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당 줄서기 전…이 ‘성당’ 어때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간직한 적산가옥과 철길마을 등 옛 풍경을 품어 ‘레트로 도시’로 통하던 전북 군산시가 최근 영화와 책, 미술 등을 만날 수 있는 문화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군산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의 통계에 따르면, 군산시 외지인 방문자 연인원은 2024년 2562만 명에서 2025년 2681만 명으로 약 120만 명 증가했다. 군산 관광·여행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급량도 같은 기간 25만8599건에서 38만1280건으로 상승했다. 오랜 역사 위에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며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로 변화하고 있는 군산을 걸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군산 여행은 이 ‘성당’부터! 군산 여행은 도심에 나란히 자리한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된다. 근대문화유산이 즐비한 원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전주교구 둔율동성당을 만난다. 한산한 주택가 골목의 빌라와 상가 사이로 첨탑을 높이 드러낸 이곳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군산 지역 최초의 본당이다. 본당에는 군산 천주교회의 역사가 응축돼 있다. 병인박해 이후 금강과 만경강 하구로 피신한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면서 사옥개·회현·나포 등에 공소가 세워졌다. 군산항 개항 뒤 신자가 늘자 이들 공소를 관할하던 나바위본당은 1929년 군산본당을 분가했다. 현 둔율동본당의 전신이자 군산과 익산에 25개 본당을 분가시킨 모본당이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건축적 의미도 지녔다. 1955년 건립된 현재의 성당은 1945년 군산경마장 폭발 사고로 크게 파손된 옛 성당을 보수해 사용하다가 신자들의 정성을 모아 새로 지은 건물이다. 장방형 평면의 성당은 종탑과 장미창, 아치형 창문 등을 갖춰 고딕양식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안으로 들어서면 북쪽 출입문에서 남쪽 제대까지 길게 이어진 공간과 넓은 중앙 통로를 둔 바실리카양식의 구조가 눈에 띈다. 전후 호남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대형 성당이자 전통적인 성당 건축에서 현대적 건축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201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건축 도면과 자재, 공법, 신자들의 봉헌 내역 등 착공에서 준공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성당신축기’와 ‘건축허가신청서’도 202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성당 한편에 마련된 유물전시관에는 본당과 함께해 온 성물들과 역사를 담은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임 쓰신 가시관> 등의 시를 남긴 시인이자 본당 초대 보좌를 지낸 하한주 신부(요셉, 1909~1984), 전주교구 제5대 교구장을 지낸 김재덕 주교(아우구스티노, 1920~1988)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8월과 크리스마스 성당을 나와 원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월의 군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 ‘초원사진관’이다.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진사 정원과 그의 앞에 나타난 활기찬 주차단속원 다림의 사랑을 그린다. 영화의 대부분은 정원의 일터인 사진관과 그 주변에서 촬영됐다. 사진관이 만들어진 과정에도 소소한 사연이 담겨 있다. 제작진은 촬영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의 사진관을 돌아다니다 군산 월명동의 한 카페에 들렀다. 그곳에서 창밖으로 무성한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했고, 촬영이 끝나면 철거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사진관으로 개조했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정원 역을 맡은 배우 한석규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사진관 이름에서 따왔다. 촬영이 끝난 뒤 철거됐지만, 군산시가 2013년 영화 속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개봉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진관을 향한 관심은 꾸준하다. 인스타그램에는 초원사진관을 해시태그한 게시물이 약 10만 건에 이른다. 사진관을 찾은 평일 오후, 연인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사진관 앞에서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영화 속 장면을 재현했다. 사진관 주변에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1908년 지어진 옛 군산세관을 비롯한 근대문화유산들이 반경 1㎞ 안에 모여 있다. ‘군산시간여행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군산시간여행 안내소도 마련돼 있어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군산 대표 먹거리인 짬뽕을 맛볼 수 있는 ‘짬뽕특화거리’와 빵집 ‘이성당’도 가까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좋다.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원도심을 벗어나 군산의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떠오른 나운동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군산회관(옛 군산시민문화회관)과 JB문화공간이 자리한다. 군산시민문화회관은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이자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이 남긴 유작이다. 1989년 개관한 뒤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지만, 2013년 군산예술의전당이 들어서며 주요 기능이 옮겨간 뒤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이후 2019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선정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2024년 ‘군산회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김중업 건축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오늘의 감각을 더해 예술과 일상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연·전시를 비롯한 행사가 열리는 ‘너른홀’, 건축·디자인·예술 분야 책을 다루는 서점, 개방형 아카이브실 등이 들어서 있다. 2024년과 2025년에는 독서문화 확산을 위한 ‘군산북페어’가 개최됐다. 2025년 사흘간 열린 행사에는 9800명이 방문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군산회관에서 약 500m 떨어진 JB문화공간은 군산시와 전북은행의 문화교류 업무협약으로 2023년 개관했다. 기존 은행 지점을 새롭게 단장한 공간으로, 전북은행미술관과 카페 등이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은 한국 근대미술 대가 김환기, 유영국(바오로) 등의 작품을 선보인 개관 기념전 이후 다양한 전시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당신이 보지 못한 유럽 명화전’을 열어 파블로 피카소와 마르크 샤갈, 조르주 루오 등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간직한 군산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문화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0면

