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익숙함이 주는 위험함

칠레에 있을 때 살았던 본당들은 안전한 동네가 아니었다. 밤낮없이 마리화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고, 뉴스에서 여러 강도 사건으로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그런 동네였다. 길거리는 늘 더러웠고, 어두웠다. 그런데 또 막상 살다보면 그런 동네인지 모르고 살게 된다.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소에 다니기도 했다. 선교를 시작하고 첫 3년은 산티아고의 ‘푸엔테 알토’라는 구역에 살았다. 당시 집에는 경차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살던 집에서 본당이나 공소를 가거나 혹은 집 축복이 있을 때면 대부분 걸어 다녔다. 그럴 때면 공소회장 내외가 늘 잔소리를 한다. 위험한데 왜 걸어 다니냐고 말이다. 자기들도 혼자 걸어다니지 않는데 될 수 있으면 차를 타고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큰 위험을 느끼지 못했고 여전히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살았던 ‘마이포’라는 동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이 복잡했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탈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우버를 잡아탔다. 우버 기사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피해 이민을 온 사람이었고, 이미 20년째 가족들과 함께 칠레에서 살고 있던 우리 아버지뻘 되는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내가 지정한 목적지인 마이포의 본당으로 이동하면서 그분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고속도로를 나와 집에 다다르는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기사분이 참았다는 듯 나에게 묻는다. “총각, 진짜 여기서 살아?”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빨리 이사가는 게 좋을 거야. 여긴 정말 무서운 동네야. 뉴스에 맨날 나오잖아”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잽싸게 줄행랑을 친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공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성당 옆 공터에서 종종 보던 청년들이 그날도 앉아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청년들이 권총을 장전하고 건너편 동네로 몰려가는 모습을 봤다. 익숙함 때문에 현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 보니 위험한 곳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종종 우리가 겪는 일들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매일 생각 없이 죄를 짓고 있고, 또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지금 내가 죄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내가 위험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그렇게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현실을 살펴보고 빨리 변화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익숙함과 편함에 잠식되지 않고, 깨어 살필 수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2024-07-14

[신앙에세이] 다큐 ‘한국인 최양업’ 제작 에피소드(1)

‘최양업 신부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지난 3년 동안 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가장 많이 가졌던 질문이다. 2021년에 오픈한 ‘한국인 김대건’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던 분이라 제작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는 뚜렷한 구성이 떠오르지 않아 수없이 반복하며 생각에 잠기게 됐다. 김대건 신부님의 친구, 한국 두 번째 사제, 길 위의 사제, 땀의 순교자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만년 2인자인 것 같아 약간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인터뷰에 응하실 분들을 섭외하고 형식적인 질문지를 작성하지만 정작 촬영할 때는 자유로운 대화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선 내가 알아야 할 부분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분이 남기신 유일한 자료인 서한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최 신부님의 지나친 겸손, 자기 비하가 화가 날 정도였다. 서한 끝 부분은 한결같이 ‘지극히 비천하고 순종하는 아들 토마스 양업 엎드려 절합니다’, ‘미약하고 쓸모 없으며 부당한 아들’, ‘가장 비천한 종’의 문구들이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서일까. 최 신부님이 겸손하신 건 맞는데 이런 겸손함을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 궁리하다가 그 겸손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200년이 지난 현재 평소 겸손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남편 안드레아에게 같이 다큐를 하자고 제안하며 서한집을 건네줬다. 처음에는 자신 없다고 발뺌하더니 간간이 서한집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드디어 충청도 멍에목성지와 배티성지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곡에서 발을 담근 채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이태종(요한 사도) 신부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며 계속 드는 생각은 내용보다 남편의 얼굴색이었다. 신부님은 훤한 얼굴인데 남편은 평소답지 않게 거무티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난 뒤 물어보니 일주일 전부터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 걱정을 안고 서울로 돌아온 후 받은 모든 검사 결과에 의사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검사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최양업 신부님이 다녀가셨다는 문경 기도굴 촬영이 있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힘든 상황에 높은 산에 올라가야 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불평은커녕 최양업 신부님 생각하면 힘들다고 할 수 없다며 환한 미소와 껄껄대는 웃음으로 주변을 편하게 해줬다. 어떤 상황에서든 불평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으려는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나 또한 다큐를 제작하는 동안 최 신부님의 겸손을 닮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

2024-07-14

[밀알 하나] 귀신의 집

칠레에서 사목할 때에 종종 하는 일은 집 축복이다. 새로 집을 짓거나 수리해서 하는 집 축복은 열에 두세 번이고 대부분은 집에서 귀신이 보인다느니, 나쁜 꿈을 꾸거나, 무서운 것을 본다고 하면서 축복을 청한다. 진짜 헛것이 보이고, 집에서 안 좋은 기운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공소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 자매님이 자기 딸을 데리고 내 앞으로 왔다. 딸이 일도 잘 안 풀리고, 꿈자리도 나쁘고, 귀신을 자주 본다며 안수를 해달라고 한다. 처음 본 가족인데, 알고 보니 이 딸 때문에 모처럼 미사에 참례한 것이었다. 아무튼 안수를 해주고 그 가족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주, 미사가 끝날 무렵에 지난주 안수를 부탁한 자매가 공소에 왔고, 공소회장에게 집 축복을 신청했다. 그 공소에는 담당 종신부제가 있었기에 공소회장은 종신부제에게 집 축복을 부탁했고, 부제는 그 자매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고, 미사 후에 같은 자매가 나타나서는 집 축복을 다시 청한다. 이미 부제가 축복해 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축복을 왜 또 청하는지 의아했다. 공소회장이 난감해 하면서 전하는 말을 듣자니, 부제가 집 축복을 했는데 그 집 딸은 여전히 귀신을 보고 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부제가 신통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신부가 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가고 나서도 귀신이 보이면 주교님한테 갈 거냐?”고 말이다. 공소회장이 웃는다.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공소회장과 함께 그 집에 가봤다. 그리고는 알게 됐다. 왜 귀신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지. 다름이 아니라 그 집이 바로 귀신의 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귀신이 무서워 들어가 살 수 없는 집이었다. 집은 어둑어둑하고 청소도 안 되어 지저분하고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만큼 수많은 물건들이 널브러진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만약 그곳에서 정상적인 삶, 건강한 삶을 산다면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가족과 함께 집과 가정을 축복하는데 계속 분심이 들었다. 집은 어지럽고, 가족 중 누구 하나 기도문을 외울 수 없을 만큼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으면서 귀신을 쫓아달라며 여러 번 찾아오는 자매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건강한 삶의 기본은 자신을 잘 돌보는 일이다. 더러운 곳에 더러운 것이 쌓이기 마련이고,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불의가 자라며, 믿음이 없는 곳에서 악이 머리를 들어 올리게 된다. 그러니 더러운 것을 치우고, 빛을 밝히며,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악마에게 쉽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보인다고 하기 전에, 나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2024-07-07

