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순례, 걷고 기도하고]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

이승환
입력일 2025-01-17 10:22:44 수정일 2025-01-21 13:06:54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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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향해 피어오른 꽃, 순교자 감싸 안은 예수님의 손
신자들 공개 처형했던 나루터 땅에 좁고 높은 독특한 모습의 경당 봉헌
희념 기념 전대사 수여 순례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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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 내 십자가와 십자 모양 스테인드글라스. 이승환 기자

한국 속 중국이자 원조 짜장면 거리로 알려진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국철 인천역과 인천 제8부두가 가까운 이곳에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병인박해 순교사를 간직한 성지가 있다.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다.

진두(津頭)는 한자 그대로 나루터. 흥선대원군은 이곳 제물 나루터를 공개 처형장으로 택했다. 백성들의 왕래가 잦고 외국 선박들의 출입이 빈번한 이곳에서 서양의 종교를 받아들인 천주교인을 처형함으로써, 외세 배척의 뜻을 대외에 밝히고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서울 한강변 양화진두(절두산)와 더불어 많은 신앙인이 공개 처형된 곳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곳은 2010년에야 순교 터가 규명됐고 2014년 순교기념경당이 봉헌됐다.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은 독특한 모습부터 눈길을 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 세워진 경당은 아마도 한국교회의 성지 중 가장 날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5m 높이의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을 감싸는 두 손을 형상화하고 있다.

성지 입구에는 ‘위로와 자비의 주님’이 오른팔을 내려뜨려 순례자를 맞이한다. “내 손을 잡아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노라. 힘을 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경당으로 들어서는 복도는 한두 사람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복도 옆면으로 제물진두 순교자들의 초상이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나란히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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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15m 높이의 경당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을 감싸는 두 손을 형상화했다.
(가운데)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경당 입구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성모상이 있다.
(오른쪽) 오른팔을 내려뜨려 순례자를 맞이하는 성지 입구 위로와 자비의 주님. 이승환 기자

이곳에서 순교한 이는 10명. 1868년 4월 20일 손 넓적이(베드로,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의 이모부)와 그의 부인 김 씨, 사위 백치문(요한 사도) 등 4명의 순교자가 도끼로 참수당했다. 박해는 신미양요를 전후한 1871년에도 이어졌다. 5월 6일 한국교회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베드로)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가 미군의 배에 들어가 길 안내를 하려 했다는 죄로 순교했다. 5월 21일에는 이재겸(이승훈의 손자)의 부인 정 씨와 이명현(정 씨의 손자), 백용석, 김아지가 사학죄인으로 박해의 칼을 받았다.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성모님 바라보며 경당 안으로 들어섰다. 햇볕 머금은 십자가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자체로 조명을 이뤄 순례자를 비춘다. 맞은편 벽면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라는 성구와 함께 순교자의 모습을 담은 부조 작품이 있다.

박해 당시 제물진두 처형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도끼로 참수당하는 순교자 모습 너머로 이미 천상에 올라 기도하는 순교자들이 그려져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초상과 배 한 척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은 김대건 신부와 이곳 제물진두의 인연을 드러낸다.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조선에 잠시 입국한 김대건은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이곳에서 중국 상해로 떠났다.

교회와 제물진두의 인연은 또 있다. 경당을 나와 길을 건너면 인천 중부경찰서 앞 공원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다. 기나긴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찾아온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도자 4명(프랑스인 2명, 중국인 2명)이 이곳 제물포항에 도착함으로써 ‘순교의 땅’ 조선에서 처음으로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다. 기념비에는 선교 수녀들이 배에서 내리는 장면을 표현한 청동 부조와 초대 원장 자카리아 수녀의 여행 일기 속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석을 등지자 길 건너 제물진두 순교성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이 멀리서도 또렷이 보인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랑했던 이곳 순교자들이 천상의 기쁨을 얻은 것처럼…절망과 아픔의 역경 속에서도 늘 나에게 손을 뻗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손 맞잡을 수 있기를 고대하며 순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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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당시 제물진두 처형장의 모습을 나타낸 경당 내 그림. 이곳이 10명의 순교자를 낸 순교성지이자 김대건 신부가 상해로 출발한 곳, 그리고 첫 순교 수녀들이 도착한 곳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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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진두 순교성지 입구 십자가의 길. 이승환 기자

◆ 순례 길잡이

제물진두 순교성지(cafe.naver.com/jemuljin,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40)는 순교자 10명의 넋이 서린 순교지이며, 1845년 4월 김대건 부제가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바로 뒤편에 자리한 인천교구 해안본당이 성지를 관할하고 있다. 2025년 희년을 맞아 인천교구가 지정한 전대사 수여 지정 순례지 중 한 곳이다.

- 개방시간: 오전 11시~오후 4시(주일, 공휴일 휴무)
- 미사: 월~토 오후 2시
- 문의: 032-764-4193(성지 사무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