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눈높이 맞춘 신앙교육에 도움되기를”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고요?”, “예수님은 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어요?” 등 어린이들이 성탄에 관해 물어 오면 부모나 어른들은 당황하기 일쑤다. 설명할 말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야 예수님 생일이니까…”라며 얼버무린다. 최근 생활성서사에서 완간한 ‘뭐예요?’ 시리즈는 이런 어린이들 질문에 눈높이를 맞춘 가톨릭 교리 입문서다. 시리즈는 성탄 이야기를 담은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 성탄이 뭐예요?」를 포함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 죄가 뭐예요?」와 「하느님 나라는 희망이에요: 비유가 뭐예요?」 등 3종으로 구성됐다. 각 책은 36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아이들이 읽기 쉬운 표현과 편안한 그림으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교리 내용들을 다룬다.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책은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히지노) 대주교가 회의차 로마에 갔다가 알게 돼 한국에 소개했다. 직접 번역도 맡았다. ‘어린이 신앙교육에 관심이 많은 대주교’라는 역자 소개처럼, 김 대주교는 평소 어린이들을 위한 신앙교육, 교리교육에 늘 시선을 두어왔다. “한국교회에서도 어린이들에게 ‘뭐예요?’ 시리즈 같은 책이 다양하게 제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판사에 알리고 번역까지 하게 됐지요. 어린이 신앙교육이나 교리교육 교재 및 관련 보조 자료가 개발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 대주교는 책에 대해 “우리 어린이들이 신앙의 핵심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 죄가 뭐예요?」가 인간의 죄와 하느님 자비를 다룬 책이라면, 「하느님 나라는 희망이에요: 비유가 뭐예요?」는 비유 말씀을 풀이해 준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교리가 어린이들이 알기 좋도록 구체적인 비유로 쓰인 것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죄’에 대해 “죄라는 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착한 삶이라는 과녁 바깥에 대고 화살을 쏘는 거야”로 얘기하는 식이다. 어린이가 대상이다 보니, 번역에서도 표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김 대주교는 “유치원생과 더 효과적으로 대화하려면 그 키에 맞춰 무릎을 꿇든지 어린이를 들어 올려 서로의 키를 맞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어린이들은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 마음이 기울게 되거나 감동하면 더욱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인 김 대주교는 “순한 표현들과 친근한 그림들이 이해를 돕기 때문에, 어쩌면 어린이들이 교리 본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리즈를 번역한 소감도 들려줬다. “앞으로 신앙의 신비에 더욱 간단명료하게 다가갈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힘쓰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며 “그런 기회가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린이들의 신앙교육과 교리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니 기쁘다”는 김 대주교는 “계속해서 어린이들이 신앙의 신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방법론을 찾고자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뭐예요?’ 시리즈는 아이 혼자 읽도록 권해도 좋지만, ‘우리 가족 교리 책’으로도 본당 주일학교 교재로도 추천된다. 김 대주교는 “설명을 읽기 전에 먼저 그림을 보면서 나름대로 상상해 보고, 다음에 설명을 읽으면 그림과 내용이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며 “본당에서는 그림 등을 확대해서 시청각 교재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대주교는 어린이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렸을 때의 신앙교육이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감수성이 강한 어린 시기에는 신앙교육 내용의 의미가 더욱 깊게 스며들 것입니다. 어린이 신앙교육의 의미와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교회가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해서 김 대주교는 어린이 신앙교육을 위한 연구소 설립을 제안하며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교재와 신앙교육에 도움이 되는 교재와 여러 가지 교육 보조자료를 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4-12-25

