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은 철조망. 이미 80년 넘게 남과 북을 가로막은 채 서 있는 분단과 갈등의 상징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조직위원회가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과 함께 마련한 ‘철조망 십자가 프로젝트’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상징인 철조망을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변화시키는 뜻깊은 작업이다.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평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오늘날의 현실이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더욱 눈길을 끈다. 내년 4월 4일까지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마당에서 주일마다 참가자들은 철조망을 망치로 두드려 펴며 대형 십자가를 완성할 철사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사야 예언자가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 2,4)고 외치며 전해준 영원한 평화에 대한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프로젝트 개막식에서 정순택 대주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사형 도구인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희생과 사랑의 상징이 된 것처럼 휴전선의 낡은 철조망 또한 평화의 십자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역설을 우리도 실천하는 셈이다. 많은 이의 참여로 완성될 대형 십자가는 전 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2027 서울 WYD에 세워질 예정이기에,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그저 눈길 끄는 행사 중의 하나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모두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선행돼야 한다. 대립 대신 대화, 분열 대신 일치를 염원하는 우리의 노력과 기도로 철조망의 역설을 이 땅 위에 이뤄 나가길 기대한다.
모든 생명의 존엄을 외치는 생명대행진이 열렸다. 서울 보신각 일원에서 ‘생명, 그 빛나는 이름 - 꺾이지 않는 생명의 빛, 모든 생명은 금메달입니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의 일환으로, 생명 존중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이날은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을 맞은 날로,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건강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인간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의 작은 실천들이 필요하다.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는 이날 “법과 제도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수준에서 대화하고 생명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 존중을 위한 노력은 법과 제도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 모든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부모는 자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모두가 함께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 존중을 위한 노력은 각자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참여해야 한다. 생명은 단지 법적인 보호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개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생명 존중을 위한 우리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생명이 타고난 그대로 빛나는 존재임을 깨닫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지속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용인 고초골 근처 학일리에서 양봉하는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수녀님들이 1500만 국민들이 관람했다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여 달라고 성화를 해서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를 관람했다. 16살 나이에 숙부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온 단종, 그리고 마을 호장 엄흥도와 주민들 사이 인간미 넘치는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엄흥도가 단종의 주검을 수습해 선산에 묻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슬픈 영화였다. 팝콘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훔쳐내는 수녀님들과는 달리, 고초골 촌장인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종으로부터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엄흥도와 비슷한 인생을 살다 떠난 신앙의 선조 ‘이민식 빈첸시오’가 떠올랐다. 