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예수님 마음 담으며 성미술 가치 깨달아”
피아노 치던 아이가 미술에 눈떠
제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어릴 적 친구들은 저를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아이라고 기억하거든요. 어머니께서는 제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면서 성당에서 봉사하는 아이로 키우셨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까지 줄곧 성당에서 미사 반주 봉사를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관련 상을 많이 받았어요.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미대를 나오신 분이셨는데, 저를 데리고 여러 대회에 나가셨어요. 선생님 권유로 예중 시험을 보긴 했지만, 떨어졌어요. 사실 저는 미술 관련해 따로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 후로도 계속 피아노만 쳤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커졌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할 때 어머니께 말씀드렸죠. 미대에 가겠다고요.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셨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단호했어요. 피아노를 치는 시간보다는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더 즐거웠거든요. 그리고 흙으로 무언가 만드는 게 좋았어요. 흙의 느낌이 좋았고, 무언가 노동을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더 좋았어요. 그렇게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게 됐어요.
기자에서 성미술 작가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기자 일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 4학년 때 개념 미술로 유명하신 안규철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요. 안 선생님은 조소과를 졸업하고 잡지사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요. 저는 글은 잘 쓰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경험을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여기저기 미술 관련 잡지사 문을 무작정 두드렸어요. 한 입시미술 잡지사에서 저의 이런 모습에 ‘기자 답다’면서 채용을 해줬어요. 그리고 제가 만나고 싶은 작가들에 대한 기획안을 제출해서 기자라는 신분으로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많이 방문할 수 있었어요.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무언가 준비가 되어야 제 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내고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면서 저도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러면서 작가들을 만나면서 생각했던 영감을 노트에 계속 적으면서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발행하던 ‘들숨날숨’이라는 잡지사에 들어갔어요. 무려 2년에 걸쳐 문을 두드린 뒤에 입사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왜관수도원 신부님들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자주 다니시면서 유럽에는 젊은 작가들도 가톨릭 미술을 많이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요. 이후 조광호 신부님을 도우면서 성미술 작가로서 수업을 받게 됐어요.
그리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양평 수도원의 십자고상을 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들숨날숨 시절 남편인 장동현(비오) 작가와 유럽 성당 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했던 임근배(야고보) 건축가가 수도원 성당을 지었는데 저에게 기회를 주셨던 거죠. 당시 둘째 아이를 잃었던 때였는데, 슬픔에 빠져 있지 말고 작업에 매진하라면서요. 아픈 분들, 슬픔에 빠져 있는 분들의 고통을 안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십자고상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그 십자고상을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내 마음이 전해졌구나’ 하는 마음에 남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이후로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성당과 수도원 등에서 작업을 했어요. 한번은 천진암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성당 십자가의 길 작업을 했는데, 원래 성당에 한 수녀님께서 나무를 깎아 만드신 십자가의 길이 있었어요. 수녀님들의 역사를 읽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그 나무 십자가의 길에 제 작품을 덧붙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서울대교구 청량리성당 성모자상은 제가 처음 만든 성모상이었는데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를 묵상하면서 만들었어요. 뒤에서 아들이 가는 길을 묵묵히 기도해 주셨던 성모님을 표현했어요. 저도 제 아이들이 저마다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요.
일상의 삶을 성미술 작품으로 표현하고 파
성미술 작가로서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하는 것을 좀 들여다보고 싶어요. 대학 시절 인체 조각에 관심이 많았는데, 성미술 작업을 하면서 인체 조각에 사람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성모상이라고 하면, 형태만이 아니라 조각 안에 그분의 마음을 담아내는 게 성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미술 작업은 더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매일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갈 거예요. 복음을 읽다 보면 옛날 이야기같지만 현대 우리의 삶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져요. 결국 제가 작업하는 성미술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표현들인 거죠. 그러니까 저에게 주어진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잘 살아내면서 그런 삶의 이야기들을 제 작품에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 인근에 살고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순교자들의 삶에 대해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성미술 작품을 통해 선교사의 활동이 아닌 평신도들이 책을 통해 받아들인 신앙을, 우리 순교자들의 믿음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 조수선(수산나) 작가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6년 첫 개인전 이래 7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양평 수도원 십자고상을 시작으로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솔뫼성지 등 성지와 수도원을 비롯해 20여 곳의 본당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2016년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