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주교회의서 기자회견…"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함께 잘 사는 한국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휴가차 한국을 찾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7월 3일 주교회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황 선종과 콘클라베, 새 교황 즉위 등 중대한 교회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분주한 나날을 보낸 유 추기경은 이날 잠시 숨을 고르며, 레오 14세 교황과의 일화를 비롯해 교황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개인적인 소회와 근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전했다.
Q.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현재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돼 올해로 4년째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부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모든 사제와 부제를 관할하며, 사제 양성을 위한 교육과 예비신학생들의 준비 과정 역시 성직자부의 책임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직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장관 임명 당시, 한 주교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신부 하나라도 기쁘지 못한 모습으로 있다면 그것은 네 책임이라는 걸 명심해라.” 그 말씀이 마음 깊이 남아, 그때부터 ‘세상 어떤 신부님도 슬픈 모습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품게 됐습니다.
지난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로마에서는 전 세계 신학생과 사제, 주교님들이 함께하는 희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행복한 신부들’이었습니다.
사제가 행복할 때 많은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고, 젊은이들도 그 모습에 매력을 느껴 사제성소가 늘어날 것입니다. 성직자부 장관으로서의 제 직무도 행복하게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저를 ‘웃는 추기경’이라 부르셨습니다. 교황청 안에서 저는 아주 잘 웃는 사람이고 모든 이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Q. 가까이에서 본 레오 14세 교황은 어떤 분인가?
교황님은 저보다 1년 뒤에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부임했습니다. 주교 직무와 사제 직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공식 회의 외에도 자주 가까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추기경이었을 때 교황님은 3층, 저는 바로 위 4층에 살았습니다. 제 방 바로 아래가 교황님 방이라 승강기에서도 자주 만났습니다. 제가 윗방에 사니까 “층간소음 괜찮냐”고 물으니 교황님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한국 사람은 방에 들어가면 구두를 벗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농담을 건넨 기억이 납니다.
콘클라베 후 많은 이가 ‘어떻게 미국 사람이 교황이 되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한 추기경님들은 교황님을 단순히 ‘미국인’으로 보지 않고, ‘선교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교황님이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그 삶을 높이 평가해 교황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진취적인 면이 강했다면, 레오 교황님은 조용하고 특별히 잘 경청하는 분입니다. 무언가를 앞서 주도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되도록 많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교황님과 독대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마주 앉아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 싶으면 직접 메모까지 하며 기억하려 합니다. 무척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진심 어린 만남입니다.
Q. 한국·한국교회와 관련해 교황과 나눈 대화가 있다면?
휴가 전, 교황님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2027년 열릴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기까지의 과정과, 그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나눴던 대화를 전했습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이고, 그런 만큼 평화가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신앙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 순교 정신을 세계 젊은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WYD는 가톨릭교회 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가 모이는 큰 행사이기 때문에, 한국이 그 무대를 맡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 들으셨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과 대통령에 취임한 후 두 차례 교황님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제가 직접 교황님께 전달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한국과 교황청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고, 교황님은 우리나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가 현 상황을 이야기하자 교황님은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사실 레오 14세 교황님이 선출됐을 당시, 제 마음속에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분이라면 남북관계에 있어 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 하는 직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앞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 증진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Q. 국민 통합과 갈등 치유를 위해 필요한 자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레오 14세 교황님도 말씀하셨듯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마음이 닫혀 있고, 관계에 있어 경직된 태도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로마에서 지내다 보면 많은 한국 분을 만납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하면 어떤 분들은 이상한 사람을 보듯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추기경님이세요’라고 소개하면 얼굴이 180도 바뀝니다. 그럴때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추기경, 주교, 신부니까 잘 대해야 하고, 아니면 아무렇게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 정신이 아닙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조금만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며,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성경 말씀 중 하나가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입니다. 내가 먼저 거룩해질 때, 다른 사람에게도 거룩해지게 하는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우선 자신부터 거룩해져서 가능하면 모범을 보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가톨릭신자가 600만 명 가까이 됩니다.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을 믿고 이웃을 신뢰하면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정치인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대화로 마음을 잇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진심으로 애써 준다면,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책임 있는 분들이 지혜를 모아 우리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Q. 특별히 마음에 두고 기도하는 지향이 있다면?
가장 먼저는 교황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제가 가까이에서 교황님을 모시는 만큼, 교황님이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교회뿐 아니라 온 인류를 이끌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12월 7일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에 모인 자리에서 정말 많은 분이 제게 ‘한국은 괜찮은가?’라고 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어떻게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냐’며 ‘한국이 (이 위기를) 잘 벗어나길 나도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새 대통령이 선출됐고, 이제 저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위기를 이겨 낸 나라’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부끄러움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잠재력도 있고,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저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함께 잘 사는 나라, 그런 한국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