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명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소명의 실천에 어떻게 협력하고 투신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총 4회에 걸쳐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와 하느님 백성의 나아갈 길을 살펴본다. 1. 시작하며 - 설문조사 결과 종합 2. 시노드 교회를 향해 -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3. 교회는 쇄신돼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4. 세상과 교회 - 빈곤과 폭력을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 이전 조사 대비 ‘기후 위기’ 시대 생태 문제 주요 과제로 부상 가톨릭신문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8년 뒤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에 즈음해 신학자 100인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2005년 조사에서는 ‘서구 문화와 전통적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중요성이 가장 많이 지적됐다. 전자는 서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윤리가 더 이상 기꺼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후자는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지역에서 더 절실한 과제로, ‘말씀’보다 ‘증거’가 더 설득력을 갖는 현대인의 심성, 그리고 개방적 ‘대화’와 삶을 통한 ‘증거’가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2013년 조사에서는 문항이 보다 세분화되었고, 국제 평화와 기후위기 등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항목들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이 최우선 과제로 꼽혔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과 빈곤·세계화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교황청의 재정 비리와 불법적 자료 유출 등에 따른 ‘교황청의 쇄신’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성직주의의 폐해, 여성 부제직을 포함한 직무사제직 문제, 평신도 특히 여성의 더 활발한 교회 참여, 생명과 가정 윤리 문제 등은 두 차례 조사에서 모두 지속적으로 지적된 과제들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도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조사 결과, 총 17개 과제 제시돼 이번 조사에서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두 가지 응답을 중복 선택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기술하도록 했다. 총 17개 항목이 제시됐으며, 이전 항목들에 더해 세계 평화, 시노달리타스, 교회 쇄신 관련 항목이 추가되었다. 조사 결과, 70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5명(25%)이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을 가장 시급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뒤를 이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세계화 문제(양극화, 난민과 이주민 등)’가 27명(19.2%),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18명(12.9%),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이 12명(8.6%)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 및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은 각각 8명(5.7%)이었다. 시노달리타스와 자비 실현 등 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과제들 이어갈 것 요청 빈곤·경제적 불평등, 기후 위기, 보수·진보 통합 등 주요 사목과제로 떠올라 시노달리타스의 구현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 항목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력히 추진해온 교회 개혁과 하느님 자비의 표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부터 3년간 진행된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는 프란치스코 개혁의 정점이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못지않은 열정으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했다”며, “시노드 과제 실천만이 교회가 본질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세상 안에서 성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도 “이제 경청하는 교회의 모습은 되돌릴 수 없다”며, “하느님 백성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정진만 신부(안젤로·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학처장)는 “시노달리타스 구현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라며 “각 지역교회의 고유한 상황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 교황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빈곤, 세계화, 전쟁의 문제들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을 받은 과제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핵심 주제다. 그는 평생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드러냈고, “사람을 죽이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난민과 이주민의 고통을 위로했다. 분쟁과 폭력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의 개선 역시 시급한 사목 과제로 지목됐다. 김선필(베드로)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대 세계의 위기, 특히 전쟁의 원인은 대부분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교회는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분명한 가르침과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제시했으며, 이는 지구와 피조물을 보존하는 일이 곧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는 깊은 책임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계속돼야 할 쇄신의 여정 ‘교회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응답자 모두가 동의했다. 