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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사회교리, 왜 필요한가

이승훈
입력일 2024-09-02 수정일 2024-09-02 발행일 2024-09-08 제 340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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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이 잘못된 메시아사상을 가졌다면, 오늘의 신앙인들도 비슷한 잘못된 예수 사상을 갖지 않았나 싶다. 최근 신자들의 사회 사건들을 대하는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교회가 왜 세상일에 관여하나’, ‘하느님 은총만 받으면 되지’, ‘정교분리’ 등 신앙은 성전 안에서만 유효하다고 보고 교회 안과 밖을 완전히 격리시킨다. 이를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또는 세속화라고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회의 예언적 역할은 물 건너간 느낌이다.

가톨릭 신앙은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으로 이뤄져 있다. 믿을 교리가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이라면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지침이다. 믿을 교리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라면 사회교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사회교리를 ‘제2의 교리’라고 말하지만, ‘살아있는 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사회교리는 믿을 교리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며, 모두가 실천해야 할 하느님의 계명이고, 우리 삶과 직접 연결된 가장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만일 교회가 세상의 문제에 대해 예언적 역할을 거부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교회가 세상에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 되며,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잘못을 범하는 꼴이 된다.

사회적 불의가 만연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고통이 늘어가도 그저 남의 일로 보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외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앞선다. 세상의 부조리는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세상에서 인권과 정의 평화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모르지만 결핍 시엔 중대 재해를 발생시킨다.(이용훈 주교 「삶에 대한 이야기」) 신앙이 살아있으려면,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려면 무엇보다 사회교리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살았던 공생활 대부분이 대사회 차원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몸소 연대하신 예수님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셨다.(루카 14,21과 마태 12,29 참조) 그 이유는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셨다.(마태 9,35-36;25,40 참조)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이웃 되어주셨고, 기득권의 부당함에 분연히 저항하셨다.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설법이나 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사회교리야말로 교회의 활로이자 현대 신앙인의 선결 조건이고 미래 한국교회의 지속 가능성의 잣대라고 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고, 올바른 신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성경에 쓰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싶은가? 신앙을 찰지게 살고 싶은가? 그러면 사회교리를 접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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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제1대리구 구성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