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몸은 존재 그 자체로 선물 ② 자신을 내어주는 속성 지녀 ③ 사랑의 언어 드러내는 수단
지금까지 우리는 창세기 2장 하느님의 인간 창조를 살폈으니, 오늘은 1장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 인간에 관한 앎을 더해보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ᅠ사람을ᅠ만들자.’”(창세 1,26) 하느님은 당신 계시에서 혼자가 아닌 관계를 드러내는 '우리'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해 사람이 당신들의 ‘모상’(imago)이며 또한 ‘유사함’(similitudo)이라고 명료하게 말했다. ‘모상’은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인간 존엄성의 존재론적 뿌리가 당신에게 있음을, ‘유사함’은 인간이 완전하신 하느님과 다르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그래서 완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마태 5,48; 루카 6,36) 인간에 역동적 공간이 있음을 말한다.(로마 3,26: 8,30 참조)
완전함을 향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이 역동적 실현은 하느님 ‘모상’인 몸에 관한 이해와 속성 그리고 몸의 언어에 담겨있다. 이를 질문으로 표현하면, ‘나는 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몸은 어떤 속성을 지녔는가? 몸은 어떤 언어를 표현하는가?’이다.
첫째, 몸은 선물이다. 나는 선택과 자유 없이 남자/여자로 태어났고, 또 그 성(남성성/여성성) 그대로 거두어진다. 한 번은 세상 안으로, 또 한 번은 세상 밖으로의 불림이다. 그 부름을 살아가는 역사적 인간은 존재 자체가 선물이며 형이상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갖는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내 눈이나 세상의 눈보다, 나를 존재케 하신 분의 눈에 더 아름답고 더 가치가 있으며,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생의 목적이 있음을 안다.
둘째, 몸은 혼인적 속성을 지녔다. 혼인적 속성을 살 것이지 아닌지는 자신의 선택과 자유 안에 있다. 인간 몸이 육체성만 있지 않듯이 혼인적 속성 또한 결혼을 해서 나누는 성적인 육체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몸이 지닌 내적인 질서, 곧 자신을 내어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혼인한 이들은 부부 결합 방식으로 전부를 주고 전부를 받는 관계이지만, 동정이나 봉헌자들은 지향에 의해 생식성의 사용을 배제한 차원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실현한다. 이는 하느님이 성자를 통해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주셨듯이 인간 또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되찾는’ 탁월한 삶의 형태이다. 만약 몸을 ‘선물’의 논리로 이해하고 행한다면, 내어줌은 자기 탈출, 자기 초월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갈망의 놀라운 실현이다.
셋째, 몸은 사랑의 언어를 드러낸다. 눈짓, 손짓, 미소, 말 등으로 드러나는 이 언어는 자신의 감정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인격의 표현 수단이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우리”(창세 1,26), 즉 세 위격은 가장 완전하게 자신의 전부를 주고 받아들인다. 다른 분을 위해, 다른 분과 함께, 다른 분 안에 현존하는 사랑의 관계이다. 결국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 누구를 향해’ 살아갈 때, 처음부터 자신의 몸에 쓰여진 그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이때 인간에 대한 정의는 혼자가 아닌 관계에서 찾게 되고, 타자는 ‘나’를 보완하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나로 나의 책임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전망을 역사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정점에 있다. 그분의 몸(성체)은 자신을 선물로, 자신의 신부와 하나 되기를 바라는 혼인적 속성으로, 사랑의 언어로 나에게 오는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임이 곧 내어줌이 되고, 이 관계가 세상 안에서 변화되면서 몸이 성사요 거룩함의 주체임을 드러내는 여정이 된다. 몸의 길이 곧 사랑의 길이다.
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