고초골 근처 먹뱅이에 살던 17살 청년 이민식은 한국교회 첫 사제로 서품을 받고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도와 은이성지를 중심으로 근처 공소인 싸리틔, 미리내, 어농, 고초골, 용바위, 시어골, 한터를 안내하고 미사 때는 복사를 섰던 김 신부님의 말동무였다. 5개월 동안 공소를 안내하고 미사 봉헌을 도왔던 이민식은 경비가 삼엄한 육로 대신 바닷길을 열기 위해 연평도 근처 순위도로 갔다가 관헌들에게 붙잡혀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당하고 모래사장에 암매장되었다는 김대건 신부님의 소식을 전해 듣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군가는 김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새남터로 발길을 재촉하여 올라간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 달이 넘은 신부님을 모셔 오기 위해 지게에 이불을 둘둘 말아 올리고 머리를 감쌀 큰 보자기를 준비하여 새남터에 도착하니 아직도 관헌들이 지키고 있었다. 며칠을 조심히 살피다 관헌들에게 술을 사다 주고 곯아떨어지게 한 이민식은 모래사장을 맨손으로 파고는 썩어가는 신부님의 시신을 모시고 밤으로, 밤으로 남태령을 넘고 하우고개를 넘어 지금의 신덕(은이) 고개와 망덕(해실이) 고개를 지나 애덕(오두재) 고개 앞에 이르게 된다. 신자들과 함께 조용히 장례를 치른 이민식은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미리내에 신부님을 모셨다. 그는 김 신부님을 따라 사제의 꿈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곁에 묻어 달라는 페레올 주교님과 김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김 신부님 곁에 모시고 92살까지 묘지를 지킨다. 훗날 미리내가 성역화되면서 이민식의 후손들은 선산을 교회에 기증했고, 이민식도 신부님 곁에 묻히게 됐다. 단종의 장례를 치르고 장능에 모신 충의공 엄흥도는 ‘왕과 사는 남자’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영월은 관광지로 주목받게 됐지만, 아직도 김대건 신부의 남자인 이민식은 신자들에게 잊힌 존재로 미리내 김 신부님 옆에 말없이 묻혀 있다. 먼 옛날이야기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 교회에서는 이민식에게 아무런 공적 치하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 신부님의 유해를 받들어 모신 빈첸시오와 그 후손들에게 마땅히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공로를 치하하는 교회 훈장이라도 추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 전 원삼본당 주임 겸 고초골 피정의 집 원장으로 발령받아 고초골에 왔다. 이때 만난 이민식의 6대손 이선행 요아킴 회장님은 병자 영성체를 하시며 입에 침이 마르게 이민식의 이야기를 전해주셨고, 그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초상화를 보여 주며 대단한 자부심으로 살고 계셨다. 지난해 고초골 마지막 공소회장을 지내셨던 이선행님이 선종하셨고, 지금은 요아킴 회장님의 막내아들이자 이민식의 7대손인 바오로가 피정의 집 관리장으로 고초골을 지키고 있다. 단종의 남자가 엄흥도라면 김대건 신부님과 살았던 남자는 이민식 빈첸시오인 것이다. 글 _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수원교구 용인 원삼본당 주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개신교 강경 우파는 국내 극우의 대명사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계기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경 우파가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을 계기로 단순히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집단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 다음에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월 11일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센터에서 열린 ‘평화의 눈으로 진단하는 한국의 극우화’ 포럼에서 개신교 일부 신자들이 특히 극우 대열에 집단으로 합류하게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대형 개신교회 구성원이 중산층화되면서, 경쟁에서 밀린 중하위 계층 중 일부가 개신교 주류를 떠나 이단으로 넘어가거나 극우화됐다는 견해였다. 소외된 계층의 종교 이탈이라는 설명은 천주교에서 일어나는 구성원 변화와 유사했다. 신자의 중산층화는 천주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중산층화에 대한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공동체를 떠난 이들은 결국 다른 어떤 무언가를 대체재로 삼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천주교든 개신교든 자존감이 낮아지고 패배감을 맛본 이들에게 종교마저도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교회의 중산층화 현상은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다. 현상 자체만 놓고 보면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사례에서 보듯, 종교의 관심 부족으로 밀려난 이들이 이단이나 극우단체와 같은 집단으로 넘어간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같이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비를 좋아해요. 