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정책 위헌 판결, 기후정책 강화 서둘러야

헌법재판소는 8월 29일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에 대한 최종판결에서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탄소중립법 8조 1항을 바탕으로 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은 2030년부터 목표 연도인 2050년 사이의 감축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아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막대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인 이번 기후소송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대만과 일본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나라의 기후정책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만 설정돼 있었다. 하지만 2021년 4월 기후소송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후 55%였던 2030년 목표치를 65%로 올렸고, 2040년 목표 88%가 새로 설정됐다. 이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역시 2045년으로 앞당겨졌다. 이번 기후소송 결과는 2030년까지 40%를 감축한다는 현재 계획에 대해서는 위헌 판단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재판관 9명 중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 못미쳤지만, 5명은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현재 계획도 위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이번 소송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정책이 기후위기의 위험에 대해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는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대폭 강화된 기후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형식적이고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획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고(故) 박정일 주교의 천상 안식을 기도하며

제3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박정일(미카엘) 주교가 8월 28일 선종했다. 고인이 걸어온 97년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와 교회의 근현대사 전체를 아우른 여정이었다. 북한 지역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성소의 꿈을 키웠고 공산 정권의 박해와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사제가 되기 위한 일념 하나로 고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변화 많은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그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 밝히며 충성과 순명의 삶을 약속한 그는 사제로서 또 주교로서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끈 지도자였다. 초대 제주교구장으로 신생 교구의 기틀을 다졌고, 전주교구장 재임 시 한국교회 최초로 ‘피데이 도눔’(Fidei Donum) 선교사를 라틴 아메리카에 파견하며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길을 열었다. 마산교구장 재임 시 친교와 봉사, 증거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 구현과 교세 확장에 힘썼다. 2001년부터 11년간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장을 맡아 한국교회 124위 순교자들이 2014년 복자품에 오르는 기틀을 다졌다. 주교 수품 성구인 ‘충성과 온유’(집회 45,4) 그대로 충성스러운 믿음의 교회를 위해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서 ‘소금’ 역할을 하며 헌신했고, 동시에 신자들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선 온유의 목자였다. 백미(白眉) 품은 온화한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음이 아쉽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생전 고인의 약속을 지금 이 시간 하느님 품 안에서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고인의 천상 안식을 기도한다.

방주의 창

중장년 1인 가구

요즘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고 있는 가구의 형태가 있다.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 환경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1인 가구이다. 기업들도 이 가구들을 의식한 듯 생산설비와 포장라인을 재정비하여 상품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주거, 음식, 문화 공간들도 다양한 형태로 1인 가구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합류하고 있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데 적절한 또는 충분한 사회적 요건을 갖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을 느끼며 생을 즐기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장년 1인 가구가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게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중장년 1인 가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에는 고독사 위험군이 19~29세 9.7%, 30대 16.6%, 40대 25.8%, 50대 33.9%, 60대 30.2%, 70대 이상 16.2%로 나타났다. 살펴보면 모든 연령에서 고독사 위험군이 있지만 그중에 40~60대에서 가장 높다. 바로 중장년 1인 가구이다. 이들은 사회구조에 따른 개인의 고립 및 단절 심화, 전통적 가족 돌봄 기능의 지속적 약화, 또는 점점 약화되고 있는 사회관계망 속에서 우울할 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고 몸이 아플 때 연락할 사람이 없고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이들은 결국 고독사를 맞는다. 국내 고독사는 2019년 2656명에서 2022년 4842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 고립, 고독사 예방을 위해 1인 가구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지자체 조례를 찾아보면, 간혹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예방과 지원에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기는 하지만 이를 위한 사업이나 서비스는 아직 부족하거나 부재한 상황이다. 이들을 위해 우선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로는 생활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 고독사 위험군 대상자 발굴 및 안부 확인 시스템 구축, 외출을 유도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현물지원 그리고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한 사회 관계망과 일상회복을 위한 지역사회 대응체계 구축이다. 현재 돌봄서비스를 확산시키고 있는 보건복지부 사업안에 중장년 1인 가구의 돌봄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고립가구 및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 개발 및 서비스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요청되고 있는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는 움직임이 더 크게 실천돼야 하겠다. 혹시 우리 본당, 우리 구역에도 보이지 않는 신자 또는 방문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신자가 있는지 살펴보자.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노후 다세대 주택가가 있거나 문 앞에 도시가스 체납 안내문이 붙어있는 가구들이 있다면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 이들을 발굴하는 첫걸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의 특성상 한 번의 방문으로, 한 번의 전화로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안부로 첫 외출을 시도해 보자. 그래서 우리의 형제자매, 우리의 이웃이 외롭게 혼자 지내다가 홀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하자. 중장년 1인 가구 형제자매들이 시원하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발길을 내밀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가족과의 관계 단절, 주변을 회피하는 이들이 집 밖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아진 만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의 복지관과 지자체와 연대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최소한의 안부 전화로 식사, 수면, 운동, 외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지역사회 서비스체계를 통해 사회적 고립예방 및 이웃 돌봄을 시작해 보자.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09-08
열린마당

