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삶과 신앙의 지혜를 성경에서 찾자

올해 제40회를 맞은 성서 주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우리 삶과 신앙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성경 필사나 성경 공부 모임 등 성경 말씀을 새기고자 하는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려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는 교회의 거룩한 전통과 함께 성경 속에 담겨 있다. 열심한 전례와 성사 참여, 다양한 사도직 활동, 이웃 사랑의 실천 등 신앙 생활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은사에 참여함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 나아가 성경을 다만 지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성경 말씀에 대한 막대한 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특히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우리는 이전에는 많은 노고를 들여야 했던 성경 관련 정보와 지식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읽고 기도하고 묵상함을 통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하느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삶과 신앙, 사회와 세상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혼란을 겪곤 한다. 성경 속에 담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과 신앙생활의 밝은 빛이요 지혜의 원천이다. 성서 주간을 맞아 성경을 지혜의 보고로 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자.

한일 양국 교회의 더욱 폭넓은 교류를 기대하며

제26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광주대교구 일원에서 열렸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이 도쿄에서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를 연 것으로 시작된 한일주교교류모임은 공동의 역사 인식을 통해 양국 관계를 바르게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이어진 모임은 동북아 평화, 정의평화, 생태환경, 선교사목 등으로 주제를 확대해 왔다. 올해 모임에서는 한국교회가 일본에 파견하는 선교 사제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했다. 현재 일본에는 50여 명의 한국인 사제가 있으며, 이들은 문화와 언어의 한계는 있지만 일본교회에 활력을 주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진 이 모임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일 주교들은 주교들만의 모임에서 더 확대해 사제 교류 모임 등 한일 양국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타진했다. 특히 2027년 열리는 서울 WYD도 한일 양국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 주교회의 부의장 우메무라 마사히로 주교는 일본교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고 싶어한다면서 서울 WYD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일본교회도 활력을 얻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가 흔히 일본을 부르는 말이다. 이웃 나라이지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아직 화해를 이뤄내지 못했기에 감정적으로 멀리 있는 나라 일본. 이러한 역사적 상처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은 양국이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고 화해하며 교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이 보여주는 모범에 따라 양국의 교회와 사회가 화해를 바탕으로 친교를 확대하길 기대한다.

일요한담

왜왜왜 우리가 왜!

수원역 북스 리브로에 주문해 놓은 책을 찾아 나오는데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 싸움판이 벌어진 게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단속반이 나와 노숙인들을 거칠게 쫓아내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빈 박스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거나 누워있는 노숙인들이 모여있었고 어떨 땐,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앉아있기도 했다.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냄새 때문인지 버스를 기다리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 민원을 넣어서인지 가끔 단속반에서 나와 실랑이가 붙곤 했다. 한참을 고성이 오가다 그들 중 한 남자가 갑자기 웃통을 훌떡 벗어 던지더니 경찰에게 맞섰다. “왜 왜 왜 우리가 왜!!!” 사람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단속반도 더 이상 강압적인 행동을 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웃통을 벗고 달려드는 아저씨와 경찰들 사이에 껴서 싸움을 말리던 노숙인 한 분이 갑자기 ‘왜왜왜 아저씨’의 뺨을 냅다 갈겼다. “정신 차려 새꺄!!!” 뺨을 맞은 아저씨의 눈이 벌게졌다. 계속 이렇게 맞서다가는 경찰서로 연행될지도 모르니 먼저 선수를 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르르 몰려있던 노숙인 중 한 명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박스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는 막걸리 통을 주웠고 내 곁에 서있던 할아버지는 분하다는 듯 버스 정류장 쇠기둥을 맨손으로 퉁퉁 쳐댔다. 거기서 쫓겨난 사람들은 수원역 지하도로 자리를 옮기거나 골목에 숨어서 단속반이 가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 서 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왜 왜 우리가 왜!”라고 부르짖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계속 마음을 긁었다. 아마도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왜 우리가 여기서 쫓겨나야 하는지 말해 보란 말입니다!” 단속반도 거기에 서 있던 많은 사람도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민원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냄새나고 불쾌하니 당신들이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다고 말한다면 그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건 질문이 아닌 항변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노숙인도 이런 식으로 함부로 쫓아내고 몰아내선 안 되는 거라는.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행복한 사회’ 이런 아름다운 문구들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지만 우리는 과연 그런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며칠 전, 맨발로 찾아온 노숙인에게 신발을 사서 신겨 보낸 가게 주인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열심히 일해 신발값을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는 이야기. 누군가의 이런 작은 선행 속에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주님을 본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이런 작은 배려와 따듯한 마음이 누군가를 살리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2024-11-24
사설

