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 청년 취업난 위해 교회 문 ‘활짝’

국가데이터처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자리 밖’ 청년의 수가 170만 명을 넘어섰다. 조사 결과 실업자,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취업 준비생 등을 합친 ‘일자리 밖’ 상태인 20·30대가 170만 6000명으로, 해당 연령대의 13.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인공지능(AI)의 확산과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으로 청년 구직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신교가 교회 인프라를 활용해 청년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서울 강동구 초대교회는 교회 내 ‘초대구름 작은도서관’을 매개로 청년들에게 일자리, 취업 정보, 멘토링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21년 구재원 담임 목사가 강동구의 주민참여예산사업에 이런 내용의 ‘작은도서관 청년일자리 지원’ 사업을 제안했고, 사업 선정 이후 매년 2명 이상의 청년이 도서관 일자리를 얻는 등 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을 제안한 배경에는 구 목사가 청소년·청년 사목을 이어오며 마주한 현실이 있었다. 구 목사는 취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보며 재정과 인프라를 갖춘 교회가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도와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다양한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초대교회는 재능과 역량 있는 이들을 도서관 강좌의 강사로 세워 소정의 비용과 함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청년 일자리 프로그램 정보도 꾸준히 안내해 실제 사업에 선발된 사례도 여러 차례 나왔다. 앞으로도 문화복지 사단법인 ‘초대와이음’을 설립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인 가정 청년들을 후원하고, 청년 일자리 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할 계획이다. 구 목사는 “선한 마음과 바른 가치관을 지닌 청년들이 취업과 경제적 사정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종교 활동만 열심히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며 “종교는 청년들이 이러한 이유로 공동체를 떠나지 않도록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충현교회도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자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2023년 12월 15일 강남구와 ‘청년 점프업(Jump-Up)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로 4차 산업 분야 취업·창업, 인턴십, 자격증, 청년 스타트업 등 일자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교육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사업을 통해 83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으며, 92명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편,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제동본당(주임 안재현 미카엘 신부)은 2025년 교리실 한 곳을 청소년·청년 전용 독서실로 만들고 무료로 개방했다. 본당은 “방학뿐 아니라 학기 중에도 학생들이 공부와 회의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3면

[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20) 전쟁 포화 속 기후·생명의 희망 찾다

중동에서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은 우리 식탁과 지구 환경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전 세계 물가 상승을 부추겼고, 천연가스 기반 비료 생산이 중단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소득 국가 주민들은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기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압도적이다. 전쟁 발발 후 단 2주간의 폭격만으로 아이슬란드가 1년 내내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더 우려되는 점은 종전 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이다. 이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지난 2주간 배출량의 무려 14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이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핵심 원인임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군사 부문 배출량이 산정되지 않았고, 최근에야 국가별 재량에 따라 포함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의무 사항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군사 부문 배출량을 국가 인벤토리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각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독성 물질에 의한 오염이다. 최근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이 폭격당하자, 시민들은 하늘에서 석유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는 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장기적으로 이란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거대한 재앙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신음하는 이란 시민들을 돕기 위해 필자가 속한 단체와 가톨릭기후행동, 불교기후행동 등 종교단체들이 힘을 모아 이란 영화 특별 상영회를 열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영화를 제작한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 감독과 그의 배우자인 김주영 감독을 초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말미에는 미군 폭격으로 숨진 호르무즈 해협 인근 초등학생 120명의 넋을 기리고, 남은 이들을 돕기 위한 지원 요청이 있었다. 상영회 직후 현장 모금이 진행되었고, 온라인 계좌를 통해서도 적지 않은 성금이 답지했다. 이란 현지 학교에서 한국 지원 단체의 로고를 물품에 넣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은 너무나 거대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 시민들은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처음에는 뉴스 속 피해 소식에 놀라다가도, 반복되는 보도에 마음이 무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위기에 맞설 희망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있다는 소식은, 전쟁을 견뎌내는 이란 시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것이다. 전쟁을 멈추고 지구를 살리는 평화의 연대는 바로 이러한 따뜻한 공감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 교황께서 강조하신 창조물 돌봄과 평화의 디딤돌이기도 하다. 글 _ 민정희(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사무총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7면

‘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한국교회는?

