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절차는 청빈하고 검소하게 교황직을 수행했던 모습 그대로 진행됐다. 교황의 장례는 2024년 4월 교황의 승인으로 개정된 「교황 장례 예식서」(Ordo Exsequiarum Romani Pontificis)에 따라 품위 있으면서도 모든 다른 신자들의 장례 예식과 마찬가지로 간소하게 치러진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삼중 관 대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목관이 사용됐고, 신자들은 열린 관 안에 안치된 교황의 시신 앞에서 참배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발표부터, 입관, 시신 운구, 신자들의 조문 행렬 그리고 교황이 남긴 유언을 소개한다. 교황청 궁무처장 패럴 추기경, 교황 선종 사실 발표 교황이 선종했다는 사실은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패럴 추기경이 4월 21일 오전 10시경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이탈리아어로 발표했다. 패럴 추기경은 생방송으로 송출된 선종 발표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깊은 슬픔을 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을 발표한다”며 “오늘 오전 7시35분 로마의 주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님은 전 생애를 하느님과 교회를 위한 봉사에 바쳤고, 특히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보편적 사랑을 지향하며 충실하고 용기 있게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셨다”고 밝혔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교황의 선종 원인은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이었다. 바티칸 시국 보건국 안드레아 아르칸젤리 국장은 22일 저녁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했고, 교황청에 거주하고 있는 교황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회복 불가능한 심부전을 일으켜 2025년 4월 21일 오전 7시35분 선종했음을 확인한다”고 작성한 서류에 서명했다. 교황청 공보부는 이 내용을 발표했다. 교황청의 22일 발표에 따르면, 교황은 20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봉헌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지는 못했지만 이날 낮 12시경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부활 담화(Urbi et Orbi)를 발표한 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약 15분 동안 교황 전용차를 타고 신자들과 몇몇 아기들을 축복했다. 이후 21일 오전 이른 시간에 혼수상태에 빠져들기 전 간병인인 마시밀리아노 스트라페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평화롭게 선종했다. 교황의 시신을 관에 안치하는 입관예절은 21일 오후 8시 성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패럴 추기경이 주례했으며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 교황의 가족들, 의료진 등이 참석했다. 같은 날, 교황의 선종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조치로서 패럴 추기경은 성녀 마르타의 집 출입문을 봉인했다. 교황, 유언장에서 “로마 성모대성당에 묻어 달라” 교황청은 21일 교황 선종 후 수 시간이 지나 교황의 유언을 공개했다. 교황은 2022년 6월 29일에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작성한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시신을 로마 성모대성당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또한 유언장에서 “무덤은 지면 아래 있어야 하며,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Franciscus’(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한다”면서 “제 무덤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경비는 한 은인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청은 교황이 평소 가난한 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점을 고려해 성모대성당에서 진행되는 안장예식에 가난한 이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초청했다. 교황의 장례 기간 중 성모대성당에도 많은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관 운구 예식은 4월 23일 거행됐다. 교황청 궁무처장 패럴 추기경이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교황의 영혼을 위해 짧은 기도를 바치면서 운구 예식이 시작됐다. 14명이 관을 들고 성녀 마르타의 집 경당을 나와 성 베드로 광장 등을 거쳐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제대 앞에 관을 안치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있던 2만여 명의 군중들은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를 때 경건하게 박수를 치기도 했다. 패럴 추기경은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된 뒤 말씀의 전례와 분향 예식을 주례했다. 성가대는 교황의 안식을 빌며 라틴어로 성인 호칭 기도를 불렀고, 추기경들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은 교황의 관을 바라보며 깊은 경의를 표했다. 신자들 3~5시간 기다려 조문 성 베드로 대성당은 23일 자정까지, 24일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25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신자들의 조문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25일 오후 8시에는 관 봉인 예식을 엄수했다. 교황 선종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신자들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등 추모 열기가 교황청을 휩쌌다. 성 베드로 대성당 수석사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 교황 선종 당일 오후 대성당 계단에서 묵주기도를 바쳤고, 교황청 직원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식했던 꽃들을 거둬들였다. 감베티 추기경은 함께 묵주기도를 바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출입구”라고 위로했다.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안치되고 23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부터 신자들과 시민들의 조문이 시작됐다. 수만 명의 조문객들은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까지 줄을 서 기다리면서 교황을 추모했고, 처음 9시간 동안에만 1만9000명이 조문했다. 조문객들이 계속 몰려오자 성 베드로 대성당은 본래 발표했던 조문 시간을 연장해 자정에서 새벽 5시30분 사이에도 조문을 허용했다.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회의 개혁과 쇄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교황직 수행의 역사와 업적을 살펴본다. 2013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베드로 사도의 계승자로 선출됐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새 교황의 첫 모습을 보기 위해 어두워진 성 베드로 광장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들 앞에 그가 나섰을 때,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면모가 시작됐다. 