삶과 신앙의 지혜를 성경에서 찾자

올해 제40회를 맞은 성서 주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우리 삶과 신앙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성경 필사나 성경 공부 모임 등 성경 말씀을 새기고자 하는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려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는 교회의 거룩한 전통과 함께 성경 속에 담겨 있다. 열심한 전례와 성사 참여, 다양한 사도직 활동, 이웃 사랑의 실천 등 신앙 생활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은사에 참여함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 나아가 성경을 다만 지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성경 말씀에 대한 막대한 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특히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우리는 이전에는 많은 노고를 들여야 했던 성경 관련 정보와 지식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읽고 기도하고 묵상함을 통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하느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삶과 신앙, 사회와 세상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혼란을 겪곤 한다. 성경 속에 담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과 신앙생활의 밝은 빛이요 지혜의 원천이다. 성서 주간을 맞아 성경을 지혜의 보고로 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자.

2024-11-24
방주의 창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

지난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가 세 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개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을 위해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기체류 미등록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이 내년 3월 종료됨에 따라, 지난 4년간 운영한 해당 제도의 의미와 문제점, 향후 관련 제도 마련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논의했다. 여러 발제들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제는 청년이 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증언이었다. 다섯 명의 청년들 중 네 명은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새롭게 이주한 도시에서 전학갈 학교를 찾지 못해, 더 정확히는 학교마다 전학을 거부해 자격요건을 상실하면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에 토론회 참석자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잠깐의 휴식 후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 법무부 이민조사과 사무관이 토론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싶다고 해, 발제자와 토론자는 물론 참석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 역시 얼마 전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게 된 본당 이주민 신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 단위 외국인출입관리소 운영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외국인출입관리소로부터 연락을 받아 다음날 방문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장에 이야기를 해 겨우 오전 반차를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구제대책에 따르면 부모 각각 미등록 체류기간에 따른 벌금을 내야 하는데, 70%를 감면해 주기는 하더라도 이주민들이 하루 만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이 사실을 알려줘서 급히 본당 사회사목기금으로 지원을 하고 천천히 갚아 나가는 것으로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벌금을 마련하지 못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는 법무부에 이 구제대책을 계속 이어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참석한 법무부 사무관은 구제대책을 ‘악용’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며 내부적으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대로 내년 3월 구제대책이 종료되면 3000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언제 강제출국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초‧중‧고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모여 ‘WE ARE ALL DREAMERS’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지난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회견문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은 ”구제대책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정적인 거주와 정책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교육 이수’라는 신청 대상 요건, 신청 시 부모님이 내야 하는 커다란 범칙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은 출국하셔야 한다는 규정은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며 “무엇보다 구제대책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이뤄지고 고교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대학 진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우리에게는 머무를 권리가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회견문 말미의 구호에 참 마음이 아팠다. 선주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걱정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1-24
현장에서

‘괜찮아’

2009년 선종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수필가 고(故) 장영희(마리아) 서강대 교수는 첫돌을 앞두고 발병한 열병으로 1급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스스로에게도 실의에 빠졌거나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늘 웃으며 ‘괜찮아’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웠다. ‘괜찮아’는 신체적인 불편함으로 성장하는 그가 숱한 어려움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놀 때 그저 자신은 목발을 세워두고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때, 엿장수 아저씨가 깨엿 두 개를 손에 쥐여주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때 공짜 깨엿이 괜찮다는 것인지, 목발을 짚는 것이 괜찮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장 교수는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으며,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11월 16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장영희 교수 기림미사는 평소에 “유명한 학자나 역경을 이겨낸 신앙인이 아니라 그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고인의 삶을 통해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의미를 일깨웠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곁의 친구와 이웃에게 ‘괜찮아’라고 먼저 건넬 수 있는 고리가 됐다. 2001년 처음 암에 걸린 후 눈을 감을 때까지 힘든 병상 생활을 했던 고인이 암 치료 중에 써낸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를 다시 펼쳤다. 글 속에서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혜(天惠)의 삶’이라며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나눴던 그를 거듭 떠올려본다.

