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를 즐겨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라디오 시그널 음악을 듣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을 만큼, 시간마다 듣던 프로그램이 달라 바삐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출 만큼, 그 시절 라디오는 저의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엽서로 보낸 사연이 소개되어 카세트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았던 일, 야간 자습시간에 몰래 라디오를 듣다가 혼자 웃음이 터져 선생님께 혼났던 일, 새벽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뽀글이를 먹으며 들었던 새벽 방송의 잔잔한 음악들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라디오는 언제 어디서든 귀만 열어놓으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운전할 때, 운동할 때, 다림질할 때, 청소할 때. 전원을 켜놓기만 하면 흘러나오는 수많은 사연과 음악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의 배경이 되고 동반자가 됩니다.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을 때도 있고, 잊고 지냈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마치 잃어버린 은전을 되찾은 것처럼 기뻐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제가 라디오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라디오가 진화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보이는 라디오’, ‘실시간 채팅’이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라디오 앱 덕분에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혹은 다시 듣기로 언제나 꺼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빨간 점 버튼에 손을 올리고 대기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참으로 편리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야만 할까? 그것이 꼭 좋기만 한 일일까?’
TV, 스피커 등 가전기기의 성능은 끝없이 발전하고 있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VR기기도 점차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을 넘어서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단순히 소리만을 전달했던 라디오의 진화는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소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을 나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라디오의 진짜 매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채워야만 만족하는 이 흐름은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 동양화의 특징은 ‘여백의 미’라고 합니다. 여백은 채우지 못해 미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는 이의 감정과 생각을 통해 빈 곳을 채워보도록 허용하는 여유와 너그러움의 공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홀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혹은 네가 완전하지 못해 괴로워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여백을 따뜻함으로 채워나가는 오늘이 되길 희망합니다.
글 _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