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제 탓이오’를 실천합니다

민경화
입력일 2025-02-12 09:05:26 수정일 2025-02-12 09:05:26 발행일 2025-02-16 제 342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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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개그계의 중소기업 장용입니다!”

행사를 시작할 때 자주 쓰는 나만의 인사말이다. ‘중’보다는 ‘소’에 가깝다. 절대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평생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때그때 건건이 주어지는 일을 수행할 뿐이다. 일자리보다는 일거리를 찾아서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도 중소기업(?)으로서 축제 행사보다는 중소기업이나 관련 협회 행사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행사를 자주 하기가 어렵다. 규모로 보나 예산으로 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직원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으로 전문 사회자를 쓰겠다는 결정은 오롯이 대표의 넉넉한 마음이다.

20여 년 전, 수출도 많이 하는 아주 튼실한 한 강소기업의 송년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담당 부장님은 책임감도 강하고 나름 여기저기 조사해서 준비도 많이 했고, 그의 두 눈에는 행사를 멋지게 하고 싶은 의지가 가득했다.

1부 의식행사를 끝내고 2부 여흥 시간과 만찬을 안내하고 있는데 얼굴이 하얘지셔서 나에게 달려왔다.

“홍길동님 축사가 빠졌어요!”

나도 당황스러웠다. 축사 명단에 홍길동이란 이름은 없었다.

“주신 명단은 다 소개했고요, 홍길동이란 분은 명단에 없는데요?”

“네에? 어디 봐요. 어! 진짜 없네요.”

담당 부장의 얼굴은 홍콩 무술영화에 나오는 강시처럼 더 하얗게 변했다.

“어쩌죠? 제가 이분을 빼먹었네요” 하면서 곁눈질로 사장님을 의식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훔쳐본 내 눈에 들어온 사장님의 얼굴엔 이미 천둥이 치고 있었다.

“부장님, 괜찮아요. 일단 그 누락된 분은 잠시 후 만찬 때 건배사로 대체하면 되고, 사장님께는 사회자가 실수해서 빠진 거라고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혹시나 또 펑크 나는 게 있으면 사회자한테 다 돌리세요. 부장님은 내일도 나와야 하고 계속 직장 생활해야 하잖아요. 나야 오늘 하루 왔다가는 것이고,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 안 부르면 되고. 하하하~!”

담당 부장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전문회사를 안 쓰고 자체적으로 알뜰하게 준비하다 보면 종종 벌어지는 장면들이다. 나도 이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았을 땐 홍당무처럼 벌게진 담당자의 얼굴을 보면서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어느날 문득 기도문이 떠올랐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래! 이거야!’ 미사 시간에 습관처럼 중얼거릴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실천하자는 생각에 무릎을 치면서 나는 ‘내 탓이오 기법’을 쓰기 시작했다. 종종 ‘내 탓이오 기법’은 담당자들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 그 담당부장님의 강력한(?) 노력 덕분에 몇 번 더 초대받아 내 일거리는 풍성해졌다.

신앙이 있다는 것, 성당을 다닌다는 것은 크게 대단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고 양심을 수련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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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