사목적 과제로 제시된 모든 항목은 교회 쇄신의 목표이자 과정이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응답자들은 쇄신의 기준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가장 큰 지표로 제시했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여성의 교회 내 지위와 역할 확대’, ‘직무사제직 문제(사제 독신제, 여성 사제 등)’ 등은 각각 3~5명의 응답률을 보였다. 이 항목들은 모두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에 입각해 있으며, 교회 안 모든 계층이 고유한 직무를 지니고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응답 항목들은 사실상 공의회 정신 실현이라는 같은 방향의 사목 과제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대’,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신앙과 문화의 토착화’, ‘종교 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 등에 대한 응답은 거의 없었다. 또한 이전 조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정과 생명 윤리 문제(낙태, 피임, 동성애 등)’와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는 이번 조사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통합의 리더십 특히 눈에 띄는 항목은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통합과 일치’가 6명(4.3%)의 응답을 얻은 점이다. 비율은 높지 않지만,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보수층의 저항을 불러온 체험을 반영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재위 기간 중 드러났듯, 보수층의 우려와 저항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새 교황에게는 교회 내 통합과 일치를 이끄는 지혜로운 통치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새 교황 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 이모저모

레오 14세 교황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봉헌한 5월 18일 오전 10시(로마 현지시간) 로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전 세계에서 새 교황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각국 정상 등 20여만 명은 미사 시작 전부터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새 교황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다. 교황은 미사 시작 전 덮개가 없는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은 물론 광장 밖에 자리한 인파에 다가가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고, 아기를 안아 축복하며 친근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 줬다. 즉위 미사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내 베드로 사도 무덤을 찾아 기도를 바치면서 시작됐다. 추기경단이 성 베드로 사도 무덤에 도착하는 교황을 맞이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에서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으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목자의 사명을 상징하는 팔리움을,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으로부터 교황의 라틴어 이름이 새겨진 ‘어부의 반지’를 전달받았다. 이어 미사 강론을 통해 앞으로 교황직 수행에 대한 각오와 사명을 밝히면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교황은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은 우리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고, 우리는 목자 없는 양 떼가 된 것처럼 느꼈다”며 “콘클라베를 위해 모인 추기경단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산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사목자를 선출하겠다는 소망을 하느님께 맡겼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길을 여러 사람들과 만들기 원하는 형제로서 다가가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한 증오와 폭력, 편견으로 인한 분열을 극복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하느님의 집을 짓는 것을 교회의 첫째 사명이라고 지적하면서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선교적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예식에 이어 ‘로마와 온 세계에’(우르비 엣 오르비, Urbi et Orbi) 강복했다. 즉위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들은 교황이 착한 목자가 되기를 바라며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또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이지 못한 전 세계 신자들도 TV 중계를 통해 교황 즉위 미사에 함께했다. 교황은 미사 후 주교단 및 세계 각국 정상들과 인사를 나눴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1면

