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당연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들

우리 교구 사회복음화국에는 본당 외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위원회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목하는 장애인사목위원회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체, 농아, 시각, 발달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회원과 봉사자들이 모여 매주 미사를 봉헌하고 각종 교육과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데요. 특별히 요즘처럼 좋은 계절에는 주일마다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나는 일정이 많아서 매주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가진 신자분들과 함께 한지 만으로 2년이 다 돼갑니다만, 아직도 이분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작년 가을, 지체 선교회에서 한 성지로 순례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전에 제가 많이 갔던 곳이라서 나름 자신만만했지만, 행사를 준비하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됐습니다. 휠체어로 접근 불가능한 곳은 없는지, 장애인 화장실은 잘 갖춰져 있는지 등. 우리 회원들을 위해 확인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데 막상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직접 답사를 다녀오면서, 우리 회원들의 불편함을 아주 조금은 공감하게 됐습니다. 농아 선교회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드릴 때에도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성사 보실 내용을 글자로 적어 오시면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농아인들이 사용하는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는 문법도, 관용적 표현도 완전히 다른 언어입니다. 예컨대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고 해서, 한국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한국인의 언어이지만 또한 완전히 다른 두 언어 사이의 괴리감은 소수의 입장에서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시각 선교회 회원들이 미사 중 성가를 부를 때는 가사를 먼저 알려드리고, 여행지에 가면 손을 맞잡은 봉사자들이 그곳의 풍경을 설명해 드립니다. 처음 위원회에 왔을 때 놀랐던 점은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분들이 바로 우리 시각 선교회 회원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큰 제약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감각들을 통해서,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이 나누는 마음을 통해서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달 선교회 미사를 봉헌할 때에는 가끔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탓에 정신 줄을 잡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정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거나 성당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마다 봉사자들과 부모님들은 늘 노심초사 걱정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만큼은 불안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들 나름의 방식대로 순수하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당연한 듯 누리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익숙한 나의 길을 잠시 멈추고 걸음 느린 이들과 보폭을 맞추며 공감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 됨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10-27

[신앙에세이] 동티모르 선교 방문기(4)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야고 2,22) 선교지에 가기 전까지는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함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동행하지 않고, 평신도들로만 가는 여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요. ‘다름은 풍요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서로 분분하던 의견들도 결국에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야훼 이레’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일치되어 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처음, 동티모르에 방문하기로 마음에서 결심하고, 함께할 동료들을 모으고, 어떻게 방문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과정은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결정들이 모아져서 선교지 방문과 봉사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이지요.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 중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구어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이릅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과 결별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생명에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렵다고 모두 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 모두 축복은 아닙니다”라고 들려줍니다. 김민조 하상 바오로 신부님은 “동티모르에서 선교 활동이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희생 덕분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전해줬다. 선교 체험이 발판이 되어 일회성이 아닌 사랑의 나눔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에 나오는 서태순 아우구스티노 순교자는 교회의 가르침인 자선과 애긍을 몸소 실천해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신 분입니다. 그동안 애덕 실천과 교회의 가르침을 머리로 외우고 입으로만 되뇌고 있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믿음, 선행, 추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선행과 믿음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선교는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가는 길입니다. 저희가 동티모르에 선교 봉사 갔을 때도 많은 직암회 회원들과 지인들이 기도와 물질적 후원으로 응원해 줬습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됐습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함께 떠난 선교의 여정에 처음에는 불안이 가득했지만 참된 행복을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이 됐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많은 분들께서 기도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_정옥금 클라라(직암선교후원회 봉사자)

