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청소년 찾아가는 버스 ‘아지트’…“아이들 마음에 희망 심다”

민경화
입력일 2025-06-17 15:28:58 수정일 2025-06-19 14:45:13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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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집 ‘이동형 아웃리치’ 프로그램…희년 버스 탈바꿈해 거리로

2025년 희년을 맞아, 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 ‘아.지.트’가 새롭게 단장한 ‘희년버스’로 다시 거리에 나섰다. 아지트는 안나의집(대표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 산하 성남시 남자단기청소년쉼터에서 운영하는 이동형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이다. 김하종 신부는 “희년 버스가 아이들이 희망의 문을 향해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6월 11일, 보라색 외관의 희년버스와 그 옆에 설치된 붉은 천막은 많은 청소년으로 북적였다. 휴대전화도, 자극적인 놀이도 없었지만, 천막 속 아이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작고 낡은 천막 안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희망을 마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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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는 2025년 희년을 맞아 기존의 아지트 버스를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희년버스로 바꿨다. 민경화 기자

 희년 버스 타고 온 희망

“아지트에 오면 힘을 얻어요. ”

1년째 매주 아지트를 찾고 있는 정민재(18) 군은, 우울증으로 힘들던 시기에 이곳에서 다시 삶의 희망을 붙들었다. 6월 11일 오후 5시, 야탑역 1번 출구 앞. 빨간 천막에 가장 먼저 도착한 그는, 아지트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건넨 간식을 먹으며, 뒤이어 온 친구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고, 6시 무렵 도착한 봉사자 선생님에게는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그가 이곳에서 발견한 희망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제 말을 편견 없이 들어주고, 믿어주는 어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그 사실이 민재 군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천막을 세운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0개 테이블이 모두 채워졌다. 어떤 중학생은 학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들러 간식만 먹고 돌아갔고, 한 고등학생 커플은 봉사자 선생님에게 타로카드 상담을 받았다. 24살 청년은 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파견된 상담 선생님과 한 시간 넘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중생 6명은 두 시간 넘도록 웃고 떠들며 천막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지트의 천막 안에서는 누구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신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긴 성적도, 집안환경도, 외모도 묻지 않는 공간이다. 대신 “요즘은 어떤 게 좋아?”, “언제 가장 행복해?” 같은 질문이 오가고, “네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따뜻한 말이 건네진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민재에게 한 봉사자 선생님이 해준 “네가 찍은 사진, 정말 멋지다”는 그에게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안겨줬다. 민재의 친구 진형준 군은 아지트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2025년, 아지트에는 ‘희년버스’를 타고 온 희망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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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야탑역 1번출구 앞에 세워진 아지트 천막.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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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팀원에게 타로상담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 민경화 기자

예수님 여정과 닮은 아지트 활동

이동형 아웃리치(Outreach)는 청소년 밀집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과 심리검사,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활동이다. 쉼터나 기관에 스스로 오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는 ‘찾아가는 돌봄’이다.

청소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방과 쉼터를 통해 오랜 시간 청소년을 도와온 김하종 신부는, 거리의 위기 청소년을 외면할 수 없었다. 2015년, 직접 거리로 나가는 아지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예수님은 성당을 지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으셨어요.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기쁜 소식을 전하셨죠. 청소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아지트 활동은 예수님의 여정과 닮아있습니다.”

아지트는 현재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야탑역 ▲신흥역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행정복지센터 등을 찾아간다.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이동형 아웃리치에 참여한 청소년은 총 6299명. 하루 평균 120~140명의 청소년들이 아지트 천막이나 버스를 방문한다.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은 간식 등 먹거리뿐 아니라 특성화 교육, 심리상담, 의료상담, 기초생활 물품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해 동안 진행된 아지트의 상담은 1856건에 이르렀고, 필요한 경우 청소년의 상황에 맞는 유관 기관과 연계해 추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현재 아지트는 ▲성남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US ▲성남시청소년쉼터(일시·중장기) ▲소아청소년상담센터 공감 ▲청소년자립지원관 등 43개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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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종 신부는 “희년버스가 청소년들이 희망으로 갈 수 있는 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아지트를 찾은 청소년들은 가장 먼저 이용 신청서를 작성한다. 이름과 연락처 같은 인적사항뿐 아니라 가출 여부, 현재 처한 상황을 함께 묻는 문항을 통해 위기 청소년 여부를 선별하고 필요한 지원을 신속하게 연결한다. 올해에만 아지트를 통해 발굴된 위기 청소년은 240명이다.

야외에 설치되는 붉은 천막 옆에는 늘 보라색 ‘희년버스’가 함께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천막을 설치할 수 없는 날에도 청소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희년을 기념해 더 큰 버스로 교체했고, 내부 공간도 보다 쾌적해졌다. 기존에는 간이 칸막이였던 상담 공간도 문이 설치된 독립 공간으로 바뀌었다.

버스 입구에 걸린 ‘희망의 문’ 이미지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를 지켜주는 어른은 없다’고 느껴온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어른들을 만나 희망을 향한 문을 열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름도 ‘아지트버스’에서 ‘희년버스’로 새롭게 바뀌었다.

김하종 신부는 “아지트는 몸과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을 위한 치유의 야전병원이자 내 목소리를 가져본 적 없는 친구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공간”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희년을 선포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만큼 아지트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원 계좌 농협 301-0121-1372-01(예금주 성남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