교황을 드러내는 아무런 상징도 없이 그저 소박한 흰색 수단을 입은 교황은 이탈리아인들의 일상적 저녁 인사인 ‘보나 세라’(Bouna sera)로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교황으로서 온 세상에 축복을 내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 백성에게 겸손하게 기도를 청했다. 그리고 자신은 ‘세례받은 이들 중 한 명’으로 소개함으로 교황이기 앞서 하느님 백성의 일원임을 드러냈다. 그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 아시시의 ‘가난한 작은 사람’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정했다. 선출 직후 그는 콘클라베 기간 머물렀던 숙소로 돌아가 자신의 짐을 직접 싸고 숙박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교황궁을 마다하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 거주하기로 했는데, 이는 흔히 짐작하듯 그저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지향만은 아니다. 교황궁 자체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람들이 모이는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쩌면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복음의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던 듯하다. 그는 ‘사목자’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이민자 가정 출신 바티칸공의회 가르침 따라 살며 빈민들과 어울리고 청빈 실천 잘못 판단하고 단죄하기보다는 아픔 껴안고 자비 베풀던 사목자 ■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목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8년 3월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1969년 12월 13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큰 영향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록 공의회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과 사제직은 공의회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고, 실제로 교황 재임 내내 공의회의 가르침을 모든 교황직 수행의 근간으로 삼았다. 1973년 예수회 종신서원을 한 그는 같은 해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임명됐다. 불과 36살의 나이였다. 그리고 1992년 5월 베르골료 신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됐고 1998년에는 대교구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주교직 수행의 시기는 훗날 그가 교황이 되어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면서 보여준 신학적 전망과 사목직 수행의 바탕이 됐다. 그는 250만 명 이상의 교구민이 있는 대교구를 이끌면서 스스로를 ‘사람들 가까이 있는 목자’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버스로 이동했고 거리낌 없이 빈민가를 방문했으며 소박한 아파트에서 직접 요리를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호르헤 신부’로 불렀다. 당시 그의 사목 활동의 요체는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빈민가에 거주하며 사목하는 ‘빈민가 사제단’을 창설해 항상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고 둘째, 민중 신앙과 대중 신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셋째, 교회가 제대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교적 전망, 그리고 넷째 성직자를 사회의 지배 계급의 일부로 보는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에 거슬러 성직자의 특권을 거부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 그리고 사제와 주교직을 수행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사목 활동의 체험과 가난한 이들과의 삶은 그의 교황직 수행 안에서 깊은 연관성을 드러내며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 발표된 ‘아파레시다 문서’ 수석 편집자로서의 체험이 더해진다. 이 문서는 대륙적 선교를 촉구하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 하느님 자비의 교황 교황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7월 22일 교황은 첫 해외순방지인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성애 사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누군가 동성애자인데, 그가 주님을 찾고 선의를 가졌다면 제가 그를 어떻게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는 판단과 단죄보다는 위로와 격려, 치유의 하느님을 선포하는 사목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대답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013년 3월 17일 교황이 된 후 첫 주일 삼종기도 자리에서 그는 위험한 진보주의자로 여겨졌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말을 인용해 “자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말했다. 교황 선출 당시부터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가 교황직의 키워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자비로써 하느님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하기를 원했던 교황은 2014년과 2015년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를 소집했다. 피임, 동성애, 이혼 후 재혼자의 영성체 허용 등 민감한 현안들을 다룬 시노드 후속 문헌으로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이 반포됐다. 물론 교황은 성과 생명, 가정에 대한 교리를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명백히 사목적 차원에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즉 현대 가정의 잘못된 행동들을 단죄하기보다는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은 또 2015년 3월 13일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고 4월 11일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을 반포했다. 교황은 「자비의 얼굴」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종 학살, 집단 살육이 자행된 20세기에 이어 여전히 계속되는 비극적 상황들을 우려하며 특히 가난한 이들을 걱정했다. 그래서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항상 찾아 나섰다. 변방으로 나아가는 교회,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의 표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활동과 교회 통치의 바탕이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큼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의에 단호했다. 불의한 현실과 세력에 대한 그의 분노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와 전 세계 빈곤 지역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가난한 이들의 현실로부터, 그는 경제 정의를 교황직 수행의 주요한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인간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절대적 금지인 것처럼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반포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는 이른바 통합생태론, 즉 자연생태와 인간생태가 깊이 연관됐다고 피력했다. 