‘묵묵히’ 옛 항구 정취 따라 ‘호젓한’ 성당에 다다르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일대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젊은 세대는 물론 가족 단위 여행객도 이 작은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어촌 벽화마을부터 탁 트인 동해, 짜릿한 체험 시설까지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항구와 벽화마을, 전망대가 이어지는 길 한편에는 6·25전쟁 때 주임 신부가 순교한 춘천교구 묵호성당도 자리하고 있다. 전망과 액티비티 모두… ‘도째비골’ KTX를 타고 강릉을 지나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묵호역에 도착한다. 묵호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기차역에서 바닷가까지 비교적 가깝다는 것이다. 역에서 10분가량 걸으니 이내 항구와 바다가 펼쳐진다. 묵호항을 지나 해안을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와 스카이밸리 입구가 여행객을 반긴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방언이다. 도째비골은 어두운 밤 비가 내릴 때 골짜기에서 푸른빛이 보여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불로 여겼다는 구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해안에 설치된 해랑전망대에서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바닥 일부가 유리와 철제 그물망으로 만들어져 발아래로 밀려오는 파도와 너울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언덕 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바다 풍경과 체험시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사이클과 원통형 미끄럼틀을 타고 약 27m 아래로 내려오는 자이언트 슬라이드도 눈길을 끈다. 도째비골 비탈면에는 ‘동해의 정령’을 형상화한 거대한 얼굴바위가 조성돼 있다. 마을 사람들의 선행에 감동한 정령이 풍랑과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지켜 줬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얼굴바위를 비롯해 도깨비 조형물과 잘 가꾼 정원이 곳곳에 있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길도 지루하지 않다. 관광객들은 색다른 풍경이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는다. 해발 약 60m 지점에 설치된 스카이워크에서는 묵호항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투명한 유리 바닥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스릴은 덤이다. 항구의 삶 벽화에 새긴 ‘논골담길’ 묵호항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항했다. 삼척과 태백 지역의 석탄과 동해에서 생산된 시멘트를 실어 나르며 성장했고, 해방 이후에는 동해안의 주요 항구로 자리했다. 오징어와 명태 어업이 활기를 띠던 시기에는 항구와 마을 골목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어획량이 줄고 동해항이 개항하면서 예전의 활기는 점차 잦아들었다. 그 시절 묵호 사람들의 고단하면서도 정겨운 삶은 ‘논골담길’에 남아 있다. 논골담길은 묵호등대 아래 가파른 언덕에 형성된 마을 골목이다. 항구에서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에 지고 나를 때 흘러내린 바닷물로 길이 논처럼 질척거려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논골담길은 등대오름길과 논골1길·2길·3길 등 네 갈래 골목으로 나뉜다. 골목의 벽화에는 생선을 나르는 주민과 만선을 기다리는 가족 등 옛 묵호 사람들의 일상과 역사가 담겨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벽화뿐 아니라 소원의 등대와 카페, 선물 가게, 잡화점, 전시 공간 등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곳곳의 카페에서는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논골담길 정상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바다와 묵호항은 물론 멀리 두타산과 청옥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스카이워크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묵호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묵호등대를 비롯한 묵호항 일대는 1968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바다로 열린 길, 어달삼거리 시간이 허락한다면 논골담길과 도째비골에서 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어달삼거리까지 가도 좋다. 최근 새로운 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내리막 도로와 푸른 바다가 한 장면에 담겨 ‘인생샷’을 남기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다만 어달삼거리는 관광을 위해 조성된 별도의 촬영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용하는 실제 도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도에 오래 머물거나 차량 통행을 막지 않도록 주의하자. 순교 사제의 기억 품은 묵호성당 묵호역에서 걸어서 7분 남짓한 거리에 춘천교구 묵호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57년 6월 준공된 성당은 푸른빛이 감도는 청회색 외벽에 흰 장식선이 어우러져 단아한 모습을 뽐낸다.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 주변으로 펼쳐진 푸른 잔디밭도 성당 외관과 조화를 이룬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논골담길의 정취와도 닮았다. 성당에는 6·25전쟁 중 순교한 한 사제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묵호본당은 1948년 본당으로 승격됐고, 이듬해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패트릭 라일리 신부(라 파트리치오, 1915~1950)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라일리 신부가 사목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했다. 신자들은 피란을 권유했지만, 라일리 신부는 양 떼를 두고 목자만 떠날 수 없다며 묵호에 남았다. 결국 북한군에 체포된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순교했다. 춘천교구는 전쟁 중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소양로와 묵호, 삼척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했고, 그 뜻에 따라 현재의 묵호성당도 세워졌다. 본당은 1974년 성당 마당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비’를 세웠다. 지금도 해마다 라일리 신부의 순교일을 전후해 추모의 날을 지내며 그의 삶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라일리 신부는 한국교회가 시복을 추진하고 있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중 한 명이다.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10면

[농민 주일 특집] 생명농업 이어 가는 농민의 하루

7월 19일은 제31회 농민 주일이다. 교회는 농민 주일을 맞아 농촌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생명을 일구는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되새긴다. 오늘날 농촌은 기후위기로 농사 시기와 수확량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데다 고령화와 생산비 상승, 일손 부족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생명의 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묵묵히 논과 밭을 일군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농민회 대광분회 회원 최성순(로사) 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연천 안뜨레농장을 찾아, 기후위기 시대 생명농업을 이어 가는 농민의 하루를 함께했다. 기후위기가 바꾼 농촌 “10년 전도 아니야. 고작 2~3년 전부터 자외선이 너무 강해졌어요. 햇볕이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따가워요. 피부가 익는다니까요.” 39년째 안뜨레농장을 운영하는 최성순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햇볕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정오가 되기 전까지 밭일을 하고 한낮의 열기를 피해 쉬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밭으로 나간다. 해가 가장 높은 시간에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새벽에도 체감온도가 25도를 훌쩍 넘는 것 같아요. 