2024 가톨릭 출판 결산

2024년 한 해 교계 출판계는 독자들이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삶에 적용을 위한 실천으로 나서고 또 다른 이들과 이를 함께 나누는 등 능동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활용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자신에게 맞는 신앙 콘텐츠를 찾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출판사들도 이런 요구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춰 여러 기획을 시도하고 다양한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독자들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다채로웠던 올해 교계 출판계를 되돌아본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희년을 앞두고 2024년을 ‘기도의 해’(Year of Prayer)로 선포함에 따라 ‘기도’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교계 출판사들은 교황의 사목 노선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전례와 기도, 영성 서적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신학과 교부학 부분에서도 의미 있고 무게감 있는 시리즈 책들이 다수 번역돼 독자들을 만났고,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계속 걷는 교회 흐름에 응답하며 성령 안에서 식별하는 삶을 살도록 지침을 주는 책들도 소개됐다. 내면과 감정을 바라보며 하느님과 자신을 마주하도록 하는 심리 영성 서적들도 눈에 띄었다. ‘기도의 해’와 관련해서는 교황청 복음화부에서 발간한 「기도 소책자」의 번역본이 주목받았다. 성서와함께 출판사는 전 8권 중 1권 「오늘의 기도: 극복해야 할 도전」, 2권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 5권 「기도의 비유」를 출간해, 신자들이 모든 활동의 바탕이 되는 기도에 더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외 분도출판사의 「수행: 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생활」은 성경과 교부 전통에 따라 기도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일상 안에서 깊은 기도 생활을 하도록 안내했다. 바오로딸에서 나온 「상처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기도」, 기도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고민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풀어준 「궁금해요, 기도」 등도 기도 관련 서적으로 독자들 호평을 받았다. 새로운 신앙 서적 출간과 아울러 가톨릭 고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노력도 있었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의 첫 만남」 등 신학적 탐구를 담은 고전을 출간한 가톨릭출판사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톨릭고전과 함께하는 365일 말씀 달력」 등을 내놓았다. 서울대교구가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면서 관련 서적 출간도 잇따랐다. 생활성서사는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와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 「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등을 펴냈으며 한국교회 형성에 밑거름이 된 브뤼기에르 주교 삶을 조명했다. 교부 문헌 출간도 활발했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의 「교부들의 발자취」를 비롯한 여러 책이 독자들을 찾았는데, 분도출판사가 발행한 「교부들의 가르침」을 비롯한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 오리게네스의 「켈수스 반박」 등은 독자층이 두텁지 않음에도 호평을 모은 책들이다. 성경 관련 책들의 출간도 꾸준했다. 성경 교재 「지혜 여정」 시리즈를 계속 출간 중인 생활성서사는 「성경의 길을 따른 어린이 여정」 구약성경편 총 4권을 완간했다.

2024-12-25

‘분열·갈등 치유 명약’ 화해의 첫 걸음 떼는 방법

개인의 이기심·증오·분노가 개인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이런 갈등이 서로 다른 계층, 이념,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울려 살던 시대보다, 표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시대보다 분열은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도 대다수가 관계에서 갈등과 분열을 경험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그 모든 것의 치유가 화해라는 것을, 다들 머리로는 떠올릴 텐데 왜 직접 한 발짝 화해의 걸음을 떼기는 어려운 것일까. 안셀름 그륀 신부는 책을 통해 어떻게 해야 화해할 수 있는지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 삶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이 화해라고 단언한다. 개개인이 자신과의 화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화해, 자연과의 화해, 하느님과의 화해를 통해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자신과 화해하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자신 안에서 분열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다른 이와 화해하는 것보다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더 힘들 수 있다. 그륀 신부가 책에서 제시한 ‘자신과 화해하는 5단계’와 ‘용서의 5단계’는 화해의 용기를 가지는 데에 실제적인 도움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자신과 화해하는 5단계’에 대해서는 1단계 ‘자신이 살아온 삶과 화해하기’, 2단계 ‘자신에게 예하고 말하기’, 3단계 ‘자신의 어두운 면과 화해하기’, 4단계 ‘자신의 몸과 화해하기’, 5단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기’로 설명한다. 여기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할 때는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방법적으로는 ‘자신에 대해 그려 놓은 환상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륀 신부는 “그래야 내가 살아온 삶, 내 몸, 내 성격과 더불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며 “자신을 사랑하고 겸손해지고 하느님 사랑도 깨닫게 되면서, 또한 나의 그림자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신과 화해하는 단계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 화해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내가 사랑으로 내 그림자에 들어갔다면, 다른 사람의 어두운 면도 평가하지 않고 다정하게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화해에서는 부부, 형제자매, 부모와 자녀, 친구,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생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화해할지 일상 속 사례를 들어 쉽게 이야기해 준다. 아울러 성경에 나오는 화해의 모범 등을 밝히고, ‘평화’와 ‘자유’, ‘신뢰' 등 화해를 통해 맺는 열매들에 대해서도 밝힌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독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화해’의 의미를 나누는 것은 책이 지닌 큰 특징이다. 그륀 신부는 결국 “과거의 아픈 상처에서 벗어나 용서의 마음을 갖고, 자신을 받아들이며,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은 진정한 화해를 알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화해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화해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의해 규정되지 않으며 화해한 사람으로서 언제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짐을 끌고 다닐 필요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지만 과거와 화해함으로써 그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170쪽)