한국교회가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11주년을 기념해 5월 17일부터 24일까지 ‘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지낸다. 올해 주제는 ‘희망에서 행동으로’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폭력,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 사회뿐 아니라 지구와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까지 함께 성찰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기후영화 상영회’는 19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다큐멘터리 「내성천 하늘을 오르다」 상영 후 내성천제비연구소 최태규 대표와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나눈다. ‘삼척 연대 방문’은 20일부터 이틀간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고통받는 강원 삼척에서 진행된다. ‘아픈 삼척 되살리기’의 일환으로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미사와 도보 순례가 마련된다. 생태계 파괴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 이어 온 ‘금요기후행동’ 제318차 행사는 2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쳐진다. 참가자들이 각자 기후위기 피켓을 들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캠페인도 함께 전개된다. 이어 정오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신규핵발전소 반대 광화문 시국 미사’가 봉헌된다. ‘찬미받으소서 주간 기념미사’는 23일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 후에는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출발해 유네스코 빌딩과 명동역을 거쳐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행진이 이어진다. 교구별 기념행사도 잇따른다. 대구대교구는 ‘공생공존, 팔현습지와 함께 희망하다’를 주제로 16일부터 24일까지 교구청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는다. ▲지역 먹거리와 생태 물품 장터 ▲교구·본당 생태 활동 작품 전시 ▲백두대간 국립수목원 허태임(플로라) 연구원 특강 ▲팔현습지 생태공원 현장 체험 ▲영화 <별과 모래> 관람과 토크 등을 진행한다. 대전교구는 18일 오후 7시30분 천안성정동성당에서 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본당에 탄소중립 인증서 ‘LUNA’를 수여한다. 또 2025년 12월부터 운영 중인 생태 실천 애플리케이션 ‘에코체크(ECCE)’를 적극 활용한 신자에게 우수상을 수여한다. ※문의 02-460-7622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 053-250-3072~3 대구대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 사목부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7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노래로 희망 전하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 씨의 2026년 새해 첫 무대는 콘서트홀이 아니었다. 1월 중순, 전북 시골의 작은 성당과 양로원에서 연 ‘희망나눔콘서트’(이하 희나콘)였다. 희나콘은 그가 ‘음악을 통한 나눔’을 위해 18년째 이어오는 음악회다. 국제 무대 데뷔 28년 차,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부시게 빛나는 소프라노’라 했고, 지휘자 르네 야콥스(René Jacobs)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연기자 겸 가수 중 하나’라 했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현장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날 임 씨는 사제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신자들이 끓여준 라면과 어묵탕으로 몸을 녹이고, 항아리에서 꺼낸 김장김치를 나눠 먹으며 공연했다. 이튿날 양로원 어르신들은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걸 언제 또 들을 수 있겠나”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돌아오는 길, 어르신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먹먹한 마음은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나콘은 어쩌면 임 씨에게 가장 본질적인 무대다. 큰 무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초심과 묵상이 절로 일어나는 자리다. 희망을 나누고 받는다 희나콘은 2009년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5월 문화축제에서 시작됐지만, 2013년부터 구조가 전환됐다. 기관이나 본당의 초청으로 ‘희망 공연’을 열고, 그 수익금으로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성당과 복지시설, 병원을 찾아 ‘나눔 공연’을 마련한다. 나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을 기부한다. 받은 것을 각자의 탈렌트로 다시 나누는 형식 덕분에, 음악가들의 자존감이 지켜지고 기쁨도 크다. 희나콘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선 ‘문화’로 20년 가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여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의 경험은 희나콘의 방향을 한층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1965년 아시아 최초로 호스피스를 시작한 이 병원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던 환자 한 분이 방 밖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 마침내 방에 들어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선종했다. “담당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음악이 문을 열었고, 하늘 가실 때 마지막으로 동행한 것이라고요. 