열대야가 이어지면 밤새 달궈진 열기가 아침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기후변화는 농민의 노동시간과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새벽과 늦은 오후로 일을 나눠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이 같은 체감은 한 농민의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4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서 농민들은 농업 경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배 여건 변화’를 꼽았다. 달라진 기후는 작물의 생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작물이 품종 고유의 크기와 모양대로 자라지 않는 일도 잦아졌다. 올해 안뜨레농장의 미니 단호박은 일반 단호박만큼 커졌다. 어른 주먹 정도여야 할 열매가 아이 얼굴만 한 크기로 자란 것이다. 최 씨는 “예전에는 봄에 심은 단호박을 가을까지 일정하게 수확했지만 이제는 언제까지 열릴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올해는 미니 단호박 크기도 유난히 크고 열린 양도 지난해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작물이 크고 많이 열린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농산물은 품종에 맞는 크기와 모양을 갖춰야 상품성이 높다. 기후가 바뀌며 오랜 농사 경험으로도 수확량과 품질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그래도 생명농업을 이어가는 이유 최 씨는 약 3000평의 밭에서 미니 단호박과 감자, 고추, 오이, 가지, 양배추, 상추, 무 등 20여 종의 채소를 기른다. 10년 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농약을 사용하던 기존 농법에서 무농약 농사로 전환했다. 주력 작물은 미니 단호박이지만 판로에 맞춰 여러 작물을 함께 재배한다. 수확한 농산물은 인근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과 계약 업체, 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생활공동체 나눔터, 직거래 장터인 명동보름장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농장 창고에는 갓 수확한 감자가 가득 널려 있었다. 농민 주일을 맞아 7월 19일 서울 명동에서 열리는 명동보름장에 내놓을 농산물이었다. 무농약 농사는 일반 농법보다 훨씬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밭의 풀을 일일이 뽑아야 하고, 해충도 사람의 손으로 잡아야 한다. 덥고 습해질수록 풀과 벌레는 더 빠르게 번진다. 무농약 농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서 생명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다시 밭으로 이끌었다. “예전 농법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무농약·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명감으로 이어 가고 있어요.” 심각한 기후위기 직격탄 맞은 농촌…잇따른 기상이변에 농사 여건 악화 39년째 농장 운영하는 최성순 씨…수확량·품질 예측 힘든 상황에도 무농약·친환경 농업 사명감 지켜…“생명농업 우리 농산물 선택해 주길” 빈자리 채우는 이주노동자 농촌 고령화도 농민들이 마주한 또 다른 어려움이다. 농장이 자리한 지역의 농민 대부분은 70~80대다. 올해 63세인 최 씨는 마을에서 ‘젊은 농부’다. 때문에 외국인 계절근로자(E-8)는 부족한 일손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농사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 인력이 됐다. 이들은 파종기·수확기 등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 인력난 해소를 위해 입국한 노동자들이다. 최 씨도 3년 전부터 농번기마다 계절근로자를 직접 고용한다. 특히 무농약 농사를 지으려면 풀을 뽑고 벌레를 잡는 데 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농장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양 씨와 코아 씨,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으로 입국한 네팔 출신 라즈 씨가 함께 일하고 있다. 올해 처음 한국에 온 양 씨에게도 고온다습한 여름은 버겁다. 그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이른바 ‘선풍기 조끼’를 입고 밭일을 이어 갔다. 농촌과 생명농업, 농민 홀로 지킬 수는 없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최 씨가 농사를 지으며 지키는 기준은 분명하다. “내가 먹을 수 없는 것은 팔지 말자.” 최 씨는 “예쁘고 깨끗한 농산물을 팔기 위해 수확 한 달 전까지 농약을 뿌리는 일은 농민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며 “내가 먹지 못할 것을 소비자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선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몸에 걸치는 옷에 쓰는 비용을 조금 줄이더라도, 몸속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만큼은 친환경 농산물과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선택해 달라는 것이다. 의정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박인수(요셉) 신부는 “도시 소비자들이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농민들의 어려움을 들으며 함께 식사하고 교류하는 자리에서 농민들은 큰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농민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며 “매일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이 농민들의 땀과 생명의 땅에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농업의 소중함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0면

성당 종소리 흐르는 골목…‘빵지순례’는 이내 ‘성지순례’가 된다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해수욕을 만끽할 수 있는 바다,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계곡, 조용하게 쉬어갈 수 있는 산 등은 대표적인 여름 여행지이다. 그러나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는 색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길 위에는 신앙도 챙길 수 있는 성당도 기다리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재미와 영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이색 여행지를 소개한다. 대전의 명물 ‘성심당’에서 출발해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을 거쳐, 대전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최종태전시관과 대전근현대사전시관까지 걸어본다. ‘빵의 도시’로 대전역에서 내리자 고소한 빵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역사 안부터 주변까지 곳곳에 빵집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빵의 도시’로 불리는 대전광역시에 들어섰음이 체감됐다. 대전에는 유명한 빵집들이 많다. 빵을 맛보기 위해 대전을 찾는 흐름 속에서 ‘빵지순례’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대전시는 2021년부터 빵 축제도 열고 있다. 빵지순례지로서의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2025년 대전을 찾은 외지인 방문자는 연인원 9000만 명 이상으로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요 목적지 중 하나가 제과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성심당이 있다. 성심(聖心)으로부터 이어진 70년 비 내리는 덥고 습한 날씨임에도 성심당 본점은 빵을 사러 온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서도 빵 봉투를 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전국구 빵집의 인기가 실감 나는 장면이다. ‘튀김소보로’, ‘시루케익’, ‘판타롱 부추빵’ 등 성심당을 상징하는 제품도 여럿이다. 튀김소보로의 누적 판매량은 1억 2천만 개를 넘어섰다. 