“새 교황 최우선 과제는 시노달리타스 실현”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자들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이는 가톨릭신문이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계기로 실시한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조사는 한국교회 신학자 70명을 대상으로, 네이버폼에서 작성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5월 8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됐다. 응답자들은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17개 응답 문항 중 두 가지를 선택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기술했다. 응답자 70명 가운데 절반인 35명(25%)이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을 새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이들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교회 쇄신과 개혁의 핵심 과제로 인식했으며, 교회가 참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봤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세계화 문제(양극화, 난민과 이주민 등)’를 선택한 응답자는 27명(19.2%)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이어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18명(12.9%),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이 12명(8.6%)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과 ‘세속주의 및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은 각각 8명(5.7%)이 선택했다. 특히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들은 대부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목 방향이나 교회 정책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난민과 이주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몸소 실천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의 분쟁 등 잇따른 국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며,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제시함으로써 자연 생태와 인간 생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기후위기 등 환경 파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임을 강조했다. 한편 신학자들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교회의 지속적인 쇄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들은 특히 이러한 개혁 과제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여성의 교회 내 지위 확대’, ‘공의회 정신의 실현’, ‘직무사제직 문제’ 등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면

[새 교황 레오 14세] 첫 행보로 엿본 새 교황의 ‘찐사랑’

레오 14세 교황의 교황청 밖 첫 방문지는 로마 외곽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였다. 같은 이름의 성화를 모신 성지에서 교황은 자신의 사명을 되새기는 장소로 찾았다고 밝힐 정도로 성모님께 대한 극진한 공경과 사랑을 드러냈다. 십자가도 화제다. 목에 건 가슴 십자가에는 성 아우구스티노 등 성인과 복자의 유해가 봉인돼 있다. 십자가에 모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따를 것임도 여러 차례 천명했다. 교황은 선출 직후 로마와 온 세계에 보내는 첫 강복에서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라고 전했다. 선출 직후 행보로 엿본 새 교황의 ‘찐사랑’들을 살펴본다. 새로운 사명을 안고 찾아 나선 곳 교황 레오 14세는 바티칸에서 약 50km 떨어진 이탈리아 제나차노에 위치한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를 방문해 “교회가 나에게 맡긴 새로운 사명을 안고 이곳을 꼭 찾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알바니아 슈코더(Skodër)에서 전승된 성지와 동명의 성모 성화가 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알바니아 침공 당시 슈코더의 신자 두 명이 성화 앞에서 무사히 탈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중 갑자기 성화가 공중에 떠올랐고, 이들을 이탈리아로 이끌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성화는 제나차노에 도착한 뒤 사라졌고 이와 관련한 기적이 이어졌다. 제나차노에는 ‘착한 의견의 성모’를 모신 성당이 있었으나 오랜 시간 방치돼 폐허가 됐다. 1467년 이곳의 한 과부는 성당의 황폐한 모습에 보수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돕지 않았고, 그녀 혼자서는 완공할 수 없었다. 같은 해 성 마르코 축일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던 중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갑작스레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성당의 미완성돼 있던 벽 중 하나를 덮었다. 구름이 사라지자 아무 것도 없던 벽면 위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성화가 나타났다. 이날의 기적으로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몰려 들었다. 성화의 인도로 이곳을 찾은 알바니아인들은 한 목소리로 슈코더의 그 성화라고 증언했다.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2세는 주교들을 파견해 조사 후 기적으로 공인했다. 1903년 레오 13세 교황은 이곳 성지를 소바실리카(minor basilica)로 승격시켰다.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이곳에 가해진 폭격에도 손상되지 않았다. 선택 앞에서 지혜를 구하는 상징인 착한 의견의 성모 성화는 5월 18일 열린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 제대 곁에 놓였다. 선출 직후 목에 건 십자가 5월 8일 선출 직후 레오 14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목에 건 가슴 십자가도 화제다. 십자가에는 성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성인과 복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에 있는 작은 공방에서 제작된 이 십자가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시복시성 청원 담당 조세프 스키베라스(Josef Sciberras) 신부가 레오 14세 교황이 추기경에 서임됐던 2023년 9월 선물한 것이다. 십자가 본체가 두 겹으로 제작돼 결합된 나사를 풀면 내부에 보관된 성인의 유해가 보이는 구조다. 십자가에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성 모니카, 성 토마스 빌라노바, 복자 안셀모 폴랑코, 가경자 주세페 바르톨로메오 메노키오의 유해가 함께 담겼다. 시베라스 신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성인들은 각각 충실함과 개혁, 봉사, 순교의 덕목을 상징하며, 이 덕목들이 레오 14세 교황의 사명을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성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은 강인한 신앙인의 표상이다. 