그때부터 희나콘은 더 먼 곳,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난 5월 9일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에서 희망 공연을 연 희나콘은 올해도 춘천교구 등지에서 여러 차례 나눔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성당에서 온 답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1999년 23살 때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허에게 발탁돼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르네 야콥스, 만프레드 호네크, 윌리엄 크리스티 등 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들과 작업했고,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프랑스 파리의 주요 오페라 무대를 밟았다. 헨델의 〈아그리피나〉로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와 그래미 노미네이션, 슐호프 가곡 전집으로 독일음반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내내 그는 하나의 물음을 놓지 못했다. “노래가 세상에 무슨 의미인가.” 데뷔 10년이 지날 무렵, 그 답이 뜻밖의 방식으로 왔다.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위로’와 ‘기쁨’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에 위로와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 말이 “너 기쁘라고, 너 위로해 주려고”라는 말로 다르게 들렸다. 노래가 먼저 자신에게 기쁨이고 위로라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위로받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공연 후 찾아와 “당신의 음악으로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다”고 하는 관객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은 희나콘을 이어가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동양인이 바흐 수난곡을 노래하기까지 유럽 고음악계에서 바흐 수난곡은 특별한 영역이다. 매년 사순 시기마다 콘서트홀과 교회 어디서나 연주되지만, 그 레코딩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자리에 동양인이 서는 일은 드물다. 2005년쯤 그에게 기회가 왔다. 녹음도 잘 나왔다. 그러나 결국 노래의 자질과는 무관하게 독일인 소프라노로 대체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고음악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모두를 그에게 맡겼다. 주일마다 성당을 찾는 임 씨를 오랜 협업 속에서 지켜봐 온 야콥스는 “유럽인들이 이 음악을 만들면서 가졌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을, 이 동양인이 가지고 있다”고 섭외 배경을 밝혔다 . 임 씨가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가사다. 외국어 가사를 최소 두 언어로 대조하고 마지막에는 한국어로까지 번역한다. 악보 하나 들고 정자세로 서는 오라토리오(종교 음악) 무대는 그에게 각별하다. 화려한 의상도 무대 세트도 연기도 없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전달해야 하는 시간이다. “발이 다시 땅에 딱 붙는, 저를 겸손하게 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한 임 씨는 “노래할 때마다, 남들에게 빼어나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내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청한다”고 들려줬다. 신앙의 뿌리 부모님의 신실한 신앙과 봉사 활동 속에서 스며든 ‘하느님’은 그에게 자연스럽다. 유럽에서 식사 전 성호경을 그을 때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다음 식사 때는 따라 하는 사람이 생겼고, 성당을 함께 가는 동료도 생겼다. 신앙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성악가에게 활동 영역을 좁히는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임 씨는 지휘자 만프레드 호네크(Manfred Honeck)에게서 찾는다. 2018년 그래미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을 받고 현재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호네크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약할 때부터 미사 시간을 조건으로 넣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임 씨는 호네크가 “하늘에 올라가면 하느님이 ‘너 뉴욕 필 무대에 서봤어? 베를린 필이랑 작업 해봤어?’ 이렇게 묻지는 않으실 것 같다. ‘나한테 물으실 걸 답하고 살아야겠다’”고 했다며, “그 한마디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말하고 싶다 그간 드라마 OST, 뮤지컬 공연 등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들어 온 임 씨의 올해 행보도 다채롭다. 연극배우들과 오페라 가수들이 함께하는 창작극,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모차르트 투어,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20년 만의 러브 듀엣 리바이벌이 예정돼 있다.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대학교(UNISA) 주최 국제음악콩쿠르 심사에서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젊음의 열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떠올렸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후련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맞고 싶다”는 그는 “멋있게 무대를 내려가는 준비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가사가 잘 전달되는 사람,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노래해도 그 가사가 뜻한 것이 듣는 이의 가슴에 닿는 성악가, 그렇게 기억해 주시면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노래할 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 그건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희나콘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공연은 원하는 본당이나 기관이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희망 공연을 열어주신 분들이 곧 나눔 공연의 후원자가 되시는 거예요. 기꺼이 찾아가겠습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2면

