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반포 10년…“가난한 이들과 지구 함께 돌봐야”

도덕신학 및 국제 개발 전문가로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deputy Secretary)를 역임한 아르헨티나 출신 아우구스토 잠피니-다비에스(Augusto Zampini-Davies) 신부가 5월 7일부터 16일까지 방한했다.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방한 동안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한 ‘통합적 생태론’(integral ecology)의 비전을 나눴다. 제55회 가톨릭 에코포럼에서는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 특별 강연을 맡았고, 연세대학교와 UN 사회개발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생명을 위한 대안 경제 관련 회의에도 참석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발표했다. “회칙 139항에서 밝히듯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그동안 분절적으로 접근돼 온 사회 위기와 환경 위기가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보게 한 영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생태 파괴와 사회 불의는 어째서 불가분할까. 두 가지 모두 ▲착취하고 버리는 문화 ▲존엄성보다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지구를 외면하는 세계화된 무관심이라는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땅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은 똑같은 상처의 양면”이라며 “모든 피조물과 교감하는 ‘돌봄’의 문화가 통합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의 집 지구가 파괴되고 가난한 이들이 착취당하게 된 건 무한한 수요를 신격화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얻으려는 욕망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요. 그러니 멸종 위기인 돌고래를 보호하려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서로 충돌한다고 볼 수 있나요? 타인, 이방인조차도 적이나 경쟁자가 아닌 형제로 대하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랑인걸요.”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찬미받으소서」가 교회 밖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서임을 보면, 장벽 없는 돌봄의 문화는 교회와 사회 모두가 꿈꾸는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청년층과 수도자들을 주축으로 생태적 의식이 성장하는 한국교회의 독특한 목소리는 전 세계가 함께 생태적 회심을 이루는 데 톡톡히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불의가 무적은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74항)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한 악은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 교황 레오 14세께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과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레지오 활동 68년째…마음에 주님 모시면 언제나 천국”

”94세라는 나이에 레지오 단장을 권유받았어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회합 시작 부분만이라도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수락했죠.”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허융자(헬레나) 씨는 올 초 레지오 마리애 ‘죄인의 희망’ 쁘레시디움 단장이 됐다. 고령에도 평소 왕성한 기도와 활동을 하는 허 씨였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허 씨는 1957년 교구 전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시작한 레지오에서 무려 68년째 활동하며 동료 단원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건강을 염려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몇 달 전 중단하긴 했지만, 허 씨는 입교 후 매일 새벽 미사를 참례했다. 성당에 허 씨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였다. 또 다리 수술로 입원했을 때를 빼고는 레지오 회합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를 방문했다가도 주 회합 참석을 위해 서둘러 집에 왔다. 이러한 근면한 활동으로 5월 17일 봉헌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기념 미사’에서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명의의 축복장을 받았다. 성실한 참석 비결에 대해 허 씨는 “우리는 성모님의 군단인데 어떻게 레지오를 빠질 수가 있냐”고 반문했다. 젊은 시절 하루에 묵주기도를 100단씩 바쳤던 허 씨는 지금도 70단 이상을 바치고 있다.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도 개인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하시는 성모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허 씨는 늘 손에 쥐고 다니는 묵주에 대해 “특별히 아끼는 묵주는 없다”며 “묵주는 다 똑같이 거룩한 성모님께 기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성모님께 모두 맡기며 버텼어요. 남편이 가끔 집에 올 때마다 정성을 다해 대접하니 결국 마음을 다잡고 80세에 세례와 견진까지 받았죠.” 허 씨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며 60여 명의 입교를 도와 2014년에는 레지오 선교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건 남편 전교였다. 당시 현실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하루는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성당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때 허 씨에게 ‘피에타’ 상이 떠올랐다. 허 씨는 ‘내 고통은 성모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깨달은 후 성모님께 더욱 의탁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이따금 집에 들러 이혼을 요구했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발톱을 직접 깎아주고 밥상을 극진히 차려 줬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다는 일념에서였다. 자녀들과 본당 신부·수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세례를 받은 남편은 이후 병자성사까지 받고 평안히 선종했다. 허 씨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저는 늘 ‘지금이 천국이다’라는 말을 하며 살아요. 제 마음에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을 모시고 사니까요. 그걸 생각하면 저절로 겸손하고 조심하게 되고, 그분들 마음에 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답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21면

[위령기도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여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안나) 여사가 5월 11일 선종했다. 향년 97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3월부터 성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용인 쉴낙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5월 14일이다.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인천 앞바다에 뿌려진다. 1928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4살 때 중국에 있는 일본군 비행 부대로 끌려가 3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고인의 손과 발에는 위안부 시절 일본군 도검에 찔린 흉터가 남아있다. 가혹했던 구타의 후유증으로 치아가 빠지고 청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었다. 고인은 광복 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채 중국에 머물다 2000년 6월 58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국적을 회복했다. 귀국 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활동에 뛰어들었다. 2002년 미국 브라운대 강연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13년에는 미국, 독일, 일본 3개국 12개 도시를 오가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신앙생활에도 모범을 보였다. 1970년 중국에서 세례를 받은 고인은 해외 일정 중에도 반드시 주일미사에 참례했다. 2019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영혼의 구원을 믿으니까, 천국 가고 싶어서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고 밝혔다. 이 여사의 선종으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6명으로 줄었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5면

[인터뷰] 신생아들 태명으로 매달 기부한 이미선 원장

목동라테라산후조리원(원장 이미선 체칠리아)은 입소한 신생아들의 태명으로 2021년 2월부터 매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본부장 오승원 이냐시오 신부, 이하 한마음한몸)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나눔 기업이다. 이미선 원장은 “‘내가 태어나 맨 처음 한 일이 이웃 사랑일 만큼, 나는 충만하게 사랑받는 존재이자 또 그만큼 사랑할 줄 아는 존재구나!’라는 뿌듯함을 아기에게 안겨주기 위해서”라고 꾸준한 기부 동기를 밝혔다. 생명이 깃든 아기들은, 생명이 꺼져가는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총 2550만 원의 후원금이 백혈병, 난치병 등으로 고통받는 국내 환자들의 치료비로 전해졌다. 기부를 이어온 3년여 기간 운영난 등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 번도 기부를 빠뜨린 적이 없다. 삶의 고비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은 만큼 나도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산모와 신생아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수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소독·예방부터 하나하나 신경 쓰고 있습니다. 조리원을 운영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느님은 도움을 청하는 제 기도를 늘 들어주셨죠. 덕분에 제가 26년 동안 산후조리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마음한몸에서는 기부에 참여한 아기의 태명을 담은 감사장을 산후조리원에 매달 보내고 있다. 이 원장은 감사장을 산후조리원 안에 게시해 모두와 기쁨을 나눈다. 이 원장은 “특히 어머니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라며 “아기가 자라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이웃과의 나눔을 잊지 않고 어려움 속에도 선한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힘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가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 생명이 다른 생명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갈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간직한다면 우리 사회도 서로 나누는 ‘가정’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있겠지요.” 산모들이 마주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산후조리원에는 모유 수유 전문가와 부모들의 아기 목욕 교육을 전담하는 간호사가 상주한다.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이 원장은 “생명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기쁨을 아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답한다. “엄마 뱃속도 좋았지만, 이 세상도 따뜻하고 좋은 곳임을 아기가 느끼게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이 원장은 한 산모가 남긴 인사를 전하며 "같은 감동을 우리 산후조리원을 다녀가는 모든 아기와 산모님이 간직할 수 있도록 저는 제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5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