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도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처럼 학교같은 제도권 교육이 맞지 않는 청소년이 많아요. 그러면 학교에서만큼 쉽게 친구를 사귀거나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가 드물거든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제게 맞는 분야도 탐색하고, 꿈도 꿔보고, 또래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경험을 쌓고 있어요.” 3월 25일, 서울 동교동에 있는 재단법인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청소년문화공간JU(관장 양재모 안드레아 신부, 이하 JU)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포토샵, 바리스타, 일본어, 토론·글쓰기 등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토론·글쓰기 수업을 들은 전요한(17) 군은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공교육이 맞지 않아 대안학교에 다니던 전 군은 “한참 진로를 찾는 나이인데, 작가가 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며 자기만의 글을 매끄럽게 완성해 보였다. 이처럼 JU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교육권 보장과 자기 계발,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를 주고 사회진입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3월부터 11월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스스로 주인이 돼 배움을 선택하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공교육을 벗어난 청소년들은 3월 17일부터 월~토요일 JU에서 전문 강사들이 주마다 1회(2~3시간) 펼치는 수업을 통해 꿈과 진로를 찾고 자신을 계발하고 있다. 요리, 제과, 바리스타, 사진, 포토샵 등 희망 진로를 계발하고 관련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는 수업들은 물론 필라테스, 원어민 영어 대화, 영상, 작곡 등 자기 계발을 위한 문화 수업들도 마련됐다. 사업은 흔히 ‘자퇴생’이라는 부정적 시선 등으로 자기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고립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무사히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데서 의미를 지닌다. 박현우(율리안나) 사업팀장은 “이 청소년들은 더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판단·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여야 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불안함보다도 현재의 불안함을 더 크게 느낄 친구들에게 배움을 돕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다”고 전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돼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된 김예영(16) 양은 바리스타, 필라테스 등 수업뿐 아니라 4월 개강하는 제과 수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개신교 신자인 김 양은 “제과 기능사 자격증을 딸 것”이라며 “한때 아팠던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치유하는 것을 만들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웃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시 교육청 등록 대안교육기관인 JU는 문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검정고시, 대입 준비를 위한 학습 지원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과목을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1대 1 멘토링 수업으로 진행해 학습 기초부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까지 함께 한다. 청소년들의 문화 감수성과 유대감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뮤지컬, 연극, 영화 등 문화체험도 진행되며, 연 1회 청소년들이 스스로 기획·진행하는 여행도 떠난다. “모든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당연함을 이해하고,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귀함을,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면서 함께할 때 우리 또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장 양재모 신부는 “이렇듯 본당 주일학교 청소년이 아닌 교회 울타리 너머의 청소년들, 그것도 저마다 다양한 아픔이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을 지원하는 JU의 역할에 각별한 관심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4면

“태어날 예쁜 아기와 함께 성가정 꼭 이룰래요”

“또복아, 주님 은총 많이 받고 쑥쑥 커서 건강하게 엄마, 아빠랑 만나자.” 임신부와 태아의 희년을 맞아 임신 중인 여성 100여 명이 태아 축복을 받았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는 3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2025년 태아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날 미사 중 진행된 축복식에는 배우자와 가족들이 함께하며 축하했다. 축복식에 참석한 박혜정(체칠리아·인천교구 연희동본당) 씨는 “신앙을 물려주신 양가 부모님들이 지난 혼배미사 후 다시 한데 모여 배 속의 아기와 함께 축복 미사를 드려 기쁘다”며 태명 ‘또복’이의 건강을 기도했다. 울산에서 비신자인 남편과 함께 축복식에 온 송성영(안젤라·부산교구 무거본당) 씨는 “태아의 상태가 조금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도하러 왔다”고 전했으며, 임신 19주 차인 김나혜(소화 데레사·서울대교구 잠원동본당) 씨는 “태어날 아기에게 축복을 주는 특별한 미사에 우리 부부와 아기가 모두 함께해 성가정을 이루는 은총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태명 ‘오복’이를 임신한 부인과 축복식을 찾은 조유세(대건 안드레아·수원교구 동판교본당) 씨는 “첫 아이와 부부가 소중한 추억을 쌓고 오복이가 주님 안에서 밝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례했다”고 말했다. 축복식은 초저출산 시대에 하느님의 선물인 아기를 교회와 사회가 환대하고 건강한 출산을 도우며, 새 생명을 맞이하는 성가정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새 생명의 은총에 감사드리면서 그분의 창조 사업에 함께 이바지하는 자부심과 감사, 기쁨을 이 미사를 통해 함께 가져달라”며 “아기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아기를 하느님과 교회의 품에 맡기고 신앙으로 잘 양육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대주교는 축복식에서 모든 임신부에게 안수하며 태아들의 보호와 임신부의 건강을 간구했다. 또한 이날 참가 가정에는 정 대주교 명의의 ‘가정 축복장’과 배냇저고리 등 소정의 선물이 전달됐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3면

