하기 위해 간호학을 공부했고, 보다 전문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1975년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원주교구장이셨던 고(故) 지학순(다니엘) 주교님께서 저에게 결핵 환자들 치료를 부탁하셨어요. 198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 결핵 환자들이 많을 때입니다. 1981년 지 주교님의 협조를 얻어 원주교구청 3층에 진료소를 개설했는데 교구청 통로를 환자들이 가득 채울 정도로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원주에 병원이 몇 개 없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원주시 학성동에 ‘원주가톨릭의원’을 개원했고 현재의 원주가톨릭병원으로 성장했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올해 개원 43주년이 된 원주가톨릭병원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병원 이용자들 대부분은 노인들입니다. 임종을 앞둔 노인들을 위한 호스피스 기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병원 공간의 한계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주지역에는 아직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 문화가 낯선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는 활동도 앞으로 강화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한국 의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의사는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의사 스스로도 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주식회사 보령이 주최하는 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5시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1면

“종교적 지혜, 청소년 성장에 도움 될 것”

“이번 교과서가 세속적인 유혹이 많은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이 종교적 지혜를 가지고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데 길잡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발간된 중·고등학교 종교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총무이자 동성중고등학교 교장 조영관(에릭) 신부는 청소년들의 전인적 인격 형성을 위해 종교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2022년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진로선택 과목에서 기존 ‘종교학’이 ‘삶과 종교’로 바뀌었다. 학생의 삶과 연계한 깊이 있는 학습을 강조하면서 종교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교육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삶과 종교 과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청소년의 삶과 종교」(중학교), 「삶과 종교」(고등학교)를 펴냈다. 「청소년의 삶과 종교」와 「삶과 종교」는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검인정을 통과했고, 특히 인간이 종교적 존재임을 깨닫고 다종교 사회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찾는 부분에 집중했다. 조 신부는 “「삶과 종교」 설계의 출발은 종교의 영향을 인식하고 종교로부터 지혜를 얻는데 뒀다”며 “종교가 인간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어떻게 서로 다른 종교를 상호 존중해야 하는지, 사회에서 공적 역할을 다하는 종교와 책임 있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치로운 삶은 무엇인지, 종교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종교에 대한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지양하고자 집필진도 청소년들에게 종교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사들로 구성했다. 종교가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조영관 신부는 “가톨릭 교육의 맥락에서 종교교육은 인간이 지닌 영적 본성을 일깨우고 키워주며, 위대한 종교들로부터 영적 지혜를 얻도록 하여 보다 풍요로운 전인적인 인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과목”이라며 “가톨릭 학교뿐 아니라 비가톨릭 학교에서도 「삶과 종교」 교과서를 활용해 종교적 지혜를 가지고 아이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1면

“성소자와 ‘밀접 동반’ 추구…소통 능력 키울 것”

“앞으로는 성소자와 양성자 간의 ‘밀접 동반’으로 변화를 꾀하며 사제 양성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예정입니다.” 서울대교구는 3월 9일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대성당에서 제20대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장 민범식(안토니오) 신부의 취임 미사를 거행했다. 취임 미사에 앞서 열린 인터뷰에서 민 신부는 소감과 계획, 그리고 사제 양성에 대한 신념을 나눴다. 민 신부는 먼저 대신학교장으로서 앞으로의 다짐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교회 내 소통의 중심이자 친교의 건설자인 사제 직무를 수행하려면 스스로가 소통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설명한 민 신부는 “사제에게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입각한 소통 능력 함양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에 나 역시도 사제로서 학생들과 소통을 잘해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해결할 과제에 대해 신학대학과의 이원화의 길을 닦는 것을 꼽았다. “양질의 사제 양성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에게 폭넓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이원화를 이루었다”며 “형식과 체계, 내용적인 면에서 이 부분을 잘 정리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생들에게 ‘자기 성찰’을 가장 중요한 소양으로 주문했다. 민 신부는 “대신학교에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있으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며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떠한 상태인지, 또 하느님 보시기에는 어떤지 등 자기 성찰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대신학교의 양성 분야인 인성·지성·영성·사목 중 인성 양성자가 가장 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네 가지 중 인성이 시기적 우선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기본적으로 인성적인 부분에서의 성숙도가 먼저 전제가 돼야 그다음 다른 양성들이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 신부는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의 취임 미사 중 취임사를 통해 “신학생들을 참으로 사람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양성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며 “부족함이 많지만 다른 신부님들과 마음을 모아 사제 양성을 위해 진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 신부는 2003년 사제품을 받고 방배동과 대치2동 보좌신부로 사목한 뒤 11년간 로마 유학을 하고 돌아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어 교구 출판검열위원회 위원,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위원, 신학생 양성을 위한 TF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22년부터 2025년 2월까지 주교회의 홍보국장으로 일했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21면

