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아시아의 관점이 빠진 영화 <콘클라베>

최용택
입력일 2025-03-11 14:24:24 수정일 2025-03-11 21:46:43 발행일 2025-03-16 제 343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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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제공

영화 <콘클라베>는 주연 랄프 파인즈의 훌륭한 연기와 교황청 정치라는 신비로운 배경을 바탕으로 흥행을 달리고 있다. 영화는 서스펜스와 경외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며, 교황 선출이라는 의식과 이 일의 중대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2025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영국 작품상을 포함해 주요 상을 휩쓸고, 미국 오스카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은 것은 놀랍지도 않다.

<콘클라베>의 진정한 매력은 교황청의 가장 비밀스러운 의식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황이 없는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항상 궁금해했다. 이제 이 영화 덕분에 더 이상 상상할 필요 없이 현실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가톨릭교회를 묘사한 영화 중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교황 선출의 절차와 형식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교황 선출이라는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과정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영국 소설가 로버스 해리스의 2016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랄프 파인즈는 추기경단 단장인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 역을 맡아 정치적 음모와 개인적 야망이 얽힌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는 인물로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화려한 시스티나 경당과 선거 과정의 엄숙함, 차가운 대리석 내부, 그리고 각 투표가 미치는 심오한 신학적 및 정치적 의미는 영화의 몰입도를 더하게 한다.

랄프 파인즈는 로렌스 추기경을 연기하며 비록 파벌을 지지하지만, 너무 냉담하거나 지나치게 편향되지 않게 선거를 이끌어간다. 처음에는 ‘진보적인’ 벨리니 추기경을 교황 후보로 지지하지만, 벨리니 추기경의 무절제한 야망과 도덕적 용기의 결여를 깨닫고 결국 지지를 철회한다.

조연들은 각기 다른 이념적 관점을 잘 표현하여, 콘클라베 내의 내부 갈등에 깊이를 더한다. 각 추기경들은 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통주의와 진보적 개혁 사이에서 다양한 시각을 드러낸다. 이 역동성은 신앙과 권력, 도덕성의 매혹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며, 관객은 각 투표에서 동맹이 형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 <콘클라베>에는 몇 가지 중요한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특정 후보들의 묘사는 특히 이탈리아의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의 경우처럼 캐리커처에 가까운 면이 있다. 세르지오 카스텔리토가 연기한 테데스코 추기경은 가톨릭교회를 뿌리째 보수로 되돌리려는 지나치게 열정적인 전통주의자로 묘사된다. 이탈리아 배우들이 종종 과도하게 연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그의 연기는 캐릭터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전통주의를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특성으로 그려낸 영화의 대본은 교회의 이념적 분열을 더 균형 있게 탐구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 기회를 놓친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국 후보인 트렘블레이 추기경은 너무 교활하게 묘사되어 심각한 후보로 보이지 않는다. 한때 유력 후보였던 이 흑인 추기경은 과거의 잘못으로 빠르게 신뢰를 잃는다.

스캔들과 정치적 음모는 이런 이야기에서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영화는 특정 이념적 관점을 점차 배제하며 결국 ‘진보적인’ 결과로 이끌려가는 패턴을 따른다. 너무 잘 짜여 있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의 큰 결점 중 하나는 아시아의 시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아프리카 후보가 잠시 후보로 오르기도 하지만, 선거 과정은 전적으로 서구 후보들 사이에서만 진행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직을 시작하며 아시아가 교회의 미래라고 선언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영화에서 아시아의 중요한 역할을 제외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는 교회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콘클라베 과정에서 아시아 추기경의 역할을 제외한 것은 교회 안에서 커져 가는 아시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크게 아쉽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맥을 잇는 겸손하고 개혁적인 교황을 뽑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향후 교회의 방향에 아시아교회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교회의 미래를 다룬 이야기에서 아시아의 시각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특히 필리핀, 인도, 한국 등 가톨릭 인구가 많은 나라들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교회의 글로벌 환경에서 중요한 요소를 간과한 것이며,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전쟁을 겪고 있는 가난한 지역에서 온 고빈 베니테즈 추기경의 등장이다. 이 예기치 않은 후보의 등장으로 콘클라베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계시적 순간으로,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오랫동안 고수해 온 가정들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만약 <콘클라베>가 20년 전 개봉되었다면, 이 전환점과 폭로는 혁신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화적 및 문화적 환경에서는, 진보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정치가 영향을 미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다지 강한 충격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대신 흔히 접할 수 있는 틀에 머물러 있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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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크리스티안 마르티니 그리말디
UCAN 기자로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며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교회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했으며, 이탈리아의 주요 신문과 라디오 방송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