북향민 자녀 공동생활가정 ‘베타니아’ 설립 10주년 기념미사 봉헌

북향민 자녀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 ‘베타니아’(시설장 이선중 로마나 수녀)는 3월 30일 서울 정릉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본원 성당에서 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 주례로 설립 1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베타니아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2015년 3월 30일 설립했다. 미사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를 비롯한 민족화해 분야 사제단이 공동집전했으며, 베타니아 은인과 후원자 등 150여 명이 참례해 지난 10년간 북향민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돌봐 온 베타니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이기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북한에서 태어난 저는 지난 50년 동안 사제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북향민들과 함께했을 때”라며 “세상에 지쳐 방황할 때 여러분들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신다”면서 “10년 동안 베타니아를 거쳐 간 이들과 은인들, 후원자들, 베타니아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1932년 북한 평양에서 설립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6·25전쟁 중 남한으로 내려와 민족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어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북향민 부모의 자립과 그 자녀들의 안정적 성장을 모두 돕는 것이 베타니아의 설립 목적이다. 이선중 수녀는 미사 후 이어진 기념식 인사말에서 “은인들 덕분으로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어 감사하다”며 “베타니아가 민족화해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3면

‘환대와 화해’ 모임…이주민·난민 현실 나눠

예수회 동아시아태평양지구 이주민과 난민 네트워크가 ‘환대와 화해’를 주제로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모임을 개최하고, 활동가 초빙 강의와 현장 방문으로 이주민과 난민의 현실을 되짚었다. 회의에는 약 30명의 예수회 사제와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28일에 ‘환대’에 대해 강의한 NARI 대표 김종호 목사는 “환대는 손님이나 방문객, 낯선 사람을 친절하고 관대하게 맞이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숙식을 제공하고 개인이 환영받고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며 “미국에 아내와 함께 살 때 겪은 환대의 모습, 또 우리 부부가 막내를 입양해 한 가족이 되며 알게 된 것은 ‘환대’는 우리 자신의 삶도 바꿔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제 세계는 난민, 이주민, 유학생부터 여행객까지 전보다 더 많은 이주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르게 난민에 대해 부정적이고 일부 국민들도 무슬림 등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배척 감정이 있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타인을 향해 환대하도록 부르고 계신다”고 말했다. 모임 일정 중에는 손건웅 이주민 활동가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황필규 변호사가 국내 이주민과 난민의 실태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DMZ 지역 투어를 통해 남북분단 현장을 방문하고, 김포 이웃살이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등 각지에서 온 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4면

꽁꽁 얼어붙은 땅 깨우며 “건강한 지구를 부탁해”

식목일을 앞두고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신자들이 150여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자연 생태계 보존의 의미를 되새겼다.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는 교구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실천 중 하나로 3월 29일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에서 식목행사 ‘나무야 부탁해’를 개최했다. 모집인원은 100명이었지만 관심 있는 신자들이 몰려 초·중고등부 주일학교, 단체, 가족, 수도자 등 150여 명이 넘게 참가했다. 행사는 성지가 나무를 심기 위해 미리 준비한 부지에서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에메랄드 블루애로우, 플라밍고 셀릭스, 황금회화나무, 계수나무 등 150여 그루를 심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삽을 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나무 심기에 알맞은 깊이로 파 내려갔다.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모종삽이라도 들고 교사, 부모님을 따라 힘을 보탰다. 크기가 성인 남성 덩치만 한 계수나무 묘목은 굴삭기로 파 놓은 더 깊은 구덩이에 심었다. 묘목을 옮기는 데만 두세 명이 달려들었다. 비교적 쌀쌀한 날씨임에도 나무 심기가 반 정도 흘렀을 때 참가자들은 어느새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 청소년 참가자 중에는 나무 심기가 처음인 학생들도 많았다. 제1대리구 권선동본당 임채민(바오로) 군은 “나무를 직접 심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흙을 파고 물을 뿌린 뒤 나무를 심는 생각보다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나무가 자리를 잡는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오늘 두세 그루를 심어봤는데 앞으로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임 군의 아버지 임경택(베드로) 씨는 “최근 전국적으로 산불이 많이 나 이재민이 많이 발생하고 나무도 많이 불에 탄 만큼 오늘 행사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릴 적에는 나무를 심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자연 생태계에 보탬이 되는 경험을 가족과 함께하게 돼 뜻깊은 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식목행사가 마무리되자 전체 부지의 4분의 1이 참가자들의 정성이 담긴 묘목들로 채워졌다. 특히 이날 심은 나무들 앞에는 참가자 청소년들의 이름을 새긴 표지판이 세워진다. 올해로 4번째 식목행사를 해 오고 있는 생태환경위는 행사를 꾸준히 개최해 부지를 모두 나무로 채울 계획이다. 위원장 양기석 신부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는 탄소중립으로, 일반인이 탄소중립에 참여할 수 있는 쉬운 실천이 바로 나무를 심는 것”이라며 “특히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뒤 에덴동산을 잘 일구고 돌보라고 명령하셨듯이(창세기 2,15 참조) 지구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고 사람도 쉴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식목행사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면