[내 눈의 들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젊은이

청년회가 없어진 본당이 여럿이고 더이상 미사에서 젊은이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젊은이는 결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젊은이는 여전히 하느님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영적인 목마름을 채우길 열망한다. 꼭 본당이 아니더라도 일하는 곳 근처에서 혹은 여행하면서 성당에 들어가 고요히 기도하는 젊은이를 여럿 보았다. 또 유럽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도 영성체는 꼭 해야겠다며 투어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성당에 다녀오는 젊은이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이하 서울 WYD)를 준비하고 치러야한다. 수많은 젊은이를 교회의 한 가운데로 초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시노달리타스라는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 올해 시노드가 막을 내리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끊임없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정의한 시노드 정신을 꺼내 교회 곳곳에 적용시키고 있다. 2027 서울 WYD도 맥락을 함께 한다. 시노드 정신으로 젊은이를 초대하고 젊은 리더를 양성하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젊은이 사목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당찬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수직적 사고방식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제를 중심으로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신자들 사이에도 계층이 나뉘어 젊은이는 언제나 덜 양성된 구성원으로서 교회의 하위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교회의 외곽에 있는 사회적 약자로 배려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특히 젊은이 사목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통념을 가차 없이 깨버리고 없애야 한다. 먼저 시노드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인 ‘동등성’이 우리 교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동등성은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똑같은 품위를 지녔고 동등한 위치에 서있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개념이다. 또 성령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를 내려주셨기에, 서로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 경청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직무 사제직을 받았다고 해서, 축성 생활을 지향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살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동등성을 내세워 서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느님 백성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9년 파나마 WYD에서 “젊은이는 하느님의 미래가 아닌 현재”라고 말했다. 또 2023년 리스본 WYD에서 “교회에는 여러분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함께 걷는 여정에서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지금, 교회 공동체는 젊은이를 초대하여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공동체의 바닥을 다지고 뼈대를 만들며 살을 덧붙이는 모든 영역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양성자와 피양성자의 구분 없이 동반 양성되어 젊은이는 사제를 통해, 사제는 젊은이를 통해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노드 정신에서 방법론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신앙의 숨결을 젊은이들과 함께 느끼며 걸어가는 여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젊은이는 교회 안에 머물며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글 _ 이주현 그레고리오(의정부교구 지축동요한본당·영상제작자)

2024-09-08
사설

기후정책 위헌 판결, 기후정책 강화 서둘러야

헌법재판소는 8월 29일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에 대한 최종판결에서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탄소중립법 8조 1항을 바탕으로 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은 2030년부터 목표 연도인 2050년 사이의 감축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아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막대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인 이번 기후소송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대만과 일본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나라의 기후정책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만 설정돼 있었다. 하지만 2021년 4월 기후소송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후 55%였던 2030년 목표치를 65%로 올렸고, 2040년 목표 88%가 새로 설정됐다. 이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역시 2045년으로 앞당겨졌다. 이번 기후소송 결과는 2030년까지 40%를 감축한다는 현재 계획에 대해서는 위헌 판단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재판관 9명 중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 못미쳤지만, 5명은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현재 계획도 위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이번 소송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정책이 기후위기의 위험에 대해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는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대폭 강화된 기후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형식적이고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획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2024-09-08
일요한담

