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에서는 한 장학회가 만들어졌다. 엘리사벳장학회로 이름 붙여진 장학회는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이혜경(엘리사벳) 씨의 유지를 따른 것이었다. 가족들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씨의 뜻을 받들어 기금을 출연하자, 본당은 이런 귀한 뜻을 받아들여 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장학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그 장학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꾸준하게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는 사이에 600명에 가까운 청소년들이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고 사회로 진출할 힘을 얻었다.
장학회 출범 당시 신문사 자료들을 검색하다 보니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생전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하던 고인의 마음, 가족 모두 비신자였음에도 이를 교회에 봉헌한 정성을 본당은 명동대성당 역사와 함께 길이 이어지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한 모습이었다. 이후 본당은 공동체 신자들의 기도와 관심을 텃밭으로 조용하게 생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장학 활동을 이어온 여정을 보며 밀알 하나가 싹을 잘 틔워서 여러 나이테를 품은 큰 나무로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가족들은 그때 성금 전달식에서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에게 나눠진 기금을 통해 죽은 딸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아마도 고인의 넋은 나눔 속에서 매번 새로운 밀알로 뿌려지는 게 아닐까.
장학회 첫 회 기금을 받은 학생들은 이제 장년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는, 그래서 다시 또 다른 밀알이 싹을 틔우는 따뜻한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