공동의 집 지구 환경이 파괴될 위험에 직면해 있고 그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이들이다. 여기에서 교황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 환경 보호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 지향 불의한 헌신과 생태 위기 경고 교회 직면한 과제 해결하고자 새로운 법과 제도 틀 마련하고 ‘시노달리타스’ 주제 시노드 개최 ■ 개혁과 쇄신의 교황 교황은 교회가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는 당연히 교회의 개혁과 쇄신으로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의 또 한 가지 축은 개혁과 쇄신이었다. 그가 교황에 선출됐던 당시 가톨릭교회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었다. 교회 안에 침투한 세속화로 사회적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수십 년간 이어진 고질적인 성직자 성학대 추문으로 도덕적 위신도 무너졌다. 교회는 사회적 위신도,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도 잃은 듯했다. 그는 자신의 교황직 수행의 청사진으로 여겨졌던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나그넷길에 있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 또 인간적인 지상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이 개혁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받고 있다”(일치교령, 6항)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인용하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을 강조했다. 교회 쇄신은 당시 두 가지 큰 과제의 해결을 먼저 요구했다. 하나는 교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성직자 성학대 추문, 다른 하나는 교황청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 문제였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교황은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새 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교황직과 보편교회의 중앙 조직들’의 개혁과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보편교회 쇄신의 방향성은 당연하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특히 「교회헌장」이 제시하는,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친교의 교회론에 바탕을 둔다. 그는 스스로 ‘세례받은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로마의 주교’라고 칭하며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서보다는 다른 주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고자 했다. 또 교황청 각 부서와 교회의 여러 직무에 평신도들, 특히 여성의 참여를 확대했다. 그 정점에 이른 것이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였다. 3년 여의 긴 여정 동안 진행된 이번 시노드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시노드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하느님 백성의 의견을 교구와 본당 단계에서부터 실질적으로 경청하는 단계를 강화했고,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와 수도자들이 투표권을 갖고 참여했다. ■ 긴장과 갈등 재위 초기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저항은 단지 스타일의 차이나 언론의 과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6년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이 이혼 후 재혼 신자의 영성체 허용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열게 되자 보수파의 반발이 강경해졌다. 미국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 등 5명의 추기경이 5가지 교리적 질문을 제기했다. 2018년에는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과 교황청이 시어도어 맥캐릭 추기경의 성학대 사건을 은폐했다고 공개 비난하며 교황에게 사임을 요구했다. 도전은 보수진영 그 반대쪽으로부터도 다가왔다. 독일교회의 ‘시노드의 길’(Synodal Path) 추진 문제다. 독일의 주교와 평신도들은 교회 개혁의 ‘속도 조절’ 경고에 전혀 응답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논쟁적 개혁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과 쇄신 작업이 온전히 궤도에 오르지는 않은 상태에서 후임 교황은 아직 성숙되지 않은 개혁과 여전히 이어지는 긴장과 갈등을 다시 하나로 이끌어야 하는 고된 사목적 도전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혁과 쇄신의 문이 아직 활짝 열리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잠금쇠는 열렸고, 그 문을 다시 잠글 수는 없는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삼천년기 쇄신된 교회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걸어온 길 >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58년 3월 11일 예수회 입회 1969년 12월 13일 사제품 1992년 6월 27일 주교품(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보좌주교) 1997년 6월 3일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부대교구장 임명 1998년 2월 28일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 착좌 2001년 2월 21일 추기경 서임 2013년 3월 13일 교황 선출 2013년 4월 13일 교황청 개혁 위한 추기경위원회 구성 2013년 7월 5일 회칙 「신앙의 빛」 반포 2013년 7월 8일 람페두사 사목방문 2013년 11월 26일 권고 「복음의 기쁨」 반포 2014년 8월 14일 대한민국 사목방문 2015년 6월 18일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2015년 11월 29일 ‘자비의 희년’ 선포 2016년 4월 8일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2018년 4월 12일 칠레 성직자 성추행 사과 2018년 4월 21일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 첫 여성 위원 임명 2018년 9월 22일 중국과 주교 선출에 관한 ‘잠정협약’ 체결 2019년 2월 21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 소집 2020년 3월 27일 코로나19 팬데믹 겪는 인류 위해 특별 강복 2020년 10월 4일 회칙 「모든 형제들에게」 반포 2021년 10월 10일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 개막 2022년 3월 19일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 반포 2024년 10월 24일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반포 2025년 4월 21일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교회는 깊은 애도 속에 조용한 기도의 물결로 추모의 시간을 열었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공식 분향소를 서울 주한 교황대사관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설치했으며, 명동대성당에서는 4월 22일 오후 3시부터 공식 조문이 시작됐다. 또한 전국 각 교구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에 따라, 교구 상황에 맞게 주교좌성당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미사를 거행하며 애도의 마음을 모았다.