다시 주님 곁으로

일요한담 마지막 회다. 10번도 채 안 되는 글쓰기가 뭐 어렵겠냐 생각했는데 매주 나의 신앙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앙 관련 글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야 독자분들이 내 글 안에서 주님을 느끼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나만의 솔직한 일상 체험을 꼭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마감일을 간신히 맞추면 어느새 또 마감일이었다. 육아 맘으로 ‘방콕’하는 요즘 일상에서 신앙 에피소드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걸맞은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나면 할 말도 쓸 말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집안 곳곳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뭐든지 입으로 집어 넣는 어린 아들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이다. 아기와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고 목욕시킨 후 수유를 끝으로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면 나도 모르게 기절이다. 이제는 바깥 공기 한번 제대로 쐬어 보지 못하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아기 키우면 성당 가기 쉽지 않고 신앙을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속에 묻혀 살면서 웃고 즐기며 지냈던 과거의 내 모습은 기억조차 없다. 사람들을 만나다가 혹여 감기라도 걸려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사람 만나기를 조심 또 조심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감으로 삶의 행복을 느끼며 항상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바쁜 내 모습도 사라진지 오래다. 오로지 아기에게 올인하여 단순한 나로 산지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런 나에게 일요한담은 열렬했던 과거의 신앙생활을 추억하며 현재의 신앙 태도를 되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기 때문에 정신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모습을 돌아보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반성 또한 하게 해 주었다. “주일 미사는 주님께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소원을 빌러 오는 게 아니야, 지난 한 주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다음 한 주간 혹은 앞으로 내 모습을 계획하고 다짐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지러 오는 거지.” 예전에 한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필요할 때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날 부르실 때 언제든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위의 말씀처럼 매주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고 반성하는 성숙된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여유 있을 때 봉사해야지’라는 마음으로는 평생 봉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가장 바쁠 때 가장 성실히 봉사 활동을 했던 지난날들, 내가 생각하는 여유의 시간과 하느님이 나를 쓰고 싶어 하시는 시기는 다를 수 있기에 그분이 부르시면 언제든 “예스”를 외쳤던 예전 내 모습이 기억났다. 나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시고 소홀해진 신앙생활에 불을 지피시키 위해 일요한담을 시키셨나 싶을 정도로 글을 쓰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생각나기 시작했다. 마치 행복 가득했던 과거의 앨범을 넘겨보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추억하고 그때의 에너지를 다시금 얻어가는 시간이랄까. 여덟 번의 글을 쓰면서 예전의 나로 돌아가 내 삶과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주신 가톨릭신문에 감사드리며 마지막 글을 마무리 한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경성대 AI미디어학과 교수)

2024-09-08
현장에서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지구가 나아질까?

기후소송 선고가 열렸던 8월 29일 오후 2시. 방청인들로 꽉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수십 건의 사건 선고가 이어지고 시계는 어느새 3시를 가리켰다.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9살 한나 양과 12살 제아 양은 어려운 법률 용어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지친 기색 없이 재판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윽고 한숨을 삼킨 재판관은 “주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했다. 내내 불안한 표정이었던 제아 양은 이내 엄마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재판정 곳곳에서 환호와 함께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간의 마음고생과 간절함이 전해져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이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았을 때, 아이들과 청소년은 함께 힘을 모으면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행동했다. 무모할 것 같던 시작에 몇몇 어른들이 힘을 보탰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었다. 물론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수립하고 실질적인 실천이 수반돼야 하지만 국민의 주요 기본권이 ‘환경권’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정치나 경제 같은 어른들의 논리가 아닌,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바람이 현실이 된 순간. 생태환경 기사를 쓰면서 내내 흐릿하고 모호했던 목표가 환기됐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과연 지구가 나아질 수 있을까?” 이제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하느님은 피조물 보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 편에 서 계시다”라고.