2024-11-24
사설

한일 양국 교회의 더욱 폭넓은 교류를 기대하며

제26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광주대교구 일원에서 열렸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이 도쿄에서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를 연 것으로 시작된 한일주교교류모임은 공동의 역사 인식을 통해 양국 관계를 바르게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이어진 모임은 동북아 평화, 정의평화, 생태환경, 선교사목 등으로 주제를 확대해 왔다. 올해 모임에서는 한국교회가 일본에 파견하는 선교 사제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했다. 현재 일본에는 50여 명의 한국인 사제가 있으며, 이들은 문화와 언어의 한계는 있지만 일본교회에 활력을 주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진 이 모임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일 주교들은 주교들만의 모임에서 더 확대해 사제 교류 모임 등 한일 양국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타진했다. 특히 2027년 열리는 서울 WYD도 한일 양국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 주교회의 부의장 우메무라 마사히로 주교는 일본교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고 싶어한다면서 서울 WYD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일본교회도 활력을 얻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가 흔히 일본을 부르는 말이다. 이웃 나라이지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아직 화해를 이뤄내지 못했기에 감정적으로 멀리 있는 나라 일본. 이러한 역사적 상처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은 양국이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고 화해하며 교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이 보여주는 모범에 따라 양국의 교회와 사회가 화해를 바탕으로 친교를 확대하길 기대한다.

2024-11-24
방주의 창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어느새 11월이다.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린 분들을 각별히 기억하는 위령 성월을 지내고 있는데, 죽음이 무엇인가? 1897년 4월 말경 스물넷 젊은 리지외의 데레사는 아침마다 각혈을 했다. 결핵 말기에 이른 그는 밤이 되면 특히 기침이 심해져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897년 9월 30일에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리는데, 그는 곧 죽음을 맞을 것을 인식하면서 말한다.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이에요.” 데레사에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죽음은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이런 죽음 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언니 수녀들이 그가 죽어서 자신들 곁을 떠나는 것으로 여기며 아파할 때, 자기가 죽음을 맞으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실제적으로 언니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깨워 준다. 데레사가 죽음을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을 깊게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살았다. 그는 죽음 준비를 위해 ‘성사를 받는 것’도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도 다 “좋다”고 했다. 그 ‘모두가 은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은총의 바다, ‘은해’(恩海)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자기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하느님 신뢰는 고통을 많이 받는 것도 적게 받는 것도 관심이 되게 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것은 이런 신뢰 속에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큰 언니 성심의 마리 수녀는 데레사가 겪는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많이 고통받지 않도록 기도했는데, 당신은 이토록 고통받고 있어요!” 이때도 데레사는 단순하게 답했다. “나는 하느님께,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는 데 장애가 되는 기도는 듣지 마시라고 청했어요. 그리고 그것에 어긋나는 모든 어려움을 거두시라고 했어요.”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를 증거하는데, 이 하느님 신뢰가 ‘어린이의 길’이라고 알려진 그의 ‘작은 길’의 핵심이었다. 데레사는 어느 날 말했다. “이처럼 고통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고통받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나는 더 큰 고통을 청하고 싶지 않아요. 그분이 고통을 늘리신다면,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는 기쁘고 즐겁게 고통을 참아 받을 거예요. 그러나 내 스스로 힘을 가지기에는 내가 너무도 작아요. 내가 고통을 청한다면 그건 나의 고통이 될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혼자 참아야 할 거예요.” 자기가 겪는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고통이기 때문에, 그분이 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 힘도 자기에게 주시리라는 신뢰 속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적이 없답니다.” 하느님에 대한 데레사의 이 깊은 신뢰가 고통을 그렇게 기쁘게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알고 살게 한다. 그의 이런 죽음 이해가 그토록 기쁘게 하느님 안에서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추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충실하게 살고 기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은 데레사의 이같은 삶과 죽음 이해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1-17
사설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안전 보장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을 넘어서 대치 국면에 이르렀다. 직접적으로 상대를 무기로 공격하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적대하는 전단과 오물 풍선, 확성기를 동원한 밤낮 없는 비방,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은 민족 모두를 무력 충돌의 언저리까지 몰아가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가 11월 5일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힘의 논리보다는 상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자고 호소했다. 호소문은 특히 남북 지도자와 정치인, 정책 결정자들을 향해 “국가의 첫 번째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라며 “지도자들은 전쟁의 참극이 일으키는 고통을 자기 자신의 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대소사는 모든 국민이 함께 책임져야 하지만, 의사 결정과 실행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책임은 정부를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호소문이 상기시키고 있듯이, 남북 정치 지도자들이 과연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대규모 파괴와 대량 살상으로 이어지는 현대전은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엄청난 결과를 자아낸다. 한쪽이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패배한다. 그러니 정치 지도자들은 민족 간에 무력 충돌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비오 12세 교황이 말했듯이 “평화로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평화를 희망해야 한다.