2024-10-27

[신앙에세이] 동티모르 선교 방문기(3)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시편 34,9 참조) 오전 내내 회원들이 준비한 음식을 접시 가득 담아 맛있게 먹는 일꾼들의 표정만으로 피로가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많이들 먹는지…. 점심 한 끼의 식사가 하루의 식사량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하루 종일 노동해서 받는 급료는 겨우 5달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정에 따라 파트릴라우 공소로 갔습니다. 교우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어려운 가정에 쌀 50포대와 라면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보통 한 가정에 10명이 사는데 한 달에 25kg 쌀 3포대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공소의 한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한집에 10명이 사는 그 집은 마치 이런 표현이 죄송하지만, 닭장이나 돼지우리 같은 집이었습니다. 펴놓은 이부자리 위로 닭이 걸어 다니며 똥을 싸놓고, 지저분한 커튼이 들어가는 문 역할을 했으며, 웬일인지 1/3 정도는 바깥과 통하게 뚫려 있었습니다. 밤에는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는데 그 추위를 어떻게 감당해 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 중에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고름이 나는 코밑이랑 발등의 상처로 울고 있었습니다. 김민조(하상 바오로) 신부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지고 있는 상비약으로 치료를 하며, 동티모르의 오랜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신부님도 면역력이 약해져 피부병이 심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빌로코 데레사 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중학교 학생들과 신자들의 환대와 환영식은 대단했습니다. ‘영대’ 같이 생긴 타이를 걸어 주며 환영하는 인사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마음에 감동으로 와닿았습니다. 학생들과 신자들과 함께한 미사는 대축일급 미사였습니다. 미사 중에는 성대한 자매결연식도 있었습니다. 김민조 신부님은 강론에서 “올봄 무너진 학교 담장을 복구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신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과 직암선교후원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들의 배려와 사랑과 나눔의 정신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공소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돼줬으며, 단순한 물질적 표현이 아닌 진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나눔과 기도, 여러분들이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어 하느님 사랑 안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 속에서 이어나가자”고 하셨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중학교 학생 100명과 공소 신자 50명에게 쌀과 라면과 학용품과 과자와 볼펜이 들어 있는 꾸러미를 선물했습니다. 좀 더 자주 나눔의 기회를 마련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에서 선한 영향력이 전해졌는지, 신자 한 분이 옹달샘이 있는 중학교 인근의 땅을 봉헌하겠다고 약속하자, 김 신부님은 바로 현장의 땅을 보고 왔노라고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글 _ 정옥금 클라라(직암선교후원회 봉사자)

2024-10-20

[밀알 하나] “나야, 하느님!”

“신부님도 그 방송 보셨어요?”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네, 저도 즐겨 보고 있어요”라는 대답에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아마 신부라면 당연히 가톨릭 방송만 보리라 단단히 오해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요즘 트렌드를 알아야 세상도 알고 대화 주제도 생기는 까닭에 유행하는 것들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지만, 사실 재미있는 방송을 보는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재미있으니까요! 며칠 전,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미 유명한 요리사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 요리사들을 ‘백수저’와 ‘흑수저’로 나누어 요리 경연을 펼치는 내용이었습니다. 요리와 경연이라는 익숙한 주제로 무슨 특별한 것이 또 나올 수 있겠나 싶었지만, 결과는 영혼까지 갈아 넣은 창작자들의 수고를 배신하지 않은 듯합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OTT TV 시리즈 부문에서 비영어권 1위를 기록하는 등 각종 화제성 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요즘 방송답게 자극적인 매운맛의 요소들도 적지 않았지만, 배울 점 또한 많았습니다. 수십 년 경력의 셰프들이 후배들과 자기 발전을 위해 참가자로 나선 것을 보며 역시 사부다운 그들의 관대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자기 요리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잔반통까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모든 일은 성찰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요리사들이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가 담긴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요리사들 각자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그들 요리의 깊이는 결국 그때는 피하고 싶었을 삶의 굴곡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공통점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경연 프로그램답게 등수는 정해졌으나 시청자들의 시선은 더 이상 순위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방송을 보는 각자의 취향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같이 훌륭한 인생 요리임은 분명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우리 인생도 요리 대회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자 다른 삶의 부재료들이 주어졌지만, 심사위원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신앙’이라는 주재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평가 요소는 바로 신앙의 맛을 살리는 것입니다. 들기름 요리를 했던 한 프로그램 참가자의 명언처럼, 중간 평가를 해줄 우리 이웃들이 내 인생 요리를 맛보며 이런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 좋겠습니다. “나야, 하느님!” 글 _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10-20