2024-12-15

「다산의 일기장」으로 들여다보는 ‘정약용과 천주교’

오랜 시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 온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교수가 「금정일록」과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등 다산이 남긴 일기 4종을 세밀한 독법으로 밝혀냈다. 국내 최초로 주석을 붙여 완역하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백문백답 형식으로 다산의 생애에서 가장 격렬하고 긴장 높았던 시절의 기록을 공개했다. 그 시기는 이가환과 이승훈, 정약용을 천주교와 관련된 ‘사학삼흉’으로 지목해 조정에서 처벌 논의가 치열하고 뜨거웠던 때다. 정민 교수는 일기 본문과 함께 「다산시문집」에 실린 편지·시문, 「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각종 상소문 및 척사 기록, 족보 등을 종합 검토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일기 속 정황을 교차 검증했다. 이를 통해 다산이 말로 드러내지 못한 의도와 속내를 들춰냈다. 특별히 이 일기들은 다산 문집에는 모두 누락된 것들이다. ‘왜 이런 일기를 남겼으며, 무슨 이유로 문집에서 빠졌을까?’, ‘일기에 감춰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의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정 교수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다산이 행간에 숨겨둔 천주교에 얽힌 속내를 추적한다. ‘다산과 그의 시대를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육성으로 만나고 싶었다’는 저자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무결한 위인 다산이 아니라 뾰족하고 거침없으며 모순적인 젊은 날의 다산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다산이 지방 말단 관리로 내쳐진 이유와 그를 좌천시킨 정조의 본심, 천주교도를 검거해 비방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과 속마음, 같은 남인과 날을 세우면서까지 성호 이익의 유저(遺著)를 정리한 젊은 날 가파르고 직선적인 성정 등을 찾아낸다. 다산의 일기는 일상의 단상이나 개인적 소회 대신 객관적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다. 편지 한 통, 무심하게 언급한 조정 소식 등은 특별한 주제로 귀결시키기 어렵지만, 이면에는 천주교 문제로 좌천당한 정치적·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 천주교 혐의를 벗고 결백을 입증할 알리바이를 위해 다산은 때문에 객관적 동선과 대화,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으로 남겨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훗날을 위한 증언으로 삼았다. 천주교에 얽힌 이야기들 속에서 교회사의 행간을 살펴보듯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1795년 말 천주교 지도자 이존창(루도비코)을 체포한 공로로 상경 명령이 떨어졌지만, 관직을 거부한다. 한때 교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를 잘 알았던 만큼 이존창 검거를 복귀와 맞바꾸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 교수가 다산의 마음속에 일말의 신앙이 남아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2024-12-15

