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어줌, 군인이자 사제라는 사명감으로 한 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를 위해 나를 조금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군종교구 화랑본당 주임 박현진(마르코) 신부는 이렇듯 “자신의 건강을 나눠줌으로써 생명이 위태로운 이웃이 희망을 찾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축복”이라는 마음을 고백하며 8월 22일 한 혈액암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5월 유전자 형질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는데 그에게 기증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박 신부는 주저하지 않고 응낙했다. 박 신부는 신학생이었던 2015년 일찍이 서울대교구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에 동참해 기증을 서약했다. 그동안 헌혈에도 30회 이상 동참했다. 현재의 박 신부는 군인의 일과에 따라 매일 체력 단련을 하는 건강한 군종사제이지만, 건강하지 못한 어려움이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기꺼이 마음이 움직였다. “입학 후 꾸준히 운동하며 지금처럼 건강해지기 전에는 나도 큰 키에 비해 적은 체중, 갑상선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박 신부는 고백했다. 다른 기증자가 나타나길 바라며 손을 뿌리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채취 과정에 대해 퍼져 있는 부정적 선입견에 대해 박 신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전자 형질이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날 확률이 대략 2만분의 1에 남짓함을 알기에 그는 용감해졌다. “그 환자분은 하느님께서 제가 도와줄 수 있도록 보내 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인이자 사제로서의 사명감이었습니다.” 먼저 기증을 위해 4일간 하루 한 차례씩 두 팔에 조혈모세포 증식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에 따라 몸살 비슷한 증상이 와 불편감에 진통제를 먹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1주일 후 병원 침상에 5시간30분가량 꼬박 누워 채혈해야 했다. “제 경우에는 피가 잘 나오게 하기 위해 계속 팔에 힘을 줬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해야 했는데,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박 신부는 말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그렇게 힘든 노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또 사활의 문제 앞에 절박한 누군가를 때마침 내가 도울 수 있는 경우를 우리가 과연 살면서 얼마나 마주치겠어요. 나의 믿음이 곧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기쁨만으로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해 보일 수 있었던 이 경험은 박 신부에게 성장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떤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묻어나는 삶인지, 장병과 신자들에게 실천의 용기를 줄 수 있는 사제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가슴에 와닿았다”는 고백대로다. 사람들에게 ‘영’(마음)을 나눠주는 군종사제의 역할을 넘어 ‘육’(건강)까지 나눠준 박 신부. 그는 끝으로 “다음에도 기증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화답할 것”이라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편견을 버리고 기증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제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모범이 됐길 바랄 뿐입니다. 크든 작든 희생으로써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희망으로 울려 퍼지는지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2024-09-08

“한국의 시(詩)에 매료…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죠”

“처음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을 뵌 건 1973년경 추기경님께서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성당 뒤에 가만히 앉아계셨는데 사실 처음엔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음 날 당시 한국 상황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신 정권에 대한 말씀이었죠.”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번역가 안선재 수사(Anthony Graham Teague·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떼제공동체)는 김 추기경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안 수사가 홍콩에 있을 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는데, 그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다. 안 수사는 영국에서 중세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떼제공동체에 들어갔다. 한국 땅을 밟은 건 1980년 5월. 안 수사는 “떼제공동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땐 자리 잡을 기반이 없어 수입을 얻기 위해 직접 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추천을 받아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다가 1985년에는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릴 적부터 홀로 조용히 앉아 책 읽기를 즐겼던 그는 한국문학, 특히 한국 시 번역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 시에 대해 알고 싶어 동료 교수에게 번역할 만한 시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예전부터 아는 시인이 있다며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을 알려주더라고요. 시가 읽기에 쉽고 재밌는데다가 어떤 면에선 굉장히 인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번역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구상 시인을 시작으로 서정주, 김광규 등 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영어로 번역됐다. 번역본 대부분은 영국의 한 자그마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안 수사는 “영국 일간지 한쪽 구석 출판사 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한국 시 번역본을 출판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첫 출판은 1990년이었다. 최근에는 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번역해 출간했다. 번역 중에서도 왜 시를 특히 좋아했을까. 안 수사는 “시에는 시인의 마음, 시인의 세계관이 간결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불의와 부조리에 저항하던 그들의 비판 어린 시선은 시 한 편 속에도 온전히 담겨 있어 한국 사회 현실을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시인들의 세계관을 해외에 맛깔나게 전달하는 건 온전히 안 수사의 몫이었다. 물론 시만 번역하는 건 아니다. 안 수사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번역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천주교회사」를 영어로 새롭게 번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타임즈 번역상과 대산번역상 등을, 영국에선 대영 제국 훈장까지 받았다. 또 최근 제28회 만해대상에선 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안 수사는 “상을 받은 건 당연히 기쁘지만, 내가 아니라 직접 쓴 원 작가들이 받아야 할 상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상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번역작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번역하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훌륭한 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말 행복하죠. 그러기에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번역가로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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