이처럼 성심당은 대전 시민의 추억과 여행객의 발길이 모이는 장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대전을 빵의 도시로 이끈 ‘성심당’ 70주년 역사 담은 기념전 볼거리 높은 종탑이 반기는 대흥동성당 시간 품은 건축과 성미술 돋보여 성심당은 올해로 개업 7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성심당 문화원에서는 12월 31일까지 70주년 기념전 ‘오래된 진심’을 이어간다. 1956년 고(故) 임길순(암브로시오)·한순덕(마르가리타) 부부가 노점에서 시작했던 창업 이야기부터 18개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전의 대표 향토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전시에서는 성심당(聖心堂)이 예수 성심을 닮고자 이어 온 이웃사랑과 신앙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17 참조)라는 사훈 아래, EoC(모두를 위한 경제) 기업으로 실천해 온 인간중심, 사랑과 나눔의 경제 활동도 소개된다. 달콤한 빵과 케이크로 배를 채웠다면, 전시로 신앙의 의미도 새겨보자. 성당 종소리를 따라 성심당에서 빵을 먹고 있으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는 창업주의 말이 와닿았다. 분주하던 인파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리를 정리하고 종소리를 따라 성당으로 향했다.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1963년 축성돼, 대전교구의 주교좌본당으로 지정됐다. 성당 앞에 도착하니 높이 솟아 있는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종탑은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2019년까지 조정형(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씨가 줄을 잡아당겨 직접 종을 쳤지만, 은퇴 이후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자동화 체계를 구축했다. 종 치는 모습은 직접 볼 수 없지만, 도심 한복판을 울리는 소리만은 여전하다. 성미술과 함께하는 묵상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강렬한 색채의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들은 프랑스 출신 화가이자 수도자인 고(故) 앙드레 부통 신부가 남긴 그림 10점이다. 부통 신부는 고(故) 이남규 작가의 ‘십자가의 길 14처’를 보고 묵상한 결과를 벽화로 표현했다. 현재는 <증인으로서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는 그리스도>만이 원본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2020년 정밀하게 재현됐다. 성당 마당에 조성된 4m 높이 성모상도 눈길을 끈다. 한국교회 전래 180주년을 기념해 이남규 작가가 1964년 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시대의 무게를 견디며, 자식을 키워야 했던 한국의 어머니를 작품에 담았다. 곁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도 묻혀 있다. 성당 정면 캐노피 위에는 12사도상이 있다. 한국 조각계의 원로 최종태(요셉) 작가와 이남규 작가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길 건너에 자리한 ‘최종태전시관’에 최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고 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근현대사까지 최종태전시관에 다다르니 마당에 있는 소나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견뎌 온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은 대전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1958년 지어진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에 4월 1일 문을 열었다. 현재 전시관에서는 개관 기념 상설전 ‘최종태의 질문 - 아름다움의 발견, 그리고 창조를 위한 기록’이 열리고 있다. 신의 존재와 인간에 관해 질문해 온 최 작가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관 2층 창문을 통해서는 건너편 성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대전의 근현대사를 지나온 성당과 전시관 그리고 신의 존재를 탐구한 작품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전 원도심 대흥동 일대 곳곳에는 근현대 유산들이 있다. 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활용되는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 일제강점기 수탈 기관이던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 지점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헤레디움’ 등이 대표적이다. 빵 냄새로 시작한 길은 성당의 종소리와 성미술을 지나, 대전의 오래된 시간으로 이어졌다. 올여름 대전에서 맛과 영성, 역사가 만나는 조금 특별한 순례에 나서보자.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2면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 대주교] 취임미사 이모저모

김종강(시몬) 대주교가 대구대교구의 환대 속에 새 사목 여정을 시작했다. 6월 23일 청주에서 열린 송별미사는 3년간 함께한 목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의 자리였지만, 청주교구민들은 그 눈물이 대구대교구에서 복음화의 결실과 축복의 샘물이 되기를 기원했다. 6월 27일 대구대교구 주교좌계산대성당에서 봉헌된 취임미사는 새 부교구장을 맞이하는 기쁨과 기대가 어우러진 자리였다. 김 대주교는 “아직은 부족한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랑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청주의 배웅과 대구의 환대는 한 목자의 순명과 교회의 일치를 함께 드러냈다. ◎… 6월 27일 오전. 김종강 대주교의 부교구장 취임미사가 봉헌되기 4시간여 전부터 주교좌계산대성당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미사 시작 후에도 수십 명의 신자들은 입장하지 못하고 성당 밖에서 김 대주교를 위해 기도했다. 김명자(마르첼라·대구대교구 복현본당) 씨는 “새로 오신 부교구장 대주교님께서 참 좋으신 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항상 건강하시고, 교구민들이 화합해서 복음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기도드리기 위해 서둘러 왔다”고 말했다. ◎… 미사 중 취임 예식에서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가 레오 14세 교황의 부교구장 임명 교서를 높이 들어 보이자 사제석과 신자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스파리 대주교는 축사에서 “김 대주교님께서 온 마음을 다해 대구대교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기 바란다”며 “예수 성심을 닮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득한 현존을 믿음직하게 증언하는 목자가 되시도록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 김 대주교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내빈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대구관구 소속인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부산교구 총대리 신호철(비오) 주교와 수도자 대표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가 함께했다. 또 주한 교황대사관 참사관 조반니 비키에리 몬시뇰, 주교회의 사무총장 이철수(스테파노) 신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진택(토마스 아퀴나스) 회장, 문화체육관광부 장우일(레오) 종무관 등이 참석했다. 교구 사제단을 대표해 축하 인사를 전한 2대리구 교구장대리 김흥수(실바노) 신부는 “십자가를 지고 걸으시는데 그 무게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도록, 힘과 용기를 드리도록, 사제단도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현동 아빠스도 교구 내 27개 수도회 이름을 호명하며, “저희 공동체들을 방문해 주시기를 고대하며 대주교님께서도 주님과 함께 그리고 저희와 함께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린다”고 전했다. 주교좌계산대성당 성가대는 ‘하느님이면 족하다’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문으로 만든 성가 <아무것도 너를>을 축가로 불러, 김 대주교의 사목여정에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넸다. ◎… 답사를 시작하며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마음을 표현한 김 대주교는 “저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부족한 사람”이라며 “저의 인간적 나약함과 부족한 지혜는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님께 배우며 걸어가고,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님과 힘을 합하여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곳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인 여러분과의 로맨스를 위해 용기를 내어 왔다”며 “아직은 부족한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랑으로 살아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10면