놀랍기만 한 하느님 섭리의 경험들…「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와 수도자 11명의 하느님 체험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 사람으로 이끄시는 모습이 신비롭고 절절하다. 한 번뿐인 삶의 길에서 각자의 성소를 식별하고 결단을 내리는 과정들이 감명 깊다. 1953년 사제 수품을 받고 한국에 파견됐던 두봉 주교는 최근 방송 ‘유퀴즈’ 출연 후 전국 각지에서 오는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오기도 하고 비신자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두봉 천주교회’ 문패가 있는 경북 의성의 보금자리에서 두봉 주교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남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누가 찾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두봉 주교는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여러 결정할 일들 속에서 할 일은 해야 하지만, “ ‘무엇보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산다, 그래서 고맙다’는 그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회 두 번째 장애인 사제인 작은 예수 수도회 봉하령(요셉) 신부는 어릴 적에 사고로 왼팔을 잃고 장애인으로 살면서 수도회에 입회한 후, 33세의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한 과정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2008년 부제품을 받고 2023년 7월에 사제로 서품된 봉 신부는 긴 시간 동안 끝없이 좌절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오직 하나 ‘기도’ 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또 “고통이 없었다면, 아픔이 없었다면 좌절이 없었다면 그토록 애절하게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고 한다. 구독자 4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내 안에 머물러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김재덕(베드로) 신부는 사제가 되려는 의도가 처음에는 아주 ‘불순’했다. ‘신부가 되면 자동차를 사 주겠다’는 본당 신부의 말에 신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면접에서 ‘신학교 떨어지면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받아 주실 때까지 살겠다’고 답하고는 떨어진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말이 ‘성소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신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고, 믿음이 컸던 것도 아니었으며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닌 부족한 자신을 당신의 도구로 변화시킨 모습에 김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통해, 때로는 기다림을 통해, 때로는 동기 신부들과 달랐던 신학교 생활을 통해 … 당시에는 아프고 힘든 일이었지만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뤘던 것이다.”(88쪽)

2024-12-08

그림책으로 마주하는 生의 마지막…어떻게 받아들일까

초고령사회가 다가오면서 잘 살아감, 즉 웰빙(Well-being)을 넘어서 잘 나이 듦 ‘웰에이징’(Well-aging)과 ‘웰다잉’(Well-dying)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는 현실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 사람은 나와 주변 가족의 죽음과 상실, 이별을 떠올리는 일이 늘 두렵고 난감하다. 그런 면에서 웰다잉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개념이다. 개별 인간의 고유한 삶을 인정하고, 회피하고 싶고 두렵기만 한 죽음을 다른 시선으로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뒤의 상실과 비탄, 애도 후 다시 살아감의 과정을 긍정하며 삶의 의미를 찾게 한다. 책은 이런 방대한 웰다잉 의미를 그림책과 연결해 표현했다. 오랫동안 그림책으로 웰다잉 강의를 진행해 온 저자 손희정(마리아) 씨는 노화와 죽음, 이별, 상실, 애도, 다시 살아감이라는 웰다잉의 모든 주제를 그림책 세계 안에서 펼친다. 그리고 늘 우리 곁에 있는 죽음을 통해 각자의 삶에서 더 성장하도록 격려하면서, “죽음을 배우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때,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게 된다”고 들려준다. 간결한 글과 압축적인 그림이 특징인 그림책은 영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그림책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생과 사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는 동안 선뜻 쉽게 꺼내기 쉽지 않은 죽음이라는 주제가 부담 없이 다가온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됐다. 1부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죽음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이토록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인지 그 뿌리를 살핀다. 2부는 ‘노화와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다양한 그림책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3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에서는 떠나고 난 뒤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소박한 인사와 선물을 공개한다. 이어서 4부에서는 ‘상실과 애도’가, 5부에서는 ‘삶과 죽음의 여러 얼굴’이 다뤄진다. 여기서는 가족 지인을 떠나보낸 후 남은 이들이 울음을 털어내고 어떻게 텅 빈 마음을 채우는지, 잘 애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삶과 죽음을 미리 겪은 그림책 주인공들도 따라가 볼 수 있다. 마지막 6부 ‘긍정하기와 다시 살아가기’는 생을 긍정하며 씩씩하게 죽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웰다잉과 관련한 활동도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저자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일이 바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림책 속에서 죽음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마주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가족, 친구, 지인 심지어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죽음의 존재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사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책으로 미리 만나보는 가운데 우리의 아름다운 엔딩도 상상하며 그려보게 한다.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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