2024-09-08
사설

고(故) 박정일 주교의 천상 안식을 기도하며

제3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박정일(미카엘) 주교가 8월 28일 선종했다. 고인이 걸어온 97년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와 교회의 근현대사 전체를 아우른 여정이었다. 북한 지역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성소의 꿈을 키웠고 공산 정권의 박해와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사제가 되기 위한 일념 하나로 고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변화 많은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그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 밝히며 충성과 순명의 삶을 약속한 그는 사제로서 또 주교로서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끈 지도자였다. 초대 제주교구장으로 신생 교구의 기틀을 다졌고, 전주교구장 재임 시 한국교회 최초로 ‘피데이 도눔’(Fidei Donum) 선교사를 라틴 아메리카에 파견하며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길을 열었다. 마산교구장 재임 시 친교와 봉사, 증거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 구현과 교세 확장에 힘썼다. 2001년부터 11년간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장을 맡아 한국교회 124위 순교자들이 2014년 복자품에 오르는 기틀을 다졌다. 주교 수품 성구인 ‘충성과 온유’(집회 45,4) 그대로 충성스러운 믿음의 교회를 위해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서 ‘소금’ 역할을 하며 헌신했고, 동시에 신자들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선 온유의 목자였다. 백미(白眉) 품은 온화한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음이 아쉽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생전 고인의 약속을 지금 이 시간 하느님 품 안에서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고인의 천상 안식을 기도한다.

2024-09-08
사설

순교 정신을 삶으로 살자

매년 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기에 그 후손들인 우리는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신앙을 꺾지 않았던, 그리고 일상을 포함한 온 삶을 순교정신으로 거룩하게 살았던 선조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을 의무와 은혜를 받았다. 특별히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0주년이자 124위 순교 복자가 탄생한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미 103위 순교 성인을 얻은 한국교회는 124위 순교 복자를 더함으로써 크나큰 은총을 받았고, 최양업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시복시성된 신앙의 모범들을 모시는 것은 우리의 영광이고 은혜다. 그분들은 이미 하느님 곁에 머무는 은총을 누리고 있기에 시복과 시성은 우리 후손들에게 신앙적인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해주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자와 성인들을 모시게 된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들의 삶 안에서 그분들이 보여주신 신앙과 삶의 모범을 직접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는 순교 등 물리적인 억압과 박해가 신앙의 조건으로 요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에게 가해졌던 순교의 위협은 오늘날 한층 더 교묘한 유혹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느님의 길보다는 세속의 길, 이웃을 위한 자비와 헌신, 돌봄보다는 차별과 무시, 영원한 생명보다는 재물과 권력의 추구 등이 그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순교는 아닐지라도, 하느님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24-09-01
현장에서

텀블러 쓴다고 기후가 변하나요?

텀블러 쓰는 게 소용이 있나요? 생태를 위한 실천으로 적어도 텀블러와 손수건 정도는 지니고 다니려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취재원과 차를 마실 때도 텀블러를 꺼내곤 하는데,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텀블러 사용을 응원해 주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외로 텀블러 사용에 회의적인 이들도 제법 있다. 정확히는 생태를 위한 실천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다. 문명을 포기하고 살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실천을 다 하고 사느냐, 어차피 개인의 실천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이다. 텀블러 사용만으론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이러한 노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은 실천이 생태적 회개를 부르고,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우리가 사랑의 작은 길을 가고,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뿌리는 친절한 말, 미소, 모든 작은 몸짓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일회용품 줄이기, 물·전기 절약하기, 대중교통 타기, 먹을 만큼만 준비하기 등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이 모든 실천은 사랑에서 비롯한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작은 몸짓들은 그저 환경운동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의 기도다. 재앙적인 기후위기가 온다는 지구 온도 1.5℃ 상승 시점이 이제 5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돌린다면, 서로 사랑한다면, 희망은 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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