[교황 주일 특집] 특별 헌금 ‘베드로 성금’, 어디에 쓰일까?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나 이 대축일에 가장 가까운 주일인 교황 주일에 ‘베드로 성금(Peter’s Pence)’을 봉헌한다. 이 성금은 교황청으로 보내져 보편교회의 지도자인 교황이 자선 활동을 펼치고, 세계 각처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 교황 주일은 그리스도를 대신해 하느님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교황을 위해서 기도하고 교황과 일치를 이루는 날이다. 이날 특별 헌금인 베드로 성금을 봉헌하는 이유도 교황 주일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베드로 성금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8세기 말 앵글로색슨 민족이 로마의 주교인 교황과 친밀한 연대를 느끼며 매년 정기적으로 교황에게 헌금을 바치기로 했고, 이것이 베드로 성금의 기원이다. 이후 베드로 성금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지만 납부 과정에서 지역 주교들이 이득을 취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종교개혁의 여파로 베드로 성금을 폐지하는 나라들이 나타났다. 그 후 베드로 성금은 복자 비오 9세 교황(재위 1846~1878)이 1860년 교황청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보조금 명목으로 부활시켰고, 1871년 8월 5일 회칙 「존경하는 형제들에게(Saepe Venerabiles Fratres)」를 반포하며 공적으로 승인했다. 현재도 베드로 성금은 교황에게 바치는 전 세계 교구들의 자유로운 헌금으로 남아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교황 주일 특별헌금을 베드로 성금으로 사용한다. 교황은 전 세계 신자들이 보내는 베드로 성금을 복음 선포와 평화 증진의 재원으로 사용한다. 또한 가난한 교구와 수도회,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신자들의 물질적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톨릭 교육, 이민자와 난민 돕기에도 활용한다. 베드로 성금은 신자들이 교황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실천하는 매개가 되는 셈이다. 역대 교황들은 신자들에게 베드로 성금 납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2월 “베드로 성금은 복음화 사업에 참되고 올바르게 참여하는 것으로 특히, 보편교회의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함께 나눈다는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2006년 2월 “베드로 성금은 모든 신자가 보편교회를 위한 로마 주교의 자선 활동에 동참하고 있음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면서 “이러한 몸짓은 실질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교황과 이루는 친교와 형제들의 필요에 대한 관심의 징표로서도 강력한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2월 베드로 성금 활성화를 도모하는 새로운 조직으로 ‘교황청 기부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2028년까지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레오 14세 교황도 2025년 6월 교황청 재무원과 홍보부가 공개한 베드로 성금 홍보 영상에 등장했다. 이 홍보 영상은 “베드로 성금으로 레오 14세 교황의 발걸음에 참여합시다”라는 문구를 실어 베드로 성금의 취지를 신자들에게 알렸다.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6면

얼어붙은 ‘남북 공존’…“복음적 형제애로 평화 물꼬 터야”

가톨릭교회는 6월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달로 보낸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관계는 화해나 일치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다. 민간과 정부 차원 모두에서 작은 교류나 협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와 민족화해의 미래를 전망하도록 돕는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헌법을 개정했고, 남한에서는 통일부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통일백서」를 발간했다. 북한 개정 헌법과 통일부 「통일백서」 내용을 살펴보고,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북한 개정 헌법, 무엇을 담았나 북한이 헌법을 개정한 것은 올해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를 통해서다. 그러나 이 소식이 남한에는 뒤늦게 전해지면서 최근에야 북한 문제 전문가들과 민족화해 분야 성직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부합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것이 북한 헌법 개정의 계기였다. 예상보다 긴 2년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나 개정된 북한 헌법에는 남한을 적대 국가로 지칭하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 개정 헌법이 명시적 표현 여부와 무관하게 남한과 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는 평가가 중론을 이룬다. 북한 개정 헌법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가지 사항은 기존 헌법 서문에 있던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을 삭제하고 제1장 정치 제2조에 영토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개정 헌법은 북한 영토의 범위를 규정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령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상과 달리 북한이 남한을 ‘적대 국가’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긍정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는 북한이 헌법을 개정하기까지 한반도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 뒤 “과거처럼 남과 북이 화해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방문하고 교류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임을출(베드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북한 개정 헌법 조항에 대해 “대남 적대 노선을 국가 최상위 규범 차원에서 확립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민족 담론을 폐기하고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기영(이냐시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한이 합의했던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를 부인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북한이 외교적 차원의 대화 가능성은 남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향적으로 평가했다. 통일부 「통일백서」, 한반도 평화 공존 일관되게 지향 통일부가 올해 5월 18일자로 배포한 「통일백서」는 ‘2025년 한반도 평화 공존의 기록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완전히 단절 상태였던 남북관계를 극복하고 적대와 대결을 평화 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집대성했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접경지 전단 살포를 막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는 등 먼저 평화를 실천하는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에 나섰다. 