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제12차 정기총회를 마치고 아시아교회 주교단은 ‘다리가 되고 다리를 놓는 이’가 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 문화가 공존하는 아시아에서 교회가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고 대화하도록 돕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다짐한 것이다. 오늘날 아시아는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전쟁과 폭력, 이주민과 난민 문제, 생태계 훼손, 급격한 기술 변화 등에 직면해 있다. 민주적 공론장은 좁아지고, 국가와 종교, 세대와 계층 사이의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교단은 교회는 복음의 가치를 바탕으로 다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갈등을 봉합하거나 양쪽의 입장을 절충하는 일이 아니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기준으로 불의에 맞서며, 대화와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종교 간 대화와 이주민 환대, 가난한 이들과의 동행, 생태적 회개가 모두 이 사명에 포함된다. 이를 위해 교회 내부부터 변화해야 한다. 성직주의와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평신도와 수도자, 여성과 청년이 식별과 의사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대화를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리 놓는 사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민족과 민족, 인간과 피조물을 잇는 살아 있는 다리이다. 아시아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장벽이 세워지는 곳에 신뢰를, 폭력이 이어지는 곳에 평화를,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놓아야 한다. 갈라진 아시아 한가운데서 교회가 대화의 중재자이자 화해의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서울대교구는 물론이고 한국교회 전체가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 조직과 제도를 꾸리고 세계청년대회를 알리는 데에 집중하면서 대회 개최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면, 이제는 전 세계에서 찾아올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에 나설 차례다. 구체적으로 서울 WYD 조직위는 가톨릭문화박람회 개최나, 상설홍보관 개관 등 한국교회를 소개하고 세계청년대회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WYD 홍보단을 꾸려 해외 홍보 활동에도 나선다. 전국 각 교구도 사전 행사를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회 의미를 되새기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러한 노력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참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두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세계청년대회가 참가하는 청년이나 봉사자, 혹은 일부 관심 있는 신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청년대회는 그저 4년마다 열리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순례’ 여정이다. 보편교회가 서로를 환대하며 신앙 안에서 친교를 체험하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례 여정이 한국에서 이뤄지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며 은총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이 은총의 시간에 함께하길 청한다. 기도로, 봉사로, 후원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이한 제주 해녀의 물질은 여전히 경이롭다. ‘테왁’ 하나에 의지해 깊은 바다로 뛰어드는 역동적인 몸짓 속에는 욕심을 버리고 서로의 안위와 숨을 챙기는 위대한 공동체 정신이 흐른다. 바다를 나누고 함께 상생하는 이 연대야말로 해녀 문화의 핵심 가치다. 그러나 2025년 말 기준 2848명으로 줄어든 현실은 무겁다. 매년 200여 명의 삼춘들이 은퇴하는 반면, 새내기는 20여 명 남짓 어촌계에 들어오는 소멸 위기 속에서 우리가 진정 지켜 내야 할 것은 이 정겨운 공존의 유산이다. 글·사진 _ 양종훈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얼마 전 우파 단체 ‘휴먼스 퍼스트’가 주도한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그동안 미국 정부와 우파 진영은 인공지능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앞서려면 데이터센터를 더욱 빠르고 광범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로 인한 과도한 전기 요금 인상, 극심한 물 부족, 소음공해와 수질오염 같은 심각한 폐해가 드러나면서 농촌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이제 좌우 진영을 넘어 데이터센터는 ‘물과 전기를 많이 쓰는 시설’이라는 수준을 넘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시민들의 삶을 직접 위협하는 파괴적인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알고리즘, 데이터, 클라우드 같은 ‘깨끗하고 무형’의 단어들이 연상된다. 그러나 이는 착시이며 환상이다. 광물 자원 없이는 그 어떤 인공지능도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인공지능 연구자인 케이트 크로퍼드와 마크 그레이엄은 인공지능의 본질을 지구의 천연자원과 에너지를 수탈하는 대규모 ‘추출 산업’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추출의 대상은 자연 자원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문명이 창조한 데이터와 노동력, 그리고 인간 자신마저 추출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마주하는 가상 세계는, 실제로는 이 모든 자원을 무자비하게 긁어모으는 물리적인 공간에 기반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핵심 기초 설비인 배터리와 전력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리튬이 필수적이다. 