[신앙에세이] 동티모르 선교 방문기(2)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 4,43) 출발하기 전 여러 차례의 사전 준비 모임을 하며 처음 만나는 회원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불편이나 갈등은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숙하게 될 것이니 희망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지도 신부님의 응원과, 매일 묵주기도와 일상 기도를 바치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습니다. 짧은 여정이긴 해도 단순한 방문이 아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뜻을 동티모르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김민조(하상 바오로) 신부님께 알렸더니, 어려운 공소 신자 100명에게 25kg의 쌀을 제공하고, 폭우로 무너진 고등학교 축대를 쌓고 있는 인부 90명에게 한국 음식 한 끼를 해주고, 빌로코 데레사 중학생 100명에게 학용품을 선물해 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딜리까지는 직항이 없는 관계로 7~8시간 비행해서 발리에서 하루 묵은 다음, 다음날 3시간 비행해서, 드디어 8월 21일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탄생일이자, 성 비오 10세 교황 축일에 딜리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높은 상공에서 창밖을 보며,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이래 수많은 시간이 흘러 현재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온갖 죄로 하느님과 멀어져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상념에 빠져 있는데 어느새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합니다. 동티모르의 수도인 딜리는 신호등도 없는 우리나라의 작은 읍내 모습이었습니다. 산은 나무가 거의 없어 바닥이 빨갛게 드러난 풍경은 꼭 북한의 모습인 듯 보였습니다. 땔감이 없어 나무를 베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중 나온 신부님들은 동티모르의 관습대로 영대 같은 어깨띠 ‘타이스’(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 등재)를 걸어 주시며 한 사람 한 사람 환영해 주심에 몸 둘 바를 몰랐지요. 딜리 시내로부터 20km 떨어진 1300m 고도의 산 위의 마을 리퀴도이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는 너무도 험난했습니다.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몇 번이나 부딪치며 2시간여 만에 리퀴도이 성당을 지나 우리가 머물 여학생 기숙사에 도착하였습니다. 맑은 밤하늘에 둥근 달님과 총총히 빛을 내고 있는 별님들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학생들의 노랫소리가 우릴 반겨줬습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우리는 다음날 학교 축대 복구공사를 하는 일꾼들에게 대접할 90인분의 식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메뉴는 돼지고기볶음과 닭찜, 소시지, 떡볶이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잘 손질된 재료들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기숙사 주방은 한쪽에서 물을 쓰면 다른 한쪽에서는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밤늦도록 식사 준비를 마친 후 저희를 이곳으로 이끄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꿀잠을 잤습니다. 글 _ 정옥금 클라라(직암선교후원회 봉사자)

2024-10-13

[밀알 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알려주는 ‘마귀 퇴치법’

프란치스코 교황이 쓴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짚어보고 싶다. 성경에서 악마는 호시탐탐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닌다.”(1베드 5,8)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곧 악과의 투쟁이다. 바오로 사도도 말하듯 “우리의 전투상대는 악령들”(에페 6,12)이다. 교황은 ‘천사가 보호하면 악마는 파괴한다’고 잘 표현했다. 또한 교황은 그리스도인 삶의 ‘3가지 원수’(마귀, 세상, 육신) 교리를 지적하면서, 특별히 마귀에 대한 대처방법이자 퇴치법을 제시했다. 첫째, 21세기에도 악마는 존재하며, 그 접근 방식을 알아야 한다. 악마를 퇴치하려면 먼저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악마는 온갖 사악한 것만을 흩뿌린다. 가령 ‘폭력, 불화, 절망, 게으름, 험담, 거짓말, 교만, 미움 등’을 심으려고 애를 쓴다. 사실 하느님은 좋은 것만을 창조하셨고, 악한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다만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셨는데, 거기에서 ‘타락한 천사’(루치펠)가 나타났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를 “처음부터 살인자이고 … 거짓말쟁이”(8,44)라고 했다. 악마의 무기이자 특징은 한 마디로 ‘폭력’과 ‘유혹’이다. 교황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사탄을 파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둘째, 악마의 존재에 대해 “믿는 이는 너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루카 12,7) 주님을 향한 굳센 믿음만 세워놓으면 된다. 예수님 친히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루카 10,18-19)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악마의 존재를 허락하셨을까? 한 마디로 하느님은 선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지만, 때론 악을 통해서도 구원사업을 하신다.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에서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고 하셨다. 심판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며, 우리는 다만 선악을 잘 ‘분별’해 살아가라는 것이다. 셋째, 미신 등 우상숭배에 빠질 때 악마의 유혹에 걸려들기 쉽다. 주술이나 점술 등을 접하는 것은 악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좌절감에 빠지거나 믿음에 회의가 들 때 혹은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것이 악마가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넷째, 마귀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빛의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은 악령과 싸우면서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구마기도는 ‘성호경’과 ‘주모송’이다. 비록 짧은 기도이지만 하느님을 부르는 기도여서 효과적이라고 하겠다. 수시로 기도하자,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제1대리구 구성본당 주임)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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