“본당사, 공동체와 함께하신 하느님 손길 느낄 수 있어야”

“한 나라의 교회사가 그 지역 교구사들의 집대성이라면, 교구사는 본당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본당사는 교회사의 기초입니다. 본당사는 본당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복음 전파와 신앙 실천의 양상을 밝혀 후대에 전달합니다. 또 그 본당이 속한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강원교회사연구소(이하 연구소) 소장 신정호(모세) 신부는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4주간 매주 목요일 오후 2~4시, 춘천교구 사회복지회관 1층에서 ‘본당사 편찬 교육’을 실시하는 취지를 교회사에서 차지하는 본당사의 중요성에서 찾았다. 춘천교구 본당사 편찬 교육은 2000년 가평 푸른누리수련원에서 ‘제1차 본당사 편찬 관계자 교육’을 시행한 것이 시초다. 2024년 연구소에서 마련한 ‘구술사 강좌’에도 본당사 편찬을 준비하는 신자들이 다수 참석했고, 연구소에 몇몇 본당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방문해 본당사 편찬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신정호 신부는 본당사 편찬 교육이 필요한 본당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올해 ‘본당사 편찬 교육’을 준비하게 됐다. 본당 전통 계승과 발전에 큰 역할 자료 수집과 준비 중요성 강조 주임신부 중심 서술 문제점 지적 평신도 활동도 비중있게 다뤘으면 “바로 본당사를 편찬하지 않는다고 해도 차후에 있을 작업을 위해 미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자료가 부족하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본당사의 내용이 풍성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당사는 신자들에게 긍지와 사명감을 부여해 신자로서 정체성을 갖도록 돕습니다. 본당 공동체와 늘 함께 활동하신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당사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신부는 여러 본당의 본당사 서술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인물 중심의 시대 구분’은 본당사를 충실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당사를 주임신부 재임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해 서술하는 것은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이 방식은 본당의 내적인 발전과 공동체의 성장 과정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본당 사목자가 실시했던 행사나 사목활동 중심으로 기술하다 보면, 공동체보다는 특정 인물 위주로 서술한 위험이 있고, 성직자 중심적인 본당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 신부는 기존에 발간된 다수의 본당사에서는 평신도들의 활동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문제점도 언급했다. “기존의 본당사에서 평신도들의 활동이 잘 조명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활동을 기록한 자료가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술사 자료 등을 통해 평신도들의 활동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커졌습니다. 앞으로 나올 본당사에는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한 봉사자들, 교회 안에서 일했던 종사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비중 있게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신정호 신부는 “역사 전공자가 아님에도 직접 발로 뛰며 열정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본당사 원고를 작성하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며 “교회에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본당사 편찬 작업에 헌신하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21면

“타지에서의 외로움, 신앙 안에서 위로받도록 도울 것”