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분향소에는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를 비롯한 서울대교구 주교단이 가장 먼저 조문했다. 추모를 마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모두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를 청하면서, “항상 약자와 소수자들을 껴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뜻을 잘 받들어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오후 5시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가 이철수(스테파노) 신부 등 주교회의 사제단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이 외에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안철수(하상 바오로) 국민의힘 의원 등 정부 및 정치계 인사들도 분향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서울대교구는 25일 오전 10시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구 공식 추모 미사를 봉헌한다. 교황대사관 분향소는 23일 9시30분부터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대구대교구도 22일 오후부터 주교좌계산대성당과 주교좌범어대성당, 월성성당을 비롯해 포항 죽도성당과 구미 원평성당에 교황의 장례미사까지 분향소를 설치했다. 23일 오후 7시30분에는 주교좌계산대성당에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24일 오전 10시30분에는 주교좌범어대성당에서 총대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 주례로 추모미사가 봉헌된다. 광주대교구(교구장 옥현진 시몬 대주교)는 24일부터 26일까지 교구청 성당 내에 공식 분향소를 열고 매일 오전 추모미사를 봉헌한다. >>>>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교구별 분향소와 추모미사 정보 남녀수도회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와 영성을 기리며 추모에 함께했다. 2014년 교황 방한 당시 방문했던 음성 꽃동네 남녀 수도자들은 선종 당일 저녁 분향소를 설치했고,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4월 22일 오전 6시30분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에도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문재인(티모테오)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해 주셨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을 직접 방문할 뜻이 있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해 주셨던 교황님의 격려와 성원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서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며 마음에 평온을 빌어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팝페라가수 임형주(대건 안드레아) 씨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시자 전 세계인의 따스한 멘토셨던 당신 앞에서 노래하고 단독알현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한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염수정 추기경, 이용훈 주교, 임민균 신부(그레고리오·주교회의 홍보국장)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 참례를 위한 조문단으로 꾸렸다. 조문단은 4월 23일 출국한다. 아울러 신자들에게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9일 기도를 권장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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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예수회 한국관구, 서강대에서 추모미사 봉헌

예수회 한국관구(관구장 김용수 파스칼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추모하고, 2014년 방한 당시 교황이 예수회 공동체에 보여줬던 따뜻한 성품과 진심 어린 조언을 되새겼다. 예수회 한국관구는 4월 24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학교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김용수 신부와 서강대학교 총장 심종혁(루카) 신부 등 예수회 사제 50여 명을 비롯해 서강대 교직원과 신자 등 4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김용수 신부는 강론에서 “교황님께서는 예수회 설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인이 보여준 삶의 모범을 따라 선종하시는 그날까지도 예수님과 깊이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셨다”며 “교황님이 묻히시길 원하신 로마 성모 대성당도 이냐시오 성인이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한 곳”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또한 교황님은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 수련을 당신 말씀과 행동을 통해 충실히 살아내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참례자들은 특히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 한국관구를 방문했던 생생한 기억을 떠올렸다. 김 신부는 “교황님은 한국 예수회 사제들에게 ‘성직자이기 이전에 양 냄새 나는 사목자로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며 “실제로 교황님은 몸소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 위로의 사명을 수행하셨다”고 말했다. 심종혁 신부도 추모 메시지를 통해 “교황님의 선종 소식에 깊은 슬픔과 상실감 안에서 기도를 올린다”며 “교황님이 방한 당시 서강대학교를 찾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던 그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교황님을 위해 기도드릴 시간”이라고 전했다. 이어 “가난한 이들과 지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신 교황님의 뜻을 기억하며 영원한 평화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 일정 중 예수회와 서강대를 깜짝 방문하는 등 특유의 소탈하고 검소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예수회에 따르면 당시 교황이 앉았던 의자가 지금도 예수회센터에 그대로 놓여 있다. 미사 후에는 추모식과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예수회는 성 이냐시오 성당 제대 앞에 차려진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를 오는 25일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남다른 한국 사랑…한반도 평화 염원

