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오직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세상을 뒤바꾸어 놓은 그의 저서 「자본론」 맨 앞에 이 구절을 상재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뜻밖에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한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뜻만 빼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 구절까지-그러니까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까지- 박제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이며 진보라고 우겼다. 보수라면 원래 있는 것들을 박제해도 더 할 말이 없지만, 진보도 이 정도 되면 진보 밀랍 인형이라도 할 말이 없다. 뭐 이상한 일도 아니다.
철학자 최진석은 ‘시대에 따라 도무지 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믿는 사람을 꼰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말한다. 장자를 열심히 읽은 제자가 어느 날 그에게 와서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쓰신 「장자」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장자처럼 살려고 결심했습니다” 하자, 이 철학자는 그에게 일갈을 가한다. “너는 헛공부를 했구나 장자는 너 자신으로 살라고 한 말인 것을, 기껏 장자를 읽고 장자처럼 산다는 말인가” 하고. “우리가 옛날에 정권에 대항해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시대에 감옥 같은 거 법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니었지.” 나는 이런 꼰대의 출현을 나의 동기들에게서 지겹도록 보고 있다. 시대의 정신만 빼고 다 박제해버린 꼰대들 말이다.
한번은 신앙이 돈독하다는 어느 자매가 내게 다가와 “마리아 자매님, 저는 성경을 다섯 번이나 읽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혼하면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라고 했는데 잘 아시죠?” 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예, 자매님. 제 수많은 지난 날의 죄 중의 하나이지요. 다만 예수님께서 다시 세우신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이란 간단히 요약하자면 – 제가 이해하기에 - 자구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과 너의 이웃을 사랑해라, 아니었던가요?”
아직도 강연에 가면, “작가님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하고 묻는다. 나는 대체로 진보적인 사람이지만, 요즘은 대체 어디에 그 진보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백 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역사는 지독한 수구 세력에 의해 모든 새로운 싹이 잘려 나간 아픈 시간을 가지고 있다. 동학부터 시작되었을 그 아픈 역사 때문에, 사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대개 옳았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2018년 소설 「해리」 발간 당시 인터뷰에서, “당분간 우리의 싸움은 가짜 진보 사기꾼들과의 싸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예언 아닌 예언은 불행히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저 수구 보수를 지지해? 난 진보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김정은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시진핑은? 프랑스 혁명 후의 로베스피에르는? 루터는 분명 진보였다. 유명한 종교개혁 독재자 칼뱅도 말이다. 이 나라의 역사가 거대한 모퉁이를 돌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엄청난 파시즘의 악취도 감지되는 요즘, 나는 더 이상의 애타는 기도를 멈추고 오로지 하느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한나 아렌트가 그랬다. “파시즘은 광기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을 멈춘 자들의 고립감과 외로움,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이 산골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성무일도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뇌를 선동꾼들에게 의탁하지 않겠다' 라고. 그리하여 절망하지 않을 용기를 청해본다.
아아, 주님께서 우리의 희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리라.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