“전쟁은 호르무즈 뭇 생명과 환경 모두 파괴”

가톨릭기후행동과 작은형제회 JPIC,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등 종교·환경단체들은 4월 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7층 체칠리아홀에서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을 초청한 가운데 ‘이란 영화 특별상영회’를 열었다. 상영회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종전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전쟁 피해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전쟁을 인명 피해와 인권 문제만이 아니라 생태·기후 위기의 관점에서도 바라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소헤일리 감독은 전쟁이 민간인의 삶을 파괴할 뿐 아니라 탄소 배출과 환경오염, 물 부족 등 생태적 피해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상영회에서는 소헤일리 감독의 영화 <Cold Birth>, <푸른 눈의 소년>, <공존>이 상영됐다. 특히 <공존>은 이란 최남단 호르무즈섬에 사는 시각장애인 어부 델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8년 이란과의 핵협정을 파기한 직후, 이란 정부가 미국을 비난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하던 시기에 촬영됐다. 영화 속 라디오에서도 “석유 수출 차단”, “적들의 음모”, “이란 강경 대응”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델라는 긴장된 정세 속에서도 삶의 터전인 호르무즈 해협의 배 위에서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신다. 감독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촬영하며 소금과 바다, 물고기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이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만큼, 영화 속 어부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쟁은 현지 환경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감독은 전쟁이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란 주민들에게는 ‘오염된 주변 환경’이 더 직접적인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는 물 부족을 꼽았다. 최근 테헤란에서는 가스·정유 시설 폭격 이후 심각한 대기오염이 이어졌고, 이른바 ‘검은 비’ 현상까지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폭격으로 발생한 탄소와 메탄 등 오염물질이 비와 함께 내리면서 도시 전체가 검게 물들 정도의 환경 피해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호르무즈섬 일대에서는 폭격으로 정유 시설뿐 아니라 야생동물 보호구역도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이란 전역 국립공원에 개체를 보내 번식시키던 사슴 보호구역이 공격으로 파괴되면서, 예민한 특성의 사슴들이 대거 폐사했을 것”이라며 “이런 내용은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old Birth>는 폭설과 단절 속에서 출산을 위해 길을 나서야 했던 한 임산부의 기억을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푸른 눈의 소년>은 세상을 파랗게 보는 소년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은 “긴장과 폭력의 공간 안에서도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평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소헤일리 감독은 2025년 이란 현지로 갔으나, 같은 해 6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두 아이를 데리고 육로로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한국에 있던 아내 김주영 감독과 함께 다시 이란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미국-이란 전쟁이 발생하면서 현재까지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에 있는 가족들과도 자유롭게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주영 감독은 “모든 종교가 지닌 공통된 목적은 더 나은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멀리 떨어진 이란에 관심을 두고 이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숭고한 일”이라고 말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7면

[이웃종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축성 100주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축성 100주년을 맞았다. 대한성공회는 5월 3일 ‘서울주교좌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감사성찬례’를 봉헌하고, 지난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새로운 100년을 향한 비전을 선포했다. 이날 교구장 김장환(엘리야) 주교는 “오늘은 단순히 건물 한 채의 100년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앞으로의 100년 동안 우리가 어떤 교회로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날”이라고 말했다. 감사성찬례는 지난 한 세기 역사를 기억하는 100번의 타종으로 시작됐다. 약 10분 동안 울려 퍼진 종소리 뒤에는 어린이들이 성당 문을 두드리고 여는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출발을 알렸다. 주교가 지팡이로 문을 두드려 열던 기존 방식과 달리, 미래 세대에게 앞길을 열어 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념식에서는 ‘백 년의 감사, 다음 백 년의 약속’을 주제로 성공회 공동체의 다짐도 선포됐다. 본당 주임 박성순(야고보) 신부는 비전 선언문을 통해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하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는 거룩한 교회 ▲모든 이를 환대하는 공번된 교회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사도적 교회 등 네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1926년 5월 2일 축성된 서울주교좌성당은 영국인 건축가 아더 딕슨의 설계로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당시에는 부분 완공 상태로 축성됐으며, 재정적 어려움과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6·25전쟁 등을 거치며 70년 만인 1996년에야 완공됐다. 성당은 주홍색 지붕과 아치형 창문, 석조와 벽돌이 어우러진 외관으로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1937년 조선총독부가 체신국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성당 앞을 가로막으면서, 오랫동안 시민들에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옛 청사가 철거되면서 성당은 도심 속 역사·문화 공간으로 다시 시민들과 만나게 됐다. 성당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드러낸 공간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10일 민주 인사들은 성당에 진입한 경찰의 방해를 뚫고 종루에 올라 42번 종을 쳤고, 이 종소리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됐다. IMF 외환 위기 당시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푸드뱅크’가 이곳에서 태동했다. 이처럼 성당은 단순한 기념 공간을 넘어, 시대의 아픔 속에서 기도와 연대의 자리를 지켜 온 신앙 공동체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김 주교는 “주교좌성당의 지난 100년은 갈망의 역사였다”며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이곳에서는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3면

[이웃종교] 천주교·불교 화합의 장 “부처님 탄생 축하합니다”

