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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신부의 가장 큰 업적은 가톨릭 선교 역사 바꾼 것”

이주연
입력일 2025-01-17 14:12:16 수정일 2025-01-20 17:15:42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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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치 원전」 번역한 김혜경 박사
마태오 리치 신부 지음/김혜경 옮김/1권 480쪽·2권 504쪽·3권 492쪽·4권 440쪽·5권 328쪽/1권 3만9000원·2권 3만9000원·3권 3만8000원·4권 3만4000원·5권 2만6000원/세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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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김혜경 박사는 "한 선교사의 흥미진진한 선교활동을 통해 중국과 같이 문화와 철학의 뿌리가 깊은 곳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의 역사’를 제대로 보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혜경 박사 제공

2010년 9월, 마태오 리치(1552~1610) 서거 4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논문을 준비 중이던 김혜경(세레나) 박사는 서강대학교 로욜라 도서관 한쪽 끝에서 뽀얀 먼지가 앉은 두 권짜리 두꺼운 검은색 양장본 책을 발견했다. 「리치 원전」이었다. 1949년 이탈리아 왕립학술원 발간 초판본 같았다. 바로 책을 빌려, 뛰는 가슴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간 집에 가는 것도 잊을 만큼, 17세기 초 리치 신부의 서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서방에서 온 현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자 빈센트 크로닌은 로마 예수회 고문서실에서 마태오 리치 신부의 수기본 자료를 발견한 것이 집필 계기라고 했는데, 저 역시 그렇습니다.” 「리치 원전」을 마주한 후 미친 듯이 숙독했다는 김 박사는 그때부터 14년간 책에 파묻혀 번역에 몰두했다. 고전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라틴어 및 중국어 개념 등 여러 언어의 장벽들 속에서도 ‘그분’을 대하듯 옮기는 작업을 이어갔다.

「리치 원전」 한국어판 출간 의미에 대해 “이서(理書)와 기서(器書)를 통합한 모든 서학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책”이라고 강조한 그는 “이지조가 집대성한 「천학초함」(天學初函)에 포함된 이서와 기서가 나오게 된 동기 및 그 책들의 유통과정, 동서양 학자들의 반응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모두 담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리치 원전」이 한국연구재단의 명저 번역 지원사업에 선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 박사는 교회 역사 안에서 리치 신부의 가장 큰 업적을 ‘가톨릭 선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 ‘서구화’ 지향적인 선교 패턴을 ‘현지화’로 바꾸고, 명령에서 듣는 자세로 전향했다”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4세기가량 앞장서 걸었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리교육과 사도적 열정의 모델'로 마태오 리치 신부를 꼽은 바 있다. 2023년 5월 31일 일반 알현에서 아시아 국가에 입성한 예수회의 사명을 언급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포한 토착화의 모델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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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이번 번역을 통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리치 신부가 엘리트 선교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향한 선교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며 “또 문(文)이 대접받는 사회에서 관리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속적인 저술 활동으로 명성을 얻으려 노력한 모습을 봤다"고 했다.

“마태오 리치 신부가 벌인 선교의 절반은 문(文)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도 그들이 관심 두는 내용으로요. 한국교회도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님은 하비에르가 단초를 제공하고, 발리냐노가 정책을 세운 ‘적응주의 선교’를 실행하신 분이며,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나온 ‘토착화’, 곧 ‘맞춤형 선교 전략’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한 김 박사는 “그 바탕에 중국과 중국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있었고, 따라서 리치 신부님의 선교는 총체적이었다”고 들려줬다.

“한 선교사의 흥미진진한 선교활동을 통해 중국처럼 문화와 철학의 뿌리가 깊은 곳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 역사’를 제대로 보게 되기를 바란다”는 김 박사. 그는 “근대 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인도를 시작으로 일본, 중국에서 어떻게 활동했고, 한국교회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 뿌리부터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