■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을 전했다. 브라질, 중동 지역에 이은 세 번째 방문이었다. 브라질 방문은 전임 교황 때부터 예정된 세계청년대회 참석이었고, 중동 방문은 성지를 방문하며 그리스도교 일치를 촉구했던 점을 생각하면, 방한은 교황이 사실상 처음으로 지역 교회 공동체와 친교를 나누는 사목 방문이었다. 고위 성직자 임명에서도 한국교회를 향한 교황의 각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황은 2014년 염수정(안드레아) 대주교를, 2022년에는 유흥식(라자로)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은 모두 4명으로, 그중 절반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특히 2021년 유흥식 추기경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불러들였다. 교황의 최측근이자, 보편교회의 핵심부서 책임자에 최초로 한국교회 인사를 발탁한 것이었다. 아시아인 교황청 장관으로는 5번째다. 이 인사로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교황과 한국교회가 더욱 밀접해지는 계기도 됐다. 고위 성직자만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 여성 독서직을 수여할 때도 수여자 6명 중에 한국인을 포함시키는 등 한국 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 아파하는 이들 곁에 한국을 사랑한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한국 사회에서도 더 아파하는 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2014년 방한 당시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고, 유가족에게 세례를 집전하며, 노란 배지를 단 채 방한 일정에 임하는 등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과 한국의 모든 이들을 따듯하게 감쌌다. 세월호 추모 행동이 미칠 정치적 영향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교황은 이듬해인 2015년 로마에서 열린 한국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앗 리미나) 중 한국주교들과 둘러앉아 첫 화두로 “세월호 사태는 어떻게 정리됐는지”를 묻는 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방한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탈북자와 납북자 가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만났다. 한국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교황은 이태원 참사, 무안 제주항공 참사, 경북 의성 산불 등 한국 사회에 큰 아픔이 있을 때마다 위로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 한국 순교자 영성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강론) 교황은 한국에서, 그것도 순교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124위 시복미사를 주례했다. 일반적으로 시복미사는 교황의 대리자가 거행한다는 관례를 뒤집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한국교회는 이미 1925년(79위)과 1968년(24위) 시복식을 통해 103위 성인이 나기는 했지만, 이 두 번의 시복식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순교자의 땅에서, 교황이 직접 주례하는 시복 미사는 이례적이었다. 교황은 그만큼 한국 순교자 영성이 맺은 열매, 한국교회를 사랑했다. 교황은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해 지켜나길” 부탁했다. 한국 순교자 영성에 대한 교황의 관심과 사랑은 2023년 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첫 한국인 사제이자 순교자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성인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외벽 벽감은 세계 주요 수도회 창설자들의 성인상이 안치되던 곳으로, 수도회가 아닌 한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성인상이 세워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교황은 “김대건 신부님은 분쟁의 상황에서도 모든 이들을 만나고 또 모든 이들과 대화하시며 많은 이들을 위한 평화의 씨앗이 되셨다”며 “성인의 이런 모습은 한반도와 온 세상을 위한 예언”이라고 강조했다. ■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다 교황은 끊임없이 한반도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한반도 평화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2014년 방한 당시에도 교황은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2018년 ‘판문점 선언’ 소식을 들은 교황은 “한반도를 위한 진정한 대화의 길에 나선 두 정상의 용기에 기도로 함께하겠다”면서 “사랑하는 한국 국민과 전 세계를 위해 선의라는 열매를 계속해서 맺을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문재인(디모테오) 전 대통령과 두 차례에 걸친 개별 면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꺼이 북한에 방문할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2023년 한국 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도 강복 메시지를 보내는 등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와 기도를 자주 전해왔다. 특히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내용을 담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는 한국 주교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 인용하면서 “진정한 평화는 민족의 화해와 공동 발전을 추구하는 대화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 회칙은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매우 장엄한 형식의 문헌으로, 교황 회칙에서 한국을 언급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었다. 교황은 2024년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모후이신 한국 성모님 모자이크상’을 설치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평화가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한국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대축제, 세계청년대회(WYD)의 다음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것에서도 교황의 한국 사랑, 특별히 한국의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은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의 눈에는) 소란스럽고 분주하지만 그 자체가 젊은이들의 사명이기도 함을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기꺼이 동반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가까이에서 그들이 먼저 물을 수 있는 개방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전했다. 사실 2014년 교황 방한이 이뤄진 것도 한국의 젊은이를 만나고자 한 교황의 의지로 성사된 일이었다. 교황은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초대를 받자 흔쾌히 응했다. 지역교회의 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2027 서울 WYD를 참석하고자 했던 교황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교황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 안에 가득하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도록 강복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아시아와 전 세계에 주님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충실히 증언할 힘을 주시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잊지 말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2014년 8월 15일 솔뫼성지,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 중)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전 세계 추모 열기 이어져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1일 오전 7시35분(로마 현지 시각) 교황청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당일부터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신자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추모미사 봉헌…“모든 이들의 교황이자 가난한 이들의 교황이었다” 미국 워싱턴 D.C. 