천주교와 불교계가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의 자리를 마련했다. 대전교구 세종 직장직종사목부는 4월 29일 세종남부경찰서에서 열린 ‘불기 2570 봉축 연등 점등식’에 참석해 석가모니 탄생을 축하했다. 이번 행사는 5월 24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세종남부경찰서 경승실이 주관했으며, 경승실의 초대를 받은 천주교 사제와 신자들도 함께했다. 행사에는 세종 직장직종사목부 전담 국일호(대건안드레아) 신부, 세종남부경찰서 교우 공동체 박충서(미카엘) 회장, 경찰서 내 불교 신자 등이 참석했다. 축사를 맡은 국일호 신부는 종교 간 교류의 장점을 설명했다. 국 신부는 “행사 중 스님과 불교 신자들의 합송을 들으며 두 종교가 같은 목표 아래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알게 된 기회였다”며 “종교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고, 화합의 장을 마련해 준 경승실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경승실장 광원 환성 스님도 “불교와 천주교는 늘 다툼 없이 친교 안에서 교류해 왔다”며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계속해서 종교 간 상생의 자리를 만들며 교류를 이어가겠다”고 화답했다. 봉축 연등 점등식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연등회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연등에 불을 밝히며 자비와 지혜의 빛으로 온 부처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세상의 평안과 자비를 기원한다. 불교계 대표 행사인 연등회는 점등식 이후 연등 행렬, 전통 불교 공연, 연등놀이, 봉축법요식 등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사회의 문화축제로 자리 잡은 연등회는 참여·배려·평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3면

“서로 다른 소리 맞추듯…배경 달라도 마음은 하나”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주말이면 이곳 지하에서 기타와 드럼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음악 소리를 따라 지하 1층 음악 연습실로 내려가면 일렉과 베이스 기타, 드럼, 피아노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각 악기를 맡은 학생들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를 맞춰 나간다. 서툰 대목에서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다시 박자를 맞추며 곡을 이어 간다. 한국 청소년과 이주 배경 청소년이 함께 만든 센터의 하나뿐인 청소년 밴드 ‘이쁜이 쉐이크’다.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 멤버 가운데 두 명은 한국 청소년, 두 명은 어머니가 외국인인 이주 배경 청소년이다. 밴드는 보컬이자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이재영(요셉) 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고1 여름방학 때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해 보고 싶었어요. 친한 친구들 가운데 악기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친구들과 모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주 배경 청소년인 이 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센터가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꿈터’에서 처음 기타를 배웠다. 음악 선생님에게 통기타와 일렉 기타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베이스 기타에도 관심이 생겼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센터가 이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공연 무대에도 올랐다. 고등학생이 된 2025년에는 센터에서 만난 친구들을 모아 직접 밴드를 만들었다. 기타를 배우던 공간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밴드 연습실이 됐다. 이 군은 악기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연주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센터는 이주 배경 청소년뿐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에게도 열려 있다. 이 때문에 밴드도 국적이나 배경을 따지기보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꾸려졌다. 같은 이주 배경 청소년인 원대연 군은 드럼을 맡고, 한국 청소년인 구예찬 군과 양희훈 군은 각각 베이스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한다. 원 군은 중학생 때 이 군과 함께 센터 공연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다. 이들은 5월 10일 김포시 제2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리는 ‘이주민 장기자랑’ 무대에도 함께 서고 싶었다. 센터 담당 김주찬(알베르토) 신부의 색소폰 연주에 맞춰 합주하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학교 시험 기간과 연습 일정이 겹치면서 이번에는 이 군만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친구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만큼 앞으로 밴드 활동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센터 안에서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꿈도 조금씩 키우고 있다. 원 군은 간호사, 구 군은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군은 성인이 되면 악기를 들고 도심에 나가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센터는 이주민과 이주 배경 가정, 지역 주민이 구별 없이 어울리는 공동체를 지향해 왔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함께 활동하며 사회성을 키워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 밴드는 단순한 취미 모임을 넘어 센터가 꾸준히 이어 온 교육과 돌봄의 결실이기도 하다. 센터가 지자체 등과 연계해 청소년들에게 음악과 미술 등 예술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온 시간이 밴드라는 모습으로 이어진 셈이다. 센터 사회복지사 서효정(미카엘라) 팀장은 “2014년부터 공모 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왔다”며 “음악 연습실과 악기를 갖춘 것도 관심 있는 학생들이 누구나 배우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음악 안에서 친구가 되고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센터의 운영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7면

