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우스 미술관, ‘쓸모없음’과 ‘쓸모있음’ 의미 되돌아보다

경기도 양평 구하우스 미술관(관장 구정순 아우구스티나)이 사물의 쓸모와 가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무용지물 유용지물: 버려진 나무조각, 예술로 피어나다’는 목재소에서 버려진 나무조각을 예술품으로 재탄생시켜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공예·조각·패션·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이 직접 나무조각을 사포질하고, 조립하는 등의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참여자들은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경험하며 기후위기 시대 속 ‘버려짐’, ‘재활용’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다. 구정순 관장을 비롯한 컬렉터 2인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쓰임이 있는 아름다운 공예’ 전시는 ‘쓰임’과 ‘예술적 삶’을 주제로 꾸려졌다. 작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그릇과 찻잔, 화병, 컵 등의 생활 속 오브제는 서로 다른 사람과 장소 속에서 의미를 더해 나간다. 이를 통해 창작자와 사용자, 작가와 소장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허명욱 작가는 수십 겹의 옻칠을 쌓아 올리는 과정을 통해 시간을 그려내며, 이난규 작가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 직접 사용해 온 공예품들로 관객들을 만난다. ‘사용을 통한 삶의 재구성’으로 예술이 어떻게 일상에 녹아드는지를 조명한다. 두 전시 모두 6월 29일까지.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14면

「6·25전쟁의 트라우마 」 참혹했던 전쟁 상처 치유하는 ‘생명과 존엄’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우리신학연구소가 「6·25전쟁의 트라우마」를 출간했다. 이 책은 단순한 전쟁사 서술을 넘어, 여전히 우리 사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전쟁의 상처와 아물지 못한 아픔을 성찰하며 치유와 화해의 실마리를 모색한다. 저자인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대전 산내 곤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마주한 참혹한 현실을 계기로 전쟁 피해의 실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됐다. 발굴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그에게 심한 몸살과도 같은 충격을 안겼고, 이 체험 이후 「가톨릭평론」에 연재한 글들을 바탕으로 이번 책을 엮어냈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저자는 "트라우마는 세대를 넘어 그대로 전수되거나 오히려 더 깊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2·3 내란 시기와 같은 현대의 정치적 사건 속에서도 6·25전쟁 피해자 유족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과거 국가 폭력의 상처는 현재의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반공·반북 정서, 미국에 대한 복합적 감정, 반중 정서, 군사독재 정당화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 속에도 이러한 트라우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책은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피난길의 참상, 연좌제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포탄에 파괴된 가정, 인민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 미군 오폭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전쟁이 개인들에게 남긴 깊은 공포와 상흔이 생생히 담겨 있다. 생존을 위해 본능에 충실해야 했던 선택, 때로는 남을 고발하거나 부역해야 했던 부끄러운 기억 등은 전쟁이 남긴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 이런 개인의 고통은 곧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로 확장됐다. 오랜 독재와 침묵의 세월 동안 상처들은 오랫동안 은폐되고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저자는 “이제야 겨우 그 트라우마를 돌아보기 시작했을 뿐”이라며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국가주의와 이념으로 왜곡된 ‘공식 기억’을 넘어, 한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볼 때 비로소 치유의 실마리가 잡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해자들은 기억과 해석의 권한을 쥐고 있고, 피해자들은 진실 규명의 첫 단계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 역사적 실어증을 풀어내기 위해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특별한 수식이나 해석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사실을 충실히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6·25전쟁의 트라우마」는 우리신학연구소 ‘기억과 기록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한국 민족사와 교회사 그리고 평신도 신학의 관점에서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기록하고 성찰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6·25전쟁의 실상과, 이 전쟁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를 새롭게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전쟁 중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15면

