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부추겨 일으키는 폭력은 하느님 뜻 아니며 교리와도 무관
2019년 4월 2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스리랑카에서는 여덟 군데에서 253명이 죽고 500여 명이 다치는 엄청난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호텔 네 곳과 주택가 및 세 곳의 가톨릭교회가 피해를 보았다. 이는 불교도와 힌두교도 간에 벌어진 종교 갈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비교적 특혜를 누렸던 소수파 타밀족과 다수파 싱갈족 사이의 충돌이었다.
많은 이들이 오늘의 자살폭탄 테러가 이슬람 과격파의 발명품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1980년대부터 이미 스리랑카 타밀 타이거 게릴라 그룹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과격 테러리즘은 불교도와 힌두교도의 종교 갈등 때문이 아니라 타밀족과 싱할리족 사이의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빚어진 참상이었다.
미얀마의 로힝야 부족이 겪고 있는 참극은 현재진행형이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대대적으로 학살하고 추방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러왔다. 이 사태는 일반적으로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 부족에게 가한 차별과 탄압으로 인식되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군부가 합법적인 선거로 수립된 정부와 충돌하며 정부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대규모 폭력 사태다.
로힝야족은 이미 178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주하여 국경지대에 살아왔다. 군대가 자행한 폭력의 표적이 된 것은 이미 미얀마 여러 도시에 살고 버마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이 아니다. 군부의 목표는 전략적으로 장악이 필요한 지역에 사는 이방인들을 제거하는 데 있다. 그들의 종교가 다르기는 하지만 종교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현재 세계를 가장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이다. 이 사태의 함의는 대단히 복합적이다. 19세기 말 유럽 내에 반유다주의가 노골화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는 유다 민족의 본향이었던 팔레스티나로 이주하려는 운동(시오니즘)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팔레스티나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고 영국이 중동 지역을 점령하자 유다인들의 팔레스티나 이민이 가속화하고 유다인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시오니즘 대두에 크게 반발하였다.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다인의 증가와 아랍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는 아랍인들의 폭동,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다인들의 시오니즘은 점점 국가주의적 성향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유다인 국가의 설립을 바라는 이들, 시오니스트들 대다수는 무신론자이거나 종교에 무관심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유다인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도 종교적 색채와는 무관한 마르크스주의 조직에 속한 이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교 출신도 이슬람 출신도 있었고 종교가 그들 투쟁의 우선적인 동기가 아니었다.
유다인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의 핵심은 땅이었다. 종교는 땅(상징적으로는 양측에서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예루살렘)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동원된 구실이었다. 그러나 대중언론은 이를 유다인과 무슬림 사이의 분쟁이라고 단순히 포장하여 소개하였다. 사안의 중심은 한 지역의 땅덩어리를 놓고 두 개의 다른 정치공동체가 벌이고 있는 분쟁이다.
20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 역사에서 유례없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쏟아낸 주체는 합리적 이성을 앞세우는 이데올로기였다. 구체적으로는 나치즘과 공산주의였다. 둘 다 종교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모든 종교를 탄압하고 배척한 무신론적 이념체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의 뿌리에 종교가 있다는 막연하고 왜곡된 통념을 떨쳐버려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9년 2월 4일 아랍에미리트 방문에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공동으로 인류를 향해 이렇게 호소하였다.
“우리는 종교가 결코 전쟁, 증오, 적개심, 극단주의를 선동해서는 안 되고, 폭력이나 유혈 사태를 조장해서도 안 된다고 단호히 선언한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들은 종교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종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에 따른 결과들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강렬한 종교심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종교 진리와 무관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종용해 온 종교 단체들의 곡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정치적 경제적 목표들이나 세속적이고 근시안적인 목표들을 달성하려는 목적에서 자행된다. 따라서 우리는 증오, 폭력, 극단주의, 맹목적 광신주의를 선동하는 데에 종교를 이용하는 행태를 척결하고, 또한 살인, 추방, 테러, 억압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데에 하느님의 이름을 도용하지 않도록 모든 이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서로 싸우거나 죽이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그들의 삶과 그들이 놓인 상황 안에서 핍박과 멸시를 받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도 아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데에 당신 이름이 악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글 _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