제주교구 사회사목국, 청년 사목 패러다임 진단

청년의 실제 삶에 진정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사목으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교구 사회사목국 주관으로 5월 2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제주, 기쁨과 희망’ 포럼에서 살레시오회 박정우(요한 세례자) 신부는 “청년들의 고립된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상처 입은 청년들과 나란히 걷는 인격적 동반”이 청년 사목의 본질이라며, 청년 사목의 패러다임이 ‘관리에서 동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신부는 ‘함께 걷는 여정’으로서의 가톨릭 청년 사목 재조명: 영적 동반 사목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하며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위기를 짚었다. 특히 신앙이 공동체적 투신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위한 도구로 축소되는 ‘사사화(私事化)’ 현상에 주목했다. 교리적 권위에 일방적으로 순응하기보다 다양한 영적 시장에서 개인 취향에 맞는 묵상과 영성만 선별해 소비하는, 이른바 ‘영적 옴니보어(Omnivore)’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박 신부는 2022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서 20대와 30대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각각 7.1%, 7.7%에 그친다는 점도 제시했다. 그는 이 수치가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교회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영적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교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다뤘다. 수평적 소통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는 본당 문화, 청년을 사목의 주체가 아닌 행사 유지를 위한 기능적 인력으로 취급하는 태도, 봉사를 거절할 때 밀려오는 죄책감과 의무감의 이중고가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성사적 동반’을 강조하며, “섣부른 훈계를 멈추고 청년의 언어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는 ‘경청하는 교회’, 절망한 청년들 곁에 조건 없이 다가가는 ‘동반의 여정’, 인내로운 경청을 통해 닫힌 마음을 여는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시노달리타스에 기반한 성찰적 제도화, 청년들을 사명 수행의 온전한 주체자로 격상시키는 구조 재편, 나이별 분리 사목을 넘어서는 통합적 세대 사목 등도 과제로 제안했다. 특히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청년들을 단순히 동원하는 행사가 아니라 기획부터 실행까지 청년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2027 서울 WYD를 앞두고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교회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어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 예정이다. ‘제주, 기쁨과 희망’ 포럼은 2022년 시작됐다.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교구 종합 보고서에서 교구민들이 지역사회의 현실 문제와 교회 공동체 문화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교구는 인권·평화·생태·환경 등 현실 문제에 교회가 적극 참여하는 장으로 포럼을 열어 왔다. 그동안 제주 4·3 사건, 희년과 생태적 회개, 제2공항과 도민 자기 결정권 등 제주 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루며 교구민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포럼에서는 사회적기업 ‘섬이다’ 대표 김종현 씨의 ‘창조적인 사람과 교회 - 안전지대, 문화 경험, 소명 의식’ 주제 발표도 있었다. 김 씨는 청년들을 위한 안전지대로서의 교회, 문화 활동을 통한 높은 단계 욕구를 향한 경험 제공, 성장의 기회 제공 등을 젊은 교회를 위해 나아갈 방향으로 강조했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7면

