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한국교회에 높은 관심…"보편교회 위한 공헌에 감사"
한국 주교단은 일주일간의 ‘사도좌 정기방문’ 기간 중 나흘에 걸쳐 국무원과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등 교황청 핵심 기구와 11개 부서((Dicasteries)를 차례로 방문했다. 부서 방문의 의미와 특징, 교황청 각 부서 대표자들과 한국 주교단이 나눈 내용을 종합해 살펴본다.
나흘 동안 교황청 핵심 기구 방문
한국교회 활동 배우려는 모습 감지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만나
사제 공동체성 등 의견 나눠
이번 사도좌 정기방문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주교들이 교황청의 거의 모든 부서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몇몇 핵심 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는 선택적으로 방문했던 9년 전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사도좌 정기방문을 준비한 주교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조직 개편과 더불어 세계 각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을 담당하는 사무국을 별도로 설치하고 담당 몬시뇰을 임명했다. 사도좌 정기방문이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교황청과 개별교회 간 내실 있는 유대를 다지는 자리로 삼기 위해서다.
한국교회의 높은 위상 체감...“교황청 각 부서 방문 자체가 시노달리타스 실천”
부서 방문 행사는 각 부서 장관의 인사말과 부서와 관련이 있는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위원장 주교 등의 발표, 발표 자료에 따른 부서의 질의와 응답, 한국 주교단의 질의와 부서 답변 순으로 진행됐다.
나흘간 13개 교황청 기구와 미성년자보호위원회 방문을 마친 주교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교회에 대한 교황청의 관심이 상당히 높고 한국교회의 활동을 오히려 배우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한국교회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 하고 그 안에서 보편교회가 배울 점에 대해서는 공유를 원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도 “9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며 “역동적일 뿐 아니라 세계교회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한국교회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자리하고 이에 대해 감사하며 더 나은 역할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경청과 소통이라는 시노달리타스를 부서 방문을 통해 실천할 수 있었다는 주교들도 있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지역교회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각 부서의 모습을 보며 이름 그대로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도 “부서를 방문해 현안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지역교회와 보편교회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이름 그대로 시노드적인 행보에 함께 있음을 체감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시노드의 연속성은 개별교회의 몫...2회기 종료 후 10개 주제 논의 내용 발표 예정
9월 16일 열린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방문에서 한국 주교단은 신자들이 혼동할 수 있는 ‘시노달리타스’의 정확한 정의와 성직자의 역할, 시노드적 교회 운영을 위한 ‘선교’의 위치, 2회기 종료 이후의 계획 등에 대해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을 비롯한 사무처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레크 추기경은 “경청을 통한 식별 과정을 통해 제2회기를 마친 후 10개의 특정 주제에 관해 심화된 논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라며 “시노드의 연속성은 각 지역 교회와 교구에 위임되어 있는 것으로 지역 교회의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타글레 추기경, “젊은이들 공감할 케이팝 스타의 신앙 고백 기회 만들어주길”
한국교회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복음화부 첫 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방문에서 한국 주교단은 교회 안에서 더욱 심각한 상태인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와 무종교층 증가. 팬데믹 이후 신앙생활 회복인 더딘 점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어 교회에서 멀어지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세계 젊은이들뿐 아니라 한국 청년과 신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길 바라고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스타들이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면 좋겠다”며 그들의 스타 파워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통일교와 나주 윤 율리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하며 한국 내에서의 상황에 대해 한국 주교단의 설명을 청했다.
한국교회 시복시성 현황 소개...시성부 장관 “시복시성은 청원하는 이들의 기도에 달린 일”
9월 17일 시성부를 찾은 한국 주교단은 주교회의가 통합 안건으로 시복을 추진해 현재 교황청 단계에 있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안건을 포함한 5개 안건, 교구 단계의 예비 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증거자 시복 안건을 소개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는 “이분들의 시복시성은 한국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본성인 ‘보편됨’의 차원에서 보편교회, 세계교회를 위한 일임을 힘줘 말씀드린다”고 했다.
시성부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은 “청원하는 후보자가 언제 시복시성이 될지 궁금해 하지만 그것은 시성부에 달린 문제가 아닌 청원하는 이들의 기도에 달린 일”이라며 “시복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주교회의지만 그것을 심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같은 날 성직자부에서 한국 주교단은 시노달리타스에 기초해 공동체성을 증진시키는 신학생 양성 방안, 증가하는 원로사제 처우에 대한 지침 공유, 인간적 성숙을 지향하는 사제 양성 커리큘럼의 변화, 복음적 청빈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이나 지침 마련 필요성 등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은 “사제 공동체성 양성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알고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또한 인성·영성·지성 사목에 더해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공동체성을 함양하는 신학생 교육은 말씀을 사는 공동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신학교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이들의 공동체성은 신학생들의 공동체성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며 “주교님들께서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신학교에서 사제를 양성하는데 매진하는 사제들을 자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영적인 도움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필요
9월 18일 열린 경신성사부 방문에서 발표를 맡은 주교회의 전례위원장 장신호 주교는 한국교회의 전례서 편찬에 도움을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경신성사부 장관 아서 로시 추기경은 “오히려 한국교회의 수고에 감사를 전한다”며 “지금까지는 전례서 편찬이 주된 일이었다면 앞으로는 선교지 국가가 어떻게 전례를 토착화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사명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신성사부와 한국 주교단은 성무일도 개정판 작업 진척 상황도 공유했다.
같은 날 열린 신앙교리부 방문에서 한국 주교단은 팬데믹 이후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은 영적인 도움을 원하고 있으며 교회는 이를 살피고 응답할 사명이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유튜브 등의 새로운 매체가 속속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왜 아직까지도 서면 문헌만을 발표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신앙교리부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문헌을 신자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 축성생활의 해 폐막미사에 수도회부 장관 초청
일회용품 여전히 사용하는 교황청이 찬미반으소서 정신 실천 솔선해야
9월 19일 수도회부 방문에서 한국 주교단은 2025년 ‘한국교회 축성생활의 해’ 선포 경과와 의미를 소개하고 2025년 10월 열리는 축성생활의 해 폐막미사에 수도회부 장관 주앙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을 초청했다. 추기경은 “진심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참석 여부를 계속 조율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날 오후 진행된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방문 자리에서 한국 주교단은 “대부분의 부서에서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물병을 사용하는 등 교황님께서 줄곧 강조하시는 찬미받으소서 정신이 교황청에서조차 실천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며 “교황청에서 실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개별교회 신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문화교육부 장관 톨렌티누 데 멘도사 추기경은 9월 16일 가진 한국 주교단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에 따라 세워진 문화교육부의 역할과 사명을 소개하고, 한국교회가 문화와 교육을 위해 펼치는 모든 활동, 특히 가톨릭 초·중등학교와 대학, 학교 법인 등 교육기관의 활발한 활동에 감사를 표했다. 멘도사 추기경은 문화적이고 기술적인 양성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한국 교회의 학교·대학 사목 현황, 한국의 문화·정치 환경과 한국교회의 접점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 한국 주교단과 장시간 질의응답 형태로 의견을 나눴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