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겐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임신했을 때부터 잦은 병원 진료로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거 먹기를 즐기는 아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뜸 부산에 있는 조리 고등학교를 가겠다는 겁니다. 깜짝 놀랐죠. ‘부산에 있는? 아니, 얘가 벌써 우리와 떨어져 살고 싶어 하나? 아니면, 꿈이 셰프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일주일만의 설득으로 조리 고등학교는 접었습니다.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아니지만, 중3 1학기 말, 우연 반 의도 반으로 부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운이 좋아 목표로 삼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예민한 시기에 환경이 바뀌어서 여러모로 눈치도 보게 되고 걱정스러웠는데, 나름대로 큰 문제 없이 잘 적응하고 있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가겠다는 겁니다. 제 직업도 그렇고 혹시나 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지요. 왜 거기를 정했냐 물었더니, 연기가 하고 싶어졌답니다. 재미있을 것 같다네요. 평소에 아들에게 ‘네가 재미있는 거 하라’고 했던 저의 말문을 막아버렸습니다.
입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애 엄마도 기도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수시로 삼성산성지, 남양성모성지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발이 좋다는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고 부천에서 103일 동안 빠짐없이 기도하러 다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옆에서 지켜보는 아비요 남편인 저는 늘어나는 날짜만큼 부끄러움이 쌓여 갔습니다. 아내는 얼굴도 핼쑥해지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힘들면 그만하라 했더니 절두산순교성지 올라가는 언덕이 경사가 꽤 있는데 힘든 줄 모르겠답니다. 예수님께서 밀어주시는 느낌도 들고, 가볍게 즐겁게 하고 있답니다.
총 6개 대학 연극영화과에 응시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낙방. 공부만 중시했던 학교에, 없던 연극부를 만들어서 교장 선생님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예술제를 만들었던 열정적인 아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본인도 기운이 쭉 빠졌고, 저도 난감했습니다. 실망이 더 큰 사람은 애 엄마였습니다. 전쟁의 전리품이 하나도 없는 셈이 된 것이지요.
세 식구가 상의한 끝에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전리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내 스텔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서울 화양동에 있는 모 대학에 예비번호 4번이라도 받은 건 희망을 주신 것이요, 전리품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정성을 다해 기도(企圖)하고 기도(祈禱)한 사람은 뭔가 신호를 받은 모양입니다.
재수가 시작됐고 스텔라는 인천교구 중2동성당에서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비롯해 또 수시로 기도발 좋다는 성지를 신나게 찾아다니며 기도(企圖)하고 기도(祈禱)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응답이 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응답이 왔습니다. 지난해 깜빡하고 못 주신 것에 보너스까지 얹어주셨는지 꿈에 그리던, ‘넘사벽’이라 생각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합격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아들을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례를 받은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아내 스텔라를 통해 체험했지만 정말 기도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아내의 기도에 기대는 제 자신을 오늘도 반성해 봅니다.
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