은평성모병원 호스피스 환자의 조금 특별한 콘서트

“내가 보살피던 아이가 이제 나를 보살피는구나. 고맙다. 이제 점점 잠자는 시간이 많아질 테지.”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와 눈물 닦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한부 엄마는 자작시를 낭송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미소 지으며 경청했다. 조금 특별한 콘서트 ‘엄마와 아들이 함께하는 세상을 향한 고백’이 3월 27일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병원장 배시현 프란치스코 교수, 이하 병원) 로비에서 열렸다. 호스피스 환자 박지수(루치아) 씨의 첫째 아들 임현민(라파엘) 씨는 출판을 앞두고 있는 박 씨의 자작시 50여 편 중 <치유의 숲>을 낭송했다. 박 씨는 2019년 위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한 달 전 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이하 센터)에 입원했다. 호스피스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센터의 ‘심청이’ 코너를 통해 성사된 이번 콘서트에 박 씨는 자신이 직접 장만한 순백의 수의를 입고 등장했다. 통증 속에서도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함께한 박 씨는 “센터는 천국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아주 귀한 자리”라며 “슬기롭게 여러 가지를 정리하면서 평화롭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분들께 센터가 가족과 본인을 되돌아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임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jtbc ‘팬텀싱어 4’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인 둘째 아들 임현준(미카엘) 씨는 어머니와 <여정>, <태양의 찬가> 등을 함께 불러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한 임 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이런 무대를 꼭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가 정말 좋은 선물이 됐다”고 밝혔다. 콘서트를 주최한 센터 팀장 조은경 수녀(마리아·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는 “호스피스 센터가 어둡고 두려운 죽음이 아닌, 부활이라는 밝고 희망찬 순간을 맞이하는 곳임을 알리고 싶은 박 씨의 순수한 취지를 살려 이 자리가 마련됐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5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한반도 평화 특별 미사 봉헌

국제가톨릭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Pax Christi Korea, 상임대표 이성훈 안셀모, 이하 PCK)는 3월 20일 서울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 PCK 공동대표 강우일 주교(베드로·전 제주교구장) 주례로 한반도 평화 특별 미사를 봉헌하고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미사와 정기총회는 PCK 회원들이 ‘구조적 죄’인 무관심을 극복하는 연대 정신으로 국내·외 비평화의 도전들에 맞서 활동할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됐다. “형이상학적 죄는 인간 연대의 절대적 결핍에서 나온다. … 내가 있는 곳에서 불법과 범죄가 자행되고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나는 살아남았다면, 내 안에서 하나의 소리가 들리고, 이를 통해 나는 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나의 죄다. 형이상학적 죄를 판단할 자는 오직 하느님뿐이다.”(칼 야스퍼스 「죄의 문제」 참조) “공포정치는 지도층의 범죄에 독일 국민이 동참하게 되는 놀라운 현상을 초래했다. 국민은 복종하는 자에서 공범자로 변모했다. 물론 제한된 범위에서만 그랬지만, 우리가 도저히 그런 짓을 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 가령 가정적인 아버지들이나 의무에 따라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성실한 시민들이 마찬가지로 의무에 따라 타인을 살해하고 강제수용소에서 명령에 따라 잔혹 행위를 완수했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참조) 강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은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와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해 “내가 범죄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바(상호 연대와 공동책임)를 행하지 않았다면 그 죄는 내게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자유주의로 빈부 격차는 심화하고, 내국인과 이주민·난민 사이 벽은 높아지고, 정치적 보수·진보 갈등은 커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사 후 열린 정기총회에서 PCK는 올해 지속적인 회원 확대와 평화 교육, ‘한반도평화행동’ 등 시민 평화단체와의 연대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7월 27일 정전기념일에 DMZ 평화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는 일본 원폭 투하 80년을 맞은 시점에서 국제적 핵무기 금지 캠페인에 동참하고자 팍스 로마나 가톨릭대학생국제운동(IMCS)과 함께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 순례와 국제 가톨릭평화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히로시마 포럼에는 PCK 공동대표 강 주교와 고문 이기헌 주교(베드로·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전 위원장)가 PCK 회원 및 대학생·청년들과 동행할 예정이다. 또 6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리는 가톨릭평화포럼에서는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계 평화의 날(1월 1일) 메시지에 따라 ‘군비를 기아, 교육 및 기후에 전환하는 방안과 인공지능과 평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실천을 모색할 예정이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6면