원죄없는 잉태 성지 대성당, 외벽에 교황 선종 추모 휘장 걸어 교황이 태어난 곳이면서 제266대 교황에 즉위하기 전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으로 재임했던 아르헨티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교황이기도 했다. 교황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 호르헤 가르시아 쿠에르바 대주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이들의 교황이자 가난한 이들의 교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교황이기도 하셨던 교황님은 분열된 아르헨티나가 일치되기를 원하셨다”고 밝혔다. 쿠에르바 대주교는 또한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교황님을 닮고 서로에게 자비로워져야 한다”면서 “우리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추모는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갈등을 멈추는 것”이라고 요청했다.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역시 교황 선종 당일인 21일 성명을 통해 “겸손하게 세계 교회를 이끌었던 교황님이 신앙과 생명을 증거하고,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교회는 교황이 재임 중 고향에 방문하기를 원했지만 끝내 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티모시 브롤리오 대주교도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회와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보여주셨던 관심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며 “교황님은 2013년 3월 즉위한 뒤 지구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을 새롭게 하셨다”고 강조했다. 미국 주교회의 성명과 별도로 시카고대교구장 블레이스 수피치 추기경, 뉴욕대교구장 티모시 돌란 추기경 등도 추모 메시지를 발표하고 깊은 슬픔과 함께 교황이 보여준 12년간의 사목활동에 감사함을 드러냈다. 수피치 추기경은 “우리가 교황님을 추모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교황님이 요청하신 대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미국 워싱턴 D.C. 원죄없는 잉태 성지 대성당은 외벽에 교황 선종 추모 휘장을 내걸었으며, 교황의 출신 수도회인 예수회가 운영하는 미국 ‘예수회난민봉사기구’(JRS) 켈리 라이언 대표도 “교황님이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캐나다 주교회의도 교황 선종 직후에 성명을 내고 “교황님은 우리에게 신앙과 희망, 사랑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라는 사명을 주셨고, 전 세계에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셨다”며 “교회가 야전병원으로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줘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신 모습은 우리에게 평화와 동정,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프랑스 전역 추모 미사와 철야 기도회 사크레쾨르 대성당·노트르담 대성당 21일 정오 88번 타종 평화 정착 갈망한 가자지구 성가정성당, 추모미사 봉헌하며 선종 애도 프랑스교회에서도 뜨거운 추모 열기가 일고 있다. 프랑스 주교회의는 21일 의장 에릭 드 물랭 보포르 대주교 명의로 애도문을 발표했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애도문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찾아온 이민자들에게 프랑스 등 유럽이 마음을 닫으며 자신의 영혼을 잃지 말 것을 간곡히 호소했던 그 절박하고도 감동적인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전했다. 이어 "인류에게 기후 위기 앞에서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고, 사회적 불의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길 요청하며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었던 그분은 실로 자비와 희망의 희년을 선포한 교황이셨다"고 기억했다. 수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추모 미사와 철야 기도회가 펼쳐졌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21일 정오부터 신자·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정오와 오후 6시 두 차례 추모 미사, 오후 8시부터 철야 기도회가 이어졌다.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노트르담 대성당 모두 정오에 교황이 향년 88세로 선종했다는 뜻에서 88번 타종했다. 교황이 2023년 9월 방문했던 마르세유에서도 마르세유대교구장 장 마르크 아블린 추기경 주례로 21일 오후 7시 라마조르대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스페인과 맞닿은 남서부 시골과 소도시들로 이뤄진 바욘-레스카르-올로롱교구에서는 21일부터 24일까지 15개 본당이 각각 추모 미사와 철야 기도회를 열었다. 스페인 언론인이면서 2019년에 「친근한 교황」(El papa de la ternura, The Pope of Tenderness)을 발간한 에바 페르난데즈도 교황 선종 소식을 접한 뒤 “교황님은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동정심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셨다”고 추모했다. 교황이 생전에 평화 정착을 갈망했던 곳인 가자지구 그리스도인들도 성가정성당 등에 모여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등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필리핀 아드빈쿨라 추기경 “‘로로키코’(lolo kiko)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 보여줬다” 대만·홍콩 등 중화권교회도 추모미사 봉헌하고 조종 울리며 슬픔 함께해 필리핀교회는 교황이 생전 필리핀에 몸소 보여주고 안겨 줬던 위로의 일화들을 뜻깊게 상기했다. 마닐라대교구장 호세 아드빈쿨라 추기경은 21일 추모 메시지를 통해 교황이 2015년 필리핀 타클로반을 찾아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타클로반은 필리핀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으로 7000여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아드빈쿨라 추기경은 “이재민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하신 그 모습으로 교황님은 우리에게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듯 우리의 ‘로로키코’(lolo kiko, 교황의 타갈로그어 별명)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주교회의 의장 파블로 비르질리오 데이비드 추기경도 메시지를 통해 “교황은 특유의 재치와 따뜻함으로, 해외에 나간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신앙의 밀수꾼들‘(contrabandistas de la fe)로서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할 수 있음을 상기해 주셨다”고 추억했다. 이는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신앙을 실천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정작 선교사들조차 닿지 못하는 세계 곳곳에까지 복음을 전파해, 마치 ’밀수꾼‘처럼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톡톡한 역할을 해 낸다는 격려를 표현한 말이다. 필리핀 전국 교구들에서도 추모 미사와 타종이 이어졌다. 