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의 클래식순례] 레오시 야나체크의 <글라골 미사>

이승환
입력일 2025-01-24 10:32:45 수정일 2025-02-03 13:02:11 발행일 2025-02-09 제 3428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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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트르제비치 소재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상

2월 14일은 치릴로 성인(826~869)과 메토디오 성인(815~885)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 데살로니카 출신인 두 성인은 형제로, 오늘날의 모라비아 지역으로 파견되어 슬라브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에 ‘슬라브인의 사도’로 불립니다.

두 성인은 863년 무렵에 옛 교회 슬라브어를 번역하기 위해서 알파벳을 고안했는데, 이를 ‘글라골 문자’라고 부릅니다. 가장 오래된 슬라브 알파벳이지요. 글라골 문자는 중세 이후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쓰였는데, 19세기 이후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과 성직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20세기 초에는 일부 지역에서 전례어로 확산됐습니다. 1920년 5월, 가톨릭교회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교회 슬라브어를 (다소 제한을 두었지만) 공식 전례어로 다시 허용했는데, 이를 배경으로 태어난 작품이 레오시 야나체크(Leoš Janáček)의 <글라골 미사>(Glagolská mše)입니다.

야나체크는 1921년에 올로모우츠대교구장이었던 레오폴트 프레찬(Leopold Prečan) 대주교와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야나체크는 당시 체코 교회 음악의 수준이 낮다고 불평했는데, 이 말을 들은 대주교는 옛 교회 슬라브어로 직접 미사곡을 쓰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평소 슬라브 문화와 전통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옛 교회 슬라브어를 체코어의 원천이라고 여겼고, 자연스럽게 미사곡 작곡에 큰 의욕을 품었습니다. 이런저런 일과 다른 작품 때문에 바로 작곡에 착수하지는 못했지만 1926년 다시 한번 대주교와 만난 후 미사곡을 작곡했고, 1927년 12월 초연이 이뤄졌습니다. 미사곡은 프레찬 대주교에게 헌정됐습니다.

비록 전통적인 의미에서 독실한 신자는 아니고 범신론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야나체크는 많은 작품에서 구원과 부활 등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를 탐구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 하느님의 손길이 있고 우주가 주님의 현현(顯顯)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노년의 나이였기에(그는 작곡 이듬해인 192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생계형’ 교회 음악을 쓸 필요도 없었지요.

<글라골 미사>는 그의 신비스러운 종교관을 원숙한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통상적인 당대의 라틴어 미사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가령 짧지만 강렬한 ‘대영광송’은 전원풍의 잔잔한 분위기와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극적인 표현이 엇갈리는 음향의 축제라 할 만합니다.

그런가 하면 ‘신앙 고백’에서는 명상적인 오케스트라와 신랄하게 울리는 오르간, 타악기를 통해서 그만의 시각으로 텍스트의 의미를 드러냈습니다. 작곡가는 미사곡에 관해서 직접 쓴 글에서 웅장한 대자연을 대성당에 비유하면서, “성 벤체슬라스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의 말을 듣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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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