「통일백서」에는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기반해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기능을 전면 복원하기 위한 통일부 조직개편 등 남북관계 복원의 제도적, 구조적 토대를 다진 노력이 기술돼 있다. 정동영(다윗) 통일부 장관은 「통일백서」 발간사에서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으며, 어떠한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평화 공존의 3원칙을 확고하게 천명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눈으로 보면 70년, 80년 분단은 길지 않다”면서 “평화적인 통일 지향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일단 평화 공존하는 것으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존중하는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북한 정치·지도체제 전문가인 황소희(안젤라) 박사는 “북한과의 공존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북 관계를 조정하는 부서인 통일부가 북한의 입장에 맞춰 남북관계를 진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며 “통일된 한반도가 한국의 국가 이익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은 평화적이고 북한 주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손서정(베아트릭스) ‘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은 “「통일백서」에서 통일이라는 목표 이전에 평화 공존을 우선하고 있는 부분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라며 “가톨릭 사회교리가 가르치듯, 평화란 상대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적대의 악순환을 멈추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통일부 「통일백서」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한국교회 입장과 큰 틀을 같이하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가 2025년 8월 15일 한반도 분단 80주년을 맞아 발표한 특별 사목서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에는 한반도 분단의 상처를 아파하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국교회 입장이 담겨 있다. 주교단은 특별 사목서한에서 한국교회가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을 가진 이들도 형제자매로 존중하듯 북한 동포들을 한 형제자매로 존중하고, 북한과 호혜적인 협력에 기반을 둔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남북이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모든 이와 더욱 연대할 뜻을 재확인했다. 정수용 신부는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특수관계이기도 하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측면도 있어 어느 한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모든 해답을 다 갖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무기를 통해서는 아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만큼 남북 사이에 적대감을 줄이고 신뢰를 쌓아가는 역할을 하는 가운데 궁극적인 화해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 소장은 다음 세대가 평화를 일상의 관계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복음적 가치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교회의 역할을 요청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북한은 ‘낯선 존재’일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은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북한에 대한 편견을 학습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사회 공익을 위한 교회 언론의 역할을 요청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민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어 내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와 보편적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북한 주민에게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북한 정권이 남한 민간단체와의 접촉을 거부하더라도 교황청이나 국제카리타스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북한 내부 수요가 높은 병원 현대화 등 실익이 확실한 사업에 관여함으로써 북한 주민들과의 직간접적인 접촉면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황소희 박사도 같은 맥락에서 “한국교회는 북한에 대한 교회만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황청을 비롯한 국제 가톨릭 네트워크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향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10면

“텅 빈 식자재 창고…반찬 하나를 더 줄였다”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100일을 넘어섰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에너지 기반시설 파괴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쟁이 만들어 낸 이익은 일부 기업과 자본에 집중되고 있다. 반면 피해는 가장 낮은 곳부터 찾아왔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뜻하는 ‘워플레이션’은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 온 무료급식소의 운영난으로 이어졌다. 식재료와 생필품 가격은 오르고, 민간 후원은 줄어든 탓이다. 한 끼의 온기를 전해 온 무료급식소가 흔들리고 있다. 물가 상승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자주 구입하는 쌀, 달걀,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올해 5월 기준 123.19(2020년 기준 100)를 기록했다. 전쟁 전인 1월은 121.1로, 발발 이후 체감 물가가 2% 가까이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식재료와 생필품 지출 비중이 큰 무료급식소가 체감하는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줄어든 후원은 무료급식소의 살림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청주교구 관할 무료급식소인 ‘성 빈첸시오의 집’은 푸드뱅크에서 지급받던 물품이 줄어 부식을 축소하고, 식단 구성도 바꿨다. 고물가 속에서 유통기한 임박상품 전문 쇼핑몰이 확산되면서, 과거 기부로 이어지던 물량 일부가 판매 시장으로 흡수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영등포 ‘토마스의 집’도 후원 감소로 쌀이 부족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무료급식소가 전쟁과 물가 상승 같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배경으로는 ‘홀로서기’ 구조가 거론된다. 많은 시설이 후원 모집, 식재료 확보, 홍보, 행정 대응을 개별적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꽃동네 대학교 사회복지카리타스대학원 도건창(요한) 교수는 “재정 투명성을 이유로 지원 조직을 만드는 일을 꺼려하는 사회복지계의 경향이 현장 실무자에게 모든 부담을 안긴다”며 “이는 위기 상황이 닥칠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현장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은 적극적인 홍보로 후원처를 발굴하며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식사 나눔을 넘어 의료, 심리 상담, 구직 지원 등 이용객의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명동밥집 실무자 장석훈(시몬) 씨는 “이용객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다른 시설들도 지역과 후원 기반에 맞춰 버틸 힘을 마련하고 있다. 대전교구 ‘성모의 집’과 사회복지법인 ‘안나의 집’은 각각 케이티앤지(KT&G)와 한국토요타자동차의 장기 지정기탁 후원금 덕분에 물가 상승 충격을 덜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락시장준본당 ‘하상바오로의 집’은 시장 상인들의 자발적인 식재료 기부가 운영에 보탬이 된다고 밝혔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식탁을 지켜 온 무료급식소는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연대성’과 ‘보조성’을 실천하는 곳이다. 이들에게 ‘지금,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연대가 요청되는 시점이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참조)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 연구소장 김성우(이사악) 신부는 “그리스도인에게 무료급식소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면