성 토마스 빌라노바는 15~16세기 발렌시아 대주교로, 수도 개혁과 가난한 이들에 헌신한 목자로 평가받는다. 복자 안셀모 폴랑코는 스페인 내전 중 순교한 주교로 “내 양 떼 중 단 한 명이라도 남았다면 나는 남겠다”며 목자의 모범을 보였다. 가경자 메노키오는 나폴레옹에 저항한 유일한 주교로 로마 시민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스키베라스 신부는 “콘클라베 전날, 우리가 선물한 십자가를 착용하면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모니카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교황에게 보냈다”며 “발코니에 선 교황이 그 십자가를 착용한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 받았다”고 전했다. 아우구스티노의 영성을 ‘사명’으로 교황은 선출 직후 첫 강복에서 “‘여러분과 함께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여러분을 위한 주교입니다’라고 말했던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자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만큼 성 아우구스티노를 향한 존경과 애정을 여러 차례 표현하고 있다. 1244년 설립된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과 가르침을 뿌리로 삼고 있다. ‘서양의 스승’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자 신학자, 영성가다.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성인은 젊은 시절 철학과 수사학에 깊이 빠졌고 진리를 찾으려 마니교를 따르기도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중 성인은 당시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의 설교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전까지 세속적 성공에 얽매였던 성인은 “집어서 읽어라”라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에 따라 펼친 구절은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로마 13,13)였다. 성인은 말씀에 깊이 깨달음을 얻고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세속적 삶을 정리하고 아프리카 수도원에 들어가지만 뜻하지 않게 사제가 됐고, 5년 만에 히포의 주교로 임명된다. 주교가 된 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며 「고백록」을 포함한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힘썼다. 주교가 된 후에도 주교관 내에 성직자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이어갔을 정도로 성인은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뛰어난 영성가로 칭송 받는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2면

멀게만 느껴졌던 하느님과 ‘찐친’ 되는 시간

“주님께서 나의 의지가 되어 주셨네.”(시편 18,19) 인천교구 청소년 성령쇄신기도회 ‘루멘’(회장 정성수 요한 세례자, 지도 김석훈 안드레아 신부)은 매달 첫째 주 주일 오후 1시30분 교구 답동주교좌성당 문화관 3층 성령홀에서 청소년 찬양 기도회를 열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혼란도 겪는 사춘기, 루멘 청소년들은 성령을 삶의 ‘빛’(루멘, 라틴어 Lumen)이자 친구처럼 가까이하며 은총을 체험하고 있다. 잡히지 않아도 가깝게 느껴지는 분 5월 4일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 문화관 3층 성령홀에서 열린 성령 기도회. 어린이날 연휴임에도 나들이 대신 기도회를 택한 청소년들은 성령칠은을 하나씩 적은 판에 플라스틱 컵을 던져 세우는 미니게임에 한창이었다. “이번 판은 성령님이 오빠 손을 들어주셨네~. 그래도 다음 판은 내 편이 돼 주실걸!” 도타운 우정이 묻어나는 대화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성령이 가운데 모셔져 있었다. 루멘 청소년들은 매달 기도회에서 성령을 친숙한 존재로 접하고 있다. 루멘은 2018년 초 교구 청년성령쇄신봉사회가 마련한 ‘청소년 성령 안의 새 생활’ 피정에 참석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유소년 때와 달리 또래 문화에 민감해지면서 신앙을 지켜 나가기 어려운 청소년들이 건강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동반해 줄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루멘 봉사자들은 청소년들이 무엇보다 성령을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매달 기도회에서는 말씀 묵상(렉시오 디비나)을 통한 관상기도, 십자가의 길, 성시간, 떼제기도 등 여러 기도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한다. 올해는 청소년들이 시련을 마주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찬양할 수 있도록 침묵 기도 시간을 준비했다. 고요함을 통해 말씀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을 깊이 만나고,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깊이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성수 회장은 “성령 기도에서 은사 체험을 한 청소년들의 마음에는 변화의 씨앗이 심어지는데, 그 씨앗을 싹틔우려면 지속적 관심과 영적 영양 공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헤매던 처음과 달리 또래끼리 서로 기도해 주고, 찬양과 율동을 함께하며 삶과 신앙을 깊이 있게 나누는 모습에서 성령께서 선사하는 변화를 우리 성령쇄신 봉사자들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심…. 내게는 성령님의 어떤 은총이 필요할까.” 미니게임에 이어 청소년들은 각자 쪽지에 성령칠은 중 특별히 간청하는 하나를 적어 멀리 날렸다. ‘용기’를 적은 김재흥(마티아·고3·원당동본당) 군은 “용기는 선악을 식별하는 굳셈이기도 한데, 보다 굳세져 힘든 시간에도 하느님의 가치를 택하는 ‘반전’으로 내 친구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완전 ‘찐친’이거든요” “본당에서의 신앙생활은 성사나 교리 교육 위주라 하느님을 와닿는 존재로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루멘에서는 내게 필요한 하느님의 영(성령)이 무엇인지 깨우치고, 그분께 먼저 다가갈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 하느님과 이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면 지금은 완전 ‘찐친’(진짜 친한 친구)이 되었달까요?” 이어진 심령기도 시간. 루멘 청소년들은 노래와 율동 찬양을 하며 손을 들어 올린 채 소리 내어 기도했다.