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예수님 사랑하도록”…기도하며 작품 활동
방황하던 학생이 성미술의 길로
저의 재능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미술대학 건축과를 나오셨거든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미술을 공부하신 아버지께서 제 그림을 보고 응원을 많이 해 주셔서, 진짜 그림을 잘 그리는 줄로 착각했죠.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했어요. 찰흙으로 동물을 만들어 놀았어요. 시중에 나오는 동물 모양의 장난감들은 제 어린 눈에도 제대로 만들어진 게 없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만든 호랑이 작품이 하나 있는데, 지금 봐도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렇게 정교하게 잘 표현했을까 싶은 정도였어요.
찰흙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 입시에서도 다른 진로는 생각하지 않고 미대를 지원했어요. 그렇게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에 입학했는데, 당시 주류 미술을 따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외국에서는 컬트 미술, 우리나라에서는 민중 미술이 유행했어요. 당시만 해도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면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릴 때였거든요. 작품에 사회적 개념이나 작가의 정신을 넣어야 하는데, 사실 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4학년 때쯤 앞날이 막막해졌어요. 대학에서 조각을 배웠으니 뭐라도 만들고는 싶은데,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묵주 기도 9일기도를 했어요. 태중 신자라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묵주 기도를 했는데, 특히 고3 때 많이 했어요. 묵주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좋더라고요. 원하는 기도 지향도 잘 들어주시고.(웃음)
그러다가 명동 가톨릭회관 1층에 있는 성물방을 우연히 지나가게 됐어요. 당시 유명했던 최종태(요셉) 교수님이나 최봉자(레지나) 수녀님의 작품 소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어요. 그때 ‘작가가 성상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지는 성상은 상업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교수님과 수녀님의 작품을 보니 작가의 색도 들어가 있고 작가들의 신앙심도 들어가 있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나름 하느님을 생각하는 가톨릭신자이니 제 신앙이 들어간 성미술 작품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새내기 성미술 작가에 대한 교회의 배려
학교를 졸업하고 동기 형과 함께 ‘김형근 조형 연구소’라는 작은 작업실을 차렸어요. 저는 성상 조각 작업을 하고 금속조각을 전공한 형은 감실 등 금속이 들어가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전업 성미술 작가의 길은 쉽지 않았어요. 무작정 서울대교구청으로 찾아가 성당 신축에 관한 정보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안 알려줬죠. 그래도 끈질기게 관련 성당 정보를 알아내 신부님들을 찾아갔어요. 제가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며 ‘조각가인데 성물을 맡겨주시면 좋은 작품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인데, 신부님들께서 젊은이가 노력하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한두 군데씩 하다보니 포트폴리오도 생기고 다른 신부님들께 소개도 해주셔서 성미술 전업 작가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어요.
처음 성미술 작품을 봉헌한 본당은 인천교구 서곶성당(현 검암동성당)이었어요. 두 번째가 서울대교구 송파동성당이었는데 당시 주임이셨던 권태형(리노) 신부님께서 정말 좋아해 주셨어요. 젊은 작가가 뭔가 한다고 하니 잘 봐주셨고 소개도 많이 해 주셨고요. 상업적이지도 않고 작가 색도 있다면서요. 그렇게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광주대교구 옥과동성당, 서울대교구 우면동성당,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 등 많은 곳에 작품을 봉헌할 수 있었어요.
예수님을 향하도록 돕는 작품 활동 계속하고파
한번은 어느 성당에 피에타상을 봉헌했는데요. 처음에 제가 대학 시절에 만들었던 피에타상을 어느 신부님께 보여드렸죠. 신부님께서 그 작품을 맘에 들어 하셔서 성당에 피에타상을 설치하게 됐어요. 제가 대학 때 만들었던 작품이니만큼 그동안의 제 경험을 살려 더 멋지게 피에타상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께서는 실망하셨어요. 첫 작품에서 무언가 느끼신 점이 있는데, 수정된 작품에는 없었던 거죠.
이 일로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보는 사람이 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겠다’라고 생각하는 작품에는 별 반응이 없고, 성당에서 하자는대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은 작품들도 있고요. 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였죠. 그 이후로는 그저 ‘제 작품을 통해서 신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작품 활동을 해요.
그리고 첫 작품을 봉헌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만든 십자고상이 성당에 걸려 있고,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에서 저도 큰 감동을 받았거든요.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성미술 작가가 되고 싶어요.
◆ 김형근(야고보) 작가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김형근 조형 연구소’를 설립해 성미술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교구 검암동성당을 시작으로 30여 곳의 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길, 성상, 감실 등을 봉헌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