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연구 끝에 ‘도유화’ 개척…견고하고 영구적인 특징 덕에 건축 내·외장에 활용하기 적합 묵상과 기도 통해 탈렌트 봉헌…“주님께서 주신 손재주, 잘 키워 봉헌하려 노력하죠”
미술로의 도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특별히 미술 쪽으로 공부를 하지는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가끔 교실 게시판에 붙일 그림을 그리고 미술반 활동을 한 게 전부였어요. 오히려 제 언니가 그림을 전공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언니가 그림을 그리니 저는 음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렇게 피아노에 도전을 했어요. 그런데 만만치 않더라고요.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하루 8~10시간씩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해도 남는 게 없었어요. 무대 뒤에서 허전함이 느껴지는데, ‘내가 끝까지 가져갈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게 미술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요. 이 부분에서 부모님께 제일 감사드려요. 전적으로 저를 믿고 지원해 주셨거든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미술반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일반 공부도 하면서 미술부를 하는 게 힘이 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는데, 우리는 그제야 미술실에 모여 그림을 늦게까지 그렸거든요. 힘들었지만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학원은 입시 미술로 두 달 정도 다녔어요. 그래도 다행히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회화과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 온 세상이 제 것이었어요.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고요. 화실에서 도시락을 먹어가며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는데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장르 개척
대학과 대학원 졸업 후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면서 제 화풍이 자리를 잡았어요. 그때 대구대교구 신부인 동생이 ‘누나는 성화는 안 그리고 싶어?’라고 묻는 거예요. 그 후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작은 안나의 집이라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시설이 있는데, 이곳에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 14처를 수묵담채화로 그려 봉헌했어요. 묵상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작업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그런데 성당에 그림을 거는 일은 쉽지가 않았어요. 제대 뒤에 그림을 놓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종이에 그리는 그림 말고 다른 방법이 필요했어요. 이때 제 안에 있는 창작성이 불타올랐고, 새로운 창작 방법을 구상하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도예였어요. 전문적으로 다시 도예를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다시 들어갔어요. 다양한 유약을 사용해서 다양한 색을 표현하다 보니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였어요. 그 데이터를 토대로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는 ‘도유화’(陶釉畵)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됐어요.
도유화를 위해서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해요. 도자 유약으로 그림을 바르고 초벌구이한 다음 색유약을 입혀 재벌구이해요. 그렇게 해서 다양한 컬러를 만들고, 모자이크 퍼즐 작업을 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특히 불에 구워진 후에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많은 연구가 필요하죠. 이런 노력으로 깊이 있는 색상을 표현해요. 영구적이라는 점도 도유화의 장점이에요. 불에 구워져 나와 견고한 도유화는 건축의 외장, 내장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해요. 도유화나 모자이크를 설치하면 성당이 무너지지 않는 한 계속 성당의 역사와 함께할 수 있어요. 그렇게 도유화로 모자이크 작업을 처음 한 곳이 경남 고령에 있는 월막 피정의 집이에요. 그리고 대구대교구 감삼성당에도 성모성심화를 도유화 모자이크로 봉헌했죠.
성당에 필요한 성미술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당 건축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성당 건축도 배웠어요. 성당과 성미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러 성당에서 작업을 했어요. 지금까지 27곳 정도에서 작업을 했어요.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로 주님께 봉사
저는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손으로 작업해 교회에 봉헌하는 재주를 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잘 키워 봉헌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기도를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교회 성미술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기도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묵상과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해 주시겠지’라는 믿음으로요.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고 실제로 작업에 적용하면서 저만의 작품 세계가 영글어졌어요. 처음에 그저 수묵담채화를 그리다가 도유화를 개발했죠. 이런 작품들을 보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제 그림을 통해 신앙을 찾는 분들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에 너무 감사드려요. 하지만 여전히 성미술 작품은 어려워요. 가톨릭신자가 그린다고 성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갈수록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요.
지금은 영적인 성숙을 위해 잠시 작업을 쉬고 있지만,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가려고요. 작가로서의 고뇌가 담긴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손예운(숙희·라우렌시아) 작가는
196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5년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5년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를 졸업하고 도유화 장르를 개척했다. 1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8년 제21회 가톨릭미술상 추천작품상을 수상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를 비롯해 30여 곳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