마닐라대성당은 21일 오후 6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햇수로 13년에 걸쳐 재임했음을 기리는 뜻에서 13분 동안 종을 울렸다. 이어 22일 오전 9시 마닐라 시민들이 애도의 촛불을 들고 참례하는 가운데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불라칸주에 있는 세인트 바르톨로메오 성당은 88번 종을 쳤다.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 교회들도 열렬한 추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 주교회의 의장 리커몐 주교는 21일 오후 8시 기자회견을 열고 “대만 전역 본당들에서 교황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만 주교단은 22일 타이베이대교구청에서, 25일 타이베이 원죄 없는 성모 주교좌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각각 봉헌했다. 또 교구청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시민들에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하고 있다. 홍콩교구장 초우 사오얀 추기경은 21일 추모 메시지를 통해 “종교 간 대화 촉진, 세계 평화 증진, 여성의 교회 내 의사결정 참여 확대 등 교황청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인 교황님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전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유흥식 추기경, “교황님은 이미 이 지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은 23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에 관한 메시지를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교회에 전했다. 유 추기경은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은 그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이 지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영원의 삶을 보여주신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며, 한국의 교형자매 여러분, 동포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애도하였으면 한다”고 청했다. 다음은 메시지 전문. 교형 자매 여러분, 동포 여러분 Farrell 추기경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라는 선종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저는 슬픔과 고통, 외로움보다는 고요한 평화를 봅니다. 그분은 슬퍼하기보다 우리가 평화롭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멋있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교황님에 대한 큰 부러움도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20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 미사 후 발코니에서 전 세계인에게 교황님이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랑이 증오를 이겼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겼습니다. 용서가 복수를 이겼습니다. 악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부활의 은혜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권세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약한 손을 그분의 크고 강한 손에 위탁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희망의 순례자가 되고, 사랑의 승리를 증명하는 증인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움직여 행동으로 조금 더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은 그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이 지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원의 삶을 보여주신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며, 한국의 교형자매 여러분, 동포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애도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서 희망과 부활을 보았으며, 우리 자신이 또 다른 부활의 모습으로 이웃과 사회로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한국의 대전이라는 지방 교구의 교구장을 전 세계 성직자와 부제, 신학생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사제의 쇄신없이 교회의 쇄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교황님을 가까이 보좌하면서, 그분이 바라는 교회와 성직자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늘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눈높이에 맞춰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으셨던 교황님의 발자취를 본받으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특별히 안타까워하시며 형제와 가족이 갈라진 이 크나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당신께서 직접 북에도 갈 의향이 있다고 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교황님의 기도 가운데 한국에 관한 기도에는 남과 북이 모두 포함된 기도였음을 기억합니다. 화해와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선이 있다고 믿으셨던 교황님의 다음 말씀이 오래 우리 안에 살아있길 함께 기도합시다.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 주십시오.” 희망을 잃지 않고 선을 행하는 여러분의 부활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2025년 4월 22일 바티칸에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드림

종합

[이런 사목 어때요] 서울대교구 목5동본당 마라톤동호회

서울대교구 목5동본당(주임 정대웅 요한 보스코 신부)에는 기도로 달리기 시작해 기도로 달리기를 끝내는 ‘목5동성당 마라톤동호회’(회장 이명덕 로사)가 운동 겸 신심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목5동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목5런’으로 익숙하게 불리는 ‘목5동성당 마라톤동호회’는 2008년 4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중심으로 창단돼 본당 선교와 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다. 목5런의 창단 목적은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1베드 4,10-11)라는 성경 말씀이다. 목5런 회원 50여 명은 달릴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이 주신 은사로 여기고, 달리기가 직접적인 신심행위는 아닐 수 있지만 신자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훌륭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신념으로 활동한다. 회원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8시, 주일에는 오전 6시30분에 어김없이 모여 달리고 있다. 회원들은 본당 신자나 예비신자들이다. 이명덕 회장은 8년 전 목5런에 가입하는 것을 계기로 신앙을 되찾아 현재는 목5런의 기둥이 되고 있다. 김진호(다니엘) 전 회장 또한 2013년에 세례를 받으면서 목5런 회원 모집 광고를 보고 마라톤을 시작한 뒤 42.195km 풀코스를 13회나 완주한 베테랑으로 우뚝 섰다. 김 전 회장은 “여러 가지 다른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곤 하다가 살을 빼겠다는 생각으로 목5런에 입단한 후 마라톤의 매력을 알게 됐다”며 “마라톤을 하는 동안 내가 사는 한 번뿐인 인생을 늘 돌아보고 살면서 겪는 성공과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녀와 직장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를 지혜롭게 건너게 해 준 운동이 마라톤이었다”고도 덧붙였다. 목5런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회원 중에 육상 선수 출신은 없으며, 순수 동호인 모임이다. 아직 마라톤 경력이 짧은 안신해(가브리엘라) 회원은 “잘 뛰든 못 뛰든 동료 회원들이 늘 환영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목5런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이명덕 회장을 비롯해 목5런 회원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마라톤은 정말 정직한 운동”이라며 “내가 뛰고 노력한 만큼 그대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앙 성장에도 마라톤은 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우리은행, WYD 위한 업무협약 체결