맑은 햇살도 좋아하지만, 비가 내리면, 특히 늦은 밤에 빗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콩콩 뛰어 잠이 들지 못한답니다. 오늘, 봄비가 촉촉이 내린 한낮, 일을 마치고 기분 좋게 걷고 있었어요. 이 비 그치면 세상이 얼마나 더 파릇파릇해질지 생각하면서요. 사람들이 광장에서, 꽃나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네요. 지금 이 순간은 전쟁 걱정도, 취업 걱정도, 사무실에 들어가 처리해야 할 서류 걱정도, 아픈 가족 걱정도 다 잊은 표정이에요. 친구와 차를 마시고 나오니 바람결이 좀 거칠어지네요. 빗방울도 굵어지고 순한 봄비가 여름 폭풍처럼 사나워지네요. 느긋하게 걷던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빨리하네요. ‘이러다 저 꽃들 다 지겠다’ 싶어서 그만 마음이 아슬해졌어요. 젖은 보도 위로 꽃잎들이 이미 점점이 떨어지고요. 아깝다, 안타깝다, 어쩌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꽃들은 이미 제 몫을 충분히 했구나. 온전히 이 순간에 존재한 것으로, 이 세상을 환하게 밝힌 이 며칠의 빛으로 충분했구나. 벚꽃은 벚꽃대로, 목련은 목련대로, 피어나 지는 생명의 순리를 이리도 아름답게 보여주었으니. 온전히 이 순간을 사는 일. 상실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첫 마음을 다 보여주고 떠나는 꽃무덤을 보며, 더 이상 슬프지 않았던 오후. 지난 일을 놓지 못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없이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 피어 있음의 의미를 알게 한 꽃나무.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쌓아두고 쟁여두는 걱정도 말라고, 마음이 바빠 마주하는 사람과의 대화에도 집중하지 못했던 어제를 반성하며 돌아오는데, 멀리서 친구가 사진을 보내줍니다. “이 비에도 꽃나무에 꽃잎이 그대로야. 의연하지? 연약한 꽃잎이 강한 비바람을 이기는 것 같아. 기운 내.” 마음이 괜히 서성이고 불안한 날에는 작고 연약한 것들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이 세계가 너무 위태롭게 느껴질 때는 부드러운 것들에 마음을 내어줍니다. 아이의 웃음, 투명한 햇살 한 자락, 고요한 순간에 들리는 가느다란 새소리, 보드라운 연둣빛, 빗방울 소리, 어느 날 받은 카드 한 장. 온전히 이 순간을 사는 일은 떠들썩한 소란 대신 고요에 기대는 일. 복잡한 계산 대신 단순함을 믿는 일. 고단한 하루를 화로 풀지 말고 감사로 여미는 일. 이 순간의 충일함에 기대어 한 걸음 걷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어느새 가까워집니다. 희망이 곧 믿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믿어요. 힘을 좋아하고 협박과 억압을 즐겨 하는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작고 연약한 것들을 보듬는 생명과 평화의 기도에 곧 지게 될 것이라고요. 늘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이 오늘 봄비 속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아잔 소리 울리면 Jordan, 2008. 중동의 광야에는 날카로운 분쟁의 폭음과 고요하고 신성한 음률音律이 함께 흐른다. 그래도, 올리브나무 새싹은 다시 피어나고 갓 태어난 어린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연인들이 수줍은 떨림으로 입맞춤을 하고 석양의 아잔 소리가 길게 울리면, 삶은 그대로 살람Salam, 평화이다. - 박노해 사진 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 수록작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즐거움도, 기쁨도, 누군가의 호의도, 심지어 하느님의 손길도 보이지 않는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절망에 빠져 그런가 싶다. 절망으로 얼룩진 창을 희망으로 닦아 내자. 그때 우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것이다. 글·그림 _ 조재형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궁리본당 주임)
팔현습지는 금호강이 길러내는 안심습지, 달성습지와 함께 대구의 3대 습지 중 하나이다. 대구 수성구 고모동과 동구 방촌동 일대 금호강 변에 발달한 하천 습지인데, 3km 구간 안에 하식애(강이 깎은 절벽)를 포함한 산지, 초지, 습지, 강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생태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멸종위기 2급인 수리부엉이와 수달, 삵, 담비, 얼룩새코미꾸리 등 25종이 넘는 법정보호종 야생동물과 식물, 곤충 등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집이 되었다. 2025년 3월 한일 어류 연구자들도 팔현습지를 탐방하고, 도심을 관통하는 이런 습지는 매우 드문 귀한 생태적 공간이라 칭송했다. 지난해 초 우연히 기사를 통해 알게 된 팔현습지를 초여름에 찾아가 보았다. 마침 이곳이 본가와 지척이었는데 등잔 밑이 참 오래도 어두웠었다. 강촌 햇살교를 건너니 왼편에는 안타깝게도 수성 파크골프장이 습지의 절반을 이미 점령하고 있었다. 수많은 습지 생명이 강제 철거당했을 시절이 겹쳐 보였다. 오른편으로 들어서니 과연 기사에서 보았던 팔현습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왕버들이 태곳적 기운을 뿜으며 강변에 무리 지어 있었고, 하식애는 갑옷 입은 장군처럼 서 있었다. 그 사이엔 꽤 넓은 초지도 펼쳐져 있었다. 순간 거룩함이 느껴져 모세처럼 신발을 벗어야 할 것만 같았다.