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활동이라도 하느님 뜻이면 모두 순명하겠습니다”
묵주기도 책으로 시작한 성화
대학 졸업 후 박대성(바오로) 화백과 결혼하고, 친정엄마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8남매 중 막내라 그런지 엄마에 대한 마음이 무척 각별했거든요.
그러나 엄마와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묵주기도 책을 발견했어요. 낡아서 곳곳이 너덜너덜해진 기도 책에는 딸과 사위, 손주 등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 이름과 기도 시작 날짜 등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책이 마치 엄마 그 자체인 것 같은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외국에는 가죽 표지의 성경책을 대를 이어 물려주곤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튼튼한 제본으로 만들어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기도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 바람은 2009년 시인 신달자(엘리사벳) 선생님의 글과 제 성화로 「성모님의 뜻에 나를 바치는 묵주의 9일기도」(성바오로출판사)라는 책을 만들면서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정교회 대주교님과의 만남
묵주기도 책 성화를 준비하면서 감수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우연한 기회로 한국정교회 초대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1929~2022)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은 서양화이면서도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저의 성화를 보시며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의 재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010년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서는 바오로 사도 관련 신문 연재 기획에 참여하시면서, 저에게 성화 연재를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성화 작업을 위해 그리스와 터키로 성지순례를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성지순례는 저에게 더없는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묵주기도 책과 수도원 기행 등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하느님께서 저를 훈련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주보 표지 성화를 그리는 경험으로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2015년(나해)에는 서울대교구, 2017년(가해)와 2018년(나해)에는 대구대교구, 2019년(다해)에는 전주·원주·제주교구 주보 표지에 ‘그림으로 읽는 복음’을 실었습니다.
“고통 봉헌은 곧 순교”
주보 그림에 매달려 지냈던 시간이 끝나고 전국 순회전을 계획하던 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계획을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에 무언가 메시지를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500호 크기의 대작 ‘현존’입니다. 팬데믹으로 힘든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메시지와 위로를 전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던 중 뭔가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투병 생활이 제게 큰 전환점이 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특히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의 마지막 만남은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대주교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수술과 항암치료를 겪으셨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대주교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많이 야위신 대주교님은 “아픔이 올 때마다 십자가 주님의 고통을 떠올리며 기쁘게 아픔을 봉헌하는 것이 순교정신”이라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대주교님의 말씀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메시지인 듯, 순교는 성화 작가로서의 제 앞날에 새로운 화두가 됐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
항암치료가 끝난 뒤 전주교구 박상운(토마스)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전주교구 권상연성당의 성물을 모두 제 작품으로 꾸미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몸이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작가로서 그런 명예스러운 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며 저를 응원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며 흙을 만지는데, 눈물이 쭉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주님과 대화하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십자가를 만들 때는 이제까지의 관념을 모조리 부수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던 분의 목이 빳빳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고개를 숙이게 했고, 골수에 박힌 가시와 탈골된 팔, 구멍난 몸을 표현하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제 작품을 보고 많은 분들이 “아프고 난 뒤의 작업과 이전 작업에서 깊이의 차이를 느낀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이 작업들을 하면서 내내 주님께서 제게 기쁨을 주셨기에,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무명순교자를 위한 진혼곡
권상연성당 성물 봉헌에 이어 또다시 순교자와 만났습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관장 원종현(야고보) 신부님께서 저를 초대하셨거든요. 주님께서 예비하신 무슨 특별한 뜻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원 신부님께서는 목이 잘려 한강에 던져진 8000여 명의 절두산 무명 순교자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순간 순교자들의 마음이 제 안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분들을 기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월 15일 시작한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초대전 ‘무명순교자를 위한 진혼곡’은 10월 27일까지 계속됩니다. 이번 전시 역시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저뿐만 아니라, 작품을 접하는 여러분 모두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와 작품으로 소통하고, 특별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작가는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Art Student of League에서 수학했다. 1995년 서울 세검정본당 기공 기념 전시를 시작으로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숙명여대 박물관, 서울대교구청, 여산성지,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등에 성물을 봉헌했다. 남편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은 옥관 문화훈장을 수훈한 한국화의 거장이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