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는 심령기도는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오시는 성령을 다시 느끼며 때로는 기쁨과 위로의 눈물이 날 만큼 은총 가득한 시간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루멘에 나오는 이인호(이시도로·중2·부개동본당) 군은 두 눈을 감고 한 손을 가슴에 올릴 만큼 가장 진지하게 심령기도에 몰입했다. 성령쇄신 봉사자인 부모님 덕에 심령기도가 이미 익숙한 이 군이지만 “숙제 빨리 끝내고 게임해야 하는데…”, “좋은 성적 받으려면 더 공부해야 하는데…” 하는 분심 가득한 일상은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다. 이 군은 “내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있고 그분이 내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고 계신다는 체험은 루멘에서만 가능하다”고 전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저를 하나씩 바꿔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예전에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하느님의 가장 영성적인 모습이자 위격인 성령은 삼위일체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루멘 청소년들은 이 군처럼 자신과 함께하며 변화와 은사를 안겨 주는 성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깊은 기도 생활까지 나아가본 적 없는 청소년들도 공감한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길 바라는 부모님이 사실 불만스러웠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신앙이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 같아요. ” 부모님의 권유로 루멘에서 연 1회 여는 ‘성령 안의 새 생활 피정’에 참가한 한 청소년은 2박3일 일정 마지막 날 부모님과 함께하는 심령기도 때 “두 분이 믿어오신 성령 하느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선뜻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 경험을 나눴다. 루멘뿐 아니라 교구 어린이·청년 성령쇄신 기도회를 지도하는 김석훈 신부는 “청소년들이 본당 생활 외에도 매달 한 번씩이라도 하느님을 ‘피부에 와닿는 친구’처럼 접하고 기도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워나가면서 영성을 삶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6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 해방과 새 출발의 다짐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했습니다. 36년 동안 압제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은 가혹했던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났고 그 기쁨의 환호가 거리에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식민 통치로 인해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참회 없이 맞이한 해방 정확한 통계조차 집계하기 어렵지만,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간 학도병만 2만 3천여 명을 헤아리고 1944년과 그 이듬해에만 21만여 명이 징병됐습니다. 강제 노역에 혹사당한 이들은 1123만 명, 수십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들이 군수 공장에 동원되고 위안부로 남방과 중국 전선으로 끌려갔습니다. 해방이 그 모든 고통과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조선은 이제 그 모든 아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조국을 꿈꿀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새 출발은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민족의 해방을 참회 없이 맞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잘못이라도 과오에 대한 겸허한 고백과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2000년 대희년에 즈음해서야 과거사 반성 문건인 「쇄신과 화해」를 통해 일제 식민 통치 아래에서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죄를 공식적으로 고백했습니다. 해방의 시간과 공간을 맞는 천주교회 지도층은 지난 과오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공교롭게도 민족이 해방을 맞은 8월 15일 그날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엔이 대한민국 승인 건을 총회에 상정한 1948년 12월 8일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이 뜻깊은 우연을 주보 성인인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이뤄진 하느님의 섭리로 해석했습니다. 노기남 대주교는 1949년 연두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해방됨으로부터 완전 독립까지의 모든 중요한 계단을 생각하면 대한천주교회의 대주보이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확실히 한국의 독립을 돌보신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는 진심으로 이 큰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에는 6개의 교구(대목구)와 3개의 지목구, 1개의 수도원교구(면속구)가 있었습니다. 신자 수는 약 18만여 명으로, 남한에 11만 명, 북한에 5만 명, 그리고 연길교구에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분포해 있었습니다. 성직자는 300여 명, 수녀는 400여 명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해방과 세계 평화의 회복에 감사하는 미사를 전국 성당에서 봉헌하고 특별 행사를 가졌고 새 출발을 위한, 새로운 선교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9월, 남한에 미국 군대가 상륙했고 이에 앞서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해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습니다. 남북한 교회는 모두 해방을 맞아 교회 발전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북한 교회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심한 탄압을 받고 결국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새 희망, 새 출발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조선순교복자현양회’가 재발족됩니다. 