2024-11-17
일요한담

우리 어머니 신나셨네!

나의 세례명은 비비안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세를 받았고 주일마다 꼬박꼬박 미사에 나갔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도 나는 성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로 기도를 드렸으며, 대학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기 전날도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하느님!”이라며 성당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친정과 시댁 모두 골수(?) 가톨릭신자라 결혼식도 성당에서 했고 두 아이 모두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새벽 미사 드리러 가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의 신심은 한 마디로 굳건했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당에 발길이 뜸해지다 어느날부터인가는 미사 참례를 전혀 하지 않게 됐다. 주일미사에 나가지 않는 건 대역죄를 짓는 거라 생각하는 시어머님은 이런 나를 보며 가슴앓이를 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란 이유는, 하라면 더 하지 않는 내 성격을 부모님도 아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머님이 자꾸 가라고 하니 더 가기 싫어졌다고나 할까. 거기다 변명을 조금 덧붙여 보자면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 미사에 참례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서 미사에 참례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전에는 잡지사에서 편집 에디터와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5시간 가까이 소요 되다 보니 도저히 못 하겠다 싶어 그만뒀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직도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거로 알고 계신다. 며느리가 편의점에서 밤을 꼴딱 새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 가슴 아파하실까 봐 그냥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11월부터 가톨릭신문에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때가 된 것인가!’ 계속 핑계를 대며 성당과 멀어지고 있는 나를 하느님이 더 이상 두고만 보실 수 없다, 생각하셔서 이렇게 불러주신 게 아닐까, 하는. 미사에 참례하라며 어머님이 수시로 보내오는 문자 중에 제일 나중 것을 읽어 보았다. ‘어멈아, 이번 주부터는 주일미사 나가야 해. 일주일에 1시간을 참석 안 하면 어떡해. 내가 지쳐서 어멈 때문에 소화가 안 돼. 오늘부터 꼭 실천해.’ 어머님이 나 때문에 소화도 안 되신다는데 어찌하겠나.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오면 잠이 쏟아지겠지만 주일미사에는 어떻게든 참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동네 성당을 찾아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고 예쁘게 꾸며져 있는 화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어머님께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저 이제 미사 열심히 나갈게요. 걱정 마세요.’ 그러자 어머니에게서 바로 답변이 날아왔다. ‘잘했다. 고마워. 빠지지 말고 잘 다녀. 너무 기쁘다 어멈. 사랑해.’ 우리 어머니, 완전 신나셨다. 평생을 신앙생활 안에서 살아오신 분이라 며느리가 미사에 참례 안 하는 것 때문에 속을 많이 끓이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가 등 떠밀어서 억지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2024-11-17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