단 0.15g의 리튬을 내장 메모리 칩에 넣기 위해 미국 네바다주는 물론 볼리비아, 콩고, 몽골,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수많은 대지가 파헤쳐진다. 반도체 제작에 핵심적인 희토류 채굴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장시성의 경우, 채굴된 희토류 광물에서 실제 가치 있는 자원은 단 0.2%에 불과하다. 나머지 99.8%에 달하는 독성 폐기물은 고스란히 자연에 버려진다. 그 결과 바오투 지역에는 지름 8㎞가 넘는 유독성 검은 진흙 호수가 형성되기도 했다. 광물 자원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인공지능 산업은 지구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약탈의 역사와 다름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증설되는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이미 웬만한 중소 국가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을 넘어섰다. 막대한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가 거대한 기계 장치들을 돌리고 있으며, 수만 대의 컴퓨터 서버가 내뿜는 초고열을 식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수자원이 소모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설비 확장과 대규모 투자가 자연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고착시킨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들은 환경 오염과 자원 부족, 저주파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직접적인 피해를 온전히 떠안지만, 데이터센터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는 소수 빅테크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50여 년 전 출간된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당시의 추세를 바탕으로 2100년 이전에 지구의 자원과 인구가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 자원의 지속 가능한 관리와 재사용으로의 전환만이 장기적 안정을 가져올 해답이라고 제안했다.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고 환경적 위험과 비용은 약자에게 떠넘기는 불평등은 결국 기술 자본을 향한 분노와 새로운 정치적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으로 퍼지는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은 이 파괴적인 산업이 대다수 보통 사람의 삶을 얼마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하나인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사업자들에게는 싼 전력과 용수를 보증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착시와 환각도 정도를 넘어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우리는 ‘단순히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가 아니라 시대를 바꾸는 전환의 때’를 살아가고 있다. 이 전환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지구와 인간 삶의 회복 말고 어떤 것이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글 _ 박상훈 알렉산데르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처음 성당에 가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봄날, 아버지와 남동생, 나는 서울 효창동 친척 집에 가는 길에 어느 성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들어가 보자고 하셨다. 호기심에 따라 들어간 성당 마당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예쁜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평일 성당은 고요했고,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그 당시는 혹독한 독재 시대였다. 일간 신문 정치부 기자였던 아버지는 반정부 기사로 인해 필화를 겪으며 여러 차례 수감과 고문을 당하셨다. 그날 이후 부모님 대화에 ‘미사’, ‘교리공부’, ‘세례’ 같은 낯선 단어가 들렸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4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당신의 바람대로 우리 가족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각자의 선택으로 성당을 찾아 신자가 되었다. 주변에 인도해 줄 천주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어떻게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스스로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받았는지 생각할 때마다 불가사의하다. 나는 학교와 가까운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세례받고 학생회에 들어가 즐겁게 활동했다. 하지만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고 저절로 하느님과 깊이 만나는 건 아니었다. 신앙인의 기초인 성경 읽기와 기도하는 법을 알려준 곳은 뜻밖에도 내가 다니던 개신교 미션스쿨 숭의여고였다. 학교에선 성경 읽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매일 ‘오늘의 말씀’을 강제로 외웠고, 방학이면 성경 암송 대회를 위해 본인이 고른 상당한 분량의 성경을 통째로 암기해야 했다. 