한국평단협, 안중근 의사·독립운동가 위한 추모 미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안재홍 베다, 담당 김연범 안토니오 신부, 이하 한국평단협)는 3월 29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안중근 의사와 천주교 독립운동가를 위한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추모 미사는 한국평단협과 독립기념관이 광복 80주년과 안중근(토마스) 의사 순국 115주기를 맞아 마련한 ‘2025 한국 독립운동과 천주교’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미사를 주례한 대전교구 천안신부동본당 주임 겸 천안동부지구장 곽명호(루카) 신부는 강론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하셔야 할 일을 아셨기에 십자가 죽음으로 가셨듯 안 의사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기에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의거를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독립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안 의사를 비롯한 독립 유공자들에게 큰 빚이 있다”며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계승해 나라를 굳건히 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 나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추모 미사 후에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뮤지컬 형식으로 담은 다큐콘서트 ‘도마 안중근과 어머니 조마리아’ 공연도 열렸다. 한국평단협 안재홍 회장은 광복 80주년 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로 충청남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한편 ‘2025 한국 독립운동과 천주교’ 행사는 4월 16일까지 독립기념관 경내에서 이어진다. ‘한국 독립운동과 천주교’ 특별기획전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안중근 의사와 그 가문 ▲3·1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 ▲일제 말, 파시즘전쟁에 협력하지 않은 천주교인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운 천주교 신부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전시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사진, 영상 등 총 66점이 공개된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회고, 수기, 일제의 재판 기록 등을 적극 활용해 천주교 독립운동가들의 생각과 독립 의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기, 캘리그라피 쓰기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열린다. 프로그램 참가 신청은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능하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4면

빌렘 신부 편지로 알아보는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토마스. 1879~1910)는 독립운동가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지킨 가톨릭신자이기도 하다. 파리 외방 전교회 빌렘 신부(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1938)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후의 행적을 다수의 편지에 남겨 놓았다. 빌렘 신부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독립운동가이자 신앙인으로서 안 의사의 면모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안 의사와 관련해 빌렘 신부가 쓴 편지들(연례 보고서 포함)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이하 연구소)가 2020년에 펴낸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에 1896년 12월 6일자부터 1914년 2월 12일자까지 날짜순으로 모두 26통이 수록돼 있다. 또한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빌렘 신부가 1910년 6월 24일자, 1910년 9월 28일자로 작성한 편지 등도 연구소가 초벌 번역해 놓은 상태여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소가 번역한 빌렘 신부의 편지들은 안 의사가 가톨릭 신앙을 키운 장소인 황해도 청계동본당에서의 신앙활동, 아버지 안태훈(베드로) 등 안 의사 가문의 사람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안 의사의 독립운동, 거사 후 순국을 앞둔 시점에서 빌렘 신부와 안 의사의 만남, 안 의사 순국 후의 상황 등을 자세히 전해준다. 빌렘 신부 편지들 중 안 의사의 행적을 직접적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1906년 2월 23일자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빌렘 신부는 안 의사가 1905년 반일운동을 위해 갑자기 중국 상하이로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빌렘 신부가 작성해 조선대목구장이던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10~1911년 연례 보고서에서는 “제가 어느 사형수에게 목자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다는 이유로 주교님께서 내리신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에 대해 저는 작년 보고서에서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 허락 없이 1910년 3월 9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해 징계를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 빌렘 신부는 같은 보고서에서 “주교님께서 이 사형수에게 하신 터무니없고 가혹하며 교회 법규에 반하는 말도 안 되는 그 성사 거절에 대해 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항변하고 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이후인 1912년 3월 19일 작성한 편지에서는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 의사를 면회하던 상황을 기록했다. 이 편지에는 안 의사가 같은 해 2월 17일 빌렘 신부에게 전보를 보내 “사형선고 받음. 급히 오십시오”라고 요청한 사실, 빌렘 신부가 뤼순까지 가는 시간을 배려해 사형 집행 당국에서 사형 집행일을 본래 2월 26일에서 그해 성 금요일인 3월 25일로 연기한 사실도 적혀 있다. 안 의사는 3월 26일 순국했다. 편지를 보면, 빌렘 신부는 3월 8일 안 의사를 면회하기 위해 처음 대면할 때 “아, 가엾은 토마스,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라고 탄식했다. 같은 날짜 편지에는 안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의연하게 교수형 집행을 당하던 장면도 묘사돼 있다.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은 1910년 9월 28일자 편지를 통해서도 안중근 의사에게 성사 집전을 허락하지 않은 뮈텔 주교에 대한 빌렘 신부의 비난, 안 의사 가족들이 빌렘 신부에게 급히 뤼순으로 와달라고 간청했던 사실, 안 의사가 어머니의 말에 따라 1심 판결에 항소하기를 거부했던 강직함을 읽을 수 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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