(탈출 3,5 참조) ‘저 절벽이 2월에 새끼 세 마리를 낳은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와 ’현이‘가 사는 집이라고 했는데…’ 하고 눈을 드니 실제로 수리부엉이 2마리가 절벽 중턱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첫 방문에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은 것 같았다. ‘도시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잘 보존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어났다. 팔현습지의 귀함을 일찍이 알아본 사람들의 호소도 간절한 기도처럼 안내판마다 적혀있었다. ‘낮에는 수리부엉이가 쉬는 시간이니 소음을 내지 않도록 할 것’, ‘10~11월엔 남생이의 짝짓기 기간이니 물가에 접근하지 말 것’ 등이다. 그런데 이곳에 304억 원을 들여 사람을 위한 1.5km 길이의 산책로와 길이 886m, 높이 8m 규모의 보도교를 설치하려는 계획이 있어 3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보도교가 수리부엉이 집 바로 앞으로 나게 된다는 것이다. “Oh, No!” 사실 팔현습지에는 이미 자연스럽고 다소곳한 산책로가 나 있다. 건너편 강변에도 인간을 위한 산책로가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길, 맨발 걷기 길까지. 굳이 수리부엉이 집 앞에 배를 가르듯 보도교를 세운다면 인간의 무례와 욕심이 너무 크지 않은가! 선물 같은 팔현습지를 자연 그대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3장에서 생태위기의 원인으로 강력한 기술 지배 패러다임과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를 깊이 성찰하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도 2025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성경이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횡포”(「찬미받으소서」 200항)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사실 창세기만이 아니라 과학이 밝힌 지구 역사에서도 인간은 모든 창조세계에서 맨 마지막에 태어난 가장 어린 피조물이다. 먼저 창조된 선배 피조물들이 없다면 인간은 하루도 살 수 없다. 하느님은 새 한 마리, 나무 하나, 물고기를 위해서도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모두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래서 생태 사상의 선구자인 토마스 베리도 저서들에서 ‘우주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친교’라 하였다. 하느님과 창조된 모든 것, 인간이 함께 사는 공동의 집 푸른 지구에서 언제까지 인간만이 주인공일 것인가? 글 _ 문점숙 마리루치아 수녀(노틀담 수녀회,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어느 날 찬양 사도 후배가 제주도에 왔다. 부활을 맞이하여 제주교구 본당의 초대를 받아 공연차 미리 내려왔는데, 이를 어쩌나! 날씨 관계로 배가 뜨지 않아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엔 항공료가 비싸 평일에 내려왔는데, 교통비만 날리게 됐다. 성당은 공연을 취소하는 게 크게 상관없겠지만, 찬양 사도들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손해가 크다. 그날 저녁, 위로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나름 억울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됐다. 신인 때 일이다. 작은 시골 본당에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 행사 예산이 적으니 식사비 정도만 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승낙하고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이나 먹고 올라가라 하셔서 뒤풀이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뒤풀이로 소고기 파티가 열렸다. 행사 예산은 적다고 했는데 식사비가 행사 비용보다 더 나올 만큼 성대하게(?)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식사비 일부를 출연료로 주시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올라온 적이 있었다. 수녀원에서 연락이 왔다. 행사가 있는데 출연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녀원과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구 사항이 참 많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녀원 행사는 늘 난감했다. 한사람 정도의 출연료로 두세 사람이 함께 출연하기를 원하시거나, 음향 설비를 대여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산이 책정된 것 이외는 사용할 수 없으니, 올해는 이대로 해주시고 내년에는 더 올려서 진행하겠다”고 하신다. 이런 사정을 함께 섭외된 찬양 사도에게 설명하고, 다 같이 기쁘게 행사에 임했다. 마무리하면서 내년에 뵙자고 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참 선하시다. 그런데 1년 뒤 같은 수녀회에서 행사 의뢰로 전화가 온다. “작년과 같은 금액으로 부탁드린다”며 “담당자가 바뀌어서 작년 금액으로 인수인계를 받았으니 그대로 해달라”고 하신다. 참 난감했다.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더욱 그랬다. 행사는커녕 미사도 취소되는 상황 속에 찬양 사도들은 직업이 하나 추가되었다. 무직. 