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존중의 목자…학자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영성 영향
제6대 마산교구장에 이성효(리노) 주교가 임명됐다. 2011년 3월 주교품을 받은 이 주교는 수원교구 총대리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를 보필해 왔으며, 이번 임명으로 고향인 경남 진주를 관할하는 마산교구 수장을 맡게 됐다. 이 주교의 삶의 여정과 활동 등을 알아본다.
■ 다정한 ‘분위기 메이커’
이 주교의 이력은 이색적이다. 이 주교는 전자공학도였다. 사제를 꿈꿨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아주대학교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석사 과정 중이던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했고, 이 방한을 계기로 이 주교는 다시 사제의 길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가족들을 설득해 1985년 마침내 신학교에 입학했고, 1992년 사제품, 2011년에 주교품을 받았다.
이성효 주교와 6촌인 대구대교구 이정효 신부(예로니모‧대구대교구 월성본당 주임)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가족이자 동료 사제로 이 주교를 곁에서 지켜봐 왔다.
이 신부는 “분위기 메이커”로 이 주교를 설명했다. 이 신부는 “주교님은 친화력이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든 다가가 웃음을 주고, 수준급의 기타와 색소폰 연주로 어디서든 분위기를 확 이끌어 나간다”면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상대에게 공감하는 배려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 주교의 배려심은 2013년 수원교구 농아선교회 25주년 미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당시 이 주교는 청각장애인 신자들을 위해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수화 강론을 미리 연습했고, 현장에서 수화 강론을 펼쳐 신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또한 이 주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며 “여러분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며 유가족에게 일일이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상대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품
고통받는 이웃 보듬어 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
노틀담 수녀회 이효민(마리지혜) 수녀는 2001년부터 이 주교와 인연을 이어왔다. 이 주교가 유일하게 주임으로 사목했던 오산본당에서 함께 일했고, 2011년 이 주교가 주교품을 받은 때에 이 수녀 역시 교구청에서 근무 중이었기에 다시 만났다. 이 수녀는 “한결같이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이 주교를 정의했다. 이 수녀는 “본당에서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하게 대했고, 10여 년이 지나 교구청에서 뵀을 때도 권위적이지 않은 편한 태도로 직원들을 대했다”면서 “새로운 교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한결같이 친절하실 것 같다”고 전했다.
■ 아우구스티누스 닮은 ‘신학자’
존경하는 인물로 초대교회 대표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를 꼽곤 했던 이 주교는, 주교품을 받은 직후 소감을 묻는 이들에게 “이 서품에 감춰진 하느님의 뜻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는 성인의 고백을 그대로 옮기며 성인을 닮으려는 의지를 표명했었다. 이 주교는 성인의 영성을 따라 ‘학자’로 살아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주교의 후배이자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곽진상 신부(제르마노‧수원교구 서판교본당 주임)는 “이 주교님은 수원가톨릭대학교에 재직 당시 교수들에게 ‘한국교회 안에서만 신학을 연구해서는 안 되며 보편교회 안에 보탬이 되는 신학을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면서 “곁에서 지켜보면 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 늘 노력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교구 총대리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꾸준히 저술활동을 이어왔다.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대표작 「원리론」(2015)을 공동 번역하고, 「교부들의 성경주해:신약성경 XIII」(2015), 「4차 산업혁명과 인류의 미래」(2019) 등을 집필했다. 가톨릭신문사의 ‘제22회 한국가톨릭학술상’ 수상작인 「신경 편람」(2018)의 공동 번역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주교는 학문의 상아탑에 갇힌 학자형 신학자는 결코 아니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번져갈 때엔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을 빌려 당시 상황을 일갈했으며, 2020년에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3951명의 사제‧수도자 선언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주교는 교회 생명운동에도 적극 앞장서 왔다. 2012년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의 첫 본부장을 맡으며 생명 운동에 본격 뛰어든 이 주교는 2017년부터 올 10월까지 7년간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낙태 반대 ▲사형제도 폐지 운동 등을 활발히 펼치며 생명 문화 확산에 힘썼다.
신학자로서 정체성 지키고
생명 문화 확산에 적극 앞장
AI 시대 윤리 문제 연구도
이 주교는 2014년부터 11년째 교황청 문화교육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과학‧학술 기관과 교황청과의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문화교육부에서 5년 임기로 활동하는 위원직에 이 주교는 세 차례나 재임명됐다. 최근 이 주교는 새로운 시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교육부 위원으로 ‘AI 시대의 윤리적인 문제’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2024년 시그니스 아시아 총회에서는 ‘AI와 윤리’를 주제로 강의를 펼치기도 했다.
이 주교의 서품 동기인 서북원 신부(베드로‧수원교구 상현동본당 주임)는 “주교님은 시대적인 흐름을 읽고 그 시대에 맞는 교회 역할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분”이라며 “새로운 임지에서도 비전을 제시하고 사제단과 교구민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