현양회는 순교복자 79위 공경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고유한 전통인 순교신심을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침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설립됩니다. 남한 교회는 특히 사회사업과 교육사업 등 간접 선교 활동에 적극 나섭니다. 특히 일제 말에 휴간됐던 경향잡지, 경향신문, 가톨릭청년 등이 속간됐습니다. 일단의 뜻 있는 평신도들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다는 사명감으로 창간한 ‘천주교회보’도 1949년 4월 1일 다시 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선교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관심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교회 내 청년 활동과 가톨릭 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1949년 8월 26일에는 ‘대한천주교총연맹’이 결성됐습니다. ‘천주교회보’는 9월 1일자 사설에서 총연맹의 탄생을 축하하고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다양한 가톨릭 운동을 교회와 사회 안에서 직접 실천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大韓天主敎總聯盟結成 - 서울교구 연합청년회의 주최로 八월 二十二일부터 동 二十六일까지 가톨릭 하기대학강좌를 열었고 이를 기회로 하여 동 二十六일 오후 二시에 서울 명동대강당에서 천주교총연맹을 조직하였다. 서울교구를 비롯하야 각 교구 대표자 七十여명이 회동하야 전국적 최고 최대의 단체 대한천주교총연맹을 결성하게 된데 대하여서는 총재 노주교 각하의 열열하신 지도와 서울교구 유지제씨의 분투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연맹의 탄생을 축복하며 그의 발전을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천주교회보, 1949년 9월 1일자) 가톨릭운동의 다짐 총연맹 결성에 앞서, 그 해 봄에는 주교회의에서 전국 각 교구장 주교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최고기관인 중앙위원회’가 결성됐고 이로부터 한국교회의 ‘가톨릭운동을 지도하는 대방침이 결정’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행동체’가 필요했고, ‘그 수족이 될만한 강력하고 또 신자들의 총역량을 집결’할 단체가 요청됐던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대한천주교총연맹이 결성된 것입니다. 실로 총연맹은 가톨릭운동을 통합해 본격적인 신앙과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한국 가톨릭 평신도 운동의 중앙 추진 단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연맹은 교회내적으로는 일치와 단결을 강화해 운동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기하고, 대외적으로는 사회 각 분야에 가톨릭 정신을 보급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 한국 가톨릭 운동을 대표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천주교회보’는 이 뜻깊은 소식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촉구했습니다. “가톨릭운동은 가톨릭정신의 현양이 그 목적인만큼 모든 불순과 허위를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가 히구하는바는 연맹의 조직이 형식에만 그치지말고 실질적으로 三十만 신도의 총결합이 되어 진실한 의미의 가톨릭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천주교회보, 1949년 9월 1일자) 이처럼 남한교회는 해방공간 안에서 복음선포와 사회적 기여에 대한 각오와 기대를 갖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갑니다. 교황청의 지지와 관심, 미군정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천주교회는 안정을 도모하고 왕성한 선교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또다시 민족적 비극을 맞게 됩니다. 무신론과 공산주의에 대한 투쟁을 강화해 나가던 와중에 민족 상잔의 비극을 만나게 되고 분단이 고착화됩니다. 북한교회는 이른바 ‘침묵의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안에서 한국교회는 또 다시 스스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처신을 하게 됩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8면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교회는 성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드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후로 이 최후의 만찬은 교회 미술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단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일 것입니다. 가로 8.8미터 세로 4.6미터의 이 대형 벽화는 젖은 회반죽 위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기법의 프레스코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마른 석고 위에 템페라와 유화를 혼합하는 기법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 기법은 레오나르도가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것인데, 안타깝게도 내구성이 약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벽화는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험 정신은 르네상스와 잘 어울립니다. 이 그림은 루도비코 스포르차 일 모로가 레오나르도에게 의뢰한 것으로, 밀라노의 도미니코 수도원 식당 북쪽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1459년 밀라노에 진출한 도미니코 수도회는 스포르차 가문으로부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은총의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작은 경당과 안뜰이 있는 땅을 기증받았습니다. 이후 1463년부터 1469년까지 구이니포르테 솔라리가 ‘죽은 자들의 회랑’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경당’ 등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492년 밀라노의 새로운 공작 루도비코는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새로운 양식의 성당이 주변 도시의 대표적인 성당에 못지않게 세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솔라리가 세운 성당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성당은 철거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다행히 성당의 제단과 성가대석 부분만 철거하기로 하고 이 공사는 공작의 건축가인 브라만테에게 맡겨졌습니다. 