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레오 14세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박영호
입력일 2025-05-21 09:45:18 수정일 2025-05-21 11:03:06 발행일 2025-05-25 제 344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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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쇄신 필요성 모두 동의…기준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명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소명의 실천에 어떻게 협력하고 투신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총 4회에 걸쳐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와 하느님 백성의 나아갈 길을 살펴본다.

 1. 시작하며 - 설문조사 결과 종합
2. 시노드 교회를 향해 -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3. 교회는 쇄신돼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4. 세상과 교회 - 빈곤과 폭력을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

이전 조사 대비 ‘기후 위기’ 시대 생태 문제 주요 과제로 부상

가톨릭신문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8년 뒤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에 즈음해 신학자 100인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2005년 조사에서는 ‘서구 문화와 전통적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중요성이 가장 많이 지적됐다. 전자는 서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윤리가 더 이상 기꺼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후자는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지역에서 더 절실한 과제로, ‘말씀’보다 ‘증거’가 더 설득력을 갖는 현대인의 심성, 그리고 개방적 ‘대화’와 삶을 통한 ‘증거’가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2013년 조사에서는 문항이 보다 세분화되었고, 국제 평화와 기후위기 등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항목들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이 최우선 과제로 꼽혔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과 빈곤·세계화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교황청의 재정 비리와 불법적 자료 유출 등에 따른 ‘교황청의 쇄신’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성직주의의 폐해, 여성 부제직을 포함한 직무사제직 문제, 평신도 특히 여성의 더 활발한 교회 참여, 생명과 가정 윤리 문제 등은 두 차례 조사에서 모두 지속적으로 지적된 과제들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도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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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총 17개 과제 제시돼

이번 조사에서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두 가지 응답을 중복 선택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기술하도록 했다. 총 17개 항목이 제시됐으며, 이전 항목들에 더해 세계 평화, 시노달리타스, 교회 쇄신 관련 항목이 추가되었다.

조사 결과, 70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5명(25%)이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을 가장 시급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뒤를 이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세계화 문제(양극화, 난민과 이주민 등)’가 27명(19.2%),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18명(12.9%),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이 12명(8.6%)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 및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은 각각 8명(5.7%)이었다.

시노달리타스와 자비 실현 등 
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과제들 이어갈 것 요청
빈곤·경제적 불평등, 기후 위기, 보수·진보 통합 등 주요 사목과제로 떠올라

시노달리타스의 구현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 항목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력히 추진해온 교회 개혁과 하느님 자비의 표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부터 3년간 진행된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는 프란치스코 개혁의 정점이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못지않은 열정으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했다”며, “시노드 과제 실천만이 교회가 본질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세상 안에서 성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도 “이제 경청하는 교회의 모습은 되돌릴 수 없다”며, “하느님 백성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정진만 신부(안젤로·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학처장)는 “시노달리타스 구현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라며 “각 지역교회의 고유한 상황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 교황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빈곤, 세계화, 전쟁의 문제들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을 받은 과제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핵심 주제다. 그는 평생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드러냈고, “사람을 죽이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난민과 이주민의 고통을 위로했다. 분쟁과 폭력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의 개선 역시 시급한 사목 과제로 지목됐다.

김선필(베드로)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대 세계의 위기, 특히 전쟁의 원인은 대부분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교회는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분명한 가르침과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제시했으며, 이는 지구와 피조물을 보존하는 일이 곧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는 깊은 책임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계속돼야 할 쇄신의 여정

‘교회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응답자 모두가 동의했다. 사목적 과제로 제시된 모든 항목은 교회 쇄신의 목표이자 과정이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응답자들은 쇄신의 기준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가장 큰 지표로 제시했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여성의 교회 내 지위와 역할 확대’, ‘직무사제직 문제(사제 독신제, 여성 사제 등)’ 등은 각각 3~5명의 응답률을 보였다. 이 항목들은 모두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에 입각해 있으며, 교회 안 모든 계층이 고유한 직무를 지니고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응답 항목들은 사실상 공의회 정신 실현이라는 같은 방향의 사목 과제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대’,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신앙과 문화의 토착화’, ‘종교 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 등에 대한 응답은 거의 없었다. 또한 이전 조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정과 생명 윤리 문제(낙태, 피임, 동성애 등)’와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는 이번 조사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통합의 리더십

특히 눈에 띄는 항목은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통합과 일치’가 6명(4.3%)의 응답을 얻은 점이다. 비율은 높지 않지만,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보수층의 저항을 불러온 체험을 반영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재위 기간 중 드러났듯, 보수층의 우려와 저항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새 교황에게는 교회 내 통합과 일치를 이끄는 지혜로운 통치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