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느헤 8,2-4ㄱ.5-6.8-10 / 제2독서 1코린 12,12-30 / 복음 루카 1,1-4; 4,14-21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고향에 가신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심으로써 당신의 소명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서의 이 대목(이사 61,1-2 참조)이 쓰인 것은,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칙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로부터 풀려나 성전과 예루살렘을 복구하도록 되돌려 보내진 때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가 바로 당시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제이자 율법 학자인 에즈라는 백성들에게 율법서를 읽어줍니다. 주님 뜻을 따르는 백성 공동체를 재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온 백성이 그것을 듣고 울었습니다. 주님의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한 자신들의 처지가 부끄럽고 한스러웠을 것이고, 그분을 따르는 참된 공동체를 잿더미에서 복구해야 하는 그들의 사명이 버겁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즈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맛있는 음식과 단 술을 나누도록 합니다. 이방인의 왕에 의해 갑작스레 주어진 해방이지만 그들은 자유를 얻었고, 그들을 이끌어줄 율법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규정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주고 힘을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이 대목은 또한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의 선포와 연결됩니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 7번 돌아오면 이스라엘은 희년을 선포해야 합니다. 희년은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키는 때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해방과 땅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그것을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때입니다. 또한 안식년과 희년에는 모든 사람과 가축과 땅이 쉬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서도 안 됩니다. 이 규정이 지켜지려면 특히 가진 자들의 큰 희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규정은 과연 잘 지켜졌을까요?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백성들이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을 멸망시키고 땅을 황폐하게 만들어 땅이 쉴 수 있게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레위 26,14-39 참조) 이스라엘의 멸망과 백성의 귀양은 그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 약한 이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착취한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희년의 선포와 연결하여 하느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서로를 형제로 대하고, 그들이 가난이나 폭력이나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참된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돌보는 사랑의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를 고향 사람들 앞에서 다시 선포하십니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후반부가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선포에 감동한 이들을 도발하시며 그들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를 내며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약속이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연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유다인들이 당신을 박해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나자렛 사건으로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시고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의 여정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소명, 즉 사랑으로 서로 돌보고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는 백성의 공동체를 이루는 소명은 제자들을 통해 초대 교회로 이어집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 공동체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 묘사합니다. 역할과 능력과 은사가 서로 다른 지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한 몸을 이루는, 아름다운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이 구원을 세상 끝까지 모두에게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제자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머리이신 주님의 모범을 따른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며 해외 원조 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소명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다른 이의 가난과 고통과 억압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코린 12,26)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코린1 12,24-25 참조)
주님, 오늘 당신의 몸인 교회가 세상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형제들에게 사랑의 빛을 환히 비추는 날이 되게 하소서. 아멘.
글 _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