브라만테는 돔이 있는 크로싱, 뒤쪽의 성가대석과 앱스 그리고 양쪽 트란셉트, 그리고 외부에 ‘개구리들의 회랑’과 ‘구 성구보관실’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성당에 원이라는 기하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중앙집중형 양식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크로싱은 정육면체 형태로 구성되었고, 그 위에 반구형 대형 돔이 얹혔습니다. 돔은 드럼이 받치고 있으며 그 아래 팬던티브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구형 돔은 원형이 지닌 기하학적 형태에 의해서 완벽함을 상징합니다. 그 아래로 거대한 둥근 아치가 정육면체의 네 면을 감싸고 있고, 그 가운데 두 개의 측면 아치는 반구형이면서 격자형의 천장이 있는 앱스와 이어지고, 두 개의 중앙 아치는 하나는 네이브 방향으로 또 하나는 성가대석 방향으로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성가대석은 크로싱의 반지름이 한 변을 이루는 작은 정사각형 형태이고, 양쪽의 트란셉트와 앱스도 같은 지름의 크기를 갖는 반구형 천장입니다. 또한 네이브의 폭도 앱스 및 성가대석의 폭과 같습니다. 성당의 외부 공사는 브라만테가 밀라노를 떠난 후에 이루어졌지만, 외관은 새롭게 구성된 장식 없이 내부 공간의 형태가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크로싱의 돔 하단 부분은 외부에서 보면 거대한 육면체 덩어리로 나타납니다. 그 위에 내부의 반구형 돔이 있는 부분은, 외부에서는 16각형으로 올라가다가 갤러리가 있고 지붕과 랜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앱스 형태의 양측 트란셉트는 외부에서도 반원형 공간으로 드러나며, 제단과 성가대석 부분 역시 육면체 공간과 반원형 앱스가 외부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종탑이 성가대석의 북쪽 면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갤러리 높이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육면체와 원통형 등의 기하학적 요소로 외관이 이루어진 것은 중세의 형태를 벗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 장식의 주를 이루는 테라코타와 화강암은 중세의 롬바르디아 지역주의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장식과 벽체, 그리고 기둥의 오더(고대 그리스 로마의 기둥 체계에 따른 양식) 등에서는 아직 중세와 르네상스의 중간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1492년 브라만테는 산탐브로조(성 암브로시오) 대성당의 북측에 밀라노 교구 사제들을 위한 사제관(canonica)을 세우고, 남측에는 시토회 수도자들을 위한 두 개의 회랑(chiostro)을 만들었습니다. 세 공간의 기본 요소는 아케이드이고 여기에 브루넬레스키식의 독립 원기둥 혹은 알베르티식의 벽기둥이 배치된 형태입니다. 먼저 사제관은 고대 로마의 포럼을 참조하여 네 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4개의 대형 출입구가 있는 평면으로 설계하였으나 실제로는 한 개만 세워졌으며 정사각형의 기둥이 큰 아치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특히 가지를 다듬은 통나무 형태의 기둥이 4개 있는데, 이는 비트루비우스가 말하는 건축 오더에 있어서 나무의 기원을 암시합니다. 브라만테는 대성당의 남측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이오니아식 회랑(chiostro ionico)과 도리스식 회랑(chiostro dorico)을 만들었습니다. 각각 이오니아 양식과 도리스 양식이 사용되었고, 이 가운데 높이가 7.5미터인 아치가 있는데 이는 식당이나 도서관 같은 2층 높이의 공간에 수도자들의 낮은 높이 방을 2층으로 구성한 결과입니다. 특히 도리스식 회랑은 우르비노 팔라초 두칼레의 중정과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고아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브라만테의 건축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브라만테가 밀라노 시기에 지은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 파비아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은 브루넬레스키의 초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많이 따랐습니다. 이는 밀라노의 장식 전통이 롬바르디아의 고전 영향으로 중세와의 연속성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산탐브로조 대성당의 사제관과 회랑 공사에서부터 브라만테는 알베르티의 영향으로 오더를 이용한 상징주의를 실험하였습니다. 오더에 있어서 상징성은 로마 고전 건축을 바탕으로 독립 원형 기둥을 다른 형태보다 우위에 두었습니다. 구조적 차원에서 원형 기둥을 주기둥으로 삼았고, 미적인 면에서도 고전 오더의 세 양식을 중심으로 원형 기둥의 기하학적인 명료성, 선형성, 부드러움, 리듬감 등을 표현하였습니다. 브라만테는 로마에서 활동하면서 오더의 상징주의를 더 발전시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20면

[영적 돌봄에 힘써 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3)] 예수님이 가진 ‘치유의 권위’에서 시작

영적 돌봄의 역할을 요구받은 교회 1900년대 전후로 남북전쟁(1861~1865)과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겪고 난 미국인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암담한 현실에서 미국인들에게는 주일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종교 지도자들의 강론이나 설교를 듣는 게 유일한 위로와 낙이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신학 과목만 가르쳤던 신학교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목을 배운 적이 없었다. 때문에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던 것은 강론이나 설교 뿐이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정서적으로 힘든 신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고, 이에 대한 해답을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가르치는 교회에서 돌봄과 치유의 교회로: CPE의 태동 ‘정신 분석 이론’을 사용해 정서적으로 힘든 신자들을 도우려 했던 종교지도자들 중에 성공회 엘우드 우스터(Elwood Worcester, 1862~1940) 신부가 있었다. 그는 뉴욕성공회신학교(GTS) 과정에 ‘실제적으로 사목에 도움이 되는 과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독일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품 후 보스톤에 있는 ‘엠마뉴엘 교회’의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신자들을 위한 개혁적인 일을 많이 하였는데, 특히 1906년에 신자들의 암울한 정서를 돕기 위해 의사들과 함께 상담을 하였다. 