당시 본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활동했지만 유급은 아니었고, 피정이나 행사가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기에 ‘풀타임’으로 활동하는 찬양 사도들은 하루하루가 인내의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몇몇 공동체 신부님께서 개인적으로 후원과 위로를 해주시기도 해 큰 힘이 됐다. “한 달이면 되겠지? 석 달이면 되겠지?” 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 있었다. 동료 찬양 사도들이 혹시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서 밥 한 끼라도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다른 찬양 사도들도 서로 같은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다. 본인도 여유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려 노력한 모습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찬양 사도의 삶이 늘 부족하고 손해를 보는 듯 보이지만, 사도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주님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떼제성가 <사랑의 나눔>을 부르고 싶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흐드러지게 핀 봄꽃 속에서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볕 좋은 곳의 개나리는 벌써 노랑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려 하고 벚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꽃을 연구하는 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난겨울이 예년보다 추웠기 때문에 올봄 벚꽃의 휴면 해제 시기가 빨라진 거라고 하네요. 겨울엔 겨울나무처럼 단단하게 안으로 응집하는 힘을 키우려 기도했는데, 봄이 되니 수줍게 피어나 어느 순간 화르르 주위를 밝히는 봄꽃이 되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붓글씨 쓰시던 책상 위, 종이 뭉치 속에서 발견한 글귀입니다. 주로 한자로 붓글씨를 쓰셨기에 아버지 붓글씨 작품을 알아보려면 얇은 한문 지식으로 늘 더듬더듬 읽어야 했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사는 동안 꽃처럼’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엄격하고 단아한 서체를 즐겨 쓰셨는데 이 문구는 캘리그라피를 하듯 꽃처럼 날아가게 쓰셨네요. 서예대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표구한 작품이 서재에 하나 걸려 있는 걸 제외하고는 아버지 쓰신 글씨는 이렇게 종이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하나 숨결처럼 쓰다듬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처음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아버지가 남기신 붓글씨 덕분에 이 봄 매일 새기며 생각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DMZ세계문학페스타’라는 행사에 참여해 여러 작가를 만났는데요. 팔레스타인의 작가 아흘람 브샤라트는 어렵게 여러 나라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기적처럼 죽음을 건너온 사람이 환하게 꽃처럼 웃습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이웃의 가족이 명절에 입을 옷을 사러 가다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에 살해되었다고 해요. 뉴스를 들어도 남의 일처럼 실감 나지 않던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도라산 전망대에서 가까운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감합니다. 평화는 매일 한 걸음씩이라도 더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임을. 사는 동안 꽃처럼. 성경에서 꽃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자주 비유되는데, 저는 마태오복음의 말씀을 자주 새깁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마태 6,28) 솔로몬왕의 영광도 이 꽃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라는 뜻이겠지요. 하나인 세상이 분열하고 나뉘어 서로 공격하면서 전쟁의 불안이 전 세계를 덮고 있는 이때, 평소 별생각 없이 쓰던 기름이, 원재료들이 모두 유한한 자원임을, 우리가 그동안 기적처럼 서로 돕고 나누며 이어왔음을 뒤늦게 실감합니다.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아무 불안 없이 환하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봅니다. 부는 바람에 소리 없이 떨어질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피어 있는 꽃. 곧 사라질 영광이 이 찰나의 시간에 기입됩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각자의 고투로 바쁘고 힘들지만, 사는 동안 꽃처럼!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과 슬픔, 하느님의 신비를 모두 간직한 꽃들이 세상을 밝히고 있는 오늘, 주님 부활하신 빛과 함께 흐르는 이 시간, 그대로 기쁘고 고맙습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