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어린 양은 아녜스의 ‘순결’ 상징…양털로 만든 팔리움 ‘되찾은 양’ 의미

이주연
입력일 2025-01-13 11:43:00 수정일 2025-01-14 10:36:52 발행일 2025-01-19 제 342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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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특집] 아녜스 성녀와 팔리움의 관계

3~4세기경 로마에서, 12~13세 정도 나이의 소녀가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신앙을 증거하다가 순교했다. 바로 아녜스(Agnes) 성녀이다. 성녀는 성미술 전통 속에서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이는 교황과 대주교의 전례 복장 중 하나인 팔리움(Pallium)이 아녜스 성녀를 기리는 전통 속에 제작되는 것과 연관된다.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을 맞아 성녀의 생애 및 팔리움과의 내력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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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솔라 마달레나 카치아 <성녀 아녜스>

로마의 순교 동정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 기록을 기초로 한 전기에 따를 때, 성녀는 290년쯤 로마 클로디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열심한 그리스도교인이었던 부모는 생후 얼마 되지 않아 세례를 받게 했다. ‘아녜스’라는 이름은 온순함을 뜻한다. ‘오염되지 아니한, 순결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형용사 ‘아녜’(agne)와 어린양을 뜻하는 라틴어 이름 ‘아냐’(agna)에서 유래했다.

자라면서 계속 예수님과 복음에 관한 교리를 배웠던 성녀는, 체칠리아나 아가타 성녀처럼 주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의 순교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믿음의 증거에 점차 매력을 느꼈다. 증거자들이 묻힌 지하 무덤을 지날 때는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십대가 되어 아녜스는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더욱 사로잡혔다. 청혼하는 로마 귀족 청년들이 많았지만, 그런 이유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 총독 신포리아노의 아들에게도 청혼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에 아들보다 더 모욕감을 느낀 신포리아는 좋은 말로, 나중에는 협박으로도 혼인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래도 결심을 꺾을 수 없게 되자, ‘동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베스타 여신의 제단에서 성화를 관리하라’고까지 했다. 이에 아녜스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인 당신의 아들도 거부하였는데 어떻게 영혼도 없는 귀머거리 우상에게 나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격분한 총독은 사창가에 보내는 등 갖은 모욕으로 성녀를 굴복시키려 하다가 결국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녀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집행자가 자신의 목을 잘 칠 수 있도록 했고, 그녀의 피는 흘러서 옷을 붉게 물들였다. 순교 방식에 대해서는 화형이나 참수형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성녀 나이가 12~13세의 어린 나이였다는 것은 일치한다. 한 세기 정도가 지난 후, 암브로시오 성인은 “마지막까지 정결하게/ 선한 얼굴 손으로 감싸며/ 땅 위에 무릎 꿇고/ 천상의 꽃처럼 쓰러졌다네”라고 애도했다.

성녀는 당대 젊은이들이 존경할 만한 순결의 모범이었다. 여러 성인은 그녀의 행적을 알리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미사 전례의 성찬 기도 제1양식에 나오는 펠리치타스와 페르페투아, 아가타, 루치아 등은 성녀를 본받아 순교한 이들로 알려진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딸 콘스탄시아도 심각한 병의 치유를 청하려 성녀 무덤을 방문했고, 병이 나은 후 성녀 무덤 위에 ‘산타 코스탄자’(Santa Costanza) 성당을 짓도록 했다. 아녜스 성녀는 로마의 동정 순교자들 가운데 4세기경부터 가장 많은 공경을 받은 인물이다.

 

청혼과 협박 등 굴하지 않은 아녜스, 순교 후 ‘순결 모범’ 공경 받아
팔리움, 교황과 대주교의 권한 상징…아녜스 축일에 축복되는 어린 양 두 마리 털로 제작

어린 양의 털로 제작한 팔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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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6일 팔리움을 받은 뒤 신자들에게 강 복하고 있는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제의 위 목과 어깨 부분에 둘러 착용하는 좁은 고리 모양의 양털 띠를 말한다. 팔리움이 교황의 고유한 전례적 표장(標章)으로 나타난 것은 마르코 교황(336) 시대부터다. 「연대 교황표」에 따르면, 마르코 교황은 로마 인근 오스티아 교구 주교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다. 이처럼 초 세기부터 교황들은 팔리움을 그들 고유의 전례적 표장과 견장으로 여기고 착용했다. 펠루시오의 이시도로(440)는 주교 팔리움을 ‘공동 표지’라는 이름으로 언급했다. “주교가 어깨 위에 두르는 팔리움은 주교들의 공동 표지로서 아마포가 아니라 양털의 실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주님께서 찾아 나서신 길 잃은 어린 양, 즉 주님께서 마침내 발견하시고 어깨 위에 짊어지셨던 어린 양의 양털을 의미한다.”

이 팔리움은 ‘대주교와 관구장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며 관구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식이다. 이런 상징성에서 대주교 착좌 이후 3개월 이내에 팔리움을 교황에게 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팔리움을 양털로 만드는 것은 ‘양’이 지닌 속뜻에 있다. 양은 성경에서 가장 흔하게 제물로 봉헌되던 동물이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은 ‘희생’과 ‘속죄’의 상징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비유한 바 있다.(요한 1,29)

양털로 짠 팔리움을 교황이나 대주교가 착용하는 것은 ‘목자가 되찾은 양을 어깨에 멘 모습’(루카 15,5)을 연상시킨다. 어깨를 둘러싼 고리 모양의 팔리움은 폭 4~6cm의 띠로서, 양쪽 끝은 가슴과 등으로 내려오게 돼 있다. 그리스도의 어린 양을 형상화한 생김새다. 여섯 개의 작은 십자가로 장식돼 있으며, 가슴과 등의 끝부분은 검정 비단으로 단을 대어 감싸져 있다.

아녜스 성녀와 팔리움

아녜스 성녀를 표현하는 그림이나 상본에 새끼 양이 등장하는 것은 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성녀는 양을 팔에 안고 있거나 발밑에 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아녜스 성녀와 양의 대비는 ‘아녜스’ 이름이 ‘어린 양’을 뜻하는 것과 더불어 그녀의 순결한 무죄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는 한편, 성녀가 양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칼에 찔려 순교했다는 전승을 기념하는 면도 있다.

이같은 배경에서 팔리움은 매년 아녜스 축일에 축복되는 두 마리 어린 양의 털로 만들어진다. 양들은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인근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키워져, 1월 21일 성 아녜스 성당에서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이때 한 마리는 흰색 모포, 다른 한 마리는 붉은색 모포에 쌓여 축복된다. 이는 각각 동정과 순교를 나타낸다.

성주간이 가까워오면 양털은 팔리움으로 만들어진다. 새 팔리움들은 베네딕토 14세 교황의 헌장에 근거해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 전날 아침,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진다. 이후 제1저녁 기도가 끝나면 교황이나 대표 추기경이 축성해서 사도의 무덤 곁에 보존된 은제 금고 속에 간직한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