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농민 주일 특집] 도시·농촌 생명공동체 연결하는 ‘우리농 나눔터’

민경화
입력일 2025-07-16 08:47:50 수정일 2025-07-16 08:47:50 발행일 2025-07-20 제 345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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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키운 농산물, 농민 정성도 보태 장바구니 가득히”
가톨릭농민 생산한 생명농산물, 우리농본부 등 통해 전국 유통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한국 사회는 특히 농업 분야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고 수입 농산물의 유입이 확대되면서 농업 기반은 더욱 흔들렸다. 이후 농산물 가격의 반복적인 폭등과 폭락, 만성적인 적자 농사, 농촌 인구의 이탈과 고령화, 농민 자살의 급증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이어졌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농민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농업 회생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를 설립했고 이듬해 농민 주일을 제정했다. 7월 셋째 주일에 농민의 가치를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고 실천하기로 마음을 모은 지 30년. 여전히 어려운 농촌과 농민들의 현실 속에서도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생명 중심의 사회를 향한 길을 열어가고 있는 도시·농촌 생명공동체의 연결 고리, ‘우리농 나눔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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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농 한강나눔터 우리농 활동가들이 생명농산물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민경화 기자

가톨릭농민, 생태적 삶 위해 생명농업 실천

농민 주일은 교회 내 모든 신자가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함께 기도하며 농민들과 동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기 위해 제정되었다. 1995년 제정 당시, 농민들은 수입 농산물 확대에 따른 가격 불안정과 부채 증가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2025년 농민주일 제정 30주년을 맞았지만, 농민들의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다. 특히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가톨릭농민의 삶은 더욱 혹독한 상황이다.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2024년 3월 가톨릭농민회 회원 3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농운동 30주년 진단을 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3%는 ‘농민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농촌사회 소멸’을 우리 농업이 직면한 최대 위기로 지목했다. 또한 ‘농업 후계자가 없다’는 응답은 80.2%에 달했다. 연간 농업소득이 2000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도 30.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농사 인력 감소는 물론이고 기후위기로 인해 생산물 감소의 어려움까지 가중된 가톨릭농민들에게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업을 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농민의 18.6%가 11~15년간, 18.3%가 21~25년간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있었다.

가톨릭농민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이유는 신앙적 신념 때문이다. 생명농업을 실천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49.1%가 ‘생태적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17.7%가 ‘가톨릭 농민회원으로서의 결의’라고 답했다.

이들이 생산한 생명농산물의 주요 판로는 우리농본부(32.8%)를 통한 공급이 가장 많았고, 이어 개인 직거래(26.4%), 로컬푸드 및 학교급식(11.8%)이 뒤를 이었다. 본당과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직거래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생명공동체를 확대하는 실질적 연결고리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분회 활성화를 위한 우선 과제로 ‘생명농산물 직거래 활동 확산’을 꼽은 응답자가 32%에 달해, 유통 기반 확대와 소비자 참여가 향후 우리농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지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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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우리농 서초나눔터에서 한 이용객이 농산물을 고르고 있다. 민경화 기자

우리농산물 이용은 ‘하느님의 길 걷는 것’

7월 10일, 서울의 우리농 상설나눔터 중 하나인 ‘서초나눔터.’ 뜨거운 햇볕에 몇 걸음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맺히는 날씨 속에서도, 우리농 활동가 이병임(루치아) 씨는 평소처럼 나눔터 문을 열었다. 소비자가 이틀 전에 주문한 농산물을 제때 전달하기 위해 매일 들어오는 물량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매장에는 제철을 맞은 옥수수가 진열됐다. 곧바로 들어온 손님이 옥수수를 장바구니에 담자, 이 씨는 “춘천교구 농민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옥수수라 알이 크지 않아도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 씨는 어떤 농민이 어떤 마음으로 농산물을 재배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농 나눔터에서는 농산물의 모양과 가격보다 중요하게 공유되는 것이 농산물을 수확한 농민의 땀과 정성이다. 나눔터를 자주 찾는 손님도 익숙하게 이야기를 듣고는 그날 반찬에 쓸 유기농 두부와 콩나물을 함께 장바구니에 담는다.

서울 용산 ‘한강나눔터’는 신자가 아닌 지역 주민들도 자주 찾는다. 매장은 작지만 실속있는 유기농 제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는 소문이 난 덕분에 매출도 높다. 초복을 앞두고 손님 두 명이 생닭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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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나눔터에서 활동하는 우리농 활동가 이병임 씨는 “생명과 땅을 살리는 일, 하느님의 길을 함께 걷는 데 많은 분이 함께 해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미리 예약하시면 유기농 밤나무 아래서 자란 토종닭도 가져가실 수 있어요. 작은 우리에서 키우지 않고 밖에서 키운 닭이라 쫄깃하고 맛있답니다.”

항생제를 먹거나 비좁은 케이지가 아닌 건강한 환경에서 자란 토종닭이라는 활동가 오윤경(가브리엘라) 씨의 상품 설명은 일반 마트에서는 접하기 어렵다.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이 직접 소비자를 만날 수 없기에, 우리농 활동가들은 곳곳의 나눔터에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 씨는 “활동가로서 우리농운동에 대한 교육을 받고 직접 농촌을 찾아 농민들과 만나다 보니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농산물을 키우고 있는지 소비자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농 활동가의 역할은 농산물 판매로 국한되지 않는다. 각 본당에 우리농 생활공동체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농촌을 방문해 농민들과도 꾸준히 교류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씨는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 사람들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 길이 없으니 식재료가 어떻게 우리집 밥상에 오르는지 관심이 없다”며 “저도 쭉 서울에서 살았지만 활동가로 봉사하면서 농민들의 어려움을 듣다 보니 날씨가 덥거나 비가 많이 올 때면 자연스럽게 농민들을 걱정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농촌을 잃고 땅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과 같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생명과 땅을 살리는 일, 하느님의 길을 함께 걷는 데 많은 분이 함께해 주시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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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