[순례, 걷고 기도하고] 안동교구 우곡성지

한국교회가 공식적으로 창립(1784년)되기도 전, 조선의 한 명문가 선비가 보장된 미래와 명예를 뒤로 하고 홀로 하느님 안에서 ‘진리’를 찾아 나섰다. 당시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이름 없는 산중에 은거하며 천주교 신앙을 고요함 속에 실천했다. 그가 바로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修德者)로 불리는 농은(隴隱)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이다. 선생과 그 후손들의 안식처인 안동교구 우곡성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 신앙의 맑은 샘물을 건네주는 영적 요람으로 빛나고 있다. 자발적으로 수용한 신앙을 실천한 신앙 선조의 고결함과 피와 땀이 깃들인 우곡성지를 찾았다. 칠극, 삶으로 몸소 증거한 신앙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愚谷里),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중턱까지 걸어가니 해발 1206m에 달하는 문수산 자락에 안긴 우곡성지 입구가 보인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봄의 햇살과 푸른 하늘 아래, 저 멀리 십자가와 홍유한 선생의 동상이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말끔하게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을 한 선생의 동상을 자세히 보니 책 한 권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있다. 바로 그의 평생 지침서였던 「칠극(七克)」이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회원 판토하 신부가 쓴 교리서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 등 ‘칠죄종’을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에 닿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홍유한 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인 풍산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16세 나이에 당시 실학의 거성이었던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서학(西學)을 접하고 인간 영혼의 구원을 밝히는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했다. 1750년경부터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세례를 줄 신부도, 신앙을 함께할 신자 공동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세속의 일을 끊고 오직 기도에 전념했고, 육욕을 멀리하며 금식과 절제를 생활화했다.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규율한 그의 수덕생활은 충남 예산, 경북 영주를 거쳐 마지막 은거지인 우곡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겸손과 절제, 소박한 신앙의 향기 곳곳에 우곡성지 순례 여정의 시작은 ‘칠극의 길’이다. 안동교구는 1993년 홍유한 선생의 묘를 발견해 순차적으로 성지를 개발했고, 2015년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리기 위해 칠극의 길을 조성했다. 잔잔히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따라 고즈넉하게 마련된 길 위에는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이기는 덕목들이 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제1극 ‘복오(伏傲, 교만을 억누르다)’에서부터 제7극 ‘책태(策怠, 게으름을 채찍질하다)’에 이르기까지 선생이 스스로를 경계하며 닦았을 겸손과 절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곡성지 담당 윤성규(바오로) 신부는 “홍유한 선생은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분”이라며 “당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대부였지만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고 철저하게 복음적인 삶을 사셨다”고 설명했다. 칠극을 묵상하며 주모경과 영광송을 바치고 걷다 보면 길의 끝자락에 ‘칠극성당’이 보인다. 화려한 장식은 없어도,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조화된 소박한 외관은 홍유한 선생의 곧고 굳은 신앙심과 평소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1995년 세워진 성당 내부는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모양을 묘사한 파란 스테인드글라스가 부드럽게 빛을 내며 신앙 공동체를 감싸고 있다. 성당 옆에는 한복 차림을 한 흰색 성모상이 주변의 봄꽃과 수풀 사이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자태로 순례객에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국교회는 유교적인 문화와 가톨릭 신앙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역사가 있다. 선비의 절제와, 하느님의 자애로움이 만난 영성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앙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후손들이 빚은 신앙의 열매 영원히 홍유한 선생의 고귀한 신앙은 후대에 이어졌다. 그의 뜻을 이어 신앙을 증거하다 13명의 후손이 순교한 것이다. 순교한 후손 중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지난 1984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 됐다. 홍낙민 루카 등 5명은 2014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은 삶의 끝까지 선생의 신앙을 따랐으며 하느님 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칠극성당에서 다시 입구 방향으로 이동해 산기슭 쪽으로 가면 홍유한 선생 후손 순교자 13위의 가묘와 현양비가 보인다. 시복 시성된 후손들이지만, 그 유해를 찾지 못해 각 순교 터의 흙을 담아 묘를 조성했다. 비어 있는 묘이지만, 그 어떤 무덤보다도 소중하고 묵직한 신앙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묘를 지나 홍유한 선생의 묘소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속 산길에는 십자가의 길 15처가 조성돼 있다. 신앙 선조들이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고 험한 산길을 오르며 바쳤을 기도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기면 중턱에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묘소는 소박한 모습이다. 작은 봉분에 간결한 비석은 평생 숨은 구도자로 살아간 생애를 보여주는 듯하다. 높은 산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처럼, 그 누구보다도 맑은 신앙으로 예수님을 닮으려 했던 선생의 마음이 바로 이곳에 오롯이 머물고 있다. 우곡성지를 둘러 보는 순례길은 1~2시간 남짓 소요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순례자들은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평생에 걸쳐 지켜왔을 깊은 신앙과, 때로는 인간적으로 고민했을 삶의 본질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윤 신부는 “순례나 피정을 위해 성지를 찾는 분들은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고 홍유한 선생의 삶에 감동하며 자신의 삶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곡성지 순교자 현양비에는 “우곡의 골짜기는 이곳을 찾는 신앙인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신앙의 골짜기, 거룩한 땅, 성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신앙은 단순히 ‘관성적인 믿음’이 아닌 ‘끝없이 성찰하고 실천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우곡성지는 고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숲길에서 진정한 평화와 신앙의 가치를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선물하고 있다. ◆ 순례 길잡이 주소: 경북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우곡리 151-2) 미사: 오전 11시(화요일~주일) 후원 계좌: 우체국 702266-01-001352 재단법인 천주교안동교구 문의: 054-673-4152 우곡성지 사무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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