가톨릭 성경이 허락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3년 내내 개신교 성경으로 외웠는데, 놀랍게도 그때 외운 성경 구절이 아직도 ‘툭’ 치면 곧바로 튀어나온다. 그 시절 성경 읽기가 몸에 배었는지, 지금까지 꾸준히 성경을 읽으며 ‘일 년에 일독하기’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하나는 자유로운 기도다. 정해진 기도문에 익숙한 가톨릭과는 달리, 학교에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외에는 상황에 맞는 ‘맞춤형 기도’를 했다. 반 예배 기도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어찌나 청산유수인지 주눅이 들 지경이었다. 내 차례가 오면 전날부터 잔뜩 긴장해서 준비한 기도문을 달달 외워 겨우 마치곤 했다. 그러나 그런 훈련 덕분에 나는 여전히 아침, 저녁기도 때 가톨릭 신자답지 않게(!) 큰소리로 자유롭게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용서와 자비를 청한다. 크고 작은 행사에서 성경 말씀을 곁들여 대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때 얻은 보너스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신앙의 유아기에 억지로 익힌 성경 읽기와 기도 습관이 평생 내 믿음의 든든한 뿌리가 되고 있다. 돌이켜보니, 생고생시킨다며 미워했던 여고 시절의 교목, 담임, 교장 선생님이 고맙기 짝이 없다. 그분들은 내 신앙의 훌륭한 조련사였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성당으로 이끌어 준, 내 신앙의 시작인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세례는커녕 대세조차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어린 셋째 딸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100년 전통의 가톨릭신문에 연재까지 하는 걸 보며 흐뭇해하실 거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에게, 이 글을 바친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나는 10여 년 전 개종하고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다. 지금 이곳은 세상과 단절되어 간간이 접하는 신문, TV 말고는 바깥소식을 잘 모른다. 2주에 한 번 있는 종교 집회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설렌다. 봉사자님들과는 눈길 한 번 마음 편히 주고받을 수 없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분들과 신부님을 뵙는 시간은 나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반갑고 소중한 순간이다. 이곳에서의 첫 미사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정말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그날 밤에 ‘내가 왜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계속 눈물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회개와 반성,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비로소 주님을 만났다는 내 신앙의 첫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 신앙심은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인 것이다. 그동안은 흉내에 불과했던 하느님의 자녀된 삶이 이곳에서나마 늦은 출생을 한 건 아닌가 생각한다. 난 매일 아침 어설픈 묵주기도를 바친다. 묵주를 굴릴 때마다 지난날의 그릇된 믿음으로 하느님 뜻에 어긋나게만 살아왔던 시간을 눈물로 반성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나약한 사람이란 것을 이제 깨닫는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셨다. 나의 남은 삶은 이제부터 모두 주님의 계획 안에 놓여있다. 어두울 때 더 찾기가 쉬운 빛을 나는 이제야 찾았다. 지금 되찾은 나의 신앙심이 변하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며 성경도 천천히 정독해 본다. 하느님의 사랑은 절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어 내 믿음은 더욱 굳건해질 것도 믿는다. “주여! 제가 육신의 몸으로 견딜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사오나, 그리움이란 고통은 너무도 얄팍하나이다. 저에게 굳건한 믿음과 지혜를 주시어 가족을 지키고 잘못된 모든 일을 올바로 되돌릴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제 남은 생을 모두 주님 뜻에 맡기옵니다.” 글 _ 익명의 독자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예수님의 가장 놀라운 기적 중 하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다. 우리도 이 기적을 예수님처럼은 아니지만 일으킬 수 있다. 내가 가진 것 하나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면. 글·그림 _ 조재형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화성 안녕본당 주임)
가톨릭신문은 서울대교구 가톨릭굿뉴스와 공동기획으로 교회 내 여론을 듣고 친교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가톨릭 POLL’을 실시합니다. 가톨릭 POLL은 매달 신앙생활을 비롯, 교회 안팎의 의미 있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선정해 설문하고, 그 결과를 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8월 설문 주제는 ‘혐오가 놀이가 된 사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입니다. 