[COVER STORY - 무료급식소가 흔들린다②] 홀로 버티는 대신 ‘상생’의 식탁으로

무료급식소들은 물가 상승과 후원 감소 속에서도 ‘한 끼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설이 홀로 버티는 방식만으로는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을 이어 온 무료급식소 사례를 통해 후원과 봉사, 식재료 공급망, 교회와 공공의 연계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 살펴본다. “모두 사랑합니다. 오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5월 22일 오전.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은 센터장 백광진(베드로) 신부의 인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명동밥집은 매주 수·금·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급식을 제공한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800여 명, 올해 6월 기준 누적 이용객은 63만 명을 넘어섰다. 식사의 질에도 공을 들인다. 짜장면과 같은 특식을 주기적으로 마련하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를 통해 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가 생산한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관계 기관과 함께 이·미용, 목욕, 의료 지원은 물론 심리 상담과 구직 지원 등 자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 끼를 제공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이용객이 다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한 끼를 떠받치는 대들보들 명동밥집 역시 물가 상승의 부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개소 초기 3500원이던 1인당 급식 단가는 현재 5500원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운영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데는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다. 용도가 제한적인 정부·지자체 지원금과 달리, 정기 후원금은 현장의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기 봉사는 인건비 부담을 덜 뿐 아니라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명동밥집 실무자 장석훈(시몬) 씨는 봉사자들을 “대들보와 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대들보를 세우기 위해서는 홍보가 중요하다. 명동밥집은 SNS와 본당 방문 등을 통해 활동을 알리며 새 후원처를 발굴하고 있다. 장 씨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중요해지면서 농협의 쌀 기부처럼 기업 특성에 맞는 후원도 요청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사례를 모든 무료급식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명동밥집은 교구 기관의 운영과 홍보,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 연계가 함께 맞물려 운영된다. 반면 많은 시설은 담당자와 봉사자 몇몇이 현장을 떠받치는 ‘홀로서기’ 구조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한 곳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 조건을 찾아 다른 현장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현장 잇는 네트워크가 식탁 지킨다 무료급식소들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곳에는 후원금과 물품이 모이지만, 규모가 작거나 덜 알려진 곳은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곳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따로 존재해도, 이를 서로 이어 줄 구조가 없다면 현장의 어려움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10여 개 무료급식소도 다른 급식소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료급식소들을 연결하고 조정할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협의체가 마련되면 식자재 수급 상황을 공유하고, 긴급 후원처를 연결할 수 있다. 봉사자 교육과 위생·안전 교육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급식소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공동 구매나 공공지원 신청 창구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교구를 넘어 교회 차원의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교구마다 사회복지 조직이 있지만, 별도의 협의체를 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톨릭 꽃동네 대학교 사회복지카리타스대학원 도건창(요한) 교수는 “협의체 등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무료급식소 간 연계는 물론, 시설을 지탱하는 봉사자 교육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는 교회의 사회교리가 전하는 연대성과 보조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맛있는 식사를 할 권리 무료급식소의 위기는 주방 안에서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식탁 밖 농업 생산비의 변화도 한 끼 단가를 밀어 올린다. 올해 초 본격화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은 국제 비료 가격과 농기계 가동에 쓰이는 면세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6년 비료 가격 지수가 3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농가가 사용하는 면세유도 리터당 400원 이상 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농이 실천해 온 자연순환형 친환경 농법, 곧 생명농업은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된다. 가농에 따르면, 생명농업은 수입 농자재 의존도가 높은 관행농업에 비해 물가 상승의 충격을 덜 받는다. 가농의 친환경 농작물을 사용하는 일은 이용객에게 어떤 음식을 제공할 것인가 와도 맞닿아 있다. 무료급식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이면서도, 한 사람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하는 기본적인 돌봄이다. 서울대교구 우리농 손성훈(라파엘) 사업국장은 “가난한 이들에게도 맛있는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좋은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비용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가농 농작물은 관행 농산물보다 가격이 약 15% 높지만, 우리농은 명동밥집과 같은 복지시설에는 10~15% 할인해 공급하며 부담을 낮추고 있다. 일부 차액은 후원금으로 메우고 있으나, 이 방식만으로는 장기적인 공급을 담보하기 어렵다. 안정적인 구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일정 부분 비용을 보조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농은 “무료급식소와의 직거래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지만, 일시적 기부나 소규모 거래에 그칠 우려가 있다”며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구매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매입 대금에 대한 ‘차액 보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농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 송파구와 협약을 맺고 가농 농작물을 복지시설에 공급한 바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면 충분히 확장 가능한 모델이라는 뜻이다. 무료급식소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최일선 현장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선의와 헌신에만 기대어 지속될 수는 없다.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 교회, 공공기관이 서로 연결될 때 한 끼의 온기는 지속될 수 있다. 전국 곳곳의 무료급식소가 오늘 준비하는 한 끼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는 ‘오병이어의 식탁’이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1면

