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돌이켜 보기를…

이주연
입력일 2025-03-31 17:06:42 수정일 2025-03-31 17:06:42 발행일 2025-04-06 제 343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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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끝내고 해방을 맞이한지 80년이 되는 해다. 우리 주변에서 80세가 안 되는 이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식민지 경험이다. 식민 통치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주권을 잃은 것이다. ‘이제 조선은, 대한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권을 잃었다는 것은 단지, 나라 이름과 깃발, 노래를 잃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한 민족이 가진 역사와 관습, 전통과 더불어 살아오던 모든 양식을 빼앗긴 것이다. 문자와 말을 잃어버린 것이며,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주인의 삶이 아니라 부속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35년간의 식민지 삶을 청산하고 해방을 맞이한 날은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은 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해방은 모든 것을 되찾아오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해방된 조국에서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은 모두의 마음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 우리 가운데에는 식민지 통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더 큰 외부 세력에 나라의 존망을 맡기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한 광복은 우리 안의 아픔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분열과 파괴, 미움을 넘어서 증오, 증오를 넘어선 혐오.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그와 그 가족의 목숨마저도 가볍게 여기는 수많은 테러와 학살이 일상화되었다. 해방을 맞이하여 당연히 한마음이 되어 일구어야 할 새로운 역사는 일찌감치 피로 물들고 말았다.

또다시 4·3을 맞이했다. 77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름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아픔으로 가득 찬 사건이다. 당시 30만 명의 도민 중 3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된다. 열 명 중 한 명이 역사의 잔인한 기록으로만 사망, 또는 사망 추정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참담함이었다. 그야말로 유해도 찾지 못한 쓸쓸한 넋은 지금도 제주 섬 어딘가에 묻혀 있다. 1948년 11월 17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계엄령이 선포됐고,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 우리의 나아갈 발목을 잡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그 무시무시한 계엄령과 국가보안법 말이다.

육지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렵지만, 아직도 제주에서 4·3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다. 한 집안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얽혀 있고,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피해망상의 연속이기도 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된 이후에도 4·3의 망령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의 족쇄가 유가족들을 얽어맸으며, 고문 피해로 인한 후유장애, 레드 콤플렉스 등 정신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4·3으로 인해 일본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공안기관의 감시에 시달렸다. 그리고 4.3은 아직도 무수한 이야기를 남긴 채 정리되지 않은 파일로 남아있다.

작년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복잡한 혼란 속에 던져져 있는 대한민국이다. 서로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오늘의 형국을 일컬어 해방정국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언제든 서로를 적으로 여겨 테러와 시해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는 전쟁의 포화 가운데 여기서 저기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우성치는데, 우리는 우리 안의 전쟁을 이미 시작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이라고는 폐허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려는 것같이 보인다. 역사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어리석음은 그 잘못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증오를 부추겨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면 역사를 다시 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

“증오, 폭력, 극단주의, 맹목적 광신주의를 선동하는 데에 종교를 이용하는 행태를 척결하고, 또한 살인, 추방, 테러, 억압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데에 하느님의 이름을 도용하지 않게 하는 데에 모든 이가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 프란치스코 교황과 알아즈하르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가, 가톨릭과 이슬람 수니파의 수장이 손을 맞잡으며 공동 서명한 역사적인 선언이다. 이 선언이 우리 안에 깊은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마음에 증오가 차오른다면 무엇을 위한 증오인지 보아야 한다. 역사와 진실을 저버린다면 똑같은 아픔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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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