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에 난민·노숙자 등도 초대…무덤에는 유언대로 ‘프란치스코’만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일평생 청빈한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면에 들어갔다. 4월 26일 오전 10시(로마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장례미사에 이어 성모대성당에서 안장예식이 거행됐다. 장례미사는 전 세계에서 로마에 모인 추기경단과 주교단 등이 공동집전했다. 교황이 항상 낮은 곳에서 겸손한 삶을 살며 남겨 준 뜻에 따라 치러린 장례미사와 안장 예식 모습을 모아 본다.
교황이 4월 21일 평소 거처하던 교황청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88세를 일기로 선종하고 23일 교황의 관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운구된 뒤 같은 날 오전 11시경부터 25일 오후 7시까지 조문객 수는 25만여 명이나 됐다. 조문객들은 길게는 5~6시간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관 안에 고요히 누워 있는 교황을 조문했다.
장례미사 전날 오후 8시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제대 앞에서 진행된 교황의 관 봉인 예식 또한 교황의 평소 모습 그대로 단순하고 간소하게 치러졌다. 교황청 전례원장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교황의 얼굴에 흰색 비단을 덮은 뒤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패럴 추기경이 성수 예식을 집전했다. 이어 나무 관 위에 아무런 장식 없이 십자가, 교황명과 간략한 생애, 교황 문장만이 새겨진 아연 덮개를 씌움으로써 교황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패럴 추기경은 아연 덮개에 인장을 찍어 봉인된 사실을 확인한 후 아연 덮개 위에 다시 십자가와 교황 문장만이 새겨진 나무 덮개를 덮고 교황청 직원들이 테두리를 따라 못을 박으면서 관 봉인 예식을 마쳤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서명한, 교황의 생애와 사목활동을 요약한 문서 마지막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성과 성스런 삶 그리고 보편적 형제애를 훌륭히 증거했다”고 기록됐다. 이 문서는 관이 봉인되기 전 관 안에 놓여졌다.
장례미사가 봉헌된 26일 성 베드로 광장에는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장례미사에는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은 물론, 이주민과 난민, 노숙자 등 교황이 재임 중 늘 가까이 다가갔던 외롭고 소외된 이들도 교황청의 특별한 배려로 참례할 수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장례미사 시작 훨씬 이전부터 신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일부 신자들은 전날 저녁에 미리 광장에 도착해 교황을 추모하는 기도를 바치고, 광장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 뒤 장례미사에 참례하기도 했다.
장례미사를 주례한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이 생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하곤 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교황에게 “이제는 지상에 남아 있는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레 추기경의 강론을 듣던 신자들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짓는가 하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교황을 생각하며 밝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교황의 관은 교황이 재임 중 사용했던 전용 차량에 실려 포로 로마나 유적지와 콜로세움 등을 거쳐 약 6km를 이동해 안장지인 성모대성당에 도착했다. 성모대성당에 이르는 운구 행렬 역시 패럴 추기경을 포함한 추기경 일부, 교황의 가족과 친지 등 소수만이 참여해 소규모로 이뤄졌다.
교황의 관이 지나가는 도로변은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군중들로 북적였다. 군중들은 교황의 관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거나 “교황님, 감사합니다”, “교황님, 영원히 사세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교황이 성모대성당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유언장은 교황청에 의해 21일 공개됐지만, 성모대성당 부수석사제 롤란다스 마크리카스 추기경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교황의 말을 25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공개했다. 교황이 성모대성당에 묻힐지를 분별하고 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 교황에게 “무덤을 준비하여라”라는 말을 들려줬고, 교황이 “성모 마리아께서 나를 잊지 않고 계셔서 행복하다”고 말하며 마크리카스 추기경에게 성모대성당에 “무덤을 준비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교황의 관이 성모대성당 안으로 옮겨지는 동안 교황에게서 각별한 관심을 받았던 이주민과 노숙자 등이 꽃을 들고 교황을 맞이했다. 로마에 사는 어린이들도 성모대성당을 찾아 성모 마리아 이콘 아래 꽃을 올려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장예식은 패럴 추기경이 비공개로 주례했으며, 교황 유언장에 적혀 있는 대로 ‘프란치스코’라고만 새겨진 곳에 교황은 안장됐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