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연 ‘진보적’일까?

최용택
입력일 2024-10-08 수정일 2024-10-14 발행일 2024-10-20 제 341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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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9일 벨기에 사목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CNS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교황을 맹렬히 비난하는 극우 가톨릭신자라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설 만한 내용이었다. 벨기에 사목방문 도중 교황은 그의 평소 여성관을 비판한 것에 반응을 보였는데, 머리털이 삐쭉 설 만큼 ‘보수적’인 그의 관점이 드러났다.

교황은 “여성을 향한 이 발언들이 보수적이라면, 나는 ‘카를로스 가르델’”이라고 말했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프랑스 태생의 아르헨티나인으로 탱고 음악가이며, ‘나는 카를로스 가르델이다’라는 표현은 아르헨티나의 일상 대화에서 상대편의 생각이 어불성설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가톨릭교회의 보수층 대다수는 아마도 교황은 보수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벨기에 사목방문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보수적’이라는 의견을 반박하면서도, 낙태는 ‘살인’이며, 낙태를 수행하는 의사는 ‘청부살인업자’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수준의 말이었다.

굳이 예를 들 것은 아니지만, 보수층이 교황을 비난하는 잘 알려진 사례로 「사랑의 기쁨」이 있다. 교황은 2016년에 발표한 이 권고에서 조심스럽게 재혼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의 문을 열었고, 최근에는 신앙교리부의 선언 「간청하는 믿음」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교회의 축복을 허용했다. 게다가 진보적인 주교들을 교회의 요직에 임명하고 진보적 운동단체를 포용하는 한편 전통 라틴어 미사 참례자들을 꾸짖었다.

이 모든 것을 참작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세속과 가톨릭교회의 ‘진보’에 대한 평가 차이 때문이며, 이에 따라 언론과 일상의 대화에서 혼란이 일어난다.

세속에서 ‘진보적’이라는 말은 서구에서 ‘문화 전쟁’이라고 부는 것에 관대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쓰인다. 세속의 입장에서 ‘진보주의자’는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며, 동성혼을 지지하는 친동성애자들이며, 종교에서 여성 사목자를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권 옹호자들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가톨릭교회의 모든 지도부는 사실상 ‘진보적’이라고 불릴 수 없다.

비록 몇몇 주교들은 다른 주교들보다 생명권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몇몇은 낙태를 개인적 소신과 시민법 사이의 차이라고 옹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어느 가톨릭교회의 주교도 낙태를 절대선이라고 말하거나 낙태옹호 캠페인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또 많은 주교들이 사목적인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에게 다가가지만 가톨릭교회가 동성혼을 주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성사적 결합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하고 있고 동성애자들이 그저 환영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다른 방법을 찾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주교들이 여성의 사제서품을 옹호했지만, 주교단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관점에서의 ‘진보’와 ‘보수’는 교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고위층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다름을 고려하는 가톨릭교회의 관점에 따르면, 교회 안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 진보적 주교가 교회는 낙태 문제에 너무 집중하고 있으며, 법적인 낙태 금지를 위해 싸우기 보다는 임신한 여성과 가정을 지원하는데 재원을 쏟는 건설적이고 연민 어린 노력을 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또 진보적인 주교는 동성혼을 옹호하는 대신 동성결합을 축복해 가톨릭교회의 권한을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간청하는 믿음」을 수호하자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진보적 주교는 교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열려 있고 교회가 세상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보수적인 주교는 적용보다는 보존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신앙에 충실하며, 사람들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을 예방하고자 한다.

달리 말하면, ‘좌파’와 ‘우파’에 대한 이해는 ‘가운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속적 관점에서 ‘가운데’는 정해진 시간의 여론 방향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이 ‘가운데’는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일반 언론사에 다니는 한 동료가 있는데, 그는 항상 나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무슨 일이지?”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이야. 하지만 가톨릭교회에서 말할 때나 그렇지, 미국인이나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아니야”라고.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황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만일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내가 카를로스 가르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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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