[신앙에세이]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해마다 6·25전쟁일이 오면 저는 어머니와 함께 교구 민족화해위원에서 주관하는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미사에 참례합니다. 한반도 평화통일기원 미사는 저와 어머니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북향민(북한이탈주민)과 한반도의 평화를 도모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미사이기도 합니다. 하기에 저희는 2019년 6월 25일 임진각에서 봉헌된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미사를 시작으로 해마다 이날이 오면 갈라져 사는 민족의 아픔이 무엇인지, 그 아픔을 달래고자, 우리의 소원을 안고 미사에 임합니다. 지난 6월 25일도 역시 어머니와 함께 수원 정자동주교좌성당을 찾았습니다. 해마다 그러하듯이 역시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오전 10시경, 많은 분들이 평화통일 기원 미사에 참례하려고 성당을 찾았습니다. 백발의 어르신도 있었고, 중년 부부도 있었고, 우리 북향민들도 많이 참례했습니다. 서로 누가 어디 사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 생각과 한 가지 마음으로 주님의 성전을 찾아 우리의 소원을 아뢰고자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74년 전에는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생겼다면, 현시대는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먼저 온 북향민들이 현시대의 이산가족이 됐습니다. 미사 중 주교님의 강론을 들으며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고,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고, 사랑 안에서 살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생활의 잣대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됐습니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온 저희 북향민들은 마음에 본의 아닌 상처들로 멍들어 있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님의 품, 주님의 집, 성당입니다. 저도 미사에 참례하여 마음속 그릇됨을 터놓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의 평온을 찾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성당을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부모, 형제, 친척이 없는 저희 북향민들은 주님의 집 성당을 찾는 것이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하기에 주님을 믿어 주님 안에서 힘들고, 아팠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시작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손을 놓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저희의 간절한 소원인 평화통일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주님께 매일매일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글 _ 허영희 알레나(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봉사자)

2024-07-07

[밀알 하나] 키를 매일 재면 안 자란다

어릴 때, 키가 얼른 크고 싶었다. 반에서 아주 작은 편도 아니었는데, 저만치 뒷자리에 앉은 친구를 보면 정말 부럽기도 했었다. 듬직해 보이고 심지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키가 얼른 자라고 싶은 마음에 무엇을 먹어야 키가 빨리 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 여 여사는 콩나물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콩나물이 쑥쑥 자라니 키가 크는데 좋지 않겠냐며 말이다. 그러나 콩나물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봤지만 결국 고만고만한 키가 되었다. 암튼 그런 키가 크고 싶은 어린 시절에 대부분 집에는 벽마다 아이들 키를 표시해 놓은 눈금들이 하나씩 있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있었다. 자그마치 3명의 사내아이의 키가 표시돼 있었다. 조급해서 그런지 정말 수시로 키를 재보고 표시하고 안달이 났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여 여사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렇게 맨날 재고 있으면 자랄 것도 안 자라”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조바심이 사라지고 한참 뒤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라지만. 하루에 자라봐야 얼마나 자라겠는가? 어제와 달리 하룻밤 사이에 몇 센티미터가 쑥 자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매일매일 키를 재는 것은 조바심과 불평만 지닌 채 살아가게 할 뿐이다. 결국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과 신앙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조바심을 낸다고 당장 큰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키를 매일 키를 재고 있는 아이처럼 그렇게 삶을 재고 또 재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을 올리려면 벼락치기가 아니라 꾸준히 공부해야 하고, 기술을 습득하려면 여러 번의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또한 신앙을 단단하게 만들려면 꾸준히 기도하고 성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순교자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채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루에 잘 불린 노란 콩을 넣고 검고 두툼한 천으로 덮어둔다. 그리고 하루 몇 차례 물을 줄 때를 빼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 빛을 받으면 콩나물이 아니라 푸른 쑥대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물을 주는 어느 날 천을 열어보면 하얀 줄기가 내려있고, 어느새 쑤욱 자라있는 콩나물을 보면서 감탄한다. “그새 이렇게 자랐네”하면서 말이다. 한 일이라고는 매일 꾸준히 물을 주는 일이 다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물을 주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적과 같이 말이다. 단단한 콩이 부드럽고 싱싱한 콩나물로 환골탈태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신앙도 우리 삶도 그렇게 꾸준히 해야 한다. 들춰보고 재고 비교하고 할수록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먼저 지쳐 쓰러진다. 다만 묵묵히 오늘도 내일도 나의 삶에, 나의 신앙에 물을 주듯 하루를 살아내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있는 자신을 보게 되고, 또 보다 성숙해 있는 자신의 믿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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