[특별기고]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하) - 주요 내용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물리학자이자 사제로, AI 시대 교회의 역할을 성찰해 온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첫 회칙의 반포 배경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5월 25일 반포된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존엄성 수호에 관한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회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이 회칙의 주제입니다. 이미 지난 주에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AI 시대는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유물론적 관점의 확산과 대량 실업, 전쟁 활용과 환경 파괴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문제는 복합적으로 하느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인 인간이 지닌 고유한 가치에 흠집이 생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의 첫 회칙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고귀한 인류는 오늘날 중대한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지내는 도시를 세울 것인가 하는 선택 말입니다.”(1항) 여기서 교황은 이 회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성경적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그 하나는 바벨탑 건설 이야기(창세 11,1-9 참조)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야기(느헤 2-6장 참조)입니다.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창세 11,4)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안정과 힘을 보장하고, 무엇보다도 ‘이름을 날리기’를 원했습니다. … 하지만 그 계획 안에는 깊은 위험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관계없이 구상된 프로젝트였으며, 다양성을 제거하는 획일성에 의존했고, 친교보다는 동질화를 선택한 계획이었습니다. … 따라서 바벨탑은, 아무리 거창해 보이는 노력이라 하더라도 자기 과시에서 비롯되고, 효율성을 위해 인간 존엄성을 희생하며, 하느님의 축복 없이 하늘에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7항) “바빌론 유배 이후, 일부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도시는 여전히 폐허였고, 성벽은 무너져 있었으며, 성문들은 불타 있었습니다.(느헤 1-2장 참조) … 느헤미야는 윗자리에서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각 가문을 불러 모아 각자 맡은 구간의 성벽을 재건하게 했고, 그들의 우려를 들으며 노력을 조율하고 반대에 대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도시가 한 사람의 주도로 다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동 책임을 통해 되살아났음을 보여 줍니다. … 그것은 하느님을 중심에 둔 사업이었고, 돌을 다시 쌓기 전에 먼저 관계를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8항) 이어서 교황은 이 회칙이 작성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드러냅니다. “추상적으로 볼 때 기술 자체는 인간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악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을 구상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규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적인 선택은 기술에 대해 ‘예’ 또는 ‘아니요’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곧 하늘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현존 안에서 형제적 공존의 성벽을 함께 재건하는 백성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9항) 회칙은 AI를 절대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AI의 개발과 사용을 거부할 것을 교황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의 선용을 통해 우리가 다 같이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촉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문제가 정리되고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수호될 수 있을 거라고 교황은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AI를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제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무장 해제(disarm)’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무장 해제란 기술적 힘이 자동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무장 해제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110항) 그래서 이 회칙은 총 245항에 걸쳐 마지막까지 ‘예루살렘 재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재건의 길 중간에 놓인 여러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칙의 본문에서는 AI 시대에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 회칙은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교리를 다루는 회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칙의 앞부분은 레오 13세 교황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까지의 사회 교리의 발전 상황을 요약 정리한 후에 사회 교리의 여러 중요한 원리들 즉 인간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등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후 교황은 AI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지적된 문제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언급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실업, AI 시대의 새로운 노동력 착취, 전쟁에 악용되는 AI, 외교적 다자주의의 위기 등. 회칙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AI 시대에도 인간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경청과 용기, 기도와 책임을 결합하도록, 그래서 기술 관료적 사고방식이나 당파적 이해관계가 우세해 보일 때조차도 인간의 도시가 살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241항) 우리 모두는 AI 시대에도 인간 존엄성이 수호되는 예루살렘을 재건할 소명을 받은 이들인 것입니다. 글 _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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