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작은 성실함과 항구한 인내심

이승훈
입력일 2025-03-31 13:31:34 수정일 2025-03-31 13:31:34 발행일 2025-04-06 제 343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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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라지만, 인간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식물은 생존과 성장과 번식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해 뻗어나갑니다. 식물은 인간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고 햇빛이 있는 곳, 바람이 부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키워갑니다.

예를 들어 집 안이 허전해 화분 하나를 두었는데, 화분이 자꾸만 내 맘대로 안 자라고 모양이 이쁘지 않아 오히려 집이 어수선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 상황을 식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식물은 인간이 주지 못한 것을 스스로 찾아 최적의 모습으로 자라는 상태일 것입니다. 만약 식물이 내 마음대로 자라길 바란다면, 식물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식물과 나의 마음을 맞추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적절하게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식물은 내 생각 이상으로 이쁘게 자랄 것입니다. 이 점을 통해 신앙인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약 우리가 나의 고집을 조금씩 내려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과 나를 맞추는 과정을 가진다면, 우리는 내 삶이 보다 아름답고 충만해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지내는데도 마음속 평화가 차오르지 않고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나와의 공간을 조금 더 다채롭게 꾸미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평소 아침·저녁기도를 잘 하지 않았다면 까먹지 않도록 알람을 맞추거나, 평소 미사 봉헌 후 바로 성전에서 나왔다면 5분이라도 더 머물러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봉사 이외의 것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작은 부탁도 거절하고 있었다면 어느 날 한 번쯤은 기꺼이 도와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았던 하느님과의 다양한 시도와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느님 안에서 시도할 수 있고, 또 그리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작품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끊임없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식물들은 살아남아 성장하고 씨를 뿌리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낮은 자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기다리는 것을 반복할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주저앉아 작은 것도 시도하지 않고 기다리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반복되고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인내를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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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