이것은 성직자가 교회에서 신자들을 위해 상담을 한 최초의 사건으로, 엠마뉴엘 교회에서 시작했다고 하여 ‘엠마뉴엘 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엘우드 우스터 신부가 이런 일을 한 이유는 그동안 교회가 소홀히 하였던 ‘예수님의 치유의 권위’를 다시 세워 신자들을 ‘돌보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치유 사목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이러한 생각은 CPE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그의 엠마뉴엘 운동은 훗날 CPE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CPE는 사목 상담이 생겨난 기반이 되었다. 실용적인 교육 방법론에 발맞춘 신학교육의 변화: CPE 교과목 도입 1870년 이후 미국 교육은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교육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하버드대학교 법대 교수들은 ‘사례연구(Case Study)’ 과목을 개설하여 법대생들에게 ‘강의가 아닌 실전을 위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획기적인 새로운 방법론의 탄생은 신학교의 교수들에게도 도전을 주었고 그래서 생겨난 교육이 바로 ‘CPE’ 교육이었다. CPE 교육은 신학교에서만 공부하던 신학생들을 병원 임상 현장으로 이끌었다. 신학생들은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면서 성찰하게 되는 ‘신학적 주제’와 신학교에서 배운 이론적 신학을 통합시키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신학교의 이런 교육 방법론의 변화는 이론 중심이었던 신학 교육을 현장의 사목 경험과 통합시켜 적용하는 이른바 ‘임상 신학’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글 _ 정무근 다미안 신부(한국CPE협회장·예수회)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6면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으로 함께 걷고자 합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8일 오전 10시(로마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봉헌하며 제267대 교황직에 공식 취임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에서 정의와 평화를 추구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상처받은 세계에서 화합하는 교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즉위 미사에는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단 대표자들이 참석해 교회일치를 위한 자리가 됐으며, 전 세계 100여 개국 정부 대표단도 한자리에 모여 세계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연대의 장을 마련했다. 즉위 미사가 열린 성 베드로 광장 안과 주변에는 약 2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해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를 기도 속에 축하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현주(그라시아)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등이 경축사절단으로 자리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봉헌에 앞서 오전 9시경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뒤 광장 바깥까지 나가 가까이에서 군중들을 대면했다. 친근한 교황의 모습에 군중들은 환호했다. 즉위 미사 시작 직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기도와 분향을 한 뒤 교황 목장을 손에 들고 제단으로 향했다. 교황직을 상징하는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복음서를 든 부제들이 교황의 앞에서 행렬했다. 교황 즉위 미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의식인 팔리움 수여는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이 맡았으며, 교황은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선 채로 팔리움을 받았다. 팔리움은 십자가가 수놓인 양털 띠로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의 사명을 상징한다. 어부의 반지는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쪽 약지에 끼워 줬다. 교황은 역시 선 채로 어부의 반지를 끼며 엷은 미소를 짓다가 감동한 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교황은 어부의 반지를 낌으로써 사람 낚는 어부였던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분명히 했다. 복음서를 전달받은 교황은 베드로 직무를 개시하는 미사 강론에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제가 교황으로 선택되어 두렵고 떨린다“면서 ”한 사람의 형제로서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으로 다가가 우리가 하나로 일치되길 바라는 주님 사랑의 길을 함께 걷겠다“고 말했다. 교황은 아울러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언급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더 가치 있는 것이 된다면 모든 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아울러 “성령의 빛과 힘에 의지해 하느님 사랑에 근거한 하나 되는 교회, 일치의 표징이 되는 교회, 인류의 화합에 촉매가 되는,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자”고 당부했다. 교황은 미사 후 각국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면서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즉위 미사에 참례한 뒤 교황을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레오 14세 교황님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라며 “교황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말미에 “가자지구와 미얀마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 분쟁지역에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자”고도 당부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