서울대교구와 우리은행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하 WYD)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와 우리은행 정진완(스타니슬라오) 은행장은 4월 16일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WYD의 성공적인 개최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서울대교구와 우리은행은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해산 시까지 협력하게 된다. 우리은행은 앞으로 WYD 지원을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주요 후원사로 활동할 계획이다. 정순택 대주교는 “범국가적인 젊은이들의 축제인 WYD를 위해 우리은행이 긴밀히 협력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하듯 우리은행 역시 대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정진완 은행장은 “이번 협약을 교회의 다양한 사업과 사회적 가치 실현에 함께 힘을 보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약속으로 삼고자 한다”면서 “WYD의 성공적인 개최는 물론 청년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 함께 호흡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협약식에는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 교구 사무처장 정영진(도미니코) 신부, 관리국장 김한석(토마스) 신부, 문화홍보국장 최광희(마태오) 신부,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양주열(베드로) 신부와 우리은행 조세형 기관그룹 집행부행장, 조운정(아녜스) 중앙영업본부장, 김병규(스테파노) 본점영업부 본부장, 장훈(레오) 기관영업전략2부장, 박소영(엘리사벳) 가톨릭회관지점장이 참석했다.​

까리따스 이주민 초월센터 환경 개선 위해 정성 모아

수원교구 성남지구(지구장 최병조 요한 사도 신부)는 4월 11일 성남동성당에서 까리따스 이주민 초월센터 별관 리모델링 지원을 위한 후원금 500만 원을 센터장 이정은 수녀(케빈·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에게 전달했다. 센터는 현재 대쌍령2리 마을회관 2층을 임대해 이주민을 위한 상담·교육·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이용자가 점차 늘면서 교육 공간이 절실한 상황이다. 센터 인근에 별관을 구했지만, 리모델링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해 모금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성남지구는 일회성 금전 후원보다 리모델링 자체를 지구 차원에서 책임지기로 하고 지원에 들어갔다. 지구는 신자의 재능기부를 통해 리모델링 비용을 절감하고, 공사비용 전액을 지구 차원에서 부담하는 방식으로 센터를 지원했다. 센터는 앞으로 별관에서 이주민을 위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최병조 신부는 “지구 중심 사목 차원에서 이번 지원을 추진할 수 있었다”면서 “센터를 통해 다문화사회를 돕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수녀는 “이주민 사도직을 하면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사도직이라는 걸 매번 생각하게 된다”며 “가끔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도 있는데, 이렇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시면 큰 힘이 된다”고 감사를 표했다. 전달식에는 성남지구 총무 이형묵(요셉·수진동본당 주임) 신부, 성남동본당 김동희(요셉) 총회장 등이 함께했다.

영화 통해 기후 위기 관심 높인다…작은형제회 JPIC ‘기후변화 씨네톡’

작은형제회 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특별위원회(위원장 양두승 미카엘 신부, 이하 JPIC)가 매월 기후·환경위기 등 사회문제가 반영된 영화상영회 ‘기후변화 씨네톡’을 열고 있어 눈길을 끈다. 4월 17일 열린 상영회에는 감독을 직접 초청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작은형제회 JPIC와 (사)푸른아시아는 4월 1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7층 체칠리아홀에서 영화 상영 프로그램 ‘기후변화 씨네톡’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재개발이 확정된 광주광역시 광천동 시민아파트의 모습을 그린 박동희(바오로) 감독의 <광천동 김환경>이 상영됐다. <광천동 김환경>은 영화를 공동 연출한 김환경 감독이 직접 시민아파트에 입주해 아파트의 ‘마지막’ 주민들과 겪은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 후에는 관객들과 감독의 대화 시간도 있었다. 영화는 출연자 김 감독이 시민아파트 매물을 부동산에 문의하는 과정부터 세세하게 그린다. 관리인이 없어 관리비도 없는 곧 철거될 아파트에 입주하겠다는 김 감독을 의아하게 여기는 부동산 업자들부터 아파트 이웃들의 반응까지 정겨우면서도 익살스럽게 전한다. 영화는 남아 있는 아파트 주민들을 통해 광주라는 도시와 민주화 운동 역사가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아파트는 빈민·민주화 운동가이자 광천동 ‘들불야학’의 핵심이었던 김영철 열사, 윤상원 열사 등이 거주했던 곳이다. 박동희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중 “시민아파트는 광주 민주화 운동 역사관 조성이 계획된 ‘나’ 동을 제외하고 철거가 확정돼 입주민이 모두 나간 상태”라며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곧 사라지고 단절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중 하나인 시민아파트와 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화로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씨네톡은 작은형제회 JPIC가 푸른아시아와 함께 2018년부터 매월 개최하는 영화 상영회다. 푸른아시아는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네트워크로, 재생에너지 연구와 보급, 나무심기사업 등을 해오고 있다. JPIC 위원장 양두승 신부는 “신자·비신자 가리지 않고 기후 위기를 알리자는 차원에서 상영회를 시작해 최근에는 더 폭넓은 주제의 영화를 다루기도 한다”며 “씨네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후원자들 덕에 잘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홍보를 통해 더 많은 이가 기후 위기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전했다. 5월 기후변화 씨네톡은 내달 15일 열린다.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를 일반인들이 생생하게 촬영한 영화 <더 히어 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가 상영된다. ※ 관람 문의 : https://climate-cinema.imweb.me(기후변화 시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