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우연을 넘어 숙명으로

이승훈
입력일 2025-03-31 13:31:23 수정일 2025-03-31 13:31:23 발행일 2025-04-06 제 343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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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기쁨과 슬픔, 수많은 사람들과 맞닥뜨리는 역경들. 이 모든 일이 단순히 우연의 산물일까? 그중에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계획된 일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연이고 무엇이 우연일까?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독일로 오르간을 배우기 위해 떠났을 때, 나는 내 20대 전부를 그곳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우연히 찾아온 미지의 세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낯선 환경과 두려움 속에서의 삶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으며,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의심을 가져오게 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왜 오르간을 배우려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나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간절한 기도가 시작됐다.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의탁하는 고백을 하게 됐다. “주님, 제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저의 모든 상황까지도 주님께 맡깁니다.” 그 기도는 매일의 삶에서 장기간에 걸친 고된 연습과 노력을 이끌어줬다.

혹독한 11년의 과정은 나의 음악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다지게 해줬고, 그 음악은 나만의 기도가 되어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음악적 표현에도 더욱 풍요로움을 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막막했던 어려움은 주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으며, 그것은 주님의 ‘선물’, 아니, 필연적으로 계획된 ‘숙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고난과 외로움의 골짜기를 지나게 된다. 고통은 때로 깨달음을 주는 도구가 되고, 외로움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결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음악은 나를 그 길로 이끌어 줬다.

사순 시기를 보내며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해본다. 무한하신 사랑에서 비롯된 주님의 숭고한 고통에 비하면, 나의 작은 경험은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소중한 결실을 얻었고, 그것이 내 현실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됐다. 이제 나는 고통을 넘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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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장지원 마리아 막달레나(수원가톨릭오르가니스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