책으로 만나는 MZ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MZ세대 첫 번째 성인이 될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평범한 일상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성덕의 평범한 길’을 걸어간 현대 청년의 전형으로 불린다. 그의 시성을 앞두고 영성과 삶을 다룬 책자가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다. 최근 생활성서사는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를, 바오로딸은 만화로 그려진 「카를로 아쿠티스」를 내놓았다. ‘성체를 사랑한 소년, 카를로 아쿠티스’를 부제로 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는 증언과 사진으로 만나는 그의 공식 전기다. 유년 시절부터 임종까지의 삶은 물론 사후의 기적, 성덕에 대한 인식, 시복과 시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풍부한 생전 사진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별히 카를로 아쿠티스가 생전에 즐겨 그리고 사랑했던 반려견과 반려묘, 연, 묵주 등의 그림들도 수록돼 있어 성인의 삶과 내면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증언에서는 깊은 신앙심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도 특별한 모범을 보인 면이 드러난다. 그는 교회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만 국한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고 기쁘게 나눴다. 지인들은 ‘주님과 매우 가까웠던 아이’로 회상하며, 순수한 믿음과 따뜻한 인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만화를 통해 카를로 아쿠티스의 모습을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여느 십 대 아이들처럼 스포츠, 게임, 영화 등을 좋아했던 그는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복음을 전한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1884~1971)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수단인 인터넷으로 신앙을 전파했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과 성모 발현을 정리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많은 이에게 이를 알렸다. “내 삶의 목적은 언제나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많은 사람이 남을 모방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등 그가 남긴 말은 신앙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카를로 아쿠티스가 2006년 세상을 떠난 후, 전 세계적으로 그에 대한 공경은 급속히 확산했다. 이름을 딴 성당과 경당이 세계 곳곳에 세워졌고, 청소년 단체 등 다양한 공동체가 그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거와 새 교황 선출 등으로 연기됐던 시성식은 9월 7일 열릴 예정이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15면

‘2025 성미술 청년작가 공모전’ 당선 작가를 만나다

서울 명동 갤러리1898(관장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이 주최한 ‘2025 성미술 청년작가 공모전’에서 양승원(글로리아·27·서울대교구 신천동본당)·이재행(유스티노·26·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작가가 당선됐다. 두 작가는 오는 7월 갤러리1898에서 각각 수상 기념 개인전을 연다. 전시를 앞둔 두 작가를 만나 수상 소감과 전시 계획,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친 신심 등에 대해 들었다. ■ 양승원 작가, “주님 향한 사랑이 성미술의 길로 이끌어” 도자기 공예를 공부한 양승원 작가는 도예 분야로는 공모전 첫 수상자다. 양 작가는 먼저 “성미술 분야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아 얼떨떨한 동시에 계속해서 믿음을 갖고 작업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첫 번째 개인전을 여는 양 작가는 ‘손’을 주제로 한 15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도예와 가톨릭의 접점에서 출발한 전시로 ‘손’과 ‘흙’ 그리고 ‘기도’를 매개로 한 내면의 묵상을 보여 준다. 그에게 흙이란 내면의 신앙과 고민을 담아낸 그릇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흙은 불을 통해 단단해진다. 양 작가는 신앙과 믿음의 시간을 지나며 점점 정제되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기도하는 손을 나타낸 <손끝의 묵상>은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도자기를 만들듯, 기도할 때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데서 착안했다. 기도가 하느님께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기도를 통해 뾰족했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묵상을 담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을 그려 낸 그는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따뜻한 말을 걸 수 있다면 커다란 보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작가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건 든든한 백이 있는 것”이라며 “언제나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 덕분에 일상에서든, 작업에서든 당당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성미술의 길로 이끌었다”면서 “앞으로도 신앙의 끈을 붙잡고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의 신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위로의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이재행 작가, “가톨릭의 ‘뜻밖의’ 이미지 보여주고 싶었죠” 이재행 작가는 “좋은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감사한 마음”이라며 “공모전 수상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성모님’을 주제로 한 전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약 20점의 아크릴 회화 등을 선보이는 그는 “성모님은 무한대로 확장 가능한 주제로, 역사적이면서도 초역사적인 성모님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거북이를 안은 마리아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돌봐주는 성모님을 표현한 대표 작품이다. 이 작가에게 신앙은 그림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가치다. 한동안 무신론자가 되어 방황했던 시기와 불안했던 마음 등은 그를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끌었고, 다시 하느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다. 결국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며, 오직 자신만을 믿으며 나아갈 때 진리에서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현재 종교학과에 재학하며 종교와 인간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그림’과 ‘신앙’은 내면에 가득 찬 질문을 세상에 자유롭게 던지도록 한다. 때문에 그에게 가장 기쁨이 되는 순간은 그림을 통해 주변과 세상에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 줄 때다. 이 작가는 “가톨릭은 이미 완성된 진리지만, 그럼에도 관습적인 것이 아닌 ‘뜻밖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싶었다”며 “관람객들이 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담론의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일상의 주된 관심사인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싶다”며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양 작가의 전시는 7월 4일부터 13일, 이 작가의 전시는 7월 18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1898 제3전시실에서 열린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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