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순례, 걷고 기도하고]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이승환
입력일 2024-10-14 수정일 2024-10-15 발행일 2024-10-20 제 341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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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가밀로 신부의 간절한 기도로 1896년 묵주 기도 성월에 본당 설립
역사의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성모신심·성체신심으로 가득한 한국의 루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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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전경. 이승환 기자

130년 전. 경기도 여주 부엉골에서 사목하던 임 가밀로 신부(Camille Buillon, 파리 외방 전교회)가 본당 사목지로 안성맞춤인 자리를 찾았다. 장호원과 이웃한 감곡 매산(梅山) 아래,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109칸짜리 집이었다. 그리고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의 주보는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목자의 기도는 현실로 이뤄졌다. 1896년 성모 성월, 임 가밀로 신부는 모든 집터와 산을 얻고 그해 묵주 기도 성월 이 자리에 본당을 설립한다.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땅, 성모님과 관련된 신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곳,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배출된 성소의 보금자리 그리고 한국의 루르드라 불리는 곳.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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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부터 1947년까지 51년간 이곳에서 사목한 임 가밀로 신부 동상. 발아래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승환 기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해발 160m 남짓한 매산을 병풍 삼아 가까이는 감곡 시내, 멀리는 경기 장호원의 너른 들판을 내려보는 자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마당에서 본당 초대주임 임 가밀로 신부 동상을 가장 먼저 만난다. 1947년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라 기도하며 선종할 때까지 51년간 이곳에서 사목한 임 가밀로 신부. 1869년 프랑스 루르드 인근 빌레아드루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자주 루르드를 찾았고 루르드 성모께 자신을 봉헌하며 사제의 꿈을 키웠다. 1893년 사제품을 받은 후 같은 해 조선에 입국해 성모님 사랑의 역사를 이곳 감곡에서 꽃 피운다. 동상 발아래는 그가 평소 자주 신자들에게 전하던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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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상이 자리한 정원을 마주하고 회랑을 돌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할 수 있는 가밀로 영성관.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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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과 성모 광장 사이에 자리한 예수 성심 광장에서 한 신자가 예수성심상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

성당 입구를 지나면 성모자상과 옛 사제관인 박물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든 그늘을 머리에 이고 몇 걸음 더 걸으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라 쓰인 글귀 곁으로 예수 성심상이 예수 성심 광장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길가에 놓인 국화 화분 하나하나를 묵주알 삼아 묵주 기도 바치며 성모 광장으로 향한다.

성모 광장은 임 가밀로 신부의 성모님 사랑과 이에 응답하신 성모님의 큰 은총을 보여주는 자리다. 1943년 일본인들이 매산 중턱, 성당보다 더 위쪽에 신사를 지으려 터를 닦자 그는 공사 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신다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묘하게도 공사 중 기상 이변이 자주 일어나며 공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고 이내 해방을 맞이한다. 1955년 성모승천대축일 이곳에는 성모 광장이 들어섰고 100차 성체대회가 열린 2018년에는 프랑스 루르드의 것과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성모 동굴이 봉헌됐다.

환희의 신비로 시작해 영광의 신비로 마친 묵주 기도의 끝. 신사가 지어질 뻔했던 광장 가장 높은 곳에 성모님이 두 손 모은 채 기도하는 모습으로 순례자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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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동굴과 같은 크기·모양으로 2018년 봉헌된 성모 동굴. 이승환 기자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1,8)

감곡 시내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고딕식의 붉은벽돌성당은 1930년 세워졌다. 제대 위 성모상은 아픈 역사와 이를 감내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루르드 성지에서 만들어져 성당 봉헌 당시 안치된 성모상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의 총탄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7개의 탄흔은 ‘성모칠고’(聖母七苦)를 연상케 한다. 

‘매괴의 어머니’, ‘칠고의 어머니’로 불리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많은 이가 외적·내적 치유를 받는 자리. 정갈하게 차려입은 한 신자가 홀로 앉아 묵상하는 모습을 성모님이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대성당을 나서는 길. 라틴어 문구가 순례자의 발아래 새겨져 있다. 그 마음 간직하며 순례를 마친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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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마당의 성모자상과 대성당.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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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광장을 지나 산상 십자가로 오르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이 자리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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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 정상의 산상 십자가. 성모 광장에서 매산 정상 산상 십자가를 오르는 등산로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승환 기자

◆ 순례 길잡이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www.maegoe.com)은 2006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맞아 발표된 청주교구장 교서를 통해 ‘매괴성모순례지’로 지정됐다.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의 중심임을 드러내기 위한 성체현양대회는 1914년부터 매년 10월 첫 주 목요일 거행된다. 올해 106차 성체현양대회는 지난 10월 3일 미사와 성체행렬, 산상 성체강복 순으로 열렸다.

옛 사제관을 개축한 박물관에는 임 가밀로 신부가 1914년 국내 첫 성체거동 때부터 사용했던 성광과 금색 제의, 영대, 구두 등과 본당의 옛 문서, 사진 등 본당과 한국교회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기도에 맛 들이고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기도와 찬미의 밤’은 매월 첫 토요일 저녁 열린다. 순례자들의 개인 묵상과 기도를 위한 ‘소울 스테이’(매주 금~주일)도 운영되고 있다.

※ 미사 수~토 오전 11시
             주일 오전 10시30분(본당 교중미사)

※ 순례 문의 043-881-2808 매괴성모순례지 사무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