설문은 8월 5일부터 8월 19일까지 진행되며, 설문 결과는 8월 30일자 신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커피 쿠폰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가톨릭 POLL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설문 바로가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WYD 본대회에 앞서 열리는 예수회의 ‘마지스 2027 코리아’도 7월 25일 발대식을 열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예수회 한국관구는 발대식에서 우크라이나와 레바논, 미얀마 등 전쟁과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의 난민 청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청년들의 축제라지만, 아무리 뜻깊은 행사라도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국내 난민 청년들에게는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난민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참가를 망설이게 하는 장벽이 된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 속에 놓인 해외 청년들에게도 여비를 마련하고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에게 서울 WYD는 그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난민과 이주민 청년들이 WYD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도록 돕는 교회의 노력은 중요하다. 예수회뿐 아니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과 이주사목위원회도 8월 30일 서울 혜화동 동성중고등학교에서 ‘세계 청년 한마당’을 열고 세계 전통놀이와 체험 활동, 공연 등을 마련한다. 이주민 청년과 한국 청년이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리는 자리다. 어쩌면 WYD의 은총과 치유가 가장 절실한 이들은 이주민과 난민 청년들일지 모른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며 국적과 언어, 처지를 넘어선 ‘하나의 교회’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WYD가 쉽게 초대받지 못하고 나서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소외된 이들까지 함께 품는 ‘모든 청년’의 축제가 되기를 기원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성당에 가요?” 평화를 찾아다니다 어느덧 매일미사가 일상이 된 어느 날, 처음 받은 어버이날 편지에 꾹꾹 눌러쓴 아이의 글씨는 내 맘에 또렷이 새겨졌다. 그러게, 그렇게 가던 성당에서 만난 주보 안의 가톨릭 학교 간지는 내 맘을 또 가로챘다. 어떻게든 살아낼 스펙을 쌓겠다고 유명 대학원 원서를 쓰던 그때, 하느님에 대한 궁금함이 세상의 이치를 이겼다. 결국 돈 안 되는 공부를 하러 대출을 받아 가톨릭 대학원에 입학했다. 처음으로 스스로 찾은 학교, 함께하는 동료들의 지식에 감탄하며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는 즐거움에 마냥 기뻤다. 아이를 키우던 나는 교육을 중심으로 탐구했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오가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과제를 썼다. 내 지도교수가 된 신부님은, 그런 내가 아이에게 읽어 준 그림책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도 칭찬하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분이셨다. 그런 분께 “신부님도 60년대생이시죠?”라며, 내가 존경하던 세대의 이중성에 대한 실망을 투사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힐난에도, 깜짝 놀란 눈으로 곰곰이 새기시던 맑은 눈빛이 떠오른다. 또 성인의 영성에 대해 강의하던 한 신부님께는 장문의 항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호기심을 결코 참지 못하는 내가 한 질문에, “여러분 수준에서는 아직 몰라도 돼요”라고 한마디하셨던 탓이다. 거센 질책을 보냈는데, 정중하게 사과를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철저하게 가난을 사는 영성의 대가셨다. 내가 만난 첫 가톨릭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가톨릭 학교, 평화교육과 연구를 위해 교사로 갔던 학교에서 오히려 학부모로서의 감탄을 안고 돌아왔다. 내가 갔던 가톨릭계 일반 고등학교는 큰아이가 다니던 학교와는 정반대였다. 동물을 좋아하던 큰아이는 방학 중에도 매일 학교에 가서 실험을 하더니 전국 1등으로 국제대회에 나갈 정도로 과학에 열중했다. 그런데 담임과의 상담에서 들은 한마디는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다른 학교에 갔다면, 참 사랑받았을 텐데요.” 이게 무슨 뜻이지? 그럼 지금 학교에서는 아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교사의 말인즉슨 명문대 입학 요건이 부족한 아이에게 관심을 둘 수 없단 뜻이었다. 과학 중점 학교지만 과학보다 성적이 중요했고, 인간보다 성과가 먼저였다. 그런데 내가 갔던 가톨릭 학교는 달랐다. 꼴찌를 하고, 학교를 빠지며, 말썽 피우는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고민했다. ‘그 누구도 저버리지 않는 교육’을 실현하는 공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녀님과 교사의 모습에 그저 눈물이 났다. 그 경험 덕분에 가톨릭의 ‘가’자만 들어도 도망치던 둘째 아이를 겨우 얼러서 가톨릭 학교에 지원했다. 운 좋은 아이는 추첨이 되었고, 싫다던 기숙사 체험에 가자마자 축구화를 보내 달라며 신이 났다. 철학 교사인 신부님을 보고 “저렇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똑똑한데, 왜 신부가 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더니 그 신부님이 좋아서 견진성사를 받았고, 가장 행복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톨릭 학교에서 나는 실력도 태도도 엉망인 꼴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하고 달래며 응답하는 이상한 사람이 가톨릭 학교에는 가득했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 덕택에, 가톨릭 학교는 내 교육 ‘맛집’이 됐다. 맛집이 붐비는 건 좀 아쉽지만, 맛난 건 같이 나눌수록 더 좋다는 걸 이제는 좀 알게 되었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