“수많은 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언어와 문화 차이, 또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2월 7일 자로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대학교사목부 외국인 학생 담당을 맡은 파비아노 레베쟈니(Fabiano Rebeggiani, 한국명 리백진) 신부. “발령 소식에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을 좋아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그는 “새로 시작해야 할 일이라서 걱정도 되지만,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 담당은 교구 대학생사목부가 새롭게 신설한 부서다. 한국 사회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의 수도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사목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파비아노 신부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2014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한국에 왔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낯선 곳에서, 신학 공부까지 해야 하는 힘든 생활을 체험했기에 누구보다도 유학생들의 처지를 공감한다. 1년 반 동안 한국어 교육을 받고, 신자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어를 익혔지만, 신학교 첫 강의 때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을 들려줬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고독했고,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로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형제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파비아노 신부는 그런 과정을 거쳐 2021년 사제품을 받고 주교좌명동본당과 화곡본동본당 등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이제 한국은 아들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환영해 주는 가족같은 곳이다. 소임과 관련해서는 “우선 여러 대학교 현장과 외국어 미사나 공동체가 있는 본당을 방문해 외국인 학생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성사와 말씀을 통해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또 “이 사목을 통해 한국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서로 활발하게 친교를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파비아노 신부는 “특수 사목을 허락해 주신 교구장님과 주교님들, 교구 사제단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사제로서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제게 나눠주신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하느님께 거저 받은 것을 담대히 그리스도를 모르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거저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Duc in altum.’(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파비아노 신부가 사제로서 늘 마음에 품는 좌우명이다.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21면

“농아인들이 느꼈을 소외감, 교회부터 헤아려야”

인천교구의 듣고 말할 수 없는 농아(聾啞)들을 위한 속인(屬人) 본당인 청언본당 봉사자로 15년간 꾸준히 함께하는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 봉사자가 있다. 우향숙(미카엘라) 수어 통역사다. 그는 본당의 전신인 농아선교회부터 봉사를 시작해 2011년 본당 설립 후 지금까지 성당에서 수어 통역 봉사, 미사 후 농인들의 점심식사 준비 등 봉사하고 있다. 우 통역사는 지역 수어통역센터에서 평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긴급 수어 통역 근무를 하면서도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그는 “농아인과 청인 사이 소통에 작은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우 통역사는 중증 뇌 병변과 청각장애를 앓는 한 학생과 그 어머니를 비행기에서 만나면서 수어를 배울 결심을 했다. 때는 1988년, 전국이 올림픽 개최로 들뜬 때였지만 모자는 그렇지 못했다. 학생은 국내 명문대에 합격했으나 농아인을 위한 학업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입학을 취소당해 부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만큼 아픈 건 없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2005년 수어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막상 실전 수어는 배운 수어와 많이 달라 장롱 자격증이 되려나 싶었었다. 그때 우 통역사는 “농아인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신앙생활도 함께할 수 있다”는 동기 통역사의 권유로 교구 농아선교회 일원이 되고, 청언성당이 세워지면서 그곳에서 농아인들과 주일미사를 바치게 됐다. 우 통역사는 “신앙생활까지 농아인들과 밀접하게 함께하면서, 농아인들이 사회에서뿐 아니라 청인 중심의 교회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깊이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천주교는 아직 수어 성경 영상이 없어요. 또 수어로 현장 진행되는 신앙 교육이 없는 건 우리 교구만의 일은 아니죠. 농아인들은 수어를 모어로 하기에 국어가 외국어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수어 없는 드라마는 그림책 보듯 봐야 하고, 관공서도 병원도 선뜻 혼자 못 가는 농아인이 많은데, 심지어 신앙생활에서조차 느껴왔을 그 소외감을 누가 감히 형용할 수 있겠어요.” 사회복지 공부를 마치고 2019년부터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로 활동 중인 우 통역사는 “농아인더러 ‘읽거나 말은 할 수 있죠?’라는 등 이해가 부족한 청인이 아직 많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영어를 배웠어도 못 읽는 문장이 많듯, 농아인들이 글은 읽어도 내용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역지사지로 헤아리길 바란다”면서 “교회에서부터 농아인들에 대한 역지사지의 태도를 조금 더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인은 전국 어디에서든 미사에 참례할 수 있지만, 농아인들은 수어 미사가 봉헌되는 곳을 찾아야만 제대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답니다. 당장 수어 성경 영상까지 나올 수는 없더라도, 일상에서부터 농아인들을 배려하는 문화가 싹튼다면 교회도 더 좋게 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우선 ‘돕다’, ‘아프다’, ‘경찰’, ‘화장실’처럼 위기 상황 및 실생활에 쓰일 수어 몇 가지만 알아둔다면 어떨까요? 저 역시 농아인에 대한 인식개선, 소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테니까요.”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21면

“주님 사랑 거저 받았으니 몸 아끼지 말고 나눠야”

“저부터 하느님께 모두 거저 받았잖아요. 몸을 움직일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 이보다 큰 은총이 어딨겠어요. 그걸 묵상하면 저절로 ‘거저 나누고 실천하도록’ 움직여지는 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일 거예요.” 인천교구 계산동본당 빈첸시오회 회원 박효진(안토니오·64) 씨는 복지 사각지대 이웃을 위해 집수리, 이삿짐 나르기, 장판 도배, 도시락 조리·배달처럼 몸을 특히 많이 움직여야 하는 궂은일을 위주로 30년 넘도록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공장 내부 설비를 본업으로 한 바쁜 삶을 쪼개 긴 세월 끊임없이 봉사한 열정은 무엇일까. 그는 “거저 받은 것을, 가난한 이웃의 얼굴로 계신 그분께 어떻게든 돌려드려야 한다는 의무감뿐”이라며 미소만 지어 보였다. 박 씨는 1984년부터 해온 빈첸시오회 활동 외에도 소외계층을 위한 지역사회 봉사라면 무엇이든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4000시간 이상 펼쳐온 공로로 지난해 12월 인천 계양구로부터 봉사자 상 금상을 받기도 했다. 구청에 봉사 시간 산정을 등록한 건 2010년. 1983년 입교했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걸 고려하면 실제 그동안 펼쳐온 봉사 시간은 4000시간을 웃돌고도 남는다. “동료 교리교사 중에 척추가 휘어진 분이 계셨습니다. 자기 몸조차 편치 않을 텐데도 그분은 온갖 사회봉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어요. 그분이 제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심어놓은 것 같아요. 제 몸을 부딪쳐서라도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살도록요. 그래서 빈첸시오회에도 제가 스스로 찾아가 가입했죠.” 이렇듯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사랑’을 고백하는 박 씨에게 봉사의 원동력이란 그저 더 많은 시간을 기록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이웃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때 가슴에 파고드는, 이유 모를 기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17년간 돌봤던 한 무주택 홀몸노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일찍이 가족에게 버림받고 일생을 버텨온 노인은 중증 척추질환자임에도 주민등록이 말소돼 의료보험을 받을 길이 없어 수술을 못하고 있었다. 박 씨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구청과 동사무소를 뛰어다녀 노인의 주민등록을 회복시키고, 수술비를 모아주고, 거처를 얻어줬다. 또 거동 못 하는 노인을 등에 업고 그의 고향 강원도의 산골짜기를 올라 아버지 묘소까지 동행해 줬다. “감히 스스로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행하는 사랑에서 그분 현존을 가장 와닿게 느끼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합니다. 누군가를 몸 움직여 사랑한 그때부터, 우리는 점점 더 크게 움직여 나누게 되도록 빚어졌다는 것을요.” “오랜 시간 봉사하지 않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도움이 중요하다”는 박 씨. 그는 끝으로 “조금이라도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나눠주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상도 조금 더 살 만 한 곳이 되고, 우리 삶도 덩달아 아름다워지지 않겠느냐”며 소소한 실천부터 함께할 것을 